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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슴 속에 숨은 악마성...'정글의 야수(The Beast in the Jungle)'

수잔 스트로만 안무&연출, ABT 발레리나 이리나 드보로벤코 출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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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na Dvorovenko and Tony Yazbeck in 'The Beast in the Jungle' Photo: Carol Rosegg/ Henri Matisse 'Le Danse'

 

유니온스퀘어 인근의 아담한 극장 비니야드 시어터(Vinyard Theater)엔 세번 가보았다. 몰리 링월드 주연 '나는 어떻게 운전하는 법을 배웠나(How I Learned to Drive, 1998)'와 한인작가 줄리아 조(Julia Cho)의 '피아노 교사(The Piano Teacher, 2007)'를 보았고, 최근 '정글 속의 야수(The Beast in the Jungle, 2018)'를 보았으니 10년에 한편꼴로 본 셈이다. 132석의 비니야드 시어터는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뮤지컬 '애브뉴 Q(Avenue Q)'와 '스캇츠보로 보이즈(The Scottsboro Boys)'가 초연된 극장이기도 하다.

 

'정글의 야수'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에 모인 브로드웨이급 제작진의 창작물이다. 블록버스터 뮤지컬 '프로듀서(The Producers)'과 '컨택!(Contact!)'의 안무가 겸 연출가 수잔 스트로만, '캬바레(Cabaret)'와 '시카고(Chicago)'의 작곡가 존 캔더(John Cander), 극본은 데이빗 톰슨(David Thompson)으로 모두 '스카츠보로 보이즈' 동문들이다. 이들이 거장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의 1903년 단편(novella)에 영감을 받아 무대에 올린 무용극(dance play)이 '정글의 야수'다.

 

헨리 제임스는 영화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 '비둘기의 날개(The Wings of the Dove)' '워싱턴 스퀘어(The Washington Square)' '황금 술잔(The Golden Bowl)' 등 여성심리를 묘사한 시대물로 친숙한 인물. 뉴욕 출신이지만, 미국이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것에 분개해 영국으로 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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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y Yazbeck and Peter friedman in 'The Beast in the Jungle' Photo: Carol Rosegg

 

수잔 스트로만의 무용극 '정글의 야수'는 뉴욕의 아트딜러 존 마치(피터 프리드만 분)의 이야기다. 운명론자인 존은 50여년 전 나폴리에서 만난 여인 메이(이리나 드보로벤코 분)과 사랑에 빠지지만 거부하고, 20년 후 런던의 재벌과 결혼한 그녀와 재회한 후 뜨거운 밤을 보내고 도피하기로 하지만, 다시 도망친다. 존은 2018년 뉴욕에 사진전을 열고 있는 메이와 상봉해 자신이 나폴리 사진의 모델이 된 것을 발견하고 사랑에 확신을 갖지만, 메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존이 자신 안에 살고 있는 '괴물'로부터 벗어나는데는 이미 늦어버렸다.

 

'정글의 야수'는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사랑의 불구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사랑이 주는 설레임과 흥분, 행복은 때때로 불안과 질투와 상실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존 마치는 엄마의 가출 후 아버지의 자살을 목도한 후 깊은 상처로 인해 수시로 마음의 정글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야수와 싸워야 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랑의 대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에게 사랑=행복이 아니라 사랑=비극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때문에 존은 생애 최고의 사랑이었던 메이와 재회하지만, 마음 속의 야수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뉴욕의 아트딜러로 성공한 존이 왜 테라피를 받지 않는지는 의문이었다. 그 때문에 존은 야수와 투쟁해야 했다. 

 

현재의 존 마치 역은 '래그타임'의 노련한 피터 프리드만이 맡아 해설까지 맡는다. 아마도 존은 평생 메이를 가슴에 묻고, 아트 딜러로 돈과 미술을 숭배하며 살아온듯 하다. 프리드만은 과거 회상 장면에 간간이 등장한다. 마지막 챕터에서 죽어가는 메이와 상봉하며 회한에 잠긴다. 메이의 장례식을 앞두고 넥타이를 멨다가 풀렀다가 반복하며 서고에서 메이와 나눈 정사씬("the Great Mystical Fuck")이라고 외치는 독백 장면은 통렬하면서도 비애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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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na Dvorovenko in 'The Beast in the Jungle' Photo: Carol Rosegg

 

2014년 리바이벌 뮤지컬 '온더 타운(On the Town)'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실력파 토니 야즈벡(Tony Yazbeck)은 젊은 존 역과 존의 조카로도 분하며 열연한다. 뮤지컬에서는 2인무가 러브씬을 대체한다. 이리나 드보로벤코와 재회 후 서재에서 벌이는 기나긴 정사씬은 스트로만의 절묘한 안무와 함께 극의 절정을 장식한다.    

 

메이 역은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출신 이리나 드보로벤코(Irina Dvorovenko)가 맡아 새털처럼, 백조처럼 우아하며 이국적인 메이 역을 춤과 대사로 조율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드보로벤코의 러시안 액센트로 신빙성이 덧보이는 캐릭터다. 무대 위에서 무용으로 다져진 배우의 유연하며 우아한 움직임을 보는 것은 즐거움 중의 하나다. 2013년 오프브로드웨이 무용극 '셰리(Cheri)'에는 역시 ABT 수석 무용수 출신 알렉산드라 페리가 파트너 헤르만 코르네조(Herman Cornejo)와 함께 출연했었다.  대사가 절제된 댄서들의 연기는 마치 무성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배우처럼 포에틱하다. 

 

메이의 남편 역은 베테랑 흑인 배우 티글 F. 부게어(Teagle F. Bougere)가 오리지널 캐스트였으나, 이날 공연은 로버트 페트코프(Robert Petkoff)가 맡아 오버액션 없이 소화해냈다. 페트코프는 마지막 공동묘지 장면에서 존에게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역으로도 등장한다. 오리지널 캐스트의 부게어는 드라마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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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ina Dvorovenko and Tony Yazbeck in 'The Beast in the Jungle' Photo: Carol Rosegg

 

스트로만은 존과 메이, 조카와 메이의 남편 단 4명의 배우와 6인의 여성 댄서들로 격정의 드라마를 탄탄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화려하게 연출했다. 댄서들(Maira Barriga, Elizabeth Dugas, Sara Esty, Leah Hofmann, Naomi Kakuk, Brittany Marcin Maschmeyer, Erin N. Moore)은 나폴리의 여인들부터 야수의 퍼펫, 뮤지엄의 벽걸이, 맨션의 조각상으로 변화무쌍하게 변신하면서 4인이 펼치는 멜로드라마에 감칠맛을 더 한다. 

 

'캬바레'와 '시카고'의 전설적인 작곡가 존 캔더는 91세의 노령으로 존과 메이의 비극적인 사랑을 왈츠에 실었다. 발코니 윙에 9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사랑과 상실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정글의 야수'는 헨리 제임스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 절반의 영감은 앙리 마티스(Hernri Matisse)의 걸작 '댄스(La Danse, 1909)'일 것이다. 다섯명의 여성들이 나체로 춤추며 캔버스는 푸른(바다)와 초록(잔디), 혹은 하늘과 땅으로 나뉘어진다. 존과 메이는 사랑의 춤을 추며, 6인의 무희들이 이들을 둘러싼다. 메이가 살색에 가까운 의상으로 춤추는 것은 '댄스'의 팬인 메이를 회화 속의 무희로 투사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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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만의 안무에서 존과 메이의 첫만남은 뮤지컬 영화 '라라 랜드(La La Land)'의 세바스찬과 미아를 연상시킨다.  '피크닉 왈츠' 장면은 마티스의 '댄스'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Dance of Life)'를 떠올린다. 스트로만의 안무가 로맨스의 절정이라면, '라이온킹(The Lion King)'의 세트디자이너 마이클 커리(Michael Curry)의 퍼펫 괴물과 분열된 초상 세트는 존을 괴롭히는 트라우마, 즉 괴물의 시각적 표현이다. 댄스와 세트가 음과 양으로 존 마치의 딜레마를 형상화한 쌍벽의 장치다. '정글의 야수'에서 댄스와 세트는 인간의 끊임없는 이성과 감성, 희극과 비극,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를 상징하는듯 하다.

 

헨리 제임스와 앙리 마티스, 무용과 연극을 조화한 수잔 스트로만의 버전 '정글의 야수'는 사랑과 이별, 상실과 후회,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다. 존이 펼치는 105분간의 여정은 관객 자신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돌아보게 한다. 존은 당신에게도 한때 그런 사랑이 있었냐고 묻는듯 하다. 

 

하지만, '메이'로 상징되는 완벽한 사랑은 가지 않은 길이었기에 더욱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존이 기물을 파손하는 장면은 인간 내부의 야수성과 자멸적인 종말을 상징한다. 이 연극은 그런 성향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5월 23일 공식 오픈한 '정글의 야수'는 6월 17일 폐막될 예정이었지만, 6월 24일까지 연장공연된다. https://www.vineyardtheatre.org  Vineyard Theater, 108 East 15th St. 212-353-0303

 

*알렉산드라 페리 주연 무용극 '셰리(Ch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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