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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송 70곡 모자이크, 엔돌핀 솟는 스펙타큘라 뮤지컬

'물랑 루즈! 뮤지컬(Moulin Rouge! The Music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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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 Olivo as Satine and Aaron Tveit as Christian in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마침내 브로드웨이에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신작 뮤지컬이 흥행을 질주하고 있다. '물랑 루즈! 뮤지컬(Moulin Rouge! The Musical)'이다. 


2015년 뮤지컬 '해밀턴(Hamilton)'이 브로드웨이에 초연된 후 비평과 흥행의 두마리 토끼를 잡으며 매주 300만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거두어왔다. 여기에 22년째 브로드웨이 왕좌를 지키고 있는 롱런 뮤지컬 '라이온 킹(Lion King)'이 그 뒤를 추격하는 가운데, '물랑 루즈! 뮤지컬'이 2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으로 가담해 브로드웨이 흥행의 3두 마차로 달리는 중이다. 미국 역사와 힙합의 콤비네이션 뮤지컬 '해밀턴'은 사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겐 낯설다. 


디즈니 가족 뮤지컬 '라이온 킹'은 이제 식상해졌다. 하지만, '물랑 루즈! 뮤지컬'은 춤과 댄스, 러브 스토리가 어우러진 '라스베가스' 스타일의 엔터테인먼트다. '물랑 루즈! 뮤지컬'은 아바(ABBA)의 히트송을 메들리로 들려준 '마마 미아!(Mamma Mia!, 2000-2015)'이후 브로드웨이에서 롱런을 보장할 주크박스 뮤지컬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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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lin Rouge! set design by Derek McLane. Photo: Matthew Murphy


'물랑 루즈! 뮤지컬'은 지난해 7월 보스턴 에머슨 콜로니얼 시어터에서 시험적으로 초연되었다. 이어 올 7월 25일 브로드웨이에 입성, 알 허쉬필드 시어터(Al Hirschfeld Theatre, 1,424석)에서 공식 개막됐다.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까탈스러운 비평가 벤 벤틀리를 비롯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뮤지컬은 호주 출신 감독 바즈 루어만(Baz Luhermann)이 2001년 연출했던 영화 '물랑 루즈'를 극장용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바즈 루어만은 한국에서 미운 오리 새끼 볼룸 댄서(스캇)의 스토리를 음악과 춤, 화려한 볼거리로 버무린 영화 '댄싱 히어로(Strictly Ballrooom)'로 크게 히트한 바 있다. 이후 레오나르도 디 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스를 캐스팅한 '로미오+줄리엣'(1996), 니콜 키드만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 그리고 디카프리오와 캐리 뮬리건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로 장편영화를 마치 뮤직 비디오 찍듯이 화려하고, 맛있고, 멋있게 보여주는 재능을 과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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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감독 바즈 루어만, 니콜 키드만과 이완 백그리거 주연의 영화 '물랑 루즈'(2001).


이쯤이면, 바즈 루어만의 '물랑 루즈!'를 브로드웨이에서 리메이크할 때 "이보다 더 화려한 볼거리는 없다"고 선언했음직하다. 할리우드 스타 니콜 키드만과 이완 맥그리거 급의 스타를 브로드웨이로 모셔올 수는 없어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토니상을 거머쥔 카렌 올리보(Karen Olivo)와 늘씬한 아론 트베이트(Aaron Tveit)가 무대 위에 올랐다. 영화처럼 클로즈업이 필요없는 연극/뮤지컬은 롱숏의 예술이다. 이들은 '물랑 루즈'에서 비련의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을 맡았다. 이들은 키드만과 맥그리거에겐 없는 가창력을 발휘한다. 


'물랑 루즈!'의 스토리는 19세기말 파리 몽마르트에 자리한 캬바레 '물랑 루즈(Moulin Rouge, 빨간 풍차)'의 배우이자 고급 매춘부 사틴(카렌 올리보)과 오하이오주에서 파리로 간 작곡가 미국 청년 크리스찬(아론 트베이트)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진 켈리와 레슬리 캐론 주연 뮤지컬 영화 '파리의 아메리칸(An American in Paris, 1951)'같은 설정인데, 바즈 루어만의 영화에서 크리스찬은 영국인 청년이었는데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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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ny Burstein as Harold Zidler in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재정난으로 문닫을 위기에 놓여있는 물랑 루즈의 스타 사틴은 클럽을 구하기 위해 공작의 환심을 사지만, 가난한 작곡가 크리스찬과 사랑에 빠져 있다. 공작은 물랑 루즈의 공연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물랑 루즈와 배우들까지 소유물로 여긴다. '물랑 루즈!'에는 돈과 계급 갈등도 깔려 있다.  


사틴은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에서 파리의 가난한 시인 루돌포와 사랑에 빠진 후 병에 걸려 죽는 미미, 베르디 작곡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사교계의 콜걸로 귀족 알프레도와 사랑에 빠졌다가 숨을 거두는 비올레타를 연상시킨다. 미국의 뮤지컬은 유럽의 전통 오페라와 달리 해피 엔딩이 공식이지만, '물랑 루즈'는 오페라의 관습인 비극적 엔딩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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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 Mutu as The Duke in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영화 원작 뮤지컬 '록키(Rocky)'와 '비틀쥬스(Beetlejuice)'로 기량을 쌓은 연출가 알렉스 팀버스(Alex Timbers)는 라스베가스의 쇼를 방불케하는 무대를 꾸미고, 60년대부터 현재까지 팝 음악 70여곡을 믹스앤매치한 모자이크 음악으로 포스트모던한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의 에센스를 보여준다. 


음악감독 저스틴 리바인(Justine Levine)아바(ABBA) 뮤지컬 '맘마 미아!'나 저지 보이즈(Jersey Boys)'처럼 한 밴드의 노래 메들리가 아니라 70여곡의 낯익은 팝송의 하이라이트를 극중 대사에 맞게 콜라쥬했다. 저작권 승인을 받는데만 몇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저작권자들이나 작곡가들이 자신의 곡들을 산산이 난도질한 것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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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en Olivo and Aaron Tveit / Olivo and Tam Mutu in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물랑 루즈!'는 "오늘 밤 나와 자겠어요?(Voulez-vous coucher avec moi(ce soir)?"라는 도발적인 가사가 나오는 70년대 팝송 '레이디 마말레이드(Lady Marmalade)' 시작해 "리듬 오브 더 나잇" "사운드 오브 뮤직" "Never Gonna Give Up"등 시공을 초월한 짜집기 노래가 흐른다. 주인공 사틴은 마치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나 비욘세(Beyonce)의 뮤직 비디오처럼 공중에서 내려와 마릴린 먼로 주연 뮤지컬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중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최고 친구(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를 부르다가 마돈나의 "Material Girl"로 이어진다. 그리고, 빈털털이 작곡가 크리스찬은 엘튼 존의 노래 "Your Song"으로 사틴을 사로 잡는다. 


뒤죽박죽될뻔 했던  팝송 메들리는 2막에서 다소 정리되며, 심플해진다. 레이디 가가의 "Bad Romance"에서 시작해 유리스믹스의 "Sweet Dreams"로 끝나는 리허설 장면과 크리스찬이 배신감에 탱고 버전으로 부르는 스팅의 "록산(Roxanne)'은 안무가  소냐 타예(Sonya Tayeh)의 다이나믹한 안무와 함께 '물랑 루즈!'의 하이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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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 카드 무대 장치?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물랑 루즈!'의 비주얼은 근래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최고봉이다. 세트 디자이너 데릭 맥레인(Derek McLane)은 19세기말 물랑루즈 클럽의 분위기를 하트 모양을 모티프로 핑크, 레드, 황금색, 블루 등 총천연색으로 번쩍이는 유토피아를 제작했다. 여기에 캐서린 주버(Catherine Zuber)의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 패션에서 프렌치 캉캉, 뮤지컬 '캬바레'의 모자 패션,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 풍의 의상으로 눈요기 거리를 제공한다. 


저스틴 타운센드(Justine Townsend)의 조명은 데카당트한 물랑루즈에 현란한 라스베가스 풍으로 만들었다. 바즈 루어만과 의상 디자이너인 부인 캐서린 마틴(Catherine Martin)은 2천800만 달러가 투입된 '물랑 루즈! 뮤지컬'의 Creative Service를 맡으며, 뒷전으로 물러났지만 로열티는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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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st of Moulin Rouge! Photo: Matthew Murphy


사틴 역의 카렌 올리보는 비욘세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에 가창력은 빼어나지만, 대사 연기는 미숙했다. 게다가 폐결핵으로 죽어가기에는 너무 건강해 보인다. 크리스찬으로 분한 아론 트베이트와는 19세기 말의 연인이 아니라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라라 랜드(La La Land)'의 엠마 왓슨과 라이언 고슬링을  연상시켰다. 팝 메들리에 비하면, 사틴과 크리스찬의 캐릭터는 얄팍하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U2, 데이빗 보위, 엘튼 존, 마돈나, 티나 터너, 아하, 아델, 케이티 페리, 레이디 가가의 노래 모자이크가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할까?


물랑 루즈 클럽 주인 역의 대니 버스틴(Danny Burstein)의 중후한 연기와 공작 역 탐 무투(Tam Mutu)의 사악한 캐릭터, 짝사랑과 냉소주의에 빠진 툴루즈 로트렉 역의 사르 응가우자(Sahr Ngaujah)의 사무엘 L. 잭슨을 떠올리는 연기가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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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hr Ngaujah as Toulouse-Lautrec, Aaron Tveit as Christian and Joel Perez as Santiago. Photo: Matthew Murphy


주연 카렌 올리보는 푸에르토리코, 인디언 원주민, 도미니카공화국, 중국계다. 몽마르트 보헤미언인 툴루즈 로트렉 역에 흑인 배우 사르 응가우자, 아르헨티나 출신 탱고 댄서 산티아고 역에 남미계 조엘 페레즈(Joel Perez)로, 몇몇 비만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극장주는 동성애자로 설정함으로써 브로드웨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사틴이 폐결핵으로 사망한 후 남성 4인방이 그녀의 시체를 들어올린 후 무대 뒤로 퇴장한다. 


물랑 루즈의 '팜므 파탈(Famme Fatal)' 사틴이 사라지면서 혼란은 끝나고,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질서가 바로 잡혀지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사틴(Satine), 그녀의 이름은 사탄의 다른 모습일까? 노래는 40여년을 넘나드는 팝송을 퍼레이드하면서도, 보헤미안들이 Truth(진실), Beauty(아름다움), Freedom(자유), Love(사랑)를 찬미하면서도, 스토리는 다분히 오페라 '카르멘' '라보엠' '라 트라비아타'처럼 가부장적이며, 전근대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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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보너스 무대. "Bows* (Lady Marmalade†/Hey Ya!/Minnie the Moocher/Bad Romance/What's Love Got to Do with It/Don't You Want Me/Crazy/Galop Infernal†/Shut Up And Dance)" – Company


알 허쉬필드 시어터 간판에도 프랑스어로 '사랑(L'Amour)'이 써있다. 사틴은 사랑의 이름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관객은 사틴의 죽음 후 피날레에서 보너스로 들려주는 9곡의 메들리에 맞추어 노래하며 춤추는 캐스트들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물랑 루즈! 뮤지컬'은 눈과 귀를 황홀하게 만드는 뮤지컬이다. 그 재미는 친숙함에서 온다. 할리우드가 속편 영화를 양산하고, 브로드웨이가 리바이벌과 리메이크에 주력하는 것도 대중이 친숙함에 돈을 기꺼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익숙한 '물랑 루즈'의 화려함, '라 보엠'과 '라 트라비아타'같은 비극적 러브 스토리, 70여곡에 달하는 팝송 메들리, 라스베가스 쇼같은 섹시한 스펙터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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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 Hirschfeld Theatre


아쉬움은 '해밀턴'이나 '북 오브 몰몬' '프로듀서'와 같은 오리지널리티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랑 루즈! 뮤지컬'은 혼란한 정치와 사회, 일상의 스트레스로부터 도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의 뮤지컬이다. 뮤지컬 '맘마 미아!'의 이야기는 유치하지만, 아바의 노래를 들으러 간 것처럼, '물랑 루즈'는 친숙함과 화려함으로 오랜만에 뮤지컬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delfina.jpg *극장개발기금(TDF) 후원 '킹키 부츠' 콘서트 

*브로드웨이 극장전 <4> 알 허쉬필드 시어터 

*뮤지컬 '해밀턴' $10 러시티켓 성공기 

*'뮤지컬 '해밀턴' 현장 로터리($10) 

*리뷰: 뮤지컬 '해밀턴' 보기가 너무 괴로워 

*브로드웨이 뮤지컬 할인 티켓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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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9.29 21:02
    '물랑 루즈'하면 난쟁이 화가 툴루즈 로트렉과 술집 무대에서 춤추는 화려한 의상의 캉캉들이 떠오릅니다. 19세기의 몽마르트르의 분위기를 소상히 설명해 주셔서 그 분위기에 빠져드는 느낌도 가졌습니다. 코흐, 드가-이런 화가들이 물랑 루즈의 단골손님들이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현재 최고가의 그림값을 호가하는 이들의 그림들이 담배 연기와 술 냄새가 자욱한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게 믿기 어렵네요. 예술혼은 내재해 있는 정신세계이기 때문에 여기가 그림 그리기에 좋고 저기는 나쁘다고 단정짓는다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700개나되는 음악이 뮤지컬에 나온다니 '물랑 루즈'를 보고픈 마음이 동하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