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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산티노 폰타나

진화한 뮤지컬 '투씨(Tootsi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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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예고편


브로드웨이는 꿈꾸는 이들의 세계다. 프로듀서들은 흥행을, 배우들은 명예를, 관객은 오락을 추구한다. 한편, 브로드웨이는 거대한 도박이다. 창작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의 흥행은 기적에 가깝다. 때문에 많은 프로듀서들은 창작물의 위험보다는 친숙함이라는 안전한 게임에 돈고 있다. 그래서 아이디어 빈곤과 흥행의 안전성을 위해 리바이벌, 주크박스 뮤지컬,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 각색 뮤지컬에 올인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뮤지컬 버전 역시 도박이다.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7)'같은 블록버스터에서 '프로듀서(The Producers)', '맘마 미아!(Mamma Mia!)', '헤어스프레이(Hairspray)', '원스(Once)' '빌리 엘리엇(Billy Elliot)'같은 히트 뮤지컬도 나왔다. 하지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 of Madison County)'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 Clyde)' '고스트(Ghost)' '나인 투 파이브(9 to 5)'는 브로드웨이에서 쓴맛을 보았고,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본 '더티 댄싱(Dirty Dancing)'은 아예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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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겨울왕국(Frozen)' '민 걸즈(Mean Girls)' '킹콩(King Kong)' '비틀주스(Beetlejuice)' '프리티 우먼(Pretty Women)' 그리고 '투씨(Tootsie)'도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이다. 


지난 4월 23일 브로드웨이 마퀴시어터(Marquis Theater)에서 개봉된 '투씨'는 토니상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또한, 주간 티켓판매 100만 달러 이상 수입을 올리며 비평과 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잡고 롱런을 향해 순항 중이다. 내년 미 전국 투어를 시작, 2021년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하며, 일본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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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 제시카 랭 주연 영화 '투씨'(1982)


1982년 전성기의 더스틴 호프만이 여장 배우로 등장한 시드니 폴락 감독의 코미디 '투씨'는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제시카 랭에게 여우조연상만 달랑 안겨준 비운의 작품이다. 하지만, 제작비 2100만 달러를 들이고, 1억7천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메가 히트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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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로날드 레이건 시대의 영화 '투씨'를 37년 후 도날드 트럼프 시대의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는데는 어떤 각색이 필요했을까? 

작가 로버트 혼(Robert Horn)은 1980년대 초 연기는 잘하지만, 완벽주의자로 사사건건 감독과 부딪히는 TV 배우 마이클 도르시(Michael Dorsey)를 2019년 아이폰을 쓰는 브로드웨이 배우로 수정했다. 


또한, #MeToo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연출자의 성희롱 시도와 남녀배우 임금 차별 등 페미니즘의 이슈도 거론한다. 브로드웨이 신작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속편 격인 '줄리엣의 간호원(Juliet's Nurse)'을 공연하면서 벌어지는 여장남자 배우 도로시 마이클(Dorothy Michaels)의 해프닝과 그의 러브 스토리가 극의 중추를 이루는 뮤지컬 속의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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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여장 배우 마이클 도르시를 비롯 속사포 옛 애인 샌디, 니힐리스트적인 룸메이트 희곡작가 제프, 쪽집개같은 여성 프로듀서, 문어처럼 움직이는 괴짜 연출가, 그리고 투씨를 짝사랑하는 배우 크레이그, 도르시의 매니저까지 등장인물이 절묘하게 위트있는 대사를 뱉어내서 극을 풍요하게 만든다. 종종 TV 시트콤 '사인펠드(Seinfeld)'를 연상시키는 뉴요커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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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지난해 '밴드의 방문(The Band's Visit)'로 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아우터비평가상을 휩쓴 작곡가 데이빗 야즈벡(David Yazbek)은 재즈, 힙합, 펑크,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매치시킨 노래로 스토리를 스피디하게 진행시킨다. 레바논계 아버지와 이탈리아유대계 어머니의 DNA에 녹아 있는듯 하다. 투씨의 딜레마를 담은 "Whaddya Do"와 "Unstoppable", 샌디의 욕구불만이 힙합스럽게 표출된 "What's Gonna Happen", 마이클과 줄리의 발라드 "Who Are You?" 등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곡이다. 아쉬움은 극장 문을 나설 때 귓전을 맴도는 노래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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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투씨'의 성공 비결은 첫째 마이클 도르시 역의 산티노 폰타나(Santino Fontana)를 비롯한 캐스트의 연기력일 것이다. 마이클은 너무나 정직해서 연출자과 부딪히는 바람에 늘 해고되는 무명 배우다. 폰타나는 도로시 마이클로 변장하면서 바리톤 음색이 메조소프라노로 바뀌며 여배우로 능란하게 변신한다. 뮤지컬 버전에선 더스틴 호프만이 영화에서 할 필요가 없었던 노래와 춤까지 폰타나는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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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냉소적인 희곡작가 룸메이트 제프(Andy Grotelueschen), 히스테리컬한 여배우 샌디(Sarah Stiles), 영화 '에이스 벤추라'의 짐 캐리를 연상시키는 줄리엣 오빠 역 맥스 반 혼 역의 존 벨만(John Behlmann)은 극중 끊임없이 폭소를 던져주는 캐릭터로 관객을 몰입시키는 앙상블 연기를 보여준다.   


건축가 데이빗 로크웰(David Rockwell)의 세트는 아르데코와 유리 고층 건물의 그늘에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배우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정체성마저 바꾸어야 하는 연예계의 현실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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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tsie, Broadway Musical


뮤지컬 코미디 '투씨'는 브로드웨이의 관습대로, 오리지널처럼 할리우드식 사카린 엔딩으로 마무리한다. 마이클 도르시는 사실 변장으로써 다른 여배우의 직업을 빼앗아 갔다. 그리고, 겉은 여성이지만, 속은 남성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줄리엣의 간호원'을 성공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또한, 줄리와 맥스로부터 구애까지 받았다. 하지만, 마이클은 거짓 모습으로 이 모든 것을 조종한, 무대 밖에서조차 연기자였던 셈이다. 일종의 사기극임에도 불구하고, 줄리가 쉽게 용서하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을 표방했지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깔려있다고나 할까? 1982년판 원작 영화의 엔딩을 보존한 셈이다.  



IMG_5525.jpg Tootsie, Broadway Musical


2019년 산티노 폰타나의 '투씨'는 더스틴 호프만의 '투씨'에서 진화해 성교체(gender bending)에 대해 새롭게 조망한다. 더스틴 호프만은 고군분투하는 배우로 일하기 위해 변장한 '생계형 여장남자'였다. 산티노 폰타나의 투씨도 취직을 위해 여장남자가 되지만, 여성의 옷을 입음으로써 여성의 심리와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깨닫게 되며 더욱 여성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산티노 폰타나는 '남성 속의 여성성' '여성 속의 남성성'을 발견하는 캐릭터이자 성전환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메카니즘으로서 무대의 중심이 된 인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투씨'는 오늘날 관객에게 더 어필하는 요소로 진화한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뮤지컬이다.  


Tootsie, Broadway Musical

Marquis Theatre (210 West 46th St.)

https://tootsiemusic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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