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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20.03.03 02:00

(466) 홍영혜: '이런 의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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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등대 <25> 도날드 저드와 가구 디자인

'이런 의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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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h Flo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Charlie Rubin © Judd Foundation 


뉴욕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 문화와 예술을 만나고 경험하다 보니 나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된다. 사소하게는 의자를 고르는 시각도. 


얼마 전 오래동안 묵혔던 숙제를 하나 해결하니 홀가분하다. 사람은 두 종류인 것 같다. 아주 맘에 들지 않아도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과 자기 맘에 드는 것을 찾다가, 결국 맨날 미완성으로 지내는 사람. 아 가물에 콩나듯  맘에 안들면 자기가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있구나. 미니멀 조각가 도날드 저드(Donald Judd)는 시중에  파는 가구가  맘에 안들어 자신이 애들 침대를 만들다 가구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난,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후자에 가깝다.  차라리 없이 불편하게 살지 맘에 안드는 것을 대충 사기를 싫어한다. 뉴욕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모던한 테이블을 사놓고 그에 걸맞은 의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누가 아파트에 멀쩡한 의자를 버려서 가져다 천갈이를 하고 새 의자를 살 때까지 임시로 쓴다는 것이  5년이나 흘러가 버렸다.


의자 사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디자인이 맘에 들어 앉아보면 불편하고, 편한 의자는 너무 모양이 없고, 요즘 의자들은  왜 이렇게 높이 나오는지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값은 쓸데없이 비싼지...


얼마 전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구석에다 밀어둔 골동품 의자 한 쌍을 보더니 식탁에 놓아보라고 했다. 유리와 메탈로 된 테이블과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마호가니 나무 프레임에 하늘색 헝겊 의자가 놀랍게도 어울려, 따뜻하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에는 메탈 휘니시에 심플한 가죽 의자를 머릿 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엉뚱한 조합을 보고 나선, 내가 생각하던 '이런 의자'가 삭막하고 차갑게 보였고, '이런 의자'라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의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식탁 의자를 다시 찾아볼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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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eri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Joshua White © Judd Foundation 


그러던 참에 소호 101 Spring Street에 위치한 저드 파운데이션(Judd Foundation)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1967년 아티스트 도날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가 주철(cast iron)로 된 5층 직물공장 건물을 사서 개조, 스튜디오와 가족들과 지내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직접 집에 필요한 가구들, 철제 싱크대, 작업 테이블, 침대. 식탁,  의자등을 디자인하였다. 그의 사후에 저드 파운데이션이 그가 살던 그대로의 공간을 영구 보전하여 작업실, 식당, 거실, 침실에, 그가 설치하였던 가구 와 작품, 그가 컬렉트한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비교적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저드파운데이션은 1층 전시관을 제외하고는, 예약을 하고 가이드 투어로만 들어갈 수 있다. 과거  많은 아티스트의 거주지였던 소호에서 이젠 사라진 예술가의  삶의 공간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고, 저드의 절제된, 뛰어난 공간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저드 작품을 처음 만난 곳은 업스테이트 뉴욕 디아 비컨(Dia Beacon) 미술관에서였다. 작품 자체는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의  집합들이지만, 넓은 공간의 활용과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선구라고 불리지만 그렇게 불리우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로  불리는 그룹과의 공통점보다는 자신의 유니크한 점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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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 Floor, 101 Spring Street, New York Image: Charlie Rubin © Judd Foundation 


이곳에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나의 관심사였던 식탁 의자들이었다. 얼핏보면  널판지를 잘라 투박하게 적당히 만든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의 높이가 테이블 높이와 같고  수직으로 디자인된  의자는 테이블에 쏙 들어가 숨어 심플한 라인을 보인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테이블의 크기는 유리창의 크기와 비례를 하고  공간의 탁월한  비움과 채움을 보여준다. 


위의 사진에는 의자 뒷면만 보여 똑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의 앞면과 옆면은 각기 다르게 디자인이 되어 있다. 옆면이 막히거나 열리고 아랫 부분은 보관함이나 선반처럼 보이기 하고, 기울어져 있고, 제각각의 디테일이 흥미로웠다. 의자에 앉아보거나  만지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사진도 금지되어 있어 아카이브에 있는 사진만 허락받고 올릴 수가 있었다. 저드에 의하면, 의자는 아트와는 달리 기능적인 면도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등이 수직으로  디자인되어서 불편할 것 같았지만, 앉아 보질 못해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요즘 아카데미 4관왕으로  화제가 되는 영화 '기생충'의  박사장 집이 유명 건축가의 집으로 소개가 된다. 건축이나 가구들의  멋진 공간 감각이 도날드 저드를 생각나게 한다. 역시나 식탁 의자에 시선이 갔는데, 텍사스 마파(Marfa)에 있는 저드의 라이브러리 의자와 디자인이 흡사하다. 그는 1973년 텍사스 마파( Marfa)의 부지를 사서 그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 특히 대 규모의 작품들을 영구전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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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박사장 집은 이하준 미술감독이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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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Library, La Mansana de Chianti/ The Block, Marfa, TX. Image: Elizabeth Felicella/Estro © Judd Foundation


저드 파운데이션에 다녀온 지 얼마 안되서 드디어 나의 식탁 의자를 사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뉴욕 와서 첫 번째 갔던 가구점이다. 그때는 “아 여긴 다 나무 의자네"하고 지나쳤는데, 최근 우연히 다시 들어가  보니 맘에 드는 의자를 찾게 되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이런 의자'와는 아주 달리 나무 의자에 키가 나지막하여 테이블에 쏙 들어가는 그리고 등이 열려 갑갑하지 않은 의자를 샀다. 한 걸음 진도를 나아가, 똑같은 의자를 사지 않고 두 종류의 의자를 사서 믹스 앤 매치를 하였다. 져드와 친구가 알려 준 한수들이 5년간 미루어 왔던 숙제를 끝내게 도와주었다. 


"The art of a chair is not its resemblance to art, but is partly its reasonableness, usefulness and scale as a chair. These are proportion, which is visible reasonableness. The art in art is partly the assertion of someone’s interest regardless of other considerations. A work of art exists as itself; a chair exists as a chair itself. And the idea of a chair isn’t a chair." -Donald Judd- 



홍영혜100.jpg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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