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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21.06.02 16:49

(572) 홍영혜: 역경 속에 핀 꽃

조회 수 378 댓글 1

빨간 등대 (39) 뉴저지 식물원에서 

 

역경 속에 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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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na S. Kim, Cherry blossoms in the Skylands Manor, 2021, oil on linen board

 

"The flower that blooms in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

 (역경을 이겨내고 핀 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답다.)

 -Mulan(뮬란)-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그린우드 레이크 (Greenwood Lake)에 다시 봄이 왔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순환하는 계절 속에 사는 축복을 새삼 느낀다. 도시에서만 살던 내겐 숲에서의 생활이 낯설고 새로운 한 해였다. 2년 차가 되니 설레며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한다. 장작불을 때야 하나, 오트밀이 동이 날까 걱정을 안 해도 되고, 거미와 왕개미가 출몰해도 소스라치지 않고 여유 있게 휴지에 싸서 뒷마당으로 던진다. 

 

숲속의 봄은 새롭다. 작년과  같은 봄이 아니다. 작년엔 존재감이 없었던 가녀린 나무에 드문드문 꽃을 피우니, 내가 좋아하는 red bud다!  작년 봄부터 크고 단단한 꽃망울을 야무지게 품고 있던 서양 철쭉 (Rhododendron)이  추운겨울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더니 일 년 만에 꽃망울을 터뜨렸다. 과연 “역경 속에 핀 꽃이 귀하고 아름답구나.”

 

그린우드 레이크를 오가는 길에 링우드(Ringwood)에 위치한 뉴저지 식물원(New Jersey State Botanical Garden at Skylands)을 지나쳤었다. 작년엔 눈독만 들이고 팬데믹으로 감히 꽃구경할 엄두를 못냈다. 올해는 일찍 따뜻해진 날씨 덕인지, 꽃들이 유난히 풍성해 보인다. 4월 초 벚꽃이 만개할 즈음 식물원을 찾았다. 

 

식물원 초입 우측으로 1920년대  John Russell Pope가 설계한  Skylands Manor가 보인다. 저택 주변의 테라스에서 신랑, 신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결혼식이나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또 매너에서 숙박도 한다. 조각과  연못이 정원의 품격을 더해주고, 여름에 연못에 연꽃이 피고 잉어가 노닐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목련길, 진달래, 작약 가든으로 이어진다.  

 

테라스에서 비탈길 언덕을 내려다보니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벚나무가 많지는 않아도, 각기 다른 종류의 벚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언덕 아래로 군데군데 이젤을 펴놓고 화가들이 캔버스에 이 풍광을  담고 있었다. Skylands Manor가 정면으로 보이고 양옆으로  벚꽃이 드리워진  뷰포인트가 멋있는 지점에  발길이 멈추었다. 한 화가가 거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아테나 S. 김(Athena S. Kim), 반갑게도 한국분이었다.  2019년 처음 뉴저지 식물원을 알게 된 후부터 볼수록 매력있는 이곳을 자주 찾아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으로 보는 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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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na S. Kim의 뉴저지 식물원 작품들

 

Skylands Manor를 지나 식물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일년초 가든(Annual Garden)이 제일 먼저 나온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여 여름 부터 일년초 꽃을 심는다. 네 코너에는 “Four Seasons”,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작은 조각상들이 있고 정가운데는 사자, 천사(cherubs), 갈랜드(garland) 문양이 있는 이탈리안 르네상스 스타일의 Wellhead가 눈길을 끈다. (왼쪽 위) 

 

다년초 정원(Perennial Garden)의 초입에는 양쪽 대칭으로  나즈막한 관목으로 울타리가 둘러싸인 두 정원이 보인다. 아늑해서 벤치에 앉아 사색하기 좋다. 귀여운, 피리 부는 Faun(반인 반양) 조각이 하나씩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림은 늦여름 칸나꽃이 필 때 풍광이다.(왼쪽 아래)

 

4월 중순부터 목련, 작약, 진달래 가든에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되어, 라일락 가든은 5월 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그 종류와 색의 다양함이 1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라일락 가든 속에 있으면  마스크를 썼음에도 그 향기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게 된다. (오른쪽 위)

 

식물원 중앙에 너른 잔디밭은  초가을 풍광인데, 돗자리를 깔고 앉아 피크닉을 하면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기 좋다. 나무숲 뒤에는 야생화 가든(Wild Flower Garden )과 백조의 연못(Swan Pond)이  개울을 따라 펼쳐진다. 백조는 없고, 이름만 있다. 그 너머에는 트레일이 있어 북쪽으로 가면 링우드 주립공원(Ringwood State Park)의 일부인 셰퍼드 레이크(Shepherd Lake)과도 연결이 된다. 물놀이, 뱃놀이로 알려진 곳이다.  뒤로는 라마포 산 (Ramapo Mountains)이 보인다. (오른 쪽 아래)

 

 

Wild Flower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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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flower tour: Bog Pond(왼쪽 위),  그 속에 사는 box turtle(가운데),  개울따라 핀 야생화(오른쪽 위), Japanese Primrose(왼쪽 아래), 우산 모양의  May apple(오른쪽 아래).

 

5월 초 식물원을 다시 찾았을 때, 지난번 보지 못한  식물원 동쪽을 살펴보았다.  식물원 서쪽이 격식을 갖춘  꾸며진 정원이라면, 이곳은 그늘이 드리워진 숲속으로, 두 줄기의 개울을 따라 징검다리도 건너고, 소박하고  자연적인 느낌을 준다.  울타리가 쳐진 옥잠화와 서양 철쭉 정원(Hosta and Rhododendron garden)을 지나 동쪽 철망 문을 열면 야생화 가든(Wild Flower Garden)이 시작된다.  때마침 투어가  시작되고 있었다. 코비드 이후 사람이 모인 곳에 가까이하길 두려워,  잠시 주저했지만 야외에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합류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푹 빠져들어  걱정은 어느덧 사라졌다. 

 

무심코 지나칠 야생화들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나에겐 생소한 Marigold, Skunk cabbage, Trout lily, Pachysandra, Spring beauty,  Virginia bluebell, Creeping  phlox, Celandine poppy 등 야생초들을  일일히 가리키면서, 각자가 품고 있는 사연을 말해 준다. 그중  May apple(팔각연)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산처럼 늘어진 잎 아래쪽에 가운데가 노란, 하얀 꽃을 피운다고 한다. 열매가 달리면 처음에는 독성이 있는데 익으면서 독성이 없어진다. 열매가 무거워 땅에 기울어 지면 그 열매를  박스 터틀이 먹고  배설하면서 씨가 퍼진다고 한다.   

 

공원 남쪽 끝에 있는  4대륙(Four continents) 조각상이 넓은 식물원을  한눈에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북쪽까지 반마일 크랩 애플 길(Crab Apple Allée)이 펼쳐진다. 나이 든 노부부가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어가는 걸 보면서  코비드에 잘 견디어 낸 그들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인생길에 밝은 화려한 꽃밭도 있지만,  비록 그늘지고 힘든 길을  거닐 때도 야생화 같은 기쁨들이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이 조각상들은 관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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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Jersey State Botanical Garden at Skylands (NJBG)

 

뉴저지 식물원은 링우드 매너(Ringwood Manor), 쉐퍼드 레이크(Shepherd  Lake)와 함께 링우드 스테이트 파크 (Ringwood State Park) 을 이루고 있다. 웹사이트에 나온 자료를 간추려보면, 식물원의 유래는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의  저명한 변호사인 프란시스 린드 스테츤(Francis Lynde Stetson)이  이곳에 여름별장 터를  잡고 “Skylands Farm”이라 불렀다.

 

당시 선구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나인 홀 골프 코스를 정원에 만들어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등 유명인사들을 초청했다고 한다.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rick Law Olmsted)의 수제자이며, 미국조경 건축학회를 창시한 사무엘 파슨스(Samuel Parsons)가 조경을 맡았다. Swan Pond를 비롯한 이곳의 조경이  그의 저서에 예화로 나온다.

 

1922년에 클라센스 맨킨지 루이스(Clarence McKenzie Lewis)가  Skylands 두 번째 주인이 됐다. 스테츤 가의 집을 허물고 현재의 매너를 지으면서 그 당시 유명한 조경건축회사인 Vitale and Geiffert에게  조경을 맡겼다. Lewis는 이곳을 식물의 쇼케이스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전세계와 뉴저지에서 나무들을 수집했다. 색, 질감, 형태, 향기의 조화로움이 뛰어난 가든으로 널리 알려졌다.

 

1966년 뉴저지 주가 Shelton College의 캠퍼스로 사용된  1117 에이커의 Skylands 부지를 샀다. 1984년 Skylands Manor 주변의  96에이커가 공식적 뉴저지 식물원이 되었고, 주와 국가의 사적지로 등록이 되었다. https://njb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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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ena S. Kim 

2007년, 40대에 미국에 이민 와 우여곡절 끝에 서양화를 하게 되었다. 고전 회화의 대가 및 Hudson River School 화풍에 영감을 받고, 겸재 정선을 흠모한다. 북부 뉴저지에서 풍경, 정물, 인물 등 실제 대상을 소재로 연필 소묘와 유화를 즐긴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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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6.04 23:34
    홍영혜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꽃들의 피고 지고가 자연의 섭리를 물흐르듯이 느끼게 합니다. 사철을 겪으면서도 꽃과 자연울 그냥 스쳐보냈는데, 홍영혜님은 오감을 갖고 마음을 함께하면서 사시사철의 꽃의 변화와 풍광을 묘사하셨네요. 저도 꽃과 자연을 대하는 눈과 마음을 홍영혜님처럼 성심껏 해보고싶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셨으니까 아테나 S. 김같은 화가도 발견하셨습니다. 아테나 S. 김 화가님의 초가을 그림이 참 좋아요. 가을 풍광이 "가을하늘 마음에 고여들다" 라고 하신 조병화 시인의 구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