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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9.09.04 18:26

(434) 허병렬: 뉴욕한국학교의 탄생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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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55) 다문화와 언어

뉴욕한국학교의 탄생,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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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말 미국에 온 목적 중 하나는 한국학교를 여는 것이었다. 그 동기는 1959년 미국에 유학 왔을 때 여러 명의 교포 자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미국 내 여기저기에 이런 어린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므로 그들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뉴욕의 모 교육대학에 적을 두었을 때, 졸업논문의 제목을 ‘한국문화교육을 위한 교과서 편찬’으로 정했다. 지도교수는 그것을 읽고나서 ‘좋은 생각’이라고 평하였다, 혹시 ‘이런 주제라면 한국내에서 하는 편이...’하는 평을 받을가봐 염려한 것이 기우였다. 그는 이어서 ‘이런 활동은 미국문화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고 하였지만 당시는 그 말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행히 몇 분의 협조자를 만나서 1973년 어린이날에 뉴욕한국학교를 열었다. 첫 날 20가정에서 32명의 학생이 모였다. 개학식이 끝나자, 전교생이 체육실에서 공개수업에 참가하였다. 각 교과를 맡은 여덟 명의 교사들은 각자 맡은 과목의 공개수업을 함으로서 교과의 특색을 모두에게 공개하였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서 거의 50년 가까이 되었고, 그 학교는 현재도 건강하게 맡은 일을 하고있다.  


미국문화는 다양하다. ‘다양성’이란 ‘종류가 많다, 가지 가지다’ 라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드는 이민들은 제각기 지니고 있는 고유문화와 함께 미국에 온다. 그들은 미국문화를 흡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고유문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미국문화는 다양성을 띠게 된다. 이런 경향 때문인지 미국인은 대체로 다른 문화에 흥미를 느끼고 좀처럼 배타적인 면을 보이지 않는다.


그 옛날 지도교수가 ‘각자의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생각이 미국문화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던 말을 되살린다. 바른 말이다. 미국에는 자유로운 개성적인 문화가 있지만, 여기에 이민자들이 자랑으로 알고 지키는 그들의 고유문화가 가미되어서 값진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계획대로 차려진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시계처럼 생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생활의 참모습은 하루하루를 머리로 생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든 일을 골돌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새롭고, 창조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정해진 궤도 위에도 하나의 새로운 플러스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생활태도는 미국의 분위기 탓인지도 모른다. 미국문화의 특색은 원본대로 한곳에 모을 수 있지만, 그 순간에도 변한다. 오래 머물지 않고, 쉬지 않고 변화하면서 앞으로 나가는데 있다. 그것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정열 때문이고, 미국내 세태의 흐름 때문이다. 


‘문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도 있다. 생활 주변의 모든 것이 문화의 이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지혜를 모아서 만든 유형 무형의 생활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른 문화를 만났을 때, 가진 것을 고집하거나, 새것을 취하거나, 아예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문화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렸다.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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