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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33) EAT, DRINK, SING & DANCE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4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는 민족 <2> 마시고(주/酒/DR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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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의 술 장면. 사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강원도의 힘(98)/ 오! 수정(2000)/ 생활의 발견(02)/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04)/

극장전(05)/ 해변의 여인(06)/ 밤과 낮(08)/ 잘 알지도 못하면서(09)/ 하하하(10)/ 

옥희의 영화(10)/ 북촌방향(11)/ 우리 선희(13)/ 자유의 언덕(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15)/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16)/밤의 해변에서 혼자(16)/ 그후(17)/ 강변호텔(18)/ 도망친 여자(20)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 꺾어 세어두고 무궁무진 먹새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울면서 가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만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회오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할고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불 제야 뉘우친들 어찌하리"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4)의 '장진주사(將進酒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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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주사거배(酒肆擧盃), 간송미술관 소장(왼쪽)/ 수원 남문시장에 설치된 '불취무귀(不醉無歸)' 동상.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조선 가사문학(*운문과 산문의 중간 형태)의 대가 송강 정철은 당대의 애주가였다. 이백(李白)의 '장진주'에 영향을 받은 권주가 '장진주사'를 비롯 20여수의 술을 소재로 한 시조가 남아 있다. 

 

수원시 남문시장 입구에는 술상 앞에 앉은 정조(正祖, 1752-1800)의 동상 '불취무귀(不醉無歸)'가 있다. 주당이었던 정조는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며 신하들에게 술을 강요했다고 전해진다. 

 

또, 정조가 총애했던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와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4)은 양반과 서민의 술마시는 정경을 그렸다. 김홍도의 '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중 '노변야로'와 '주막',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 등이 대표적이다. 

 

 

<2> 마시고(주/酒/DRINK)

<1>

술에 관한 수많은 말말말

 

"취중에 진담 나온다" "한잔 술에 눈물 난다" "밀밭만 지나가도 취한다" "보리밭만 지나가도 주정한다"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술 받아 주고 뺨 맞는다" "술독에 치마 두르듯" "술 취한 사람 사촌 기와집 사준다" "술친구는 친구가 아니다"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대라" "초상집 술에 권주가 부른다" "메주 먹고 술트림 한다" "남의 술에 삼십리 간다" "주객이 청탁을 가리랴" "술 취한 사람과 아이는 거짓말을 안한다" "죽어 석잔 술이 살아 한잔 술만 못하다"...

 

movie-낮술.jpg 노영석 감독의 '낮술'(2009) 포스터

 

2014년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의 한국인의 음주량이 44개국 중 세계 최고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2위인 러시아(6.3잔)의 2배가 넘는 13.7잔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글로벌음주통계(Global Drinking Demographics)의 조사에서 한국인들의 주량은 상당히 내려가서 중간 수준이다. 

 

하지만, 한인들이 평소에 술을 즐긴다는 것은 명백하다. 사실 폭음을 즐긴다. "주량이 얼마지?"하며 술을 분해하는 능력으로 경쟁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는 이유도 다양하다. 업무상, 친목 도모차, 기뻐서, 괴로워서... 그리고 취하기 위해 마신다. 서양의 술꾼들이 홀로 마시는데 비해 한인들은 여럿이 함께 술 마시는 것을 즐긴다. 홀로 술을 마시면 '알콜중독'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또한, 한인들의 술자리는 놀이에 가깝다. 집단으로 폭음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인사불성될 때까지, 필름이 끊길  때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퇴근 후 회식은 근무의 연장처럼 일상화되어 있다. 이 회식에는 폭탄주(爆彈酒, bomb shot)가 등장한다. 간부와 직원, 위계질서가 정해진 술자리에서 양주와 맥주(양폭), 혹은 소주와 맥주(소폭)를 섞은 칵테일, 폭탄주를 돌아가며 마시고, 결속력을 다지며 하나가 된다. 폭탄주 제조, 같은 잔을 돌려가며 마시기, 건배까지 폭탄주 의식은 '퍼포먼스'가 됐다. 사실, 폭탄주는 한국 집단주의, 획일주의가 반영된 술이다. 시간을 절약하고, 빨리 취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독주 대신 강자와 약자를 중화하며, 같은 양을 마시는 민주적인 술이다.  우리 조상도 폭탄주를 마셨다고 한다. 18세기 술꾼들은 막걸리에 소주를 살짝 따라서 마셨으며, '혼돈주(混沌酒)'라 불렀다. 

 

한국인들은 왜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싶어할까? 일상의 스트레스와 억압에서 풀어 완전히 무아지경까지,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일상,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조직사회라는 선이 분명한 일상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까? 술을 사랑하는 민족이니 만큼, 술에 관한 영화도 제작됐다.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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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맥주에 비유한 발칙한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는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했다.

 

1996년 충무로에서 한국의 중견 남성감독 7인(강우석, 김유진, 박종원, 박철수, 장길수, 장현수, 정지영)이 모여 술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Seven Reasons Beer Is Better Than a Lover)'를 연출했다. 1995년 한국영화아카데미(11기)를 졸업한 봉준호가 변원미와 함께 김유민 원작 시나리오를 각색했으며, 봉준호는 아카데미 1기 박종원 감독의 에피소드에서 조연출로도 참여했다. 

 

스토리는 집안의 내력 때문에 맥주만 마시는 청년 조나단(한재석 분)이 미국에서 살다가 귀국해 여러 여성들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맥주 로맨스다. '내가 다른 맥주를 마셔도 질투하지 않는다'(김유진 감독), '나는 항상 처음 오픈한 남자다'(장현수 감독), '하룻밤에 여러 종류의 맥주를 섞어 마셔도 죄책감은 없다'(정지영 감독), '친구들과 나누어 마실 수 있다'(박철수 감독). '마시기에 꺼림찍한 그 기간(?)이 없다'(박종원 감독, '상표만 보고도 그 품질과 맛을 알 수 있다'(장길수 감독), '다 마신 뒤에도 병값은 건질 수 있다'(강우석 감독)의 각 15분짜리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내용은 한국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사고관으로 가득하다. 여성을 맥주에 비유한 것도 발칙하다. 여성들을 질투나 하는 족속으로 규정짓고, 처녀성을 강조하며, 은근히 남성들의 바람끼를 합리화하며, 여성의 생리를 야유하며, 외모를 강조하고, 계산적인 한국 남성관을 만천하에 드러낸 영화였다. '맥주가...'는 흥행에서 참패했을 뿐만 아니라 혹평의 화살이 쏟아졌다. 한국의 대표감독 7인의 가부장적인 사고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 묻혀졌다.  

 

 

#홍상수 영화: 술과 말과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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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주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는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대상) 수상작이다.

 

대한민국 7인의 중견감독들이 모여 성차별적이며, 허무맹랑한 술 영화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를 만들고 있을 때, 술 자리를 사랑하는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이 조용히 데뷔한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다가 캘리포니아 예술대(California College of Arts and Crafts)와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수학한 홍상수 감독은 1992년 귀국해 SBS-TV의 교양 프로그램 '작가와 화제작'의 PD로 일했다. 그 시절 한국의 소설들을 탐닉했을 법 하다. 

 

그의 데뷔작은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 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The Day a Pig Fell into the Well, 1996)'이었다. 연극배우 출신 송강호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 김의성의 사업가 친구 역으로 데뷔했다. '돼지가...'는 속물적인 삼류 소설가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당시 한국의 소위 '리얼리즘 영화들'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위선적이었는가를 일깨워준 작품이다. 밴쿠버영화제 용호상과 로테르담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작이다. 

 

홍상수 감독은 이후 소설가, PD, 영화감독, 배우, 화가 등을 주인공으로 지식인들의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을 보여주는데, 항상 술자리를 통해서다. 직업이 무엇이든간에 홍상수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늘 상대 여자와의 섹스를 꿈꾸며, 술과 감언이설과 거짓말을 통해 목표에 도달하거나, 실패한다. 술은 남녀가 허위의식의 껍데기를 벗고, 이성 대신 감성, 즉 욕망에 충실해질 수 있는 묘약이다. 주인공은 술김에 키스하고, 섹스하고, 폭행하며 욕망을 해소한다. 그래서 홍상수 영화에 늘 등장하는 술 자리는 속물근성, 본능, 허위의식, 거짓말, 추태가 이글거리는 공간이다. 이 자리에서는 남녀간 심리적 줄다리기가 끈질기게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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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비경쟁영화제인 뉴욕영화제에 14편이 초청됐다.

 

홍상수 영화는 반복되고, 변주되는 '술과 말의 로맨스'다. 다분히 뉴욕의 우디 알렌(Woody Allen), 프랑스의 에릭 로메르(Eric Rohmer) 감독을 연상시킨다. 장편 22편을 연출해오면서 꼬박꼬박 술 장면을 담아온 홍상수 감독은 한국 내에서 흥행이 저조했지만, 외국에서는 높이 평가되어 왔다. '하하하'(2010)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 '자유의 언덕'(2014)으로 낭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로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그리고 신작 '도망친 여자'(2020)로 올해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뉴욕의 비평가들도 홍상수 영화를 사랑한다. 뉴욕영화제 57년 역사상 최다인14편이 상영됐다. 올해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데니스 림(Denis Lim)은 홍상수 작품론을 집필 중이다. 2006년 뉴욕영화제에 '해변의 여인'으로 초청됐을 때 홍 감독, 음악감독과 필자가 다니던 신문사 후배들과 미드타운 일식당 이세(Ise)의 다다미방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홍 감독이 즐긴다는 '가위바위보 진실게임'의 함정에 빠져 각자 첫 성경험과 러브 스토리를 고백했다. 언젠가는 홍 감독의 영화에 써먹을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오스카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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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 제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 후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시겠다"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98년 '타이타닉(Titanic)'으로 오스카 감독상 수상 후 "I'm the king of the world!"라고 말했다. 사실 이 소감은 '타이타닉'에서 죽을 운명에 놓인 3등석 승객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 뱃머리에서 외치는 대사에서 따왔다. '타이타닉'은 11개 오스카를 휩쓸었지만, 잭 도슨의 대사를 인용한 카메론의 소감은 자만했다.

 

한편, 2020년 아카데미상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Bong Joon Ho) 감독은 '기생충'으로 첫 오스카인 국제극영화상을 받은 후 "I'm ready to drink tonight!(오늘 밤 술 마실 준비됐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감독상 트로피를 받고서는 "I'll drink until next morning!(내일 아침까지 술 마시겠다!)"이라며 술을 즐기는 한국인임을 만방에 천명했다. 

 

 

parasite1.jpg 기생충(Parasite)

 

'기생충'에서도 물론 술 장면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도입부에 술주정뱅이가 거리에서 노상방뇨하는 장면, 김씨 가족이 둘러 앉아 수석을 보며 맥주(필라이트)를 마신다. 박사장네가 캠핑 여행 간 사이에는 술판을 벌이고, 테킬라, 꼬냑(레미 마르탱)과 위스키(발렌타인 30년산, 로열 살루트 21년산, 글렌피디크 15년산) 등을 즐긴다. 

 

 

parasite2.jpg 기생충(Parasite)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최우식(기우 역)의 노래는 봉준호 감독 가사를 쓰고, 정재일이 작곡한 '소주 한잔'이다.   

 

"길은 희뿌연 안개속에/ 힘껏 마시는 미세먼지/ 눈은 오지않고/ 비도 오지않네/ 바싹 메마른 내 발바닥/ 

매일 하얗게 붙태우네/ 없는 근육이 다 타도록/ 쓸고 밀고 닦고/ 다시 움켜쥐네/ 이젠 딱딱한 내 손바닥/

아, 아, 아.../

차가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마른 하늘에 비 구름/ 조금식 밀려와

쓰디쓴 이 소주가 술잔에 넘치면/ 손톱 밑에 낀 때가 촉촉해/ 빨간 내 오른쪽 뺨에/ 이제야 비가 오네"

<계속>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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