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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영주의 트래블로그 

버진 아일랜드 세인트 존 일기 <1> 하비와 글렌다네 집

카리브해 초록빛 바다...우리집 앞마당처럼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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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다와 프랜시스 베이 가던 날


글 들어가기 전에

지난 1월, 제 딸인 안트리오가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존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때 버진 아일랜드가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 연주 끝나고 가족휴가를 며칠 같이 보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큰딸이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주 끝나고 며칠 더 머물면서 저희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기행문을 2월에 써놨는데,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그런 시국에 맘 편한 여행 이야기를 내보낸다는 게 좀 그렇지 않은가 싶어 그냥 넣어 두었습니다.

세계 모든 이들이 함께 고통을 겪는 시간이 오래도록 진행되면서 이 상황이 끝나면 우리가 전의 그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두렵기도 하고, 새로운 질서가 생길 거라는 의구심도 생기고, 지난 세월이 새삼 아름다워 보이고, 그리워지기도 하고, 머리 속은 공동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1월의 햇빛 반짝이던 추억을 꺼내보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냥 그때를 보면서 아,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네!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 시간까지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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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John, U.S. Virgin Islands <Google Map>


세인트 존에서 우리가 묵은 곳은 하비와 글렌다네 집이다. 글렌다는 세인트 존 예술학교 재단이사장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지어진 글렌다네 집은 두 채로 되어 있다. 위에 본가가 자리하고, 조금 아래쪽에 게스트를 위한 3베드룸 아파트가 한 채 더 있다. 글렌다는 예술학교 행사에 초대한 예술가들에게 이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한다. 아파트는 연결된 건물이긴 해도 출입문이 다 따로 있고, 욕실도 방마다 있어서 독립적으로 지내게 설계되었다. 딸들은 몇 번 여기서 지낸 적 있지만, 난 이번이 두 번째다. 방이 하나 부족해서 글렌다는 둘째네에게 본채에 있는 방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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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다네 프라이빗 비치


산 위에 집이 있으므로 바다를 내려다 보는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모든 방들이 바다를 향해 있으므로 집에서도 바다를 보며 바다 냄새가 맡아진다. 내 방은 부엌과 리빙룸이 있는 매스터 베드룸이어서 우리 가족의 본거지가 되어 둘째 사위 크리스찬은 리빙룸에 컴퓨터를 갖다 놓고 사무실로 썼고, 첫째 사위 안드레아는 입구 앞에 놓인 테이블을 서재 삼아 매일 거기서 컴퓨터로 일했다. 부엌은 딸들이 눈만 뜨면 와서 커피 만들기로 아침을 열고, 나는 커피향에 취해서 블루의 아침을 준비한다.


무엇보다 글렌다네 집에서 50미터만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Private Beach가 나온다. 비치엔 해먹이며 비치의자 등, 바다를 즐길 장비까지 갖춰져 있다. 우리 뿐인 이 작은 비치에서 마치 우리집 앞마당처럼 맘대로 편하게 카리브 해의 눈부신 초록빛 바다를 놀이터처럼 뛰놀 수 있는 건 정말 축복이었다.



IMG_6368.JPG 비치


글렌다네 집에 머물면서 좋았던 것은 이번에 글렌다와 친구가 된 일이다. 저녁에 관계자들을 위한 디너를 준비하는데, 글렌다가 자기에게 돼지고기가 많으니 그것을 혹시 한국식으로 요리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온 일이 발단이 되었다. 오지랖인 내가 거절할 리가 없어 글렌다의 부엌으로 갔다. 글렌다의 두 개의 냉장고만 보고도 나는 경기를 일으켰다. 대형 냉장고 두 개는 식재료들이 터질 듯이 꽉 찼고, 세계 모든 나라의 소스란 소스도 다 모아 놓았다. 하다 못해 참기름과 깨소금까지 빈틈이 없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게 글렌다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다. 사실 세인트 존은 관광객들이 넘치는 곳이다. 그래서 식당들은 항상 만원이고 시끌벅적해서 조용히 음식의 맛을 음미하기 어렵다. 자연히 집에서 홈메이드 음식을 해먹게 되고, 해먹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많은데, 이 작은 섬에 필요한 물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올 때마다 뉴욕서 챙겨온다는 것이다.


요리 좋아하는 사람은 그 집의 냉장고를 보면 그 집 주부가 요리를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 금방 읽는다. 글렌다는 요리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그녀의 외할머니가 요리를 잘 하셨고, 그녀의 어머니도 그 손맛을 이어 받아 요리를 잘하셨다고 한다. 글렌다가 구어준 커피 케이크가 맛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외할머니의 레시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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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가 첫째와 리허설. 그는 변호사였지만 피아노를 매우 좋아한다.


양념소스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써는 동안 글렌다와 많은 대화를 나눳다. 글렌다의 남편 하비는 올해 83세, 은퇴한 변호사다. 그는 피아노를 좋아해서 매일 피아노를 친다. 딸들의 연주 날, 서프라이즈로 안트리오 피아니스트가 되어서 한 곡 연주하는 바람에 청중들이 재밌어했다.


78세인 글렌다는 19살에 하비와 결혼하고, 결혼 후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테니스는 15살에 시작해 73세까지 했고, 요가를 50년 동안 해왔다. 그래선지 요가를 10년 한 안드레아와 요가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운동과 명상으로 다져진 글렌다는 나이보다 훨씬 몸가짐이 단단하고, 꼿꼿했다. 아직까지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는 말에 병 덩어리인 나는 부끄러워 납작해졌다. 올해가 그들 결혼 60주년이란 말엔 더욱 감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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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다와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돼지고기 요리가 빌미가 되어 나는 하비를 위한 양배추 김치도 만들고, 부추김치도 해주었다. 우리가 먹으려고 가져간 명란젓도 썰어서 파를 송송 썰어 얹고,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꺼내 먹으라 일러주었다.


밥 대신 비빔국수를 만들었는데, 너무 많이 만들어서 걱정이 많았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거의 다 먹었다. 다음 날 글렌다는 그 조금 남은 국수를 점심에 맛있게 먹었다고 수줍게 고백하는 바람에 더 놀랐다. 우리는 비빔국수 남은 건 다음 날 맛 없다고 안 먹는데, 그걸 맛있게 먹었다니 참으로 알뜰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한국음식의 힘일까. 사실 소면을 삶아서 오이채만 썰어 넣고 간장과 참기름에 무치면 은근히 입맛을 당겨준다.


음식은 사람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최고의 수단이다. 이틀 동안 글렌다의 부엌을 쓰면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고,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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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 sukie 2020.10.29 18:52
    이영주 수필가의 버진아일랜드 세인트존 일기를 읽으니까 그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글이지만 생생하게 입체감이 떠오릅니다. 바닷 내음이 나는 느낌입니다. 14가지가 넘는다는 한국의 요리양념을 들고 글렌다씨를 방문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인 안 트리오를 배출한 장본인이라 더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