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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1.03.10 00:48

(560) 이수임: 네 이웃을 사랑하라

조회 수 97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09) 코비드19 백신 접종기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너 맞았어? 나는 맞았는데?” 

옆집 수잔이 나에게 물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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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순부터 코비드-19 백신 웹사이트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전화도 수없이 걸었지만, 예약할 수가 없어 자포자기하듯 손을 놓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녀가 온갖 예약할 수 있는 링크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옆집 수잔도 두 아들도 내가 빨리 주사 맞기를 원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도전 후 예약이 됐다. 내가 그나마 간신히 할 수 있었던 사이트다. https://covid19.nychealthandhospitals.org/COVIDVaxEligibility 


집과 공원에서만 빙빙 돌다가 거의 일년 만에 지하철을 타러 간다. 초행길을 가는 것이다. 주사를 맞으려면 긴 줄에 오래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중무장을 했다. 먼 길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걸음이 불안정하고 불안할까? 오랜 격리 생활을 하다 보니 집에서 걸어갈 수 없는 낯선 거리는 멀다는 생각이 들어설까? 집을 중심으로 사람도 길도 멀리 뚝 뚝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두리번거렸다. 경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친절하게 물어온다. 


“백신 맞으러 가지요? 길을 따라 3블록 더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2블록 가면 있어요.”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며칠 전, 내린 눈이 얼은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에서 오던 젊은 남자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고 빙판이 끝나는 지점까지 부축해 줬다. 


고맙다고 말했던가? 아닌가?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고 나니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감사 표시를 하지 못한 것에 신경 쓰면서 어리버리 하다가 하마터면 또 넘어질 뻔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긴 줄이 없다. 황당했다. 두리번거렸다. 아이패드를 들고 한 여자가 다가왔다.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녀의 패드에 내 전화기에 예약한 바코드를 맞댔다. 안내를 받으며 모더나 백신을 아주 쉽게 맞았다. 주사를 맞으러 온 사람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복잡하게 예약해야하는 정부 시스템이 원망스럽고 안타까웠다. 


돌아오는 길, 집 가까이 다가갈수록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걸음걸이가 나른해졌다. 아파트 문을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나를 반기듯 감싸 안는다. 오늘 따라 집이 왜 이리 깨끗하고 아늑해 보일까? 집안에 안기듯 몸을 던졌다. 오랜 팬데믹 습관으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옆집 수잔과 아이들에게 코비드 주사를 맞았다니까 한시름 놓았다는 듯 무척 기뻐한다. 주사를 서둘러 맞기를 잘했지. 저렇게 좋아할 줄이야!  ‘멀리 있는 부모 형제보다 이웃에게 잘해야 한다’더니 옆집 수잔이 무척 고맙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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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3.12 10:35
    컬빗에서 이수임 작가님을 뵙게되어서 반갑습니다. 몇 번째의 만남이지만 신선한 만남을 느낌니다. 백신접종글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써주셔서 늘 이수임 작가의 글에서 받는 순수함을 느꼈습니다. 지하철을 일년만에 타셨다니 축하합니다. 날씨가 예상 외로 따뜻해서 저도 기차를 타고 만하탄에 가고싶지만 나이가 많고, 코로나를 아직은 안심을 못하기 때문에 생각으로만 했을 뿐입나다. 좋은 이웃은 이웃사촌이라고 했는데, 수임 화가님은 건강을 챙겨주는 이웃이 있어서 남다른 행복을 누리고 계시니 복을 지니셨네요. 그림을 보니까 11명이 창밖을보면서 있는데 평범하면서도 인간미가 흐름을 느끼겠습니다. 백산을 맞은 동지가 생겨서 기분이 좋아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