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2.02.15 20:59

(608) 이수임: 펜주 커버드 브리지를 찾아서

조회 수 225 댓글 3

창가의 선인장 (121) Covered Bridges  

 

펜주 커버드 브리지를 찾아서 

 

lee.jpg

 

커버드 브리지 하면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 of Madison County, 1995)'가 떠오른다. 남편이 잠시 집을 떠난 일상이 지루한 여자와 길을 잃은 사진작가가 만나 나흘간의 사랑을 나눈다. 남자는 여자에게 함께 마을을 떠나자고 한다. 결국 그는 혼자 떠나고, 여자는 남편과 함께 타고 가는 차창 밖으로 우연히 떠난 그를 본다. 그녀가 차 문을 열고 그에게 갈까말까  핸들을 잡고 망설이던 장면이 뭉클하다. 

 

나도 살면서 남편과 불화가 있을 때마다 차 문을 열고 내려 가 버릴까? 아니면 집 문을 열고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상상했을 만큼 인상에 남은 영화다. 문이라는 것이 종잇장의 앞 뒷면처럼 붙은 듯하나 아주 먼 이별의 시작점이다. 

 

펜실베니아주 안에 200개가 넘는 커버드 브리지(covered bridge) 중 뉴욕시에서 가장 가까운 세 곳을 찾아서 아침 일찍 떠났다. 트래픽과 도로 공사로 녹스 커버드 브리지(Knox Covered Bridge)밴산트 커버드 브리지(Van Sant Covered Bridge)만 보기에도 시간이 촉박했다. 

 

'졸졸 흐르는 작은 냇물 위에 지붕을 갖은 소박한 낡은 다리가 있겠지?' 기대 없이 떠났는데 다리 가까이 다가갈수록 차창 밖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돌로 지어진 집들이 이어졌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들어가는 듯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 말과 양들이 햇볕을 즐겼다. 볏짚 단이 듬성듬성 있는 언덕은 기대어 잠들고 싶은 아늑함으로 뭉게구름 아래서 조는듯 했다. 단풍 든 나무들은 서로 기대어 속삭이며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잎을 떨궜다. 저항이나 부딪힘이 없는 아득한 평화만이 그곳에서 숨 쉬었다. 

 

Knox 다리는 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 안에 있다.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다리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걸었다. 차들은 내가 다리 밖으로 나올 때까지 친절하게도 기다려줬다. 언덕에 의자를 펼치고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었다. 꿀맛이다. 실컷 먹고 놀다가 의자를 접어 어깨에 메고 언덕을 내려왔다. 마치 밭을 열심히 일구고 집을 향하는 농부인 양. 

 

Van Sant 다리는 New Hope Bucks County에 있다. 다리 주위는 황량했지만, 놀랍게도 조금 운전해 가다 보니 지는 햇살 속에서 빛나는 오래된 마을이 펼쳐졌다. 그러고 보니 귀에 익은 벅스 카운티를 지나고 있었다. 내려서 거닐며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일찍 찾아드는 초겨울의 어둠이 집으로 재촉했다. 

 

1825년에서 1875년 사이에 약 1만 4천 개의 커버드 브리지가 미국에 세워졌다고 한다. 오래되어 무너지거나 홍수에 휩쓸리거나 불에 타서 현재는 750개 남짓 남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며 아마도 다리 주위 마을들도 그 당시에 형성된 역사가 깊은 곳일 것이다. 오래된 장소를 선호하며 여행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나의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 썼다. 

 

‘커버드 브리지를 찾아서 로드 트립 떠나 떠돌다 자연에 묻히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
  • sukie 2022.02.26 14:22
    뉴호프(벅스카운티)에 있는 Van Sant 브리지를 아주 오래전에 갔었습니다. 뉴 호프에 볼일이 있어서 간김에 거기를 둘러봤을 뿐 어떤 목적을 갖고 그 다리를 건넜던 게 아니어서 감회라든가 낭만같은 감정은 없었습니다. 이수임씨의 글을 보니까 Van Sant 브리지가 역사가 깊고 낭만이 깃들인 다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의 준비를하고 다시 이 다리를 건너 볼까합니다. 집에서 1시간내외이어서 날씨만 쾌청하면 드라이브 코스로 최고지요. 그리고,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1995년도 영화 매디슨 카운티 다리가 떠올라서 가슴앓이를 좀 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그리고 울먹였던 추억이 나이를 잊게하네요.
    노랑, 파랑, 빨간색의 꽃잎과 이파리로 뒤덮인 하얀 커버드 브리지의 그림이 너무 좋아요. 내 마음이 밝고 명랑해지네요. 실제로 어느 곳에 있는 다리를 그린건가요?
    -Elaine-
  • arcon 2022.02.28 05:06
    knox 다리를 그린 것입니다.
    Van Sant 브리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다리를 건너 (오시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모르나)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파킹랏이 있고 둔덕이 있습니다.
    그 언덕에 올라가서 도시락, 김밥과 아채 수프를 먹었어요. 물론 와인도 한 잔 곁들이고요.

    어제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추운 날인데도 개나리가 용을 틀며 나오느 것이 안쓰러워 바람이라도 막아주려고 한동안 곁에 서 있었어요. 봄기운이 느껴져 다시 로드트립 떠날까? 희망을 품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가 보세요.
    매번 제 글에 댓글 달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sukie 2022.03.02 14:44
    이수임 작가님, 친절한 설명에 감사를 드립니다. 낙스 다리도 가서 볼 예정입니다. 저희집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트렌톤에서 델라웨어 강을 따라 쭉 가면 뉴호프가 나와요. 강변의 운치가 아름답지요.
    컬빗에서 또 뵈요. 안녕히 계세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