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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32) EAT, DRINK, SING & DANCE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3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기는 민족 <1>먹고(음/飮/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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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1745-1806), 새참,  <단원풍속도화첩>,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는 '한(恨)' 많은 민족이었기에 그 한을 '흥(興)'으로 신명나게 풀어야 했을까? 

사실 한민족은 고대국가 때부터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Eat, Drink, Sing and Dance), 즉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겨온 민족이다. 우리는 음주가무의 DNA를 갖고 태어난듯 하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 *중국 위-촉-오의 세 나라가 정립한 삼국시대(220-280) 때 서진 사람 진수(陳壽)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 중 '동이(東夷)'-한국에 관한 열전)의 부여 편에서는 "정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는 국중대회로 날마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迎鼓)라 하였다"고 나온다. 고구려 편에는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의 촌락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서로 노래하며 유희를 즐긴다"고 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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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소재 5세기 후반 고구려 '무용총(춤무덤)'의 벽화 '춤추는 사람들'

 

마한 편에도 "해마다 5월이면 씨뿌리기를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떼를 지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춘다"고, 변한 편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술마시기를 좋아한다"고 기록했다. 

 

 

<1>먹고(음/飮/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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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에 지은 쌀밥. Photo: Wikipedia

 

"民惟邦本, 食爲民天.(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 세종대왕, '세종실록'(1444)-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 "밥 먹었니"가 인사였다. 걱정할 때는 "밥은 먹고 사니?", 고마울 때는 "밥 한끼 살께", 데이트 신청할 땐 "밥 한번 드실래요"라고 돌려 말한다. '찬밥'은 푸대접받는 신세, '눈치밥'은 마음이 편치못한 상태, '식은 죽 먹기'는 하기 쉬운 일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솥밥'은 가족이나 직장, 조직 등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나이를 먹고', '마음을 먹고', '겁을 먹고', '애를 먹고', '돈 떼먹고', '욕도 먹는다'고 표현한다. 

 

쌀로 지은 밥이 주식이었기에 쌀과 밥, 그리고 떡에 관한 속담도 많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젯밥에만 맘이 있다" "남의 밥에 든 콩이 더 굵어 보인다" "거지도 부지런하면, 더운 밥을 얻어 먹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떡 줄 사람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 등 해학이 넘친다.  

 

그뿐인가? 밥 이외에 음식을 상징화한 속담은 부지기수다. "목구멍이 포도청" '꿩 먹고, 알 먹고" "꿩 구워 먹은 소식" "꿀도 약이라면 쓰다" "생선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기 기다린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놓기" "뒤로 호박씨 깐다" "미친년 달래 캐듯 한다" "뚝배기보다 장맛"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 "사후 청심환" 그리고, 우리는 "금강산도 식후경"인 민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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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한인타운 미스코리아 BBQ 레스토랑의 콩나물국밥 Photo: MissKorea BBQ Restaurant, NYC

 

밥에는 국이 따라온다. 한국인처럼 국물을 좋아하는 민족도 있을까? 조리법에 따라 국, 탕, 찌개, 전골까지 다양하며, 요리도 미역국, 떡국, 무국, 된장국, 북어국, 김치국, 콩나물국, 해장국, 오이냉국, 콩국... 갈비탕, 육개장, 삼계탕, 매운탕, 대구탕, 해물탕, 감자탕, 추어탕, 보신탕...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비지찌개, 청국장찌개, 부대찌개, 고추장찌개... 그리고 나누어 먹는 해물전골, 낙지전골, 만두전골, 두부전골, 버섯전골, 곱창전골, 그리고 물회까지 부지기수다. 

 

고기가 남아도는 미국은 스테이크의 나라다. 하지만, 빈곤했던 한국에선 고기 한점이라도 식구와 나누어 먹어야 했으니 국을 끓이는 것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만족을 시켜주는 조리법일 것이다. 또한, 추운 겨울에 몸을 따스하게 해주는 음식은 국이며, 찬밥도 따끈한 국에 말면 그만이다. 국은 헛헛한 마음까지 위로해주는 음식이다. 그래서 "국물도 없다"는 말은 무시무시한 협박어다. 이근삼의 희곡 '국물 있사옵니다'는 출세를 꿈꾸는 신입사원이 '국물의 맛'을 보며 부패해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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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K-타운 미스코리아 BBQ 레스토랑의 BBQ 식사 Photo: MissKorea BBQ Restaurant, NYC

 

밥과 국, 반찬이 올려지는 한식 밥상은 건식과 습식, 음과 양, 동물성과 식물성의 하모니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밥상이다. 서양의 코스 요리에 비해 반찬이 펼쳐지는 한상 차림은 먹는 이에게 선택의 자유를 준다. 한국의 주부들은 가족이 반찬투정하지 않도록 매끼에 신경을 써야 하며, 3첩-5첩 반상의 집밥을 뚝딱 만들어내는 수퍼우먼들이다.

 

꽤 오래 전부터 뉴욕의 고급 한식당들이 서양식의 코스에 맞추어 메뉴를 정비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타파스(Tapas)처럼 '작은 요리'인 반찬이 무료로 제공되는 한식의 푸짐한 상차림에는 우리 민족의 정(情)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는 밥을 배 터지게 먹고, 손님을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대접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은 일찌기 한식 밥상을 예찬했다. 

 

"각 소재의 특징을 살려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일본 음식문화에 비해 우리 요리상은 모든 반찬이 한꺼번에 나오는 반대의 방식이다. 먹는 사람의 기호 입맛에 따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 마치 금세기말의 컴퓨터 전문화를 예견한 무작위접근(Random Access) 방식이다. 미래의 전자회로시대·글로벌한 국제화시대에 적응하기 알맞은 수법과 철학이 담겨져있는 우리 음식법의 개성적 존재가치에 대해 저절로 찬양이 나온다."  

-백남준, 비빔밥의 정신과 대전엑스포93- 

 

"금강산(金剛山)도 식후경(食後景)"이기에 한인 여행자들의 해프닝은 종종 뉴스감이 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걷는 한인들이 알베르게(숙소)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에 김치를 먹으며 냄새를 피우는 것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인들에겐 먹는 것이 중요하고, 음식은 예술의 중요한 소재였다. 한류(Korean Wave)를 일으킨 드라마, 영화, 뮤지컬,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영화와 드라마까지 제작된 만화가 음식 이야기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1 '대장금(大長今)'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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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수출된 드라마 '대장금'(왼쪽)과 영문으로 출간된 '대장금' 요리책 'Jewels of the Palace'.  

 

2003년 MBC-TV의 역사극 '대장금(大長今/Jewel in the Palace)'은 조선시대 수라상을 차렸던 궁녀 서장금이 각종 음모와 싸우며 의녀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대장금'은 한국 내에 궁중요리 붐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로 수출되며 한류를 가속화 시켰다. 북한, 일본, 중국, 태국, 스리랑카 등 아시아를 넘어서 이란, 터키, 루마니아, 짐바브웨까지 방영되었으며, 배우 이영애를 글로벌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전의 장희빈류 요부와는 달리 궁녀의 성공 스토리는 단지 한국 드라마(K-Drama)뿐만 아니라 궁중음식이라는 고급 한식문화(K-Food)까지 홍보한 콘텐츠였다. 

 

'대장금'에 등장하는 타락죽, 연근응이, 강란, 홍시죽순채, 맥적, 열구자탕, 삼색단자, 화양적, 석류만두국, 구절판 등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이 촉발됐으며, 조리법 70가지와 조선시대의 철학을 모은 요리책 '대장금의 궁중상차림(Jewels of the Palace: Royal Recipes from Old Korea, 2017)'이 영문으로도 출간됐다. 

 

 

#2 식객(食客): 만화에서 영화에서 드라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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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신문만화 '식객'(왼쪽부터), 전윤수 감독의 영화 '식객', SBS-TV 드라마 '식객', 김영사 만화 전집(27권) '식객'.

 

베스트셀러 만화가 허영만의 만화 '식객'은 2002년부터 동아일보 연재로 시작되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고, 만화 전집 출판까지 된 명작이다. 한민족이 얼마나 음식에 열정과 긍지가 담겨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예다. 

 

만화 '식객'은 한식의 맛과 멋, 맛깔스러운 스토리로 135개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소재만 해도 쌀부터 밥, 김치, 비빔밥, 소금, 된장, 소갈비, 고추장 굴비, 설렁탕, 삼계탕, 육개장, 부대찌개, 아롱사태, 청국장, 매생이, 콩국수, 족발, 주꾸미, 과메기, 갓김치, 홍어, 광어, 고등어, 민어, 아귀, 은어, 갯장어, 정어리, 대구, 물회, 피라미, 부침개, 두부, 어리굴젓, 우거지국밥, 깁밥, 수제비, 건빵, 타락죽, 메밀묵, 황포묵, 떡복이, 식혜, 닭강정, 뼈다귀해장국, 곤드레밥, 진달래화전, 가자미 식해, 잔치국수, 열무김치국수, 막국수, 팥칼국수, 짜장면, 올챙이국수, 바지락칼국수,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  강된장, 오이소박이, 도다리 쑥꾹, 올갱이국, 보리밥, 돼지껍데기, 김치찜, 동래파전, 한과, 오미자, 송편, 떡국, 호떡, 이바지 음식, 탁주, 청주, 소주 등 풍부한 우리의 먹거리 이야기를 담았다. 

 

2007년 전윤수 감독'식객'을 영화화했으며, 이듬해엔 SBS-TV에서 24부작의 동명 타이틀 드라마(최종수 PD)로 제작되며 열풍을 이어갔다. 2019년 김영사에서는 '식객' 27권짜리 전집이 출간됐다. 그리고, 뉴욕에도 식객이라는 이름의 빈티지 식당이 오픈했다. 허영만씨는 2015년엔 중앙일보에 '커피 한잔 할까요?'를 연재한 바 있다. 

 

 

#3 비언어 뮤지컬 '난타(COO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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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장기 공연된 비언어 뮤지컬 '난타(Cookin')'은 주방이 무대다.

 

2003년 타임스퀘어 뉴빅토리 시어터(New Victory Theater, 499석)에서 뉴욕 초연된 비언어 뮤지컬 'Cookin(난타/亂打)'의 무대는 주방이다. 지배인이 조카를 데려와 요리사들에게 저녁 6시까지 결혼 피로연 음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난타'를 기획한 송승환씨는 미국의 비언어 공연 '블루맨 그룹(Blue Man Group)과 '스톰프(STOMP)'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기에 사물놀이, 마당놀이, 마술, 곡예, 코미디, 판토마임, 관객 참여까지 혼합했다. 주방 요리사들이 만두 빚기 대회, 불고기 만들기, 쿵후 화이팅 등 에피소드에서 식칼, 프라이팬, 냄비, 접시, 주걱 등으로 리드미컬한 소리를 낸다. 또한, 드럼스틱을 양손에 들고 고추장, 간장, Salt, Sugar, Kimchi 독을 두드리는 신명나는 한국의 사물놀이 리듬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미국산 '블루맨 그룹'은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이 모티프이며, 영국산 '스톰프'에는 빗자루, 쓰레기통, 지포 라이터, 비닐봉지, 모래 등 일상용품이 등장한다. 반면, 한국산 '난타'는 음식과 주방, 그리고 결혼피로연이 컨셉이었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1997년 초연된 '난타'는 2003년 3월 오프브로드웨이 뉴빅토리아시어터(*한국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이 극장은 499석으로 오프-브로드웨이로 분류된다)에 진출한 후 이듬해 3월부터 2005년 8월까지 그리니치빌리지의 미네타레인시어터(Minetta Lane Theatre, 391석,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롱런했다. 2015년 관람객수 1천만명을 돌파한 '난타'는 지금도 서울과 제주에서 공연되고 있다.    

 

 

#4 영화 '기생충' 속의 음식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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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Parasite)'에는 먹거리가 계층을 상징하며, 캐릭터와 스토리를 강화하는 코드가 된다.

 

"아, 이거 되게 상징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에서 기우는 친구가 선물로 준 수석을 들고 이렇게 말한다. '기생충'은 먹거리 상징도 풍부한 영화다. 

 

반지하방에 사는 김씨네는 음식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치킨집과 대만 카스테라 체인 사업을 하다 실패한 후 온가족이 배달 피자리아의 박스 접는 부업을 한다. 김씨(송강호 분)는 곰팡이 핀 식빵을 뜯어먹는다. 하지만, 기우와 기정이 박사장네 취업한 후에는 기사식당 뷔페에서 부모에게 한턱을 낸다. 

 

가정부 문광은 매실청을 접대하는 척하며 기정의 수업을 지켜보고, 기정은 문광의 복숭아 알레르기를 이용한다. 박사장은 김씨네가 깔려 있는 소파 위에서 부인 연교에게 김씨에게서 '무말랭이 말리는' 냄새가 난다고 투덜거린다. 김씨의 분노가 쌓이게 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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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서 음식 장면.

 

연교는 폭우 속에 캠핑을 취소하고 돌아오면서 가정부 충숙에게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에 한우 채끝살을 넣으라고 요청한다. 라면은 부르조아 가정에서 한우 고명이 올라가는 고급요리로 변신한다. 짜파구리는 영어로 라멘과 우동을 합친 "ramdong(ramen+udong)"으로 번역됐다. 또한, 지하 방공호의 근세는 처음 등장에서 부인 문광이 주는 젖병에 담긴 미음과 바나나를 먹는다. 두 음식은 식욕과 성욕을 상징하며 근세는 구순기(口脣期)에 고착된 어른의 모습같다. 후에 근세는 김씨네와 몸싸움을 벌이고 나와서는 피와 땀으로 범벅된 채 매실청을 병째 들이킨다. 

 

'기생충'에서 김씨네는 가난하지만, 가족끼리 유대감이 강하다. 봉 감독은 가족이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장면을 통해 한 김씨네가 결속된 한 식구(食口)임을 보여준다. 반면, 박사장네 가족이 모두 모여 밥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박사장네는 큰 저택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원자화한 가족이다. '봉테일'로 불리우는 봉준호 감독의 음식 디테일과 은유는 '기생충'의 스토리를 깊이있게 전개시키는 기능을 한다. 

<계속>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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