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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leine Albright, 193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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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미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Secretary of the State, 1997-2001)를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1937-2022)가 3월 23일 워싱턴 DC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올브라이트의 본명은 마리 야나 코르벨로바(Marie Jana Korbelová). 아버지 요세프 코르벨은 외교관으로 유고슬라비아에서 근무했다. 제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으로 피난했다. 올브라이트는 1940년과 41년 독일 공군의 런던 공습 때 대피소와 집의 강철 탁자 아래 숨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전쟁 후엔 체코 공산화에 따라 195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부모는 나치로부터 보호하기위해 자녀를 카톨릭 신자로 키웠다. 세명의 조부모 등 26명이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됐다. 

 

웰즐리대 정치학과 졸업 후 뉴욕데일리뉴스 창업자 가문의 조셉 메딜 패터슨 올브라이트와 결혼했다. 남편이 뉴욕데일리뉴스를 운영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한 후 컬럼비아대에서 공법과 정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의 고문, 즈비그뉴 브레즌스키의 국가안보위 직원을 지냈으며, 1982년 조셉과 이혼했다. 이후 조지타운대에서 소련 외교를 가르치면서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운동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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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선 캠페인을 도와준 빌 클린턴 당선 후 UN주재 미국 대사로 부임했으며, 1997년 클린턴 재임시엔 국무장관으로 발탁됐다. 2000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백남순 외무상, 조명록 등을 만났으며,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올브라이트의 국무장관으로서의 성과는 해외의 직업 외교관과 국내 일반 미국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애호가들은 그녀가 실용성, 다재다능함 및 상쾌한 국제적 감각을 발산하는 스타 품질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체코어, 폴란드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를 구사했다"고 전했다.

 

2009년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교수로 돌아갔으며,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President Freedom Medal)을 받았다. 2003년 전기 '마담 국무장관(Madam Secretary)'이 출간됐다. 올브라이트는 'The Mighty and the Almighty: Reflections on America, God and World Affairs'(2006), 'Memo to the President-Elect: How We Can Restore America’s Reputation and Leadership'(2008), 'Read My Pins: Stories from a Diplomat’s Jewel Box'(2009), 'Prague Winter: A Personal Story of Remembrance and War, 1937-1948' (2012), 그리고 '파시즘: 하나의 경고(Fascism: A Warning, 2018)' 등을 집필했다.  

 

Madeleine Albright died at 84. A brilliant analyst of world affairs, she was the first woman to serve as U.S. secretary of state.

Ms. Albright was a child of Czech refugees who fled from Nazi invaders and Communist oppressors and eventually landed in the United States, where she flourished as a diplomat.

https://www.nytimes.com/2022/03/23/us/madeleine-albright-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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