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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18.05.21 17:29

(343) 박숙희: 맨해튼, 렌트, 그녀들의 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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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25) 맨해튼의 보헤미언 예술가들

맨해튼, 렌트, 그녀들의 생존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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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최저 렌트 $28 아파트에서 살다간 배우 패트리샤 오그래디(왼쪽부터), 렌트안정 아파트에서 쫓겨난 배우 페이 더너웨이, 주인 허락없이 에어비앤비 영업하다 발각되어 아파트를 잃은 화가 아일린 히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La Bohème, 1896)'은 파리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라보엠' 초연 100년 후 이 오페라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렌트(Rent)'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1996년 조나단 라슨이 예술가촌을 뉴욕으로 옮기면서 원작 '라보엠'에서 미미의 결핵은 '렌트'에서 에이즈로 바뀐다.


뉴요커들에겐 렌트(월세)가 생존을 위협하는 엥겔지수다. 뉴요커들의 파티에선 렌트 이야기가 속속 등장한다. "우리 옆집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내 친구가 이사 들어가겠다고 점찍어 놓았지, 0순위야." "랜드로드(집주인)이 렌트컨트롤 아파트에 사는 노인에게 3만불을 주면서 쫓아냈대. 그 노인은 그 길로 라스베가스로 갔다네." "집주인 딸이 쓴다며 세입자를 내보냈고, 1년 후 딸은 이사 나갔어. 그리고 집주인은 리노베이션을 싹 해서 2500불로 새로 세를 내놓았다고 하더라구."...


푸치니의 '라보엠'에는 고달픈 예술가로 시인(로돌포), 화가(마르첼로), 작곡가(쇼나르), 철학자(콜리네)가 등장했다. 그러나, 비단 가난한 예술가들만 렌트에 벌벌 떠는 것은 아니다. 부자들도, 유명인사들도 마찬가지. 


배우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는 2011년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렌트안정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더너웨이는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당시 1베드룸 아파트를 1048달러의 저렴한 렌트 아파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집주인이 더너웨이를 고소했고, 판사는 퇴출 판결을 내렸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 Clyde, 1967)'과 '차이나타운(Chinatown)'의 유명 배우로 연 4천만 달러를 버는 것으로 알려진 더너웨이도 맨해튼의 렌트안정 아파트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 페이 더너웨이 뿐 아니다. 인기를 누렸던 뉴욕 전시장 에드 카치는 시장 관사 그라시 맨션을 두고, 그리니치 빌리지의 렌트 300불짜리 렌트 콘트롤 아파트를 움켜쥐었다. 배우 미아 패로우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11베드룸 렌트안정 아파트(월 2900달러)를 유지했으며, 가수 신디 로퍼는 1995년 3750달러 렌트를 989달러에 깎을 수 있었다. 


억만장자들의 럭셔리 콘도 개발로 흔들거리고 있는 2018년 뉴욕, 예술가 지망생들이 찾아오는 '문화의 메카'에서 벌어지는 두 여인과 렌트 이야기. 최근 뉴욕포스트와 CNN 등 언론에 보도된 두 가지 이야기, 실화를 소개한다.



# 해피 엔딩 뉴요커: 배우 패트리샤 오그래디 스토리 

'도시의 전설'이 된 그리니치빌리지 렌트 28불 아파트


cheap-rent-village-old-lady-nyc-13.jpg Patricia O’Grady


뉴욕 포스트는 지난 5월 9일 "세상을 떠난 여배우 어떻게 뉴욕 아파트 렌트를 28달러만 내고 살았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고다미스트는 이 노인이 사망하자 랜드로드(집주인)이 수리해서 월 5천 달러로 렌트를 올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어떻게 뉴욕 최하의 월세를 내고 살 수 있었나?


1955년 배우 지망생 패트리샤 오그래디(Patricia O’Grady, 84)씨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건물(498 Sixth Avenue)의 주거용으로는 부실한 공간에 룸메이트 3명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당시 복도를 청소해준다는 조건으로 렌트는 단돈 16달러였다. 오그래디씨와 여자 친구들은 싱크대를 설치하고, 조금씩 개조해 나가면서 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우였던 룸메이트들은 하나씩 이사 나갔고, 오그래디씨만 남았다. 


오그래디 여사는 올 3월 집앞에서 자동차에 치어 사망했다. 향년 84세. 사망 당시 그녀가 내고 있던 렌트는 28달러 43센트. 이 아파트 빌딩은 옆 건물 아래층에 인기있는 머레이즈 베이글(Murray’s Bagels)을 운영하는 아담 포머란츠씨가 2002년 매입했다. 당시 포머란츠씨는 변호사와 상의해서 렌트를 26달러 45센트로 '대폭' 인상했었다. 하지만, 오그래디 여사는 늘 렌트 체크를 미리미리 냈다. 우편으로 발송할 필요없이 아래층 베이글 숍으로 갖다 주면 되니까. 그녀의 아파트 빌딩 1층엔 일본 마켓 다이노부, 2층엔 중국 발맛사지 라운지가 세들어 있다. 


이 건물이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렌트가 가장 싼 빌딩 중 하나가 된 이유는 뉴욕시 최후로 난방과 온수가 없는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아파트엔 욕조도 샤워도 없었다. 그래도 가스등과 벽난로는 갖추고 있었다. 건물주가 난방 설비를 해주려고 시도했지만, 골다공증이 있던 오그래디 여사는 "당신이 지금 하려는 건 날 고문하는 거예요. 그대로 내버려두세요. 난 아무 것도 원치않아요."라고 대항했다. 이후 집주인은 오그래디 여사를 설득해서 화장실 변기 체인과 주철 난로는 설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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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오그래디씨가 63년동안 살았던 그리니치빌리지 아파트 침실. 렌트는 28불이었다. Photo: CNN


노년에도 오그래디 여사는 14스트릿 YMCA에서 수영하고, 샤워하고, 뉴욕타임스를 읽으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친구들은 전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사는 여동생 로버타가 뉴욕대에서 석사학위 과정에 있을 때 언니의 아파트에 기거했었다. 로버타는 2000년대 초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언니를 방문했지만, 목욕을 제대로 하기위해 인근 라츠몬트 호텔(*현 폐업)에서 묵었다. 

 

이전 건물주는 오그래디 여사 등 렌트 콘트롤로 사는 세입자들을 내쫓기 위해 불도 질렀고, 별짓을 다했다. 세월이 흘러, 세입자들이 모두 떠났지만, 오그래디 여사는 63년 한 자리를 지켰다. 그녀 외에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유일한 입주자는 NBC-TV의 프로듀서 스티븐 플리슬러(33)씨. "내가 퇴근해서 오후 7-8시 경이나 오전 1-2시 경 한밤중에도 그녀는 스툽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었지요. 그리고, 15-20분 정도 저에게 역사와 요즘 사안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고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오그래디 여사는 골수 뉴요커들이 그러하듯 뉴욕타임스를 첫장부터 끝까지 읽는듯 했다. 

 

오그래디 여사는 등이 굽었지만, 일주일에 두번은 집에서 두 블럭 떨어진 조프리 발레 학교에서 지난 30여년간 무용강습을 받아왔다. 1980년대에는 배우 친구들과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무용 리허설을 하기도 했다. 그때 아파트엔 고양이와 장작 때는 난로, 의상 더미가 있었다. 그녀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와  '다음 정거장은 그리니치 빌리지(Next Stop, Greenwich Village, 1976)'에도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HB 희곡작가재단(HB Playwrights Foundation)의 연극 20여편에도 등장했다. 마지막 출연작은 '도라 프로젝트(The Dora Project)'에서 피카소 부인 도라 마르 역이었다. 16년간 함께 했던 연극 연출가 데이빗 풀포드(David Fulford)씨는 2009년 별세했다.  


그녀의 사망으로 건물주 포머란츠씨는 렌트를 인상할 기회를 누리게 됐다. 보수공사 후 오그래디 여사의 2베드룸 아파트를 렌트 5000달러 선에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현 맨해튼의 시장가 렌트다.



# 뉴요커의 비극: 화가 아일린 히키 스토리

불법 airbnb 운영하다 아파트 뺏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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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Uber)만큼이나 인기있는 숙박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는 뉴요커들에게 달콤한 유혹이다. 그녀도 유혹당했고, 아파트를 잃었다. 지난 5월 10일 뉴욕포스트는 "유명 화가 트라이베카 로프트 Airbnb 렌트 적발, 18만5000달러 벌금형과 방빼!"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표지에 실었다.    


왕년에 구겐하임 뮤지엄의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Eat Pray Love'(2010)에도 작품이 등장한 화가 아일린 히키(Eileen Hickey, 72)씨는 맨해튼 부유촌인 트라이베카의 로프트 아파트(460 Greenwich St.)를 랜드로드에게 허락받지않은채 에어비앤비를 운영오다가 2014년 불법 서브렛으로 고소당했다. 그리고, 최근 단독 아파트로서는 불법 에어비앤비 운영 최고 액수인 18만5천달러라는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아파트까지 잃었다.


히키 여사는 트라이베카 4층 1400평방피트 2베드룸 아파트를 뉴욕의 *렌트안정법(Rent Stabilization Code)에 의거 43년간 보호받아오며 살아왔다. 렌트는 1500달러($1,463.79)로 맨해튼 시장가에서 현격히 낮은 액수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면서 스페인, 캘리포니아,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받았다. 1박에 250달러, 1주에 1750달러, 한달에 4500달러 꼴로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5월 히키씨는 투숙객들에게 "만일 누가 물으면, 아일린 히키의 친구라 대답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집주인 로버트 모스코비츠씨는 어느날 스페인 여행자가 히키여사 아파트의 화재용 비상계단에 친구들을 환영하기 위한 배너를 달아놓은 것을 본 후 히키씨가 불법 호텔로 운영해온 것을 현장에서 적발해 고소한 것이다.  



e-HICKEY-ATTORNEY-DEC17-3-500x333.jpg Eileen Hickey


그러나, 히키 여사는 자신이 전남편의 병원비를 내기 위해 잠시 에어비앤비를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2012년 9월부터 10개월간 85일 손님을 받았을 뿐이며,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가족 비상사태'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또한, 아파트를 뺏기기 전 자신이 에어비앤비로 번 돈 총 1만4천달러를 투숙객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호소했다. 히키 여사는 이스트빌리지에 콘도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지만, 사무실로 사용한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맨해튼고등법원 낸시 배넌 판사는 아일린 히키씨를 6월 9일까지 쫓아낼 것을 명령한다. 히키 여사는 지난해 변호사비용을 위해 GoFundMe아파트를 잃게되었다고 호소하면서 1만5천달러의 기금을 모았다. 그러나, 에어비앤비 영업 이야기는 빼버렸다. 


에어비앤비 뉴욕정책국장 조시 멜처는 "뉴욕에선 세를 살면서 에어비앤비를 하려면 랜드로드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면서 "렌트안정법 세입자들이 월세 만큼을 벌 수 있도록 허용하는 렌톨/보나치치 법안(Lentol/Bonacic bill)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뉴욕에서 불법 에어비앤비 최고형은 약 100만 달러였다. 


패트리샤 오그래디 여사는 비참한 환경에서도 물욕 없이 살다간 해피 엔딩의 여주인공이었지만, 럭셔리 아파트에 살던 히키 여사는 탐욕으로 인해 졸지에 홈리스가 됐다.



*렌트 콘트롤 아파트(Rent-controlled apartments): 1947년 2월 이전에 건축된 거주용 건물로 1971년 7월 1일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살아온 세입자(혹은 가족, 배우자, 파트너)들은 월세를 연간 7.5% 이하로 통제받는다. 2017년 현재 뉴욕시의 약 2만7천채가 렌트 콘트롤 아파트로 조사됐다. 이 아파트가 비워지면, 렌트 안정 아파트(Rent-stabilized apartments)로 전환되거나, 아파트가 6채 이하일 경우엔 렌트 규제를 받지 않는다. 렌트 콘트롤 아파트는 어떻게 구할 수 있나? 현재 렌트 콘트롤 아파트 세입자가 사망하거나 이사할 경우 그의 가족 혹은 동거인만이 아파트를 승계받을 수 있다. 비가족은 불가능하다.


*렌트 안정 아파트(Rent-stabilized apartments): 연간 렌트 인상률을 규제한다. 1974년 이전에 건축된 6채 이상의 아파트 건물 세입자들은 트가이드라인보드(RGB)가 규정한 퍼센트로만 렌트를 인상할 수 있다. 뉴욕에서 세입자가 이사나갈 때마다 새로운 입주자에게 렌트를 20%까지 올릴 수 있다. 만일, 랜드로드가 건물 보수공사를 했어도 렌트를 인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연간 평균 렌트 인상률은 3-5%. 뉴욕시 아파트의 50% 가량이 렌트 안정 아파트로 조사됐다.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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