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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1.05.25 12:42

(571) 이수임: 다이아 반지 대신에

조회 수 147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12) 나의 결혼 반지 

 

다이아 반지 대신에 

Diamonds are NOT a Girl's Best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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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는 하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자는 하급 공무원과 결혼했다. 사치스러운 그녀는 폼을 잡고 싶어 친구 목걸이를 빌려 무도회에 참석했으나 그만 잃어버린다. 같은 목걸이를 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부부의 삶은 비참해져 갔다. 10여년이 흐른 후, 친구로부터 빌려줬던 목걸이가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모파상의 단편 '목걸이’의 내용이다. 

 

나는 다이아몬드만 보면 반짝이는 그 뒷면에 어릴 때 읽은 ‘목걸이’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이 웅크리고 있는 듯해서 외면한다. 더군다나 다이아몬드 크기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시절, 친정 엄마가 며느리에게 준 결혼반지를 사부인이 감정한 후 크기가 엄마가 말한 것과 다르다고 티격태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나미가 떨어졌던 기억도 있다. 

 

다이아몬드는커녕 싸구려 결혼반지조차도 나는 남편에게 받지 못했다. 하루 끼니도 해결하기 힘든 남자에게 감히 결혼반지는 언감생심 먼 나라 이야기였다. 

 

다이아몬드는 사실 흔하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공급을 줄이기 위해 재고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약혼반지에 적어도 2개월치 월급을 써야 한다. 누가 이 규칙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지만 수익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팀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마케팅의 허상 또한 반짝이는 돌멩이는 나의 눈길을 더욱더 끌지 못했다. 차라리 남편과의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내가 끼니 만들기 싫은 날 남편이 K타운에서 들고 오는 저녁거리가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좋다. 

 

옛날 옛적, 사냥 나간 남자가 포획물을 안고 허기져 기다리는 식구를 위해 돌아오듯 남편이 장 꾸러미를 꽝하고 내려놓았다.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것을 번쩍 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풀었다. 설렁탕, 빈대떡, 청국장, 고등어구이다. 남편이 대충 씻는 사이 미지근해진 빈대떡과 고등어구이를 따끈하게 데웠다. 

 

“청국장은 내일 먹지.” 라고 말하는 남편이 어찌나 고마운지. 즉 내일 끼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다. 

 

남편은 2주에 한 번 내 글이 신문에 나오는 토요일, K타운에 들려 신문을 사고 한국 음식도 사갖고 집에 온다. 고국 소식은 인터넷으로 대충 훑어보고, 신문만 들면 '세월아 네월아'하는 습성 때문에 내 글이 실리는 날만큼은 신문이 뚫어지도록 열독한다. 

 

“자주 배달해 줄게. 많이 먹어. 집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으니까, 가끔은 MSG도 먹어줘야 잠이 잘 와.” 

남편은 히죽대면서 노릇노릇 잘 구워진 커다란 고등어 살점을 떼어서 내 밥그릇에 놔준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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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5.27 10:35
    이수임 작가의 글은 읽고나면 많은 공감을 하게됩니다. 이번에 실린 다이아 반지 대신에서도 어쩌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하고 여러번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반찬 꾸러미를 사들고 올 때 남편을 제일 반깁니다. 특히 그 꾸러미에 내가 고기보다 좋아하는 녹두 빈대떡이 들어있으면 등을 쓸어줍니다. 다이아 반지, 진주 목걸이가 뭐길래 그것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헛된 노력을 하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았는데 이수임 화가의 이 글이 명쾌한 답을 줍니다. 늘 꾸밈없는 글을 보내주셔서 읽고 또 읽곤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