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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인종, 총기사건, 미술 그리고 운명의 수레바퀴 

LaBute New Theater Festival


1월 10일-27일@Davenport Thea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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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l LaBute(left) Photo: Sukie Park, NYCultureBeat/ KeiLyn Durrel Jones and Brenda Meaney in "Great Negro Works of Art". Photo: Russ Rowland


연극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뉴욕이 근사한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상혼에 불파는 뮤지컬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가 있다는 점이다. 극장 좌석 수 100석- 500석 미만의 오프 브로드웨이는 보다 진지하고, 인생을 음미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진다. 그만큼 제작비의 리스크가 적은 저예산의 연극들이다. 또한, 100석 미만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는 비상업적이며, 실험적인 작품들이 공연된다. 


한인 작가 이영진(Young Jean Lee)씨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경력을 쌓고, 지난 여름 '이성애 백인남자(Straight White Men)'를 무대에 올리며, 아시안 여성 작가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해서 화제가 됐다. 브로드웨이에는 테렌스 윌리엄스, 유진 오닐, 아서 밀러 등 위대한 극작가들의 작품들이 리바이벌되지만, 생존 작가의 연극이 올려지는 일은 많지 않다. 흥행에 부담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프 브로드웨이는 소중하다. Less is More.



IMG_5201.jpg Davenport Theater


2013 토니상 6개 부문 석권 뮤지컬 '킹키 부츠(Kinky Boots)'가 공연 중인 알허쉬필드 시어터(Al Hirschfeld Theatre)의 옆에 자리한 다벤포트 시어터(Davenport Theater)에서는 지난 1월 10일부터 닐 라뷰트(Neil LaBtue)' 연극제가 열리고 있다. 27일까지 계속되는 닐 라뷰트 페스티벌에서는 그의 1막짜리 단편 3편이 옴니버스식으로 공연되는 중이다. 오프 브로드웨이라지만, 한 작가의 작품에 헌사하는 페스티벌은 드물다. 알 허쉬필드 시어터의 1,424석에 비하면, 고작 127석에 불과한 아담한 다벤포트 시어터 메인 스테이지에는 닐 라뷰트의 신작 3편이 공연 중이며, 이중 2편은 세계 초연이다.  


닐 라뷰트는 누구인가? 2008년 서울 대학로에서 '쉐이프(The Shape of Things )'와 '썸 걸즈(Some Girls)'가 번역 공연되어 잘 알려진 작가다. 하지만, 닐 라뷰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97년 영화 감독 데뷔작 '인더 컴퍼니 오브 맨(한국어 제목, 남성주식회사/In the Company of Men)'이다. 두 남자 직장인이 한 여자와 연애하다가 차버리는 게임을 하는 스토리로 여성혐오가 깔려 있어서 불편한 영화다. 그는 남성의 수성과 여성의 무력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간의 본능을 위선으로 위장하지 않고, 그의 저급한 심리를 폭로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착한 척하며, 권선징악, 해피 엔딩의 환상에 빠져 있다면, 그 사악함과 독소가 닐 라뷰트의 매력인 것이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독소를 통해 관객은 디톡스를 하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사카린이 듬뿍 들어간 패스트푸드와 소다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정 반다편에 있는 닐 라뷰트의 단편들은 맹물과 차를 마시는듯한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준다. 닐 라뷰트는 최근 공연 후 뒷 자리에서 자신의 연극과 관객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 제 4제국(The Fourth Reich)

만일 히틀러가 승전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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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Dean White in a scene from Neil LaBute’s “The Fourth Reich” Photo: Russ Rowland


마일스 데이비스 풍의 재즈가 흐르고, 중년의 말쑥한 남성(Erin Dean White)이 등장해 긴 가죽 의자에 걸터 앉는다. 의자 중앙에는 작은 풍경화 액자와 빨간 꽃 한송이가 담긴 화병, 물병과 유리컵이 놓여있다. 남자는 객석을 향해 말한다. '아돌프 히틀러가 괴물이며 악마로 평가되는 것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대인 600만명의 학살도 히틀러를 악명높은 지도자로 만들었지만, 실상 모든 것은 패자였기 때문이라는 것.


이스라엘 다음으로 유대인이 가장 많은 도시(1백만명 이상) 뉴욕에서 이런 대담한 대사를 쓸 작가는 많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한 인간이 분명 장점도 많을 터인데, 패자라는 이유로 역사의 악인으로 남은 것에 회의적인듯 하다. 우리 사회는 한 인간에 대해 재단하고, 심판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느 한 행위가 과장되어서 악인과 선인으로 경솔하게 평가되기도 한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수많은 업적조차 친일 발언으로 매국노로 낙인되면서 가리워지지 않았던가? #MeToo 이후 할리우드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을 비롯, 메트오페라의 지휘자 제임스 리바인, TV 호스트 찰리 로즈와 맷 라우어, 그리고 NBC-TV 사장 레스 문베스 등 파워풀하고, 존경도 받던 인물들이 단칼에 추락한 것도 되새겨볼만 하다. 훗날 이들의 사망기사가 어떤 톤을 띄게될까? 


남자는 작은 액자 속의 풍경화를 보여준다. 화가였던 히틀러의 그림이다. 불안이 거세된 평화로운 풍경화에 미래가 있다고, "진실이 당신을 자유롭게할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만약에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뉴욕에 독일 타운이 건재할 것이며, 할리우드에서 홀로코스트 영화가 이토록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실이라는 거대한 그림은 앵글에 따라 달라진다. 이 연극은 2017년 유럽의 리히텐슈타인에서 세계 초연된 후 2018년 세인트루이스의 라뷰트 뉴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미국 초연됐다.



# 위대한 검둥이 작품 (Great Negro Works of Art)

만일 톰이 백인 청년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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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iLyn Durrel Jones and Brenda Meaney in "Great Negro Works of Art". Photo: Russ Rowland


1편에서 미술에 희망을 건 작가는 미술관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첫 데이트에서 생긴 일을 그린다. 백인 여성 제리(Jerri,  Brenda Meaney)와 거무잡잡한 피부의 남성 톰(Tom, KeiLyn Durrel Jones)이 온라인에서 만나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다. 남자가 늦었지만,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다. 이들의 피부색과 톰과 제리(TV만화의 고양이와 쥐)라는 이름이 첫 데이트가 파경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 

 

하필이면 미술관의 전시가 흑인 작가전이며, 전시 타이틀도 흑인들에게 모욕적인 '니그로'가 들어간 'Great Negro Works of Art'다. 첫 데이트인 만큼 제리와 톰은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제리는 흑인 남자를 좋아한다고 선수치더니, 전시 작품을 보다가 흑인 작가에 피카소를 거론한다. 옛날 십자군 전쟁 때 북아프리카의 무어족이 스페인을 침공했고, 피카소의 피부가 검다는 식의 논리다. 그녀의 무식함은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퀴아를 모르는데서 절정에 이르다가, 비욘세, 오프라,  마일스 데이비스까지 아는 흑인 유명인사 이름을 거론하다가 바닥이 난다. 그리고는 "흑인 미술가들이 성공하지 못했고, 유명하지 않아 모를 뿐, 그들의 책임"으로 전가한다.

 

인종간의 긴장감이 팽팽해지자 제리는 톰에게 여성 스케이트 선수 이름을 대라면서 성(gender)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이에 톰과 제리의 감정은 폭발하게 된다. 톰은 제리가 "우둔한 말을 많이 했다"고 비난하고, 제리는 "난 단지 재미나 보려고 했을 뿐, 저녁식사와 섹스, 그 뿐인데 이런 논쟁은 골치 아프다"며 데이트를 파토낸다. 그녀가 사라지자 톰은 꽃다발을 내팽기친 후 허탈하게 웃는다. 


만약에 톰이 백인 청년이었다면, 이날의 데이트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장소 역시 미술관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백인 여성 제리의 속물성과 편협함을 마치 누드화처럼 발가벗긴다. 1, 2편의 연출은 존 피어슨(John Pierson)이 맡았으며, 세계 초연작이다.



# 가능성이 희박했던 일본여행(Unlikely Japan)

만일 그녀가 공항으로 갔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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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 Crovatin in a scene from Neil LaBute’s “Unlikely Japan” Photo: Russ Rowland


3편은 작가 닐 라뷰테가 연출했으며, 역시 세계 초연작이다. 긴 가죽 의자가 무대 중앙으로 배치되며 흐트러진 꽃들을 가리고, 금발의 젊은 여성(Gia Crovatin)이 라운지 가운과 슬리퍼 차림으로 앉아 차(*일본식 차주전자와 마리메코 양귀비꽃 무늬 컵)를 마신다. 은행 매니저인 그녀는 라스베가스 총기 난사 사건으로 콘서트에서 사망한 옛 남자친구(팀 프리드만)와의 추억에 빠진다. 그녀는 25분간의 독백을 시작한다.


그녀가 총기난사 사건 뉴스를 본 곳은 샐러드 바였다. 고등학교 시절 사진광 팀과 사귄 그녀는 누드 모델이 됐고, 사진 콘테스트에 출품한 팀은 상금을 받아 그녀에게 묻지도 않고 일본 여행을 계획한다. 사실 그녀는 콘서트광인 더그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일본행 비행기표를 산 팀에게 삐졌고, 더 부담스러운 것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청혼이라도 할까 하는 불안감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일본 여행보다도 더그와 시카고의 콘서트에 가고 싶었다. 때문에 그녀는 팀을 공항에서 바람 맞힌다. 팀은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도 일체 그녀의 행동을 질책하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렇게 결별했고, 팀은 아티스트가 됐다. 그리고, 총기난사로 어이없이 사망한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까? 그녀는 자신이 팀과 일본여행을 갔더라면, 운명의 시나리오가 바뀌었을까 곰곰히 생각한다. 그와 샐러드 바에서 TV로 총기 사건을 접했을까? 아니면, 라스베가스의 콘서트에서 총기난사의 희생자가됐을까? 운명의 수레바퀴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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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의 에릭 딘 화이트와 3편의 지아 크로바틴은 25분짜리 독백을 하고, 2편의 브렌다 미니와 자이린 듀렐 존스는 핑퐁식 대화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최근 공연 커튼콜에서.


닐 라뷰테는 인종, 총기사건, #미투 등 미국의 민감한 사회문제들을 일상에서 끄집어 내면서 허위의식을 폭로한다. 그리고, 만약에(what if)라는 가설로 운명론적인 염세주의를 바닥에 깔면서 혼란 속의 현대인들에게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재단에 경종을 울리며, 매 순간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삶 속에서 미술(ART)이 모티프로, 정신 세계의 나침판이 되는 것도 흥미롭다. 러닝타임 90분.


LaBute New Theater Festival

January 10-27, 2019

Davenport Theatre(354 West 45th St. bet. 8 & 9th Ave.)

Ticket: $47-$57

212-956-0948 http://davenporttheatre.com



miss Korea B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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