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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할리우드 명배우 캐슬린 터너의 원 우먼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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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Town Hall, NYC, 2021 Photo: Jeremy Daniels 

 

옛날옛적 할리우드에 '팜므 파탈' 캐슬린 터너(Kathleen Turner)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에로틱 스릴러 '원초적 본능(Basic Instinct, 1992)'의 샤론 스톤이 할리우드 섹스 심볼로 부상하기 전, 1980년대엔 캐슬린 터너가 군림했다. 샤론 스톤은 우디 알렌 감독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에서 엑스트라로 출발해 10여년간 무명 배우로 지내다가 스타덤에 올랐다. 반면, 캐슬린 터너는 뉴욕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면서 촬영한 데뷔작 '보디 히트(Body Heat, 1981)'로 하루아침에 월드 섹시 스타가 되었다. 캐슬린 터너는 이후  '로맨싱 스톤(Romancing the Stone, 1984)', '프리찌가의 명예(Prizzi's Honor, 1985)'로 골든글로브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star)이자, 연기를 먹고사는 배우(actress)로서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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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속 캐슬린 터너. '보디히트'(왼쪽부터), '로맨싱 스톤' '프리찌가의 명예' '페기 수 결혼하가'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그리고 원 우먼 쇼의 캐슬린 터너. 

 

그러나, 40세를 넘어서자 할리우드는 캐슬린 터너에게 엄마나 할머니 역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1992년 블랙 코미디 '시리얼 맘(Serial Mom)'을 촬영 중 류마티스성 관절염 진단을 받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그녀는 알콜에 의존하게 된다. 블록버스터 히트 영화 '사랑과 영혼(Ghost)'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거절하고, B급 영화에 출연하면서 흥행에 줄줄이 실패했다. 캐슬린 터너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알콜중독과 함께 몸무게는 늘어났다. 언론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스타덤에서는 멀어져갔지만, 그녀에겐 재능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젊은시절 무대에서 다진 연기력과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녀만의 섹시 허스키 보이스(sexy husky voice)다. 캐슬린 터너는 1990년대 연극 브로드웨이로 갔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Cat on a Hot Tin Roof)'와 '졸업(The Graduate)', 2005년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에 출연했다. 그리고, 소설가 조안 디디온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한 모노 드라마 '마술적 사유의 한 해(The Year of Magical Thinking)'에서 연기력을 입증했다. 2019년엔 오페라에 출연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올려진 도니제티 작곡 '연대의 딸(La fille du régiment)'에서 크라켄토프 공작부인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2016년 워싱턴내셔널오페라에서는 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이 맡았던 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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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tty Yende and Kathleen Turner in "La Fille du Régiment", The Metropolitan Opera, 2019  Photo: Marty Sohl / Met Opera

 

터너의 목소리는 무형문화재급이다. 1988년 만화+실사영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Who Framed Roger Rabbit)'에서 디즈니 사상 가장 섹시한 여성 캐릭터 제시카 래빗의 목소리를 맡았다. "전 나쁘지 않아요, 그렇게 그려졌을 뿐이죠(I'm not bad, I'm just drawn that way.)"가 그녀의 명대사로 회자됐다. 배우로서 터너의 이미지와 허스키 보이스는 필름 누아의 전설 로렌 바콜(Lauren Bacall)을 연상시키며, 노래하는 터너는 중후해진 가수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을 떠올린다. 레코드가 아니라 페이스풀이 1999년 여름 센트럴파크 섬머스테이지 콘서트에서 노래했던 그 목소리다.  

 

사실 캐슬린 터너는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영국, 쿠바,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성장한 그녀는 런던의 아메리칸스쿨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미국에 돌아온 후 사우스웨스트미조리주립대와 메릴랜드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그리고, 1977년 뉴욕에 정착한 후엔 실험극장과 브로드웨이에서 연기를 갈고 닦았다. 

 

 

이제는 돌아와 '노래하는 배우(Singing Actress)' 캐슬린 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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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Town Hall, NYC, 2021 

 

이제 67세, 황혼의 캐슬린 터너가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12월 16일 맨해튼 타운홀(Town Hall)에서 모노 드라마 '캐슬린 터너: 나의 목소리를 찾아서(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로 관객과 만났다. 단 하루의 공연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옥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상황에서 무대엔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베이스, 기타, 그리고 화병 속의 빨간 장미 한다발, 물병 두개, 그리고 의자 두개가 마련됐다.  

 

연기 인생 43년간 픽션의 캐릭터를 맡았던 캐슬린 터너가 캐릭터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이야기와 적나라한 진실(naked truth)로 마이크 앞에 섰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던가? 코리안아메리칸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가렛 조(Margaret Cho)가 1994년 ABC-TV의 시트콤 '올 아메리칸 걸(All American Girl)'이 취소된 후 술, 마약, 담배,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5년만에 자신의 삶을 토대로한 '나는 내가 원하는 나(I'm the One that I want)' 순회 공연으로 컴백했다.  

 

캐슬린 터너는 이날 타운홀 공연에 섹시한 셔츠 대신 파자마같은 남색 실크 라운지웨어에 하이힐 대신 짙은 스니커를 신고 무대에 등장했다. 그녀 앞에 영화 카메라는 없다. 대신 마스크를 잡았다. 1천495석 타운홀의 청중은 그녀의 허스키 보이스에서 나오는 삶의 회한과 유머와 노래를 기다렸다. 연극, 영화, TV 연기를 종횡무진해온 캐슬린 터너가 이제 '노래하는 배우'로 변신한 것이다. 그것이 브로드웨이 뮤지컬 게임의 규칙인 화려한 세트와 춤과 노래, 해피 엔딩이 아니다. 노년에 접어든 전설의 할리우드 스타가 카바레같은 무대에서 들려주는 달고, 쓴 인생의 여러 에피소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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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Town Hall, NYC, 2021 Photo: Jeremy Daniels 

 

터너의 이야기 보따리는 쿠바와 베네수엘라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런던에서 연기와 사랑에 빠졌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무대 연기가 마치 자동차 사고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고 고백한다. 위험을 무릅쓰는 터너는 데뷔작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스타였기에 할리우드의 가부장적인 체계에서 희생자로 남지 않았다.

 

톱스타였지만, 그녀는 '팜므 파탈'의 스테레오 타입에 머물지 않고, 늘 변신을 추구했으며, 시나리오를 두고 싸우는 투사였다. 그녀는 맡고 싶은 역('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마사)을 위해 필사적으로 작가(에드워드 앨비)를 설득시키며, 동료 배우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현재의 정치상황과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도 논평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자가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을 못한다"는 낙태금지법의 넌센스를 꼬집으며, 팬데믹으로 관용과 인내심이 늘었다고 말한다.  

 

캐슬린 터너는 2008년 회고록(Send Yourself Roses: Thoughts on My Life, Love, and Leading Roles)을 냈다. 하지만, 터너가 자신의 삶이라는 긴 책에서 선택하고, 요약하고, 유머를 담아 노래와 함께 들려주는 모노 드라마 '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공연은 그녀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팬들에게 선사하는 초콜릿 박스같다. 우리 인생은 달콤하고, 쌉사레한 초콜릿으로 가득한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상자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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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Town Hall, NYC, 2021 

 

음악감독 및 편곡자인 마크 자나스(Mark Janas, 피아노), 리트 헨(Ritt Henn, 베이스), 션 하크니스(Sean Harkness, 기타)의 트리오는 터너의 허스키한 퍼포먼스를 새틴처럼 부드럽게 중화시켜주면서 공연을 친밀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터너의 모노 드라마는 정신치료사에게 들려주는 자기 고백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집단적으로 터너의 테라피스트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캐슬린 터너의 스토리는 영화나 연극만큼이나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하다. 그것이 엔터테인먼트다. That's Entertainment! 

 

제 2부에서 터너가 부르는 'Send in the Clowns'는 올 11월 별세한 스티븐 손하임(Stephen Sondheim, 1930-2021)의 뮤지컬 'A Little Night Music)'에 나오는 노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는 광대일까? 광대이던, 바보이던, 지금 우리 모두에겐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터너의 원우먼쇼는 그런 의미에서 카타르시스를 준다. 타운홀 건너편엔 멜란콜리한 작사/작곡가 이름을 딴 스티븐 손하임 시어터가 있다. 

 

이 공연의 프로듀서는 켄 다벤포트(Ken Davenport)이며,  부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그랜트 Shuttered Venue Operators Grant (SVOG)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Kathleen Turner: Finding My Voice

Produced by Ken Davenport

Directed by Andy Gale

Musical Direction and Arrangements by Mark Janas 

https://www.kathleenturneron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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