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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 속엔 기생충이 산다

NYFF 2019 (9/27-10/13) 

<8> 봉준호 감독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Parasite)' ★★★★☆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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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기생충' 예고편 'Parasite' trailer

 

"이 영화는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다."

-봉준호 감독-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한 봉준호(Bong Joon-ho)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은 첨예한 계급갈등과 부익부빈익빈의 한국사회를 블랙 코미디, 비극, 스릴러의 하이브리드 장르로 그려냈다. 할리우드의 관습에서 벗어나 '봉준호 장르'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돌연변이를 하며 부자들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기생충같은 가족들의 이야기다. 연세대 사회학과 출신의 봉 감독은 현대 인간들의 욕망을 마치 생태학 실험실의 현미경 아래 두고 밀도있게 관찰듯 들여다 보는 듯하다. 기생충은 처음엔 생존을 위해, 다음엔 탐욕으로 돌연변이를 하고, 다른 기생충과 사투를 벌인다. 복선을 채곡채곡 깔아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예측불허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관객은 이 가난한 자들의 비극을 목도하면서도 순간순간 폭소를 터트리게 된다. 봉 감독이 계산한 블랙 유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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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흥미롭게도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도쿄의 좀도둑 가족 이야기를 다룬 '어느 가족(万引き家族/Shoplifters)'에 돌아갔고, 빈부격차를 담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은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 Prize)을 받았다. '기생충'은 칸영화제에 초대됐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The Handmaiden, 2016)'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The Housemaid, 2010)'처럼 계급갈등이 기조를 이룬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이창동(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박찬욱(사라 워터스의 'Fingersmith'), 임상수(김기영 감독의 '하녀', 1960) 감독과는 한 차원이 다른 작가(auteur)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봉준호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조율할 수 있는, 비평가들과 보통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대의 드문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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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김씨 일가는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꼬방동네 반지하에 살고 있다. 기택(송강호 분)과 부인 충숙(장혜진 분), 4수생 아들 기우(최우식 분), 미대 지망생 딸 기정(박소담 분)은 전가족이 실업자다. 자식들은 이웃집 무료 와이파이에 의존하는 '기생충' 젊은이다. 피자박스를 접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 가족에 기회가 찾아온다. 어느날 기우의 대학생 친구가 유학을 떠나며 부자집 영어과외 교사를 제안한 것. 기우가 취직되면서 온 가족은 상류사회의 맛을 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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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먼저 기우는 가짜 대학생으로 위장해 박사장(이선교 분)과 연교(조여정)의 저택에서 그들의 딸 다혜(정지소 분)의 과외 선생 '케빈'이 되고, 아들 다송(정현준 분)의 그림을 해석하면서 연교의 환심을 산다. 연교는 기우를 신뢰한 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으로 연결되는 '믿음의 벨트'가 최고의 방식으로 믿는다며, 기우의 추천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우는 여동생 기정을 유학생 출신으로 소개해 다송의 미술치료교사(제시카)로 취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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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딸 기정은 박사장 자동차 안에 팬티를 벗어두어 박사장이 운전수 윤기사를 해고시키게 만들고, 대신 아버지 기택을 소개한다. 한편, 기택은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을 결핵환자로 만든 후 부인 충숙을 가정부로 소개한다. 김씨 가족 기택, 충숙, 기우, 기정은 가족관계를 속인 채 박사장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기택네가 밑바닥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거짓말이고, 남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었다. 기택네는 거짓말, 문서 위조, 사기로 박사장의 저택에 빌붙어 부자가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들은 기생충 가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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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어느날 박사장네가 캠핑여행을 가자 부자놀음을 하던 기택네는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전 가정부 문광의 등장으로 저택 안 지하실의 비밀과 또 다른 기생충 가족이 만나며 극은 예기치 않게 흘러간다. 비는 박사장네의 캠핑여행을 취소하는데 불과하고, 다송이 정원에서 인디언 텐트를 치며 놀 수 있지만, 기택네 지하방은 난장판이 되고, 이들을 이재민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에게 거짓말로 박사장네를 속이며 취업에 성공, 상류층으로 가는 계단은 열려있는듯 했지만, 여전히 벽은 높았다. 박사장네로 올라가기 쉬웠지만, 폭우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수많은 계단을 거치는 멀고 먼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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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기택의 가훈은 '안분지족(安分知足, 욕심을 내기 않고, 처지대로 살아간다)'이며, 번번이 사업(치킨집, 대만 카스테라)에 실패한 그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에게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다. 충동적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지혜롭다는 삶의 교훈이다. 

 

한편, 부인 충숙은 "착해서 부자인 것이 아니라 부자니까 착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돈은 삶의 주름살을 펴주는 다리미다. 기택네 가족은 기우가 고액과외선생이 되자 온 가족은 돈의 맛에 빠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전가족이 순진한 박사장네를 이용하는 기생충으로 둔갑한다. 이들은 반지하방에서 벗어나 고지대의 정원이 있는 저택의 직장으로 수직상승하는 유포리아, 삶의 쾌락을 체험한다. 그 완전범죄가 전 가정부 문광에 의해 발각되기 전까지는.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기생충'은 계단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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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기생충'의 비애는 가택네보다 더 밑바닥에서 사는 문광과 근세(박영훈 분)의 출현이다. 두 가족은 박사장네에서 생존을 위한 몸싸움, 협박, 회유를 거치다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기택이 다송의 생일파티에서 박사장과 함께 인디언 추장 복장으로 상황극을 하려는 순간, 지하와 지상의 기생충들의 혈투극이 벌어진다.    

 

기택네의 반지하와 박사장네의 통유리 저택은 밀실과 광장,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를 대조시킨다. 지하는 또한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 이드(id)이자 약점이 모여있는 공간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택네 가족은 신분을 위장할 수는 있었어도 '냄새'라는 하류층의 본질까지 제거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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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박사장의 원칙은 계급간의 이동을 불허하는 "선을 넘지 말라"지만, 기택네의 냄새는 선을 넘어왔다. 그리고, 냄새는 기택의 자존심을 후벼파는 모욕이 된다. 기생충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박사장 아들 다송이었다. 지하벙커의 근세를 목격한 후 그림까지 그렸으며, 기택네 가족의 같은 냄새도 다송이가 먼저 알아챈다. 한편, 다혜는 부모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과외선생 기우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 난장판이 된 파티에서 다혜가 기우를 업고 가는 씬은 초현실적이다.  

 

 

021.jpg'Parasite' by Bong Joon-ho

 

봉준호 감독은 빈자와 부자,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권선징악도 사필귀정도 없다. 인간의 본능, 빈부격차의 부조리한 사회를 펼쳐보여줄 뿐이다. 안분지족을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고, 믿음의 벨트를 파기한 기택의 가족은 파멸로 간다. 딸 기정은 사망했고, 아버지 기택은 반지하방보다 더 어둡고, 배고픈 방공호 지하실에 갖히는 신세가 된다. 그곳은 반지하방의 한줄기 햇볕조차 없다. 

 

한편, 미래의 가장인 아들 기우에게 돌아온 현실은 가짜가 진짜같고(자기 가족처럼), 진짜가 가짜같은(병원의 의사와 형사) 세상이다. 그는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언젠가는 저택을 사겠다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는 그저 계단으로 올라오시기만 하면 된다"고 쓰지만(나레이션), 4수생인 기우가 어떻게 반지하 신세를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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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site' by Bong Joon-ho

 

'기생충'은 송강호, 조여정, 이정은을 비롯 모든 배우들의 열연으로 잊혀지지 않는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복숭아, 핫소스, 갈비찜, 짜파구리(*영어 번역, Ramdong: ramen + udong), 매실청, 한우 채끝등심 라면 등 음식의 디테일로 극적인 맛까지 첨가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오감을 동원해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 '기생충'은 우리에게 "당신은 누구의 기생충으로 살고 있습니까?"하고 묻는 것 같다. 그 기생충은 우리 몸 안에 잠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기생충같은 성향이 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감독)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은 내년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뿐만 아니라 각본상, 감독상 등 본상도 기대해봄직 하다. https://www.parasite-movie.com

 

 

poster.jpeg https://www.parasite-movie.com

 

'기생충'은 뉴욕영화제 상영을 거쳐 10월 10일 웨스트빌리지 IFC 센터, 16일 링컨센터에서 개봉된다. 131분. 10월 5일 오후 9시, 7일 오후 6시 링컨센터 앨리스털리홀,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박소담, 최우식과의 대화.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10월 8일 오후 6시) 

 

*기생충' 상영관 https://www.parasite-movie.com

 

 

*'기생충(Parasite)'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뉴욕 매거진, 봉준호 감독 대서특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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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h77 2019.10.03 15:32
    매일 뉴욕영화제 작품을 자세히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 영화가 이제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도 자랑스러우네요.
  • sukie 2019.10.04 00:39
    생각해보니 '기생충'은 자세히 써놓아서 스포일러가 되어버렸네요. '기생충'은 아무 선입견 없이 보시는 것이 제일 좋으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