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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in Black and White

사람들 사이엔 선이 있다

흑백영화 '기생충(Parasite)' ★★★★★


1월 30일-2월 6일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2월  8일부터 IFC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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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기생충'은 1월 말 현재 칸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상 등 170여개의 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 1월 30일부터 뉴욕과 LA에서 흑백 버전으로 상영 중이다. '기생충'은 1월 29일 네덜란드 로테르담(Rotterdam) 국제영화제(1/22-2/2)에서 세계 최초로 소개됐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 개봉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기생충'은 이미 컬러 오리지널 버전으로 감상한 팬들도 흑백 필름으로 다시 즐길 수 있는 기회다. '기생충'을 흑백으로 다시 한번 보았다.  


오손 웰스 감독의 걸작 '시민 케인'(1940),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1948),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1980), 데이빗 린치의 '엘리펀트 맨'(1980),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1984)도 흑백으로 찍었다.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에서는 천사가 인간이 되며 흑백에서 컬러로 바뀐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도 흑백영화의 걸작이다. 파블로 피카소가 전쟁의 참상을 그린 걸작 '게르니카(Guernica, 1937)'은 흑백이며, 구겐하임뮤지엄에서는 특별전 'Picasso Black and White'(2013)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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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독일이 프랑코 치하 스페인의 게르니카에 폭격한 것에 분노한 피카소가 흑백으로 그린 '게르니카'(1937)는 20세기 가장 강력한 반전 회화로 평가된다.


왜 흑백영화는 매력적일까?

우리의 현실은 컬러이므로, 흑백은 비현실적인 세계다. 따라서 '기생충'은 2019년의 서울 이야기가 아니라 옛날 이야기, 꿈 혹은 우화처럼 보인다. 또한, 흑백영화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나 할리우드의 초기의 필름 누아르, 호러 영화를 연상시킨다. '기생충'이 스릴러, 드라마, 코미디가 믹스된 비빔밥 장르이므로 이에 걸맞는 형식이다. 


흑백영화는 컬러풀한 현실 세계의 불필요한 색채를 제거한다. 흑과 백의 명도와 채도로 단순화하면서 화면의 분위기, 질감을 살리며, 심도를 깊게한다. 흑과 백은 빛과 어두움, 낮과 밤에서 선과 악까지 묘사할 수 있는 상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검은색은 권력이나 비장함 뿐만 아니라 절망과 비극까지 묘사한다. 빛과 그림자로 황량한 세계, 인물의 복잡한 심리 묘사도 강화된다. 특히 '기생충'은 가난한 김씨 가족과 부유한 박사장 가족, 두 계급의 대조를 상징적으로 명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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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in Black and White


김씨 아들은 친구가 수석(scholar's rock)을 들고 찾아왔을 때 "상징적인데"라고 말하며, 기택은 운전기사로 채용을 앞두고 가족과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상징적이다"라고 언급한다. 봉준호 감독은 그 상징성을 곳곳에 숨겨두었다. 상징을 포착하기에는 컬러보다 흑백이 더 유리하다.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수석은 기택네가 벽에 걸린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가훈을 저버리게 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수석의 등장은 김씨네에게 길조였다. 전원 백수가족 김씨네는 피자박스를 접다가 기회가 오자 온가족이 박사장네에 전원 취업하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그들은 거짓과 기만으로 남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온다는 수석은 무기가 되었다가 아들의 집착과 꿈, 흉조가 되기도 한다. 아들은 마지막에 수석을 산의 시냇물 속에 내려놓는다. 수석의 근본인 자연, 제 자리로 돌아가는 메타포이기도 하다. 육사 출신 친구 할아버지의 소장품 수석은 어쩌면 버려야할 유산, 미신에 가까운 종교나 도그마를 은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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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in Black and White


자연은 모든 계층에 균등하지 않다. 김씨 가족이 사는 반지하는 바퀴벌레와 꼽등이가 출몰하며, 낮에도 햇빛을 일부만 받을 수 있다. 이들의 사적인 공간은 노상방뇨와 소독차에 의해 방해받는다. 실내에서 땅은 눈의 높이에 있지만, 거리에서는 바닥이 되는 하층민의 삶을 상징한다. 반면, 박사장네 저택은 '시네마스코프'같은 통유리로 햇빛이 시원하게 들어온다. 이들의 공간은 두터운 유리, 넓은 정원, 그리고 성채같은 담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심지어는 아들의 미제 인디언 텐트조차 방수제품이다. 흑백영화 '기생충'에서 햇빛과 인공조명은 두 계층의 삶을 대조시킨다. 사진처럼 영화, 특히 흑백영화는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비도 마찬가지다. 박사장네에게 비는 캠핑을 취소하는 귀찮음에 불과하다. 대신 그의 아들은 통유리 바깥 정원에서 럭셔리 야영으로 대치한다. 박사장 부인은 다음날 "밤새 내린 비로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 날씨가 굉장히 좋아졌다"며 감탄한다. 하지만, 비는 김씨네 반지하방을 침수시켰다. 그들에게 대안은 이재민을 수용하는 거대한 체육관, 사생활이 없는 공간이다. 있는 자들에게 자연 재해는 불편한 일상에 불과하지만, 없는 자들에게 자연은 잔인하다. 비/물 장면은 '기생충' 흑백버전에서 더욱 매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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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춤을 추는듯한 장면. "Parasite" in Black and White


'기생충'의 계급 정체성을 규정하는 냄새의 메타포는 더욱 강화된다. 반지하방에서 보는 술주정뱅이의 노상방뇨 장면이나 박사장집에서 나와 폭우 속을 달리는 김씨네 가족에게 떨어지는 빗줄기, 물에 잠긴 반지하방, 역류하는 변기까지 김씨 가족에게 물은 비참한 현실이다. 관객은 단순화한 흑백 이미지 속에서 냄새와 물 잠긴 지하방을 상상하게 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까지 총동원되는 감각적인 체험이 된다. 


봉준호 감독은 장면 곳곳에, 대사 곳곳에 빈부 격차, 학력위조, 남북관계, 한일관계, 사대주의 등 한국사회의 초상이 되는 모티프를 깔아놓았다. 방충차, 수석, 대만 카스테라 체인, 치킨집, 갈비찜, 한우 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짜장면 대신), 바쏘(Vasso) 생수, 복숭아, 매실차, 무말랭이, 독도는 우리땅, 방공호, 북한 핵미사일, 조선중앙TV 리춘히, 인디언 텐트 등 미장센(Mise-en-Scène)과 대사에 메타포가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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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벨'에서 빨간 드레스 차림의 베티 데이비스(왼쪽). '성난 황소'에서 제이크 라 모타 역의 로버트 드 니로.


컬러는 세상을 윤기나게 보여준다. 흑백영화는 컬러를 배제함으로써 대신 숨은 색채를 더더욱 강조할 수 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성난 황소'에서 피가 난무하는 권투장면은 흑백이지만, 관객은 상상력으로 피와 잔인함을 인지하게 된다. '기생충'의 클라이맥스에서 김씨 가족과 가정부 부부, '불우이웃끼리'의 육탄전과  박사장 아들 생일파티의 난동에서 피의 색깔은 검은색이지만, 관객은 붉은 피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상상의 힘은 현실보다 강하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흑백영화 '지저벨(Jezebel, 1938)'에서 베티 데이비스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에 나타났을 때 보이는 색깔은 진한 회색이지만,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관객은 새빨간색을 상상하게 된다. 따라서 검은 피는 더욱 잔인하고, 폭력장면은 더욱 잔혹하다. 흑백으로 컬러의 효과가 증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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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in Black and White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계단의 영화'라고 했다. '설국열차'(Snowpiercer, 2013)가 사회계급을 수평적으로 배열한 반면, '기생충'의 계급은 수직구조다. 


김씨네는 박사장네로 집단 취업하며, 언덕과 계단을 올라간다. 신분의 수직상승이다. 그리고, 선을 넘는다. 어느 주말 박사장네는 캠핑을 갔고, 김씨네는 저택에서 한판 술파티를 벌인다. 다음날 김씨네가 도망쳐 나올 때 폭우 속에서 계단과 계단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신분하강과 함께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고도, 험난하며, 비참한 여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퀀스는 흑백 버전에서 가장 비참하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 빗물은 하늘의 벌일까? 김씨네 가족 슬픔의 눈물일까? 홍경표 촬영감독의 서정성이 발휘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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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아들, 박사장 부인, 가정부의 첫 만남. 검은색, 흰색, 베이지색 옷이 세사람을 상징한다. 흑백에선 흑/백/회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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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는 선이 있다. 냄새는 선을 넘는다. 세가족이 공생하는 박사장의 저택.  "Parasite" in Black and White


박사장의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는 김씨네 가훈 '안분지족(安分知足)'과도 상통한다. 문서 위조와 사기로 일자리를 얻은 김씨 아들은 박사장 딸과 선을 넘고, 김씨 딸은 가정부의 복숭아 알러지를 이용한다. 김씨는 박사장에게 '사랑'을 운운하며, 사생활을 침범(?)하고, 박사장 부인의 손목까지 잡는다. 김씨 부인은 가정부의 일자리를 빼앗을뿐 아니라 그녀를 발길로 차 뇌진탕을 숨지게 만든다. 김씨 가족은 탐욕으로 단결한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선을 넘고, 넘어서 종국엔 파탄에 이른다. 딸은 죽음을 맞고, 김씨는 지하에 갇히고, 부인과 아들은 반지하방으로 돌아간다. 영화 도입부에서 김씨네 동네로 소독차가 지나가는 것, 김씨네 가족이 '바퀴벌레처럼' 식탁 밑으로 숨는 장면도 복선이 깔린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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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만, 공허한 박사장네, 가난하지만, 단결하는 김씨네. "Parasite" in Black and White


김씨네는 지금 가난하지만, 온 가족이 생존을 위해 단결한다. 봉 감독은 가부장적인 가족 대신 무력한 아버지(기택, 송강호 분), 해머 던지기 선수였던 힘센 엄마(충숙, 장혜진 분), 여린 아들(최우식 분), 담배를 피우는 영악한 딸(박소담 분)로 전통적인 남녀관을 전복한다.  


박사장네는 부유하지만, 넓은 저택처럼 가족 관계는 공허하다. 냉정한 글로벌 IT 기업 사장 박사장(이선균 분)은 아들을 편애하며, 부인(연교, 조여정 분)는 기우 친구(민혁, 박서준 분)의 말처럼 '심플하다', 즉 무지하다. 조숙한 딸(다혜, 정지소 분)은 남동생을 편애하는 부모에 불만이 많고, 아들(다송, 정현준 분)은 트라우마가 있다.    


가정부(문광, 이정은 분)은 빚쟁이들을 피해 지하 방공호에 숨은 남편(근세, 박명훈 분)을 위험을 무릅쓰고 보살피는 강인한 여성이다. 그의 남편은 온갖 법률 서적에 둘러싸여있지만, 우유병과 바나나, 즉 구순기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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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방공호에서, 지상에서 공생을 즐기던 근세와 문광. "Parasite" in Black and White


가정부는 빗쟁이 남편을 방공호에 숨겨두고 주인을 기만하며, 김씨 가족을 협박한다. 지하 방공호에서 살아온 가정부 남편은 놀랍게도 도덕성이 투철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의 신조는 '존경(Respect)'이다. 김씨네 가족에게 발각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상으로 선을 넘지않고, 지하에서 '안분지족'하고 싶었다. 그의 삶은 비굴하지만, 적어도 인간에 대한 예우를 지키고자 한다. 우유병과 바나나로 상징되는 아기같은 순수성을 보존하고, 자신을 먹여살린 박 사장에게 모르스 부호로라도 감사를 전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빚을 피해 박사장 저택 지하로 들어가며 이미 선을 넘었다.


한편, 글로벌 IT 그룹 'Another Brick'을 경영하는 박사장은 사람을 벽돌 하나처럼 취급하는 냉정한 인물이며, 그의 부인은 순진하게 사람 소개로 사람을 채용하는 '믿음의 벨트'를 수호자다. 이들은 하층계급의 정체성과 다름없는 냄새가 선을 넘어오자 경멸하며 김씨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봉준호 감독은 부익부빈익빈, 계급갈등, 취업난 등 한국사회의 문제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직하지 못한 삶과 탐욕에 대해서는 응징하는듯 하다. 카톨릭 신자로 알려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십계명을 연상시킨다. 김씨 가족은 '살인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등 네가지의 계명을 어긴 만큼 처벌당한다. 흑백영화 '기생충'은 컬러보다 더 명확하게 숭고하고,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덕 교과서같다. 폴란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 감독의 TV 영화 '십계(Dekalog, 1989)'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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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in Black and White


박사장집 파티 난동 한달 후 병원에서 깨어난 김씨 아들은 '형사같지 않은 형사, 의사같지 않은 의사'와 대면하며 '조커(Joker)'처럼 실실 웃는다. 박사장집 살인사건은 '부잣집 파티에 난입한 노숙자가 묻지마 살인을 하다가 피해자들에게 반격을 당해 죽고, 운전기사가 갑자기 고용주를 살해하고 실종된 미스테리 사건으로 보도된다. 이는 경찰, 의사, 기자들의 무능력을 암시한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처럼 상대적인 진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진상을 목격한 관객을 진실을 갖고 영화관을 떠나게 된다.

 

결말에서 제 자리인 반지하방으로 돌아간 김씨 아들은 박사장 저택을 사서 아버지를 구출하는 희망을 갖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모처럼 세운 그의 계획을 성취하는데는 100년도 더 걸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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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가난한자의 공생은 가능한가? "Parasite" in Black and White


'기생충'은 때때로 코믹하고, 때때로 공포스러우며, 결말은 참혹하다. 누가 기생충일까? 우리 모두 기생충일까? 부자와 빈자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흑백 버전의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사회문제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더욱 강화하며, 관객에겐 오감을 만족시킨다. 


봉준호 감독은 2013년 김혜자씨 주연 '마더'를 흑백 버전으로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Mar del Plata) 국제영화제에 출품한 적이 있다. 흑백버전의 '기생충'은 2월 7일까지 링컨센터 프란체스카 빌 시어터에서 상영되며, 봉 감독은 1일 오후 12시 45분 상영회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연다. 

https://www.filmlinc.org/films/parasite-bong-joon-ho


'기생충' 흑백 버전은 이어 2월 8일부터 웨스트빌리지 IFC 센터에서 매일 밤 9시 15분에 상영된다.

http://www.ifccenter.com/films/parasite-black-white



delfini2-small.jpg *'기생충'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

*'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할까? Variety & Hollywood Reporter

*'기생충' 한국 영화 최초 골든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기생충(Parasite)'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뉴욕 영화제 2019 (8) 우리의 마음 속엔 기생충이 산다 '기생충(Parasite)' ★★★★☆

*봉준호 감독 '뉴욕 매거진' 대서특필

*'기생충' 2019 미 외국어 영화상 휩쓴다, 뉴욕비평가협회, 미비평가협회, AFI 특별상

*'기생충' 미비평가협회 작품상, 각본상(봉준호, 한진원) 수상

*뉴욕타임스 '기생충' 아카데미상 작품, 감독, 각본, 남우조연, 여우조연상 후보 예측

*뉴요커지 '기생충' 송강호 연기 2019 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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