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FIFA 월드컵 에세이 (6) 미국은 왜 축구보다 아메리칸 풋볼에 열광하나?
2026 FIFA World Cup Essay <6> United States of America
미식축구: 영토확장의 DNA, TV 광고 수익, 득점의 카타르시스
미여자축구단(USWNT): 월드컵 4회 우승, 올림픽 5회 금메달
미셸 강: 미영불 여자축구단 인수, 글로벌 축구제국 건설

United States vs Belgium Highlights, 2026 FIFA World Cup™ | Round of 16, FOX-TV
캐나다, 멕시코와 함께 2026 북중미 월드컵을 개최한 미국은 자동으로 본선진출 티켓을 얻었다. 미국팀은 32강전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2-0으로 꺾으며, 16강에 안착했으나, 축하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Polarín Valogan)이 파울로 레드카드를 받고 출장 정지당했기 때문이다. 이에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안니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협회는 발로건의 집행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공정성 훼손 논란이 들끓었다. 발로건이 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6강전에서 벨기에에 1-4로 대패하며, 주저앉았다.
사실, 미국에서 축구가 인기 스포츠는 아니다. "모두가 축구를 해봤지만, 모두가 축구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엔 축구를 하는 사람은 무척 많다. 유소년 등록 선수 수만 봐도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단체 스포츠 중 하나다. 하지만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성장하면서 NFL(National Football League, 미식 축구),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농구), MLB(Major League Baseball, 야구) 같은 종목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축구는 1순위 스포츠가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축구를 못하는 나라도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미 남자축구국가대표팀(USMNT, United States men's national soccer team)은 포르투갈과 멕시코를 꺾고 8강에 진출했으며, 이번 2026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D조 호주, 파라과이, 튀르키에)에서 1위로 당당히 통과해 32강에 올랐다. FIFA 랭킹에선 꾸준히 10-20위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는 미국이 축구 변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은 7월 12일현재 FIFA 세계 랭킹 16위의 강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풋볼(미식 축구, American Football)과 수퍼볼(Super Bowl)에는 열광하지만, 축구(Association Football/Soccer)와 월드컵엔 다른 나라들처럼 흥분하는 민족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축구를 사커(Soccer)라 불러서 유럽인들로부터 놀림을 받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soccer'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다. 19세기 영국에서는 축구를 'Association Football'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줄여 'Assoc.'라고 했고, 옥스퍼드 대학생들 사이에서 '어사크(Assoc)' '사카(Socca)' '사커(Soccer)"라는 속어가 생겼다. 이후 영국은 주로 '풋볼(football)'이라 쓰게 되었지만, 미국은 풋볼이 이미 아메리칸 풋볼을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식 별칭인 '사커(soccer)'를 써온 것이다.
그러면, 왜 미국은 축구보다 아메리칸 풋볼에 열광하는 것일까?
#개척자 정신과 '영토 확장'의 DNA
미국인들이 아메리칸 풋볼에 열광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의 역사적 무의식인 '개척자 정신(Frontier Spirit)'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식 축구는 영토 전쟁이다. 몸과 몸이 부딪치며 1인치씩 앞으로 전진해 상대의 영토를 점령하는 스포츠다. 이는 거친 땅을 개척하고 영토를 확장해 온 미국의 역사와 정확하게 일치하며, 미국인들의 DNA이기도 하다.
반면, 끊임없이 흐르며 공간을 탐색하는 축구의 미학은, 매 순간 칼로 자르듯 전술을 지시하고 영토를 점령해 나가는 미국식 '군대식 효율성'과 문화적 결이 판이하게 다르다.
#TV 중계와 광고 수익
미국 스포츠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와 방송 광고시장의 결합으로 성장했다. 아메리칸 풋볼은 쿼터제이고,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시계가 멈춘다. 이 멈춘 시간은 텔레비전 광고, 치어리더 쇼, 그리고 하프타임 쇼로 채워진다. 전 국민이 축제처럼 소비할 수 있는 '쇼'가 최적화된 구조다. 미식축구는 TV 중계에서 플레이-광고-플레이-광고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광고 수익이 엄청나다.
그러나, 축구는 전후반 45분씩 시계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때문에 중간에 광고를 삽입하기가 어렵다. 이점이 방송사와 광고주들에게 인기가 없으며, 미 방송 자본이 오랫동안 축구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지 않았던 숨은 진실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인해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 수분 보충 시간, 쿨링 브레이크(cooling break)를 넣었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hydration break)'로 전후반 약 3분간씩 휴식시간을 주었다. 이 시간은 방송사와 광고주를 위한 광고 타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축구 전통주의자들은 원래 작전타임이 없는 축구 경기의 흐름이 끊긴다고 비판했다.
#득점의 카타르시스
물질주의적이며, 수치를 중요시하는 미국인들에게 축구는 '불만의 경기'다. 90분 동안 치열하게 뛰는데, 결국 0-0의 무승부로 끝나는 경기도 허다하다. '승자와 패자' '확실한 영웅의 탄생'을 기대하는 미국적 정서에서 축구는 때로 '미완성의 경기'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0-0의 미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축구는 골로 터질 때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다.
반면, 아메리칸 풋볼은 터치다운에 6점, 보너스 킥, 필드골 등 점수가 20-30점씩 팡팡 터진다. 인터셉트, 빅 플레이, 작전타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계속 사건이 발생한다. 미식 축구는 그들의 정서에 딱 맞는 화끈한 스포츠인 것이다.
#국민 스포츠의 과다
유럽에선 축구가 거의 유일한 대중 스포츠로 성장했지만, 미국엔 이미 국민 스포츠가 너무도 많다. 미국은 20세기 초부터 가을엔 아메리칸 풋볼, 여름엔 야구, 겨울엔 농구와 아이스하키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축구가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대부터인데, 이미 스포츠 시장은 포화 상태였다. 즉, 미국에선 축구가 '다섯번째 스포츠'가 되었다.
#최고 선수들은 NFL, NBA로
미국 청소년 중 달리기, 점프를 잘 하거나, 힘이 있는 선수들은대부분 미식 축구(NFL)나, 농구(NBA)로 간다. NFL과 NBA는 미 최고의 스포츠 시장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을 보장한다. 스타 선수는 수백만 달러의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반면, MLS(Major League Soccer)는 성장세지만, NFL과 NBA와 비교하면 보상 수준이 현저하게 낮다. 유럽이라면, 축구를 했을 고교나 대학 선수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종목으로 가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NBA나 NFL 최고의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축구를 했다면 미국은 세계 최강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럽 축구는 보통 어린이 클럽에서 아카데미를 거쳐 프로팀으로 가지만, 미국에선 대학 스포츠가 '직업 훈련소' 역할을 한다.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는 대학 농구대전의 TV 중계로 '3월의 광란(March Madness)' 신드롬을 일으키며, 선수들에게 프로(NBA)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 대학 풋볼의 경기장은 수만명 규모로 NFL 드래프트(스카웃)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다. 대학 축구도 NCAA의 여러 종목 중 하나지만, 풋볼과 농구처럼 엘리트 선수로 육성해서 프로 진출을 중심 무대가 되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축구는 TV 노출이 적고, 관중 규모가 작고, 프로 리그(MLS)와 연결이 약했으며, NBA·NFL 같은 '명확한 성공 경로'가 부족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축구를 하는 어린이는 많지만,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우는 엘리트 경로"가 약했다.
미 여자축구(USWNT)는 세계 최고

Every USA Goal From The 2019 FIFA Women's World Cup
미국의 남자 축구에 비해 여자 축구는 막강하다. 미 여자 축구대표팀(USWNT, United States women's national soccer team)은 세계 최고의 전통 강호 중 하나로 FIFA 월드컵 우승을 4회(1991, 1999, 2015, 2019) 차지했으며,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1996, 2004, 2008, 2012, 2024)을 획득한 세계 최강팀이다. 눈부신 성과와 함께 여자 대표팀은 2022년 미축구협회와 남녀 동등 상금 및 임금 분배 협약으로 월드컵 상금의 남녀 동일한 분배, 급여 구조의 일원화, 동일한 수당 체계 등 남녀 임금 격차 해소에 기념적인 이정표를 만들었다.
미 여자축구가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게된 배경에는 1972년 제정된 '타이틀 9(Title IX)'이 있다. 연방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에서 성별(sex)을 이유로 차별받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학교에서 남녀에게 동등한 스포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법적으로 보호됨에 따라 여자 축구 장학금의 확대, 대학 여자축구의 활성화,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남자 축구는 아메리칸 풋볼에 대한 지원에 밀려 상대적으로 정장이 부진했다.
여자 축구의 인기로 미국의 남학생들이 풋볼과 야구에 빠지는 동안, 여학생들에겐 축구가 가장 세련되고 주류인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미 여성축구대표팀이 1991년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후 미국 교외에선 주말마다 미니밴을 몰로 아이들을 축구장에 데려가고 다른 부모들과 응원하는 엄마들이 급증했다. 이를 언론에서 '사커 맘(Soccer Mom)'이라 불렀고, 자녀의 교육과 스포츠, 악기 등 과외 활동에 헌신적인 중산층 여성을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한국의 '치맛 바람' 대신 '사커 맘'이다. 199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커 맘이 중산층 교외 여성 유권자 집단으로 부상해 교육, 치안, 교육정책을 이야기할 때 '사커 맘'이 종종 등장했다.
1994년 미 월드컵 이후 유소년 축구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프로리그인 MLS가 출범했고, 전용 축구장이 늘어났다. 히스패닉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젊은 세대의 프리미어리그(EPL) 열광으로 축구는 마침내 주류 스포츠로 편입됐다. 최근엔 크리스찬 풀리식(Christian Pulisic, AC 밀란), 웨스턴 맥케니(Weston McKennie, 유벤투스 FC, 토리노), 타일러 아담스(Tyler Adams, AFC 본머스-잉글랜드) 등 유럽의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Women's soccer is the fastest growing sports & entertainment category: Kynisca founder Michele Kang.
CNBC Television
여기에 한인여성 사업가 미셸 강(Michelle Kang) 회장은 미여자 축구(NWSL) 명문 구단인 워싱턴 스피릿(Washington Spirit)을 시작으로, 프랑스 여자 축구의 절대 강자 올랭피크 리오네 페미냉(Olympique Lyonnais Féminin), 그리고 런던을 연고로 하는 런던 시티 라이오네스(London City Lionesses)까지 차례로 인수하며 세계 최초로 '글로벌 멀티 클럽 여자 축구 그룹'을 키워냈다. 또한, 올 6월엔 프랑스 명문 남자 프로축구단 올랭피크 리옹(Olympique Lyonnais)까지 인수하며 남녀 단독 구단주가 되었다.
미셸 강은 2026 '타임'지의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됐다. 미셸 강 회장의 행보는 미국인들이 축구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서 전 세계 여자축구의 자본과 생태계를 어떻게 미국식 비즈니스로 재편하고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마침 자국에서 열리는 2026 월드컵은 1991년 미 여자축구팀의 월드컵 첫 우승처럼 미 남자축구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벨기에게 패했지만, 미국은 16강에 진출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48개국 체제의 대형 월드컵으로 선보인 이번 월드컵으로 일반인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은 한 단계 더 높아졌고, 유소년의 참여와 미디어 노출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50-60대의 기성 세대는 여전히 아메리칸 풋볼과 프로 야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지만, 20-30대는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UEFA 챔피온즈 리그, MLS 등을 함께 즐기는 추세다. 미국 내에서 축구는 '무관심의 영역'에서 '거대한 자본과 엔터테인먼트의 정점'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미국은 이제 '축구를 모르는 나라'에서 '축구를 즐기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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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의 '페널티킥을 맞은 골키퍼의 불안(The Goalkeeper's Fear of the Penalty Kick,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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