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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등대 (65) Grandma's Kitchen: Enoteca Maria 

세계 각국 할머니 손맛 담긴 특별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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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Staten Island Ferry”, 2024, Feb. Digital Painting

 

팬데믹 이후 뉴욕을 찾는 지인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사람들은 뉴욕에 와서 짧은 기간 무엇을 경험하고 싶어 할까? 우연히 Trafalgar 여행사에서 하는 “New York Explorer”의 5일 일정을 보게 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로드웨이 쇼의 비하인드 씬, 9/11 추모관&박물관,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고 에노테카 마리아(Enoteca Maria)??? 뻔한 일정에 심드렁하게 보다가 눈이 반짝 뜨인다. 전문 셰프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논나(nonna, 이탈리아어로 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전해오는 고유의 레서피로 식사를 준비하는 색다른 음식점이다. 

 

2017년 뉴욕타임스(At This Staten Island Restaurant, a Kitchen Run by Grandmas)에 소개된 적이 있고, 가성비와 질이 좋은 음식을 선정하는 미슐랭 빕 구르망 리스트에도 있다. 페리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니, 지하철이 뉴욕의 다른 보로우와 연결되지 않아 멀게만 느껴졌던 스태튼 아일랜드를 가볼 엄두가 생겼다.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Staten Island F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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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teca Maria를 마음 한켠에 접어 두었다가 드디어 1월 말 놀랍게도 푸근한 토요일, 친구들과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에 몸을 실었다. 로워 맨해튼의 Whitehall Terminal에서 주말에는 30분 간격으로 페리가 다니는데, 25분 정도 걸린다. 떠날 때 배의 뒤쪽 갑판으로 가면 하얗게 부서지는 뱃길 따라 서서히 멀어지는 로워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다. 갈매기들이 힘차게  쫓아와 바로 눈앞에서 날아오른다. 1월에 갑판에서 한기를 느끼지 않고 바람을 즐길 수 있다니…

 

이 뱃길에는 늘 “Let the River Run” 노래가 귀가에 힘차게 울리는 것 같다. 칼리 사이먼(Carly Simon)이 갑판 위에서 불렀던 매력적인 모습과 함께. 주말이어서 영화 "워킹 걸(Working Girl)"에서 멜라니 그리피스가 수트에 운동화를 신던 장면, 배에서 면도하는 뉴욕 출근 길의 씬은 펼쳐지진 않지만. 

 

 

국립 등대 박물관 (National Lighthouse Museum)

 

Enoteca Maria는 금, 토, 일 오후 2시 반, 5시 반, 7시 반 세 차례 손님을 받는다. 2시 반 예약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St. George Terminal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국립등대 박물관에 들렀다. 페리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등대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 설치된 1886년부터1902년까지 16년간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불빛이 일몰 이후 배를 안내하기는 충분치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페리를 타고 오다 뉴저지 쪽으로 보이는 등대가 Robins Reef Lighthouse인데, 등대지기였던 남편의 유지를 따라 Kate Walker란 여성이 33년간 등대를 지켰던 곳이라고 한다. 찬찬히 등대의 역사와 얽힌 스토리를 읽어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할매식당 에노테카 마리아(Enoteca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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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teca Maria

https://a002-vod.nyc.gov/html/embedplayer?id=4341

 

이탈리아계인 조 스카라벨라(Joe Scaravella)가 2007년 St. Charles Historic District에 어머니 이름 Maria를 따서 Enoteca Maria를 열었다. 할머니,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었을 때 자신을 위로하고, 그들이 해주신 음식 맛이 그리워 시작했는데, 손님들도 이곳에서 같은 향수를 느끼고 점점 모여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 온 논나(할매)들이 음식을 했는데 2015년 파키스탄을 필두로 페루, 터키, 아제르바이잔, 아르헨티나,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 이집트, 멕시코, 스리랑카, 푸에르토리코,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논나들이 25-30명 정도 일한다고 한다. 논나의 스케줄에 따라 한 달에 한번, 때론 일 년에 한 번 일하기도 한다.

 

식당은 길게 30석 정도 자리가 있었다. 바에서 주인 Joe가 일하고, 유리로 일부 가려져 환히 볼 수 있는 주방에는 논나가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은 항상 메뉴에 있고, 그날의 특선 메뉴로는 아르헨티나와 일본 음식이 있었다. 우리는 비트 샐러드와 아르헨티나 논나 카르멘이 만든 만두, 플랭크 스테이크를 말아서 속을 채운 음식, 그리고 일본 논나 유미의 가지요리, 이탈리 논나 마리아의 브란지노 생선요리를 시켰다. 난꽃으로 장식해 정성스레 차려 왔고, 맛도 좋았다. 샐러드는 음식마다 곁들여 나와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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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as Empanadas de Carne & Bifes Rellenos from Nonna Carmen,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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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st beet Salad, Focaccia Bread from Italian Menu, Eggplant Dengaku from Nonna Yumi,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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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zino al Cartoccio from Nonna Maria, Italy

 

음식을 주문받는 사람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생선이 손짓으로 크다고 하면서 더 이상 시키지 않아도 될 것같다는 바디 랭귀지를 보내왔다. 음식을 다 내오고 나서 그날의 특선 요리를 담당한, 카르멘이 손님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고향이라고 한다. 한 달에 한번 나오는데 가족에게 음식을 하는 마음으로, “Heart”를 다해 준비한다고 한다. 우리와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옆 St. George Theater 입구에 나와 앉아 커피 브레이크를 갖고 있었다. 곧 77세가 된다고 하는데, 논나의 열정과 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음식점 주인 Joe Scaravella 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이 할머니와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한식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한인 논나는 아직 없다고 한다. 한국의 고유 음식을 알리는 한인 할매들도 Enoteca Maria에 합류해, 언젠가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쿠킹 클래스를 신청하면 논나와 일대일로 고유의 음식을 만드는 법과 레서피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무료인데 웨이팅 리스트가 길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할머니들이 보낸 레서피를 “Nonnas of the World Book”,  Virtual Book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전라남도 담양에 사시는 이정순 할머니의 김치 레서피도 찾아볼 수 있어 반가웠다. pp. 34-35.  

 

 

나의 할매 밥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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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Bon Appetit”, 2024, Feb. Digital Painting

 

오는 뱃길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의 음식은 무엇일까? 양쪽 할머니를 뵌 적이 없고, 고향이 황해도인 부모님은 두 분 다 맏이어서 명절날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전날 고모, 숙모, 외숙모가 집에 와서 음식을 도와주신 기억이 난다. 맷돌에 불린 녹두를 넣고 어처구니를 돌리면, 노란 녹두가 맷돌 사이로 흘러 내려와 커다란 다라이에 모여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숙주, 김치, 버섯 등 야채와 돼지고기를 버무려 파를 얹어 따끈하게 부치면 호호 불며 먹던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처음 뉴욕에 오셔서, 가져 오신 찹쌀 가루를 익반죽하여 팥소를 넣어 지져주시던 찹쌀 부꾸미. 그리고 첫아이 산후조리 오셔서 해주시던 닭조림,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지? 녹두빈대떡 말고, 아이들은 내가 만든 궁중 떡볶이를 좋아한다. 떢을 먼저 뜨거운 물에 말랑말랑하게 데치고 다진 마늘과 간장 설탕으로 무친다. 그리고 버섯과 당근, 양파, 고기를 따로 볶아 섞는다. 비결은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저려서 꽉 짜고 기름에 달달 볶아 떡볶이에 섞는 것이다. 우리집의 고유 레서피라기보다는 “대장금”의 장금이한테서 배웠다.

 

베라자노 브리지(Verrazzano Bridge), 로빈스 리프 등대(Robins Reef Lighthouse), 자유의 여신상, 갈매기, 하얀 물거품, 물길…들을 다시 스치고 배에 내리니 어둑해진다. 참새가 방앗간 가듯이 지척에 있는 배터리 파크의 씨글래스 카루셀 (SeaGlass Carousel)에 들렸다. 네온 칼라가 밤에 더 환상적이다. 목마가 아닌, 바닷속 물고기를 타고 관광객처럼 보낸 어느 겨울날 뉴욕의 오후를 마감한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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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4.02.11 09:01
    홍영혜씨의 글을 읽고 음식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리 아이들과 남편에게 자신있게 해줄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부끄럽게도 하나도 없어서 식구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대로 내가 차린 밥상으로 잘먹고 별탈없이 잘지낸 걸 보면 "시장이 반찬이다"가 통했나 봅니다. 딸애가 언젠가 '엄마는 김밥 하나는 맛있게 잘해'한 적이 있어서 그래?라고 반문한 적이 생각납니다. 찬밥이 많을때 주로 김밥을 해주었는데 그게 맛이 있었나 봅니다. 밥을 소금으로 간을해서 볶은 통깨와 참기름을 쳐서 버무리서, 생김에 다꽝, 계란지단, 우엉, 잔멸치, 시금치를 넣고 말아서 해주면 잘먹기도 하지만 찬밥이 뚝딱 처리돼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결과물이 됩니다. 친정 엄마가 하던걸 눈썰미로 배웠을 뿐입니다. 논나들의 손맛은 일품입니다. 정성껏 만드는 할매들의 손끝에서 아미노산이 생성되서 맛이 난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할매 식당 에노테카 마리아를 알려주셔서 가서 맛보려고 노트에 주소를 적어놨습니다. 뉴욕에 갈일이 생기면 스태튼 아일랜드를 거쳐가니까 그때 살짝 방향을 스태튼 아일랜드로 돌리면 되니까요.
    자유의 여신상이 1886년부터 1902년까지 16년간 등대 역할을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를 굳게 믿는 나에게 좋은 지식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 조 화가님의 그림은 항상 밝은색체와 세련미를 벗어난 순수한 매력을 주어서 좋아요!가 절로 나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