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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프랑스 여행 <2> 샤르트르: 말콤 밀러와 대성당 투어 

 

아름다운 성모 유리창, 예수 출산 때 입었던 튜닉 소장

세계 최고의 고딕양식 건물, 샤르트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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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tres Cathedral tour with Mr. Malcom Miller

 

샤르트르 노트르담 대성당(Chartres Cathedral, 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은 프랑스 최고, 아니 유럽, 혹자는 세계 최고의 고딕 양식의 건물로 꼽는다. 샤르트르 이후 쾰른 대성당,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스페인의 레온 대성당 등 유럽의 유명한 대성당들은 샤르트르를 본따서 지어졌다. 

 

샤르트르 대성당엔 파리의 노트르담이나, 랭스(Reims)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능가하는 스펙터클함이 있다. 파리 노트르담과 랭스 노트르담이 프랑스 대혁명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손됐지만, 샤르트르 대성당은 무모한 대중의 반달리즘을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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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모 유리창(Notre-Dame de la Belle-Verrière) https://www.chartres-tourisme.com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로도 유명한 노트르담(Notre-Dame)은 불어로 '성모 마리아(Our Lady)'를 의미한다. 왜 프랑스에 노트르담이 많을까? 1163년 파리의 주교 모리스 드 설리(Maurice de Sully, *루브르뮤지엄에 설리관이 있다)가 신도를 확장하기 위해 새 성당을 지으면서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에게 봉헌하기로 결심, 1163년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이 프렌치 고딕 양식으로 건축이 시작된다. 이후 샤르트르, 랭스, 아미엥 등 프랑스 방방곡곡에 '노트르담' 성당 건축 붐이 일어났다. 

 

파리에서 50마일 거리,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로 1시간 내외 거리라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인기다. 이번 여행에선 샤르트르 대성당의 전설적인 가이드 말콤 밀러(Malcom Miller)씨의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샤르트르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한밤중에 펼쳐지는 샤르트르 대성당 건물벽을 무대로 펼쳐지는 빛의 축제를 보너스로 볼 수 있었다.

 

 

IMG_6996.jpg Chartres Cathedral

 

말콤 밀러씨는 1958년부터 샤르트르 대성당을 지키고 있는 전설적인 학자이자 가이드다. 영국 출신 밀러씨는 더럼대학교 졸업 후 샤르트르에 정착해 대성당에 관한 책 'Chartres Cathedral'(1997)을 집필했으며, 60년째 가이드를 해오고 있다. 투어를 쉴 때는 세계의 대학교, 스미소니언 뮤지엄 등지에서 특강을 한다. 밀러씨는 부활절부터 10월말까지는 정오와 오후 2시 45분, 이외엔 정오에 투어를 이끈다. 투어비 대신 헤드폰 세트 대여료를 10유로씩 지불하면 된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며, 이메일(millerchartres@aol.com)로 예약할 수 있다. 8명 이상은 프라이빗 투어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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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tres Cathedral

 

말콤 밀러씨는 샤르트르 대성당을 책, 아니 도서관에 비유했다. 중세 시대 문맹이 많았고,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 교회는 대중에게 성경의 내용을 교육하고, 신앙심을 고취시켜주는 학교였다는 것. 스테인드글래스는 성경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이자, 그 창을 통해 들어오는 성스러운 빛 속에서 기도를 하며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신성한 장소, 지상에서 맛볼 수 있는 낙원이 교회였다. 따라서 각 스테인드글래스 윈도우와 조각상들은 책이며, 교회 건축물은 도서관과도 같다.   

 

 

IMG_6856.jpg Chartres Cathedral

 

대성당은 2009년 프랑스문화성이 2천만 유로(1850만 달러)를 투여한 복구 사업으로 성당 내 촛불로 인한 그을음, 먼지와 때를 벗기는 중이었다. 칙칙한 천장과 기둥들이 우유빛 컬러로 채색되면서 사학자들이 '역사 훼손'이라고 비난했지만, 말콤 밀러씨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밀러씨는 13세기 성당 건축 당시 의도는 내부에 빛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암흑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필자는 크림색 덧칠이 성당의 800년 역사를 씻겨내는듯해서 착잡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투어 중일 때 마침 한 첼리스트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음악은 샤르트르 대성당을 더욱 더 성스러운 교회로 만들었다. 유리건물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21세기의 건축문화에 비할 때 13세기 중세에 지어진 샤르트르 대성당은 예술작품이다. 1194년 번개로 인한 화재로 불탄 대성당은 1220년 겨우 26년만에 완공되는 초스피드의 건축으로도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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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tres Cathedral

 

석회암으로 지어진 샤르트르 노트르담의 비대칭 첨탑은 각각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뽐내는 중세의 트윈 타워.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처럼 샤르트르 타운에 다가갈 때 나침판이 된다. 대성당의 입구부터 수많은 조각상들이 반긴다. 성서 속의 인물들 외에도 피타고라스같은 수학자의 모습이 한때 학교 기능을 했던 대성당의 역사를 보여준다.  성당 곳곳에 걸어나올듯이 생생한 조각상들이 무려 5천여개에 달한다. 또한, 고딕 양식의  전형인 로즈 윈도우와 성경 이야기를 묘사한 스테인글래스 창이 176개 이어진다. 

 

서쪽 파사드의 3연창 가운데엔 그리스도의 생애, 양 옆에 이새의 나무와 그리스도의 수난이 묘사되어 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래스 창문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침공 직전 떼어내서 손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성당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으로 등재됐다.

 

 

# 샤르트르 블루 bleu de Chart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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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re-Dame de la Belle-Verrière, Chartres Cathedral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래스는 성서 이야기 즉, 예수의 일생, 이새나무(Tree of Jesse), 최후의 심판, 천사들, 아담과 이브 이외에도 별자리(zodiac)도 등장한다. 고딕 양식 성당 설계처럼 스테인드글래스도 원(로즈 윈도우), 사각형과 삼각형을 기조로 디자인됐으며, 스토리를 전한다. 당시 샤르트르 스테인드글래스 공방 기술은 마치 보석처럼 아름답고, 정교하다. 특히 '샤르트르 블루(Chartres Blue)'라 불리우는 청색 스테인드글래스는 먼지가 끼지 않으며, 복제가 불가능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혹자는 블루에 레드를 섞었다고 주장한다. 

 

왕관을 쓰고 청색의 성의를 입은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 둘러 싸여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고 있는 '아름다운 성모 유리창(Notre-Dame de la Belle-Verrière)'는 그중 하이라이트. 이 창에 사용된 블루가 전형적인 '샤르트르 블루'다. 스테인드글래스 윈도우는 샤르트르의 상인 조합, 공예가 조합과 부유한 귀족들의 재정 지원을 받았고, 그들의 이름이 오른쪽 하단에 새겨 있다. 

 

 

# 성모 마리아의 성의, The Veil of Mary(Sancta Cami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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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tres Cathedral, the tunic/veil  of Mary (Sancta Camisia)

 

중세에 샤르트르에 순례자들이 모여든 것은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할 때 입었다는 튜닉/베일(천조각)을 소장한 성당이기 때문이다. 성모의 베일/튜닉(상타 카미시아, Sancta Camisia/the holy shirts)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서기 800년 경 동유럽과 서아시아를 지배했던 비잔티움 제국의 이리니 여제는 서유럽의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카롤루스 1세 마그누스)와 연방을 맺고 싶었다. 결혼을 한다면 가장 파워풀한 결합이 될 것이다. 실제로 동방제국의 황제까지 노린 샤를마뉴는 이리니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야만인 프랑크족과 영광스런 비잔티움의 여제의 결합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여제는 대신 대제를 감동시킬만한 선물을 준비했다. 그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 곁에서 아기 예수 출산 때  입고 있었다는 실크 드레스였다. 

 

그런데, 샤를마뉴 대제의 손자인 카롤루스 대머리왕(Charles the Bald)이 미스테리한 경로로 이 튜닉을 구입했고, 안전을 위해 876년 경 샤르트르 대성당에 보관했다. 이후 황금으로 도금된 나무 상자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의 성의를 보기 위해 순례자들이 이어진다. 

 

1194년 대성당이 화재로 전소되며, 성의도 잿더미로 사라진 것으로 우려한 샤르트르 주민들은 불안에 휩싸였다. 타운을 수호해준 성모 마리아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재 사흘 후 르노 주교는 바티칸에서 온 추기경의 미사에 튜닉을 전격적으로 공개한다. 지하 경당에서 안전하게 보관됐다며 이는 기적으로 "성모 마리아가 성당재건을 축복하는 계시"라고 말하자 성도들은 기쁨에 겨웠다. 성당 재건에 아낌없이 기부하게 된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폭도들은 황금 상자를 깨고 드레스를 압수해가서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1800년경 성의 몇 조각만이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돌아갔다. 

 

 

마리아의 튜닉이 진짜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입수 배경을 비롯, 화재,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다른 천 조각으로 대치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시마 생타'는 오늘도 샤르트르를 순례의 성지로 만들고 있다.

 

Cathédrale Notre-Dame de Chartres

16 cloître Notre-Dame - 28000 Chartres 

 

http://www.cathedrale-chartres.org/en

 

 

*샤르트르 대성당의 밤: 빛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