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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왕중왕' 오즈만디아스/람세스 2세

사진작가 진영미의 이집트 여행 <2> 위대한 파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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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44년 건축된 아부심벨(Abu Simbel) 바위 신전 입구엔 람세스 2세의 거상 4개가 조각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에 알렉산더 대왕, 프랑스엔 나폴레옹 황제, 중국엔 진시황제, 조선엔 세종대왕이 있었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엔 파라오 람세스 2세가 통치하던 시절이 황금기였다. 람세스 2세는 이웃나라와 싸워 영토를 확장했고, 적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또한, 동서남북에 신전을 건축하고, 거상을 세우는 프로파갠다로 자신을 신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람세스 2세는  90여년의 생애  67년간 왕국을 통치하면서 200여명의 부인과 정부 사이에 150여명의 자식을 둔 정력가이기도 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의 '왕중왕'이었다. 

 

 

# 람세스 2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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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야외 박물관에 누워있는 람세스 2세 거상. 석회암으로 조각됐으며, 길이는 10미터에 달한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 19왕조의 제 3대 파라오(왕). 람세스 2세(Ramses II), 라메세스 2세(Ramesses II)로도 표기하며, 영어권에선 '램지스'라 발음하기도 한다. 람세스는 태양신* 라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왔다.  

 

# 람세스 2세 가족

람세스 가문은 왕족이 아니었다. 종교개혁가 아크헤나톤 통치 후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아크헤나톤과 후계자 투탕카멘 통치 하에 쇠퇴했던 아시아에서의 이집트의 파워를 회복하기에 착수했다. 세티 1세(Seti I)는  어린 람세스 2세를 데리고 전쟁터를 다녔고, 14살 때는 섭정왕자(Prince Regent)로 임명해 유사 시에 왕을 대행할 수도록 배려했다. 

 

# 람세스 2세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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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와 아부심벨 신전의 람세스 2세.

 

고대 이집트는 감염으로 인한 영아 사망률이 높았으며,  평균 수명이 30세(여자)-34세(남자)였다. 람세스 2세는 92세로 장수한 파라오였다. 25세에 왕위에 올라 67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고대 이집트를 번영국으로 만들어 람세스 '대왕'(Ramesses the Great)'로 붙여진 유일한 파라오다. 후대의 여러 파라오들이 람세스 이름을 따기도 했다. 

 

람세스 2세는 군대를 이끌고 잃어버린 북방 영토를 회수하고자 히타이트족과 카데시 전투를 일으켜, 5천-6천대의 전차가 참가한 혈전에서 승리한 후 평화조약을을 체결했다. 또한,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이집트를 번영으로 이끌었다. 또한, 누비아의 아부 심벨(Abu Simbel) 사원, 테베의 라메세움(Ramesseum), 룩소르의 카르나크(Karnak) 신전, 아비도스(Abydos) 신전 등 등 이집트 전역에 왕권을 과시하는 대형 기념 건축물을 세워 후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 양식에 영향을 주게된다. 

 

# 람세스 2세의 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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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 왕비 무덤 안의 벽화. 체스 게임하는 왕비와 패셔너블한 모습이다. 고분은 룩소르 왕비들의 계곡에 자리해 있다.

 

장수를 누린 람세스 2세는 정력가였다. 그가 총애했던 왕비 네페타리(Nefertari)와 이세트노프레트(Isetnofret)을 등 부인 8명에 첩까지 200여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첩들은 왕이 지정하거나, 신하들이 들여오거나, 적국에서 공주를 선물로 보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네페르타리는 13살 때 15살의 람세스 2세와 혼인했다. 네페르타리는 미모의 패셔니스타였을 뿐 아니라 상형문자를 읽고 쓸줄 알아 왕을 도와 외교 협상가로도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페르타리가 낳은 10명의 자식들은 모두 람세스 2세보다 일찍 사망했다.  

  

첫왕비를 총애한 람세스 2세는 늘 자신의 석상 옆에 네페르타리를 세웠다. 아부심벨에는 네페르타리 신전을 별도로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 왕비를 위한 첫 신전이었다. 또한, 여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Queens)에도 화려한 무덤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후대에 왕비의 미이라와 보물은 도굴꾼들이 약탈해갔으며, 벽화들은 훼손되고 말았다.  네페르타리는 고대 이집트에서 클레오파트라(Cleopatra), 핫셉수트(Hatshepsut), 네페르티티(Nefertiti)와 함께 가장 영화로운 왕비로 꼽히고 있다. 

 

# 100명 이상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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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심벨 신전의 부조를 감상하는 관광객들.

 

200여명의 여인들을 거느린 람세스 2세는 자식은 아들 111명, 딸 51명으로 추정된다. 아부심벨 신전 입구엔 두 왕비의 장남과 장녀, 차녀가 조각되어 있다. 그가 건축한 기념물에 등장하는 아들은 48-50여명, 딸의 수는 40-53명 선이다. 람세스 2세 사후 왕위는 그의 열세번째 아들인 70세의 메르넵타(Merneptah)가 이어받았다. 이즈음 그의 형들이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 메르넵타는 10년간 통치하다가 사망한다. 

 

# 람세스 2세에게 바치는 시 '오지만디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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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라메세움의 람세스 2세 석상(왼쪽)이 시인 셸리에게 영감을 주었다. 시는 1818년 'Examiner'지에 발표됐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남편이자 시인 퍼시 비셰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람세스 2세의 부서진 석상에서 영감을 받아 시 '오지만디아스(Ozymandias, 1818)'를 썼다. 오지만디아스(Ὀσυμανδύας)는 람세스 2세의 그리스 식 이름이다. 셸리는 파라오의 위대함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석상이 부서져 사막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권력의 무상함과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Ozymandias

 

Percy Bysshe Shelley

 

I met a traveler from an antique land

Who said: Two vast and trunkless legs of stone

Stand in the desert. Near them, on the sand,

Half sunk, a shattered visage lies, whose frown,

And wrinkled lip, and sneer of cold command,

Tell that its sculptor well those passions read

Which yet survive, stamped on these lifeless things,

The hand that mocked them and the heart that fed: 

And on the pedestal these words appear:

"My name is Ozymandias, king of kings:

Look on my works, ye Mighty, and despair!"

Nothing beside remains. Round the decay

Of that colossal wreck, boundless and bare

The lone and level sands stretch far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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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을 파서 만든 아부심벨 신전은 1813년 스위스의 동양학자 요한 루드비히 부르크하르가 발견했으며, 1960년대 아스완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다가 유네스코의 지원과 국제 원조로 65미터 높은 현 위치로 이전했다.

 

 

오즈만디아스

 

퍼시 비셰 셸리

 

고대 국가로부터 온 여행자를 만났네

그는 말하기를 "몸통이 없는 석상의 두 다리가

사막 위에 서있었네. 그 곁에, 모래 위에,

반쯤은 묻혀있고, 부서져서 일그러진 얼굴이 누워 있네,

주름진 입술에 냉정한 명령자의 냉소가 담겨있네.

조각가에게 그의 열정들을 잘 읽었다고 말하게나

생명 없는 돌덩이에 새겨진 채로 그들을 조롱한 손과 

키운 심장보다 오래 살아남았네.

그리고 받침대 위엔 이런 말들이 써있지.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들의 왕,

나의 업적들을 보게나, 전능한 자들이여, 절망하라!"

아무것도 옆에 남아있지 않아, 부식의 둘레로

무한하고, 벌거벗은 거대한 잔해 중에서

외롭고, 편편한 사막은 멀리 뻗어있네. 

 
 
# 미이라  M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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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뮤지엄에 소장된 람세스 2세의 미이라
 
람세스 2세는 사망 후 왕릉 계곡(Valley of the Kings) 중 KV7의 무덤에 매장되었지만, 약탈이 횡행해서 승려들이 미이라를 아흐모세 여왕의 무덤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72시간 만에 다시 고승 피네드젬 2세의 무덤으로 옮겼다. 현재 미이라는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1974년 이집트학자들은 람세스 2세의 미이라가 급속히 황폐화하는 것을 발견, 이집트 정부가 파리에서 검시하기로 결정했다. 람세스 2세의 미이라엔 이집트 여권이 주어졌고, 직업은 '왕(서거)'로 적혔다. 그리고, 파리의 공항에 도착해서는 왕에 준하는 군대의 사열도 진행됐다. 파리의 의학자들이 검시한 결과 람세스 2세는 전투에서의 부상과 골절, 관절염 등을 앓았으며, 말년에는 곱사등이처럼 걸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에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그의 나이 92세, 자연사로 보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 출애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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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신전의 람세스 2세 석상. 양 옆에 오벨리스크가 한쌍으로 설치됐으나, 오른쪽 오벨리스크는 1836년 루이필립왕이 파리 콩코드 광장에 옮겨 세웠다. 그래서 이름이 룩소르 오벨리스크.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기의 이집트 파라오가 람세스 2세라는 설이 있다.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면서 파라오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내라는 명령을 받고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하느님이 바다를 갈라 출애굽을 돕지만, 이들을 추적하던 파라오와 이집트 군대는 물에 빠져 죽었다고 나온다. 바로 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압제자가 람세스 2세라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아멘호테프 2세, 람세스 2세의 아들 메르네 프타라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10계(Ten Commandments, 1956)'에서 율 브리너가 람세스 2세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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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뮤지엄의 소년 람세스 2세(왼쪽부터), 런던 브리티시뮤지엄의 람세스 2세, 루브르 아부다비의 람세스 2세.
 

 

Jin_G8A7195.jpg 진영미 Youngmi Jin/사진작가

경북 김천 출생. 2014 NYCB Photo Contest 대상 수상. 2018 멜린다 카츠 퀸즈 보로장 표창장 수상. 2018 뉴욕 뱅크오브호프 그룹전 'Along the Inner Pa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