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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34) EAT, DRINK, SING & DANCE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5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는 민족 <3> 노래하고(가/歌/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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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소프라노 홍혜경(피가로의 결혼, 왼쪽부터), 테너 이용훈(아이다), 소프라노 캐슬린 김(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베이스 연광철(마농)  Photo: The Metropolitan Opera   

 

 

<3> 노래하고(가/歌/SING)

 

"한국인은 대개 외향적이고, 정서적으로 뜨겁기도 차갑기도 하다. '동양의 이탈리안'으로 무척 감정적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노래 잘 하는 얼굴과 체격, 그리고 영혼이라는 목소리 상자(voice box, 후두)를 타고 태어난 민족이다. 소리와 연기는 모두 우리의 피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소프라노 홍혜경, 인터뷰-  

 

 

#오페라 무대의 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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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라 트라비아타'에서 메트오페라 127년 사상 최초의 아시안 주역을 맡은 홍혜경과 김우경. Photo: Marty Sohl/ The Metropolitan Opera 

 
'세계 성악가들의 1번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Metropolitan Opera)에는 한인 성악가들의 활동이 눈부시다. 1984년 소프라노 홍혜경이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로 데뷔한 후 신영옥, 조수미가 메트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소프라노 캐슬린 김, 박소영, 박혜상, 홍혜란, 테너 이용훈, 김우경, 김재형, 강요셉, 신상근(안드레아 신), 최원휘, 베이스 연광철, 앤드류 갱개스타드, 박종민, 바리톤 윤형, 데이빗 원, 베이스-바리톤 심기환, 차정철 등이 무대에 올랐다. 한편, 메트의 코러스에도 이승혜, 최미은, 정연목, 이주환, 이요한 등이 합창하고 있다. 한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민족임을 입증한 셈이다.  

 

2007년 1월 한인 성악가들은 메트오페라 127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소프라노 홍혜경과 테너 김우경은 베르디 작곡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로 출연, 메트 사상 최초의 아시안 주연으로 기록된다. 

 

또한, 권위있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바리톤 최현수(1990)를 비롯, 베이스 박종민, 소프라노 서선영(2011)씨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소프라노 홍혜란(2011), 소프라노 황수미(2014)씨가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뮤지컬의 한인들
 
-'왕과 나(The King and I)' 역사 새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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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리바이벌 뮤지컬 '왕과 나'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다니엘 대 김. 한인 훈 리(Hoon Lee)도 시암국왕 역을 맡았다. 안나 역의 켈리 오하라와 춤추는 "Shall we dance" 장면. Photo: Paul Kolink 

 

뮤지컬의 역사도 한인들이 새로 썼다.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뮤지컬 '왕과 나(The King and I)'는 태국(시암)왕과 영국 출신 미망인 가정교사 안나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1951년 브로드웨이에 초연됐을 때 러시아 출신 배우 율 브리너가 시암국왕 역으로 출연했고, 1956년 영화에서도 안나 역의 데보라 커와 공연,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1999년엔 조디 포스터와 홍콩 배우 주윤발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뮤지컬 '왕과 나'는 이후 브로드웨이와 런던 웨스트엔드에 리바이벌되면서 시암국왕 역은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까지 백인들이 도맡아왔다. 그러다가 1996년 브로드웨이 닐사이먼시어터 리바이벌에선 필리핀 혼혈 배우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영화 '라 밤바'의 주연), 티앙 왕비 역은 이태원(*명성왕후)이 캐스팅됐다. 그리고, 한국계 배우 랜달 덕 김(Randall Duk Kim)이 재상 역으로, 최주희가 후궁 텁팀 역으로 출연했다. '코리안 파워'를 보여준  이 프로덕션은 토니상 여우조연상(최주희)을 비롯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2000년 런던 팔라디움에서 리바이벌됐을 때는 중국계 혼혈 배우 제이슨 스콧 리(*영화 '정글북' 주연)가 시암국왕 역을 맡았으며, 이태원이 왕비 역으로 웨스트엔드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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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왕과 나'에서 왕비 역의 루시 앤 마일스(Photo: Paul Kolnik)는 2015년 아시안 여배우 사상 최초로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009년 런던 로열알버트홀 리바이벌 공연에서는 비로소 순수 아시안 배우가 시암국왕 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미 ABC-TV 드라마 '로스트(Lost)'로 인기 절정이었던 다니엘 대 김(Daniel Dae Kim, 김대현)이 무대에 올랐고, 왕비 역은 뉴욕시티오페라의 '나비 부인'에서 주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임지현(Jee Hyun Lim)이 합류하며 다시 '코리안 파워'를 보여주었다. 다니엘 대 김은 2009년 당시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왕과 나'는 아시안 남성을 위해 쓰여진 최고의 배역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2016년 뉴욕 브로드웨이로 통하는 링컨센터 비비안보몽시어터 리바이벌에서는 일본 배우 켄 와타나베가 국왕 역으로, 한국계인 루시 앤 마일스(Ruthie Ann Miles)가 왕비, 애슐리 박(Ashley Park)이 후궁 역으로 초연했다. 장기 공연에 들어가면서는 시암국왕 역의 바톤을 연극 배우 훈 리(Hoon Lee, 이동훈), 다니엘 대 김이 이어갔다. '왕과 나'는 토니상 9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루시 앤 마일스는 아시안 여배우 최초로 토니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루시 앤 마일스의 엄마 에스터 왕(Esther Wong)은 한국인으로 하와이 초등학교에서 음악교사를 지냈다. 한편, 애슐리 박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민 걸스(Mean Girls)'의 주역으로 캐스팅됐다.   

 

 

-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케이팝(K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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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오프 브로드웨이 A.R.T. 노바 시어터(99석)에서는 케이팝 창작 뮤지컬 'KPOP'이 공연됐다. 제이슨 리(Jason Lee)가 대본을 쓰고, 헬렌 박(Helen Park)과 맥스 버논(Max Vernon)이 공동으로 작사한 이 뮤지컬은 대형 연예기획사가 K-Pop 가수를 길러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을 담았다. 

 

출연은 정진우, 애슐리 박, 데보라 S. 크레이그, 강지호, 데보라 김, 수잔나 김, 박선혜, 존 리 등 한인을 비롯, 19명이 전원 아시안이었다. 'KPop'은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데스크상 최우수 뮤지컬 등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KPOP"은 브로드웨이 진출을 계획 중이다.

 

 

#한국의 오페라: 판소리 Pansori, Korean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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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창 모흥갑(牟興甲)의 판소리 가창도, 19세기,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세계 최초의 오페라는 1607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주 만투아의 듀칼궁전에서 초연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작곡의 '오르페오(L'Orfeo)'다.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몬테베르디는 칸초네에 아리아, 레치타티보(노래형 대사), 발레, 다성 합창, 막간 음악(기악곡)을 합성해 오페라의 토대를 잡았다. 'Opera'는 이탈리아어로 작품(work)이라는 뜻이다. 

 

최초의 뮤지컬은 영국의 존 게이(John Gay)가 작곡한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다. 1728년 런던의 링컨스인필드 시어터에서 초연된 '거지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과 귀족계급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대중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 존 게이는 헨델의 이탈리안 스타일 오페라에 도전장을 던졌으며, '거지 오페라'는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뉴욕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1750년 월스트릿 인근 나쏘 스트릿에 자리한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극과 '거지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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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베니스 포스터(1609, left)/ '거지의 오페라'(1728) 장면을 담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회화. Tate Britain 소장.

 

한국의 판소리는 1754년 조선 영조 때 유진한(柳振漢)이 쓴 '만화본춘향가(晩華本春香歌)'로 미루어볼 때 훨씬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유진한은 호남지방을 유람하며 직접 듣고 본 판소리 '춘향가'를 칠언장시(七言長詩)의 한시로 옮겼다.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놀이판이며, '소리'는 음악이다. 소리꾼인 광대가 부채를 들고 노래와 해설을 하며, 때때로 대사와 함께 연극적인 동작(발림/너름새)을 한다. 북을 치며 장단을 맞추는 고수(鼓手)는 중간에 '얼씨구!' '좋다!' 등 추임새를 한다. 관객도 고수처럼 '얼씨구' '잘한다' '그렇지' 등 추임새를 넣으며 공연에 참여한다. 판소리는 서양의 공연과 달리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는다. 판소리는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을 소리꾼 홀로 진행하는 모노 드라마다. 이처럼 판소리는 문학(이야기), 음악(노래와 연주), 연극(발림/너름새)성을 갖춘 우리 고유의 오페라다. 

 

판소리는 원래 농촌 장터 등을 무대로 서민 계층에서 인기를 얻다가 19세기 정조대부터는 양반들의 마당까지 진출하며 인기를 누렸다. 신재효(申在孝1812-1884)는 12마당의 판소리를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마당으로 통일, 판소리를 집대성하며 사설문학을 정립했다. 또한, 그는 최초의 여성 판소리 명창 진채선(陳彩仙)을 발굴했으며, 어린이들의 재능을 키웠다. 하지만, 조선 말부터 판소리는 서양음악에 밀려 인기가 시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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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명 관객을 돌파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판소리는 1964년 한국의 무형문화재(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제 5호로 지정됐지만, 사라지는 전통예술이었다.  판소리가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개봉된 후다.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배우 김명곤이 각색한 '서편제'는 한국 최초의 영화관 단성사에서 상영되며, 한국영화 최초로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사편제'의 흥행으로 판소리는 물론,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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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부산문화회관의 판소리 공연 Photo: Wikipedia/Steve46814 

 

10년 후 판소리는 링컨센터에 진출했다. 2003년 여름 링컨센터 페스티벌(Lincoln Center Festival)에선 판소리 다섯마당(PANSORI, Five Korean Song Narratives with Drums)과 김금화 무당의 대동굿(Daedong Gut)이 초청됐다. 흥보가(Heungboga), 수궁가(Sugungga), 심청가(Simcheongga), 적벽가(Jeokbyeokga), 춘향가(Chunhyangga)가 영어 자막과 함께 공연됐다. 

 

당시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제임스 R. 오에스트리치(James R. Oestreich)는 '흥보가'에 대해 "음악은 말로 시작해 성가같은 레치타티보(*오페라에서 낭독하듯 노래하는 부분)으로 떠오르다가 종종 본격적인 노래로 들어간다. 그 형식은 최면적이며, 매력적이면서도 거칠게 깎인 음색과 빙하속도의 신진대사에 귀를 맞추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두려워 마시라, 시간은 충분하다"라고 평했다. 그해 판소리는 유네스코(UNESCO)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Masterpiece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으로 선정됐다. 

 

판소리와 힙합(Hip-Hop) 음악은 닮은 꼴이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하며, 힙합은 래퍼가 DJ의 비트에 맞추어 랩(rap)을 한다. 2013년 서울 홍익대에서는 제 1회 레드불 랩판소리(Redbull RapPansori) 배틀이 열려 소리꾼과 래퍼들이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동요와 항일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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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에 방정환의 창작 동요집(왼쪽부터), 윤석중의 동요집, 항일음악 330곡.

 

한민족은 시련의 역사 속에서 노래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일제 강점기에 어른들은 '사의 찬미'처럼 나라 잃은 설움과 한을 노래했다. 이즈음 소파 방정환과 윤석중은 민족의 새싹,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와 노래집을 발간한다. 

 

소파 방정환(1899-1931)은 1923년 아동문학 연구단체 '색동회'를 조직하고, 잡지 '어린이'를 비롯, '신여성' '학생' 등을 통해 어린이와 여성들을 교육했다. 방정환은 1922년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한 인물이기도 하다.(*세계 최초로 알려진 터키는 1929년 어린이 날을 공표했다.)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수많은 필명(잔물결, 물망초, 북극성, 길동무 등)을 썼던 방정환은 과로로 인해 33세에 요절했다. 1932년 아동문학가 윤석중(1911-2003)은 '낮에 나온 반달' '나란히' '새나라의 어린이' 등 35곡을 수록한 창작 동요집을 펴냈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항일 노래를 불렀다. 2017년 노동은 전 중앙대 교수가 발행한 '항일음악 330곡집'(민족문제연구소)은 당시의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등을 수록한 책이다. 창작곡부터 '광복군 아리랑' 등 민요을 차용한 곡,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등 외국의 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곡도 있다. 도산 안창호는 '거국행' '학도가' '한반도' '혈성대' 등 항일가를 작사했으며, 독립운동가 이범석은 '망향곡' 등을 작곡했다.  

 

 

#TV 노래 경연 프로그램: 'Korean Idols' on TV

 

영국의 TV 오디션 프로그램 '팝 아이돌(Pop Idol, 2001년)',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 2002년)'이 나오기 훨씬 전인 1964년 한국 TV에선 어린이들의 동요 경연대회 '누가 누가 잘 하나'가 시작됐다. 이후 대학생들은 '대학 가요제' '강변 가요제'와 '해변 가요제', 어른들은 '전국 노래 자랑', 주부들은 '주부 가요 열창' 등 TV 프로그램에서 노래실력을 발휘해왔다. 

 

이처럼 일찌기 한국 TV에선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대회가 계층별로 방영됐으며, 지금도 대도시 백화점이나 마트, 작은 도시의 향토 축제에서도 노래 경연 대회가 약방의 감초 격으로 열린다. '전 국민의 가수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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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누가누가 잘하나'

 

한국의 TV 노래 경연대회는 어린이 동요 콘테스트로 시작했다. 1964년 KBS-TV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누가누가 잘하나'를 시작했다. 그리고, 56년 후인 지금도 계속 방영되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동요를 보급하고 활성화하며, 추억의 동요 명곡을 보급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동요 뿐 아니라 특별 출연자들을 통해 클래식, 국악, 뮤지컬,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도 소개해왔다.  

 

프로그램 타이틀은 '모이자 노래하자' '전국 어린이 동요대회' '노래는 내친구' '열려라 동요 세상'으로 바뀌었다가 2005년부터 다시 오리지널 타이틀로 돌아갔다. '누가누가 잘하나'는 매월 방송국에서 예심을 연다. 선곡은 '교과서에 실린 곳'과 '동요 명곡'을 권장한다. 

 

한편, MBC-TV는 1983년 어린이날 '창작동요제'를 시작했으며, 창작 동요제로 '네잎클로버' '아빠! 힘내세요' '아기 염소' 등이 널리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은 2010년까지 계속됐으며, 성악가로 진출한 어린이들도 나왔다. 동요를 부르며 기량을 닦은 한국의 어린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노래를 부를 준비가 된 어른으로 성장했다.  

 

 

-방방곡곡, 남녀노소, '전국 노래자랑'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새로운 희망 속에 열심히 살아가시는 해외 우리 동포 여러분들, 해외 근로인 여러분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원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오늘도 푸른 대해를 가르는 외양 선원 여러분, 원양 선원 여러분, 모든 항공인 여러분,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더불어 오늘 이곳을 가득 메워주신 시민 여러분, 이 고장을 방문하신 관광객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전국~ 노래자랑 사회담당 일요일의 남자 송해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송해씨가 사회를 맡고 있는 KBS-TV의 '전국노래자랑'은 48년간 장수한 국민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1972년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으로 시작해 1980년 '전국노래자랑'으로 오늘까지 이어져 일요일 오후의 오락을 제공하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방방곡곡을 누비며 서민들의 노래와 장기를 선보이는 찾아가는 콘서트다. 서민 누구라도 참가할 수 있는 오픈 스테이지(무대)를 제공하며 소외된 지역 곳곳의 소박한 정서와 신명나는 노래를 통해 온 국민은 어두운 현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땡! 딩동댕!"으로 평가하며 스릴감까지 제공한 오리지널 '코리안 아이돌(Korean Idol)'은 이처럼 음주가무의 한민족으로부터 나왔다.

 

해외 공연, 세계대회, 외국인 특집도 방영됐다. 92세의 현역 MC 송해씨는 '국민 오빠'가 됐다. 2013년엔 이종필 감독의 동명 영화가 제작됐으며, 사회자 송해씨가 특별 출연했다.

 

 

-금지곡 이후, 대학생 대상 창작 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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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광출판사에서 발간한 대중가요집이 한세대를 풍미했다. 1978년((왼쪽), 1983년 잡지.

 

7080 세대는 동네 책방에 배치됐던 '대중가요' '인기가요' '히트가요' 등 대중가요 잡지들을 기억할 것이다. 대중가요를 보급했던 세광음악출판사가 중추 역할을 했다. 고 박신준 회장은 1917년 평남 중화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월남,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피난 시절인 1953년 세광음악출판사를 설립한다. 1966년부터 '가요생활' 출간을 시작, 1970년대 통기타 붐 때는 기타 코드도 함께 소개하는'세광애창곡집' 등을 출간했다. '흘러간 노래' '포켓 민요' 등 음악잡지들은 노래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필수 잡지가 됐다. 

 

 

하지만, 1970년대는 장발, 미니스커트,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청년시대가 풍미했다. 하지만, 독재정권은 퇴폐문화로 간주하고 긴급조치 '공연활동정화정책'으로 200여곡을 금지시켰다. 대마초 파동까지 터지면서 이장희, 신중현, 김추자, 송창식, 김민기, 한대수, 이정선, 조영남, 이미자, 배호, 방주연 등 당대 대표 가수들이 노래를 잃었고 대중가요계는 암흑기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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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 금지곡의 1970년대 시작된  제 1회 대학가요제(1977, 왼쪽)와 제 1회 강변가요제(1978) 수상곡 앨범.

 

그즈음 탄생한 것이 대학생 창작 가요제다. 1977년 MBC-TV가 시작한 대학 가요제는 창작열을 부추기며 기성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제 1회 대상을 수상한 샌드 페블스의 '나 어떻게', 이명우의 '가시리'(은상), 젊은 연인들(민경식, 정연택, 민병호-동상), 제 2회 대상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노사연의 '돌고 돌아가는 길'(금상), 그리고 심민경(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입상) 등이 크게 히트했다. 배철수와 활주로의 '탈춤', 젊은 태양(박광주, 최혜경), 내가(임철우, 김학래) 등에 이어 조하문, 우순실, 조갑경, 유열, 이무송, 신해철 등을 배출한 신인가수의 등용문이자 히트곡 메이커가 됐다. 대학가요제는 2012년 폐지됐다가 2019년 부활됐다. 

 

1979년 MBC 라디오가 시작한 강변가요제는 매년 여름 청평, 남이섬, 춘천 등지에서 열린 대학생 가요 경연대회다. 주현미(1981), 이선희(1984), 이상은(1988) 등 수퍼스타를 배출했으며, 훗날 영화배우로 유명해질 한석교가 듀엣 '덧마루'로 참가해 장려상(1984 )을 받았었다. 제 1회 수상자는 홍삼 트리오의 '기도'(금상), 해오라기의 '숨바꼭질'(은상), 건아들의 '가슴을 펴고'(동상)이었으며, 2002년 대학가요제와 통합됐다.

 

해변가요제는 MBC 대학가요제에 대항해 1978년 TBC가 시작했다. 제 1회에서 징검다리(여름, 최우수상)의 왕영은  활주로(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인기상)의 배철수, 블랙 테트라(구름과 나, 우수상)의 구창모, 휘버스(그대로 그렇게, 인기상), 벗님들의 이치현 등 스타들이 탄생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TBC가 KBS로 흡수되어 '국풍81 젊은이의 가요제'가 열려 '바람이려오'의 이용(잊혀진 계절)이 스타덤에 올랐다. 

 

 

-주부를 위한, 주부 가요 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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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ABC-TV에선 중년 여성들의 일탈을 다룬 드라마 시리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주부들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아침 연속극은 불륜, 배신, 복수, 고부갈등,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이 등장하는 통속극이 대부분이다. 주부들은 연속극에 빠지기도 하지만, 노래를 한가닥 할 줄 아는 주부들이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MBC-TV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 경연대회 '주부가요열창'을 시작했다. 주부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열광적인 인기를 끌던 이 프로그램은 1993년 노래방이 도래하며 포맷이 바뀌어 토크쇼와 오락을 겸비한 '쇼 주부 환상 특급'으로 대체됐다. 그러다가  2012년엔 설 특집으로 잠깐 부활됐다. 

 

'주부가요열창은'으로 주부들의 '노래 부르기' 붐이 일어나 겨울철 농가까지 주부가요교실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그리고, 시, 군, 읍까지 지방 곳곳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19년엔 MBN에서 강호동 사회로 주부 대상 노래 서바이벌 쇼 '당신이 바로 보이스퀸'이 시작됐다.   

 

 

-스타 등용문, 오디션 프로그램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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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케이블 방송 엠넷(Mnet)에서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과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를 모방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생방송 중 인터넷 투표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며 제작붐을 이루게 된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대학 가요제'처럼 창작가요가 아니라 기성곡을 얼마나 빼어나게 부르는가가 관건이었다. 

 

KBS에선 'TOP 밴드'(KBS),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KBS), '글로벌 슈퍼 아이돌'(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KBS), MBC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MBC), '나는 가수다'(MBC) 등, SBS는 'K팝 스타'(SBS), 그리고 엠넷은'보이스 코리아'(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엠넷), 대동경소녀(엠넷), 마이돌(엠넷), MIX & MATCH(엠넷), 쇼 미더 머니(엠넷) 등 서바이벌 노래 경연대회가 우후죽순으로 제작됐다. 

 

 

#영화 속 노래방 Karaoke Singers in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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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 유오성(왼쪽)/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윤정희의 노래방 장면.

 

노래방(가라오케/カラオケ/Karaoke/empty orchestra)은 1971년 일본 고베의 뮤지션 이노우에 다이스케(Inoue Daiske)가 발명한 반주음악 기계다. 1980년대 비디오 가라오케 기계가 나오면서 뮤직 비디오 위에 가사를 띄울 수 있게 되면서 일본 나이트클럽과 라운지 등지의 오락시설로 자리 잡았다. 이어 1990년대에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와 미국까지 들어갔다. 한국에선 부산에 처음 노래방이 등장한 후 전국으로 퍼졌다. 

 

술자리의 종착역은 노래방이다. '가라오케(Karaoke)는 일본에서 처음 나왔을지는 몰라도, 지금 미국에 퍼진 노래방 주인들은 대부분 한인들이라고 한다. 뉴욕 한인타운에는 가라오케 바(Karaoke Bar)가 상당수다. 구글에서 "Karaoke NYC"를 검색하면 맨해튼 한인타운/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인근에 빽빽하게 노래방이 운집해 있다. 뉴욕의 문화 주간지 '타임아웃(Time Out)'은 "생일 파티, 퇴근 후, 외로운 밤-모두 공통점이라면, 가라오케로 흥겨워질 수 있다"면서 브루클린의 노래방 한식당 인사(Insa), 맨해튼 한인타운의 마루(Maru)와 32 Karaoke 등을 소개했다. 식당 웹사이트 www.Eater.com에서는 코러스(Chorus), 가고파(Gagopa), 마루(Maru) 등 32스트릿 한인타운의 가라오케 바를 추천했다.   

 

한국영화 속에서도 노래방 장면이 종종 등장하며 뮤지컬의 노래 장면처럼 캐릭터의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에서 조폭 두목인 준석(유오성 분)은 유학가는 친구 동수(장동건 분)를 위해 프랭크 시나트라의 '(I did it) My Way'를 부른 후 그를 살해하게 된다.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2005)에서 다방 레지 은하(전도연 분)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시골 청년 석중(황정민 분) 앞에서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히트곡 "She Bop"를 번안한 왁스(Wax)의 '오빠, 나만 바라봐'를 유혹적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창동 감독의 '시'(2010)에서 미자(윤정희 분)는 노래방에서 기범의 아버지(안내상 분)을 기다리다가 마이크를 들고 최유나의 '와인 글라스'를 처연하게 부른다. 그가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른채.. 

 

 

#전국민의 가수화, 시위에선 '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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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노래한 양희은.

 

한인들이 중국인, 일본인들보다 더 노래를 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국가 때부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겨온 한민족은 술상에선 젓가락 장단을 맞추고,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하는 흥의 민족이었다. 노래방이 생기기 전까지는 술자리에서 종종 뽕짝 노래판도 벌어지곤 했다. 

 

뿐만 아니다. 한인들은 시위에서도 노래를 즐긴다. 시위대는 늘 떼창을 하며, 종종 게스트 가수가 노래로 사기를 돋구기도 한다. 작가와의 대담 행사는 음악회를 곁들인 책과 노래의 만남, '북 콘서트(Book Concert)'로 진행된다. 2018년 록그룹 퀸(Queen)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apsody)'가 개봉됐을 때 한국에선 싱어롱(떼창) 상영회가 열려 매진 행렬을 이루었다. 한국에서 싱어롱 상영회가 나온 것은 2008년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노래로 꾸민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 Mamma Mia!)부터이며, 2014년 주제가 'Let it go'로 유명한 디즈니 만화영화 '겨울 왕국(Frozen)'도 싱어롱 버전이 상영됐다.  

 

한국인들은 노래를 즐기는 민족, 아니 노래를 잘 하는 민족임이 틀림 없다. 오페라와 뮤지컬계 뿐 아니라 싸이(Psy)와 방탄소년단(BTS)을 비롯 K-Pop 군단이 글로벌한 성공을 거둔 것도 우리 민족의 DNA엔 노래와 무용(가무)의 뜨거운 피가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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