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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21.03.08 18:06

(559) 이영주: 한국인의 소울 푸드, 콩나물국

조회 수 154 댓글 1

뉴욕 촌뜨기의 일기 (55) 

 

겨울, 콩나물국과 콩비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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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에서 지내면서는 늘 콩나물을 길러 먹습니다. 서양 그로서리에 숙주나물은 있지만, 콩나물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리란 게 묘해서 없으면 괜히 먹고 싶어집니다. 

처음 콩나물을 기를 때는 정석대로 길게 길러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꼬부랑 콩나물 얘기를 인터넷서 보고 시험 삼아 해봤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콩나물이 조금 자랐을 때 뒤집어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크나 궁금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나름 뒤집힌 애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엥간히 자란 것같아 꺼냈더니 그냥 직립으로 키운 것만큼 자랐는데도 몸에 웨이브가 생겨서 키가 작아 보였던 것입니다. 요즘은 더 머리를 써서 콩나물이 다 자라기 전에, 약 6,7cm 만큼 자랐을 때 먹으니 콩나물이 훨씬 부드럽고 맛도 더 구수해서 더 이상 길게 키우지 않습니다. 

 

콩나물은 씻어서 끓일 베이스인 곰국에 먼저 데칩니다. 그리고 나물 무쳐 먹을 것은 따로 남겨 놓고, 건더기를 넉넉하게 국을 끓입니다. 콩나물국은 두 말이 필요없는 우리 한국인의 소울 푸드(Soul Food)입니다. 곰국에 멸치육수를 섞어 물을 더 보충해서 되도록 라이트하게 끓입니다. 그러면 국이 매우 담백하고 시원합니다. 달아났던 입맛이 슬그머니 살아납니다.

 

오늘 저녁엔 새로 밥을 지은 김에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뜨거운 밥에 버터를 넣고 비볐더니 금상첨화 입니다. 콩나물국의 삼박한 맛이 더해져 더욱 입 안에서 사르르 녹습니다. 저녁을 그렇게 버터간장 비빔밥에 연두부 잔뜩 들어간 콩나물국과 다시마 볶음, 오이지로 소박하게 먹었습니다.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비록 촌밥상일망정 영국여왕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뉴욕 컬빗에서 얼마 전, 영국 왕실 식사 얘기를 해주셨는데, 여왕님이고 왕자님이고 먹는 건 뭐 별 거 없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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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진짜 겨울 날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이 좋아서 몬태나 답지 않다, 의아했는데, 정작 날이 추워지니 조금 긴장됩니다. 눈도 계속 내려서 온세상이 설국입니다. 이럴 땐 뜨끈뜨끈한 콩비지탕이 생각납니다. 콩비지탕은 콩을 불렸다가 갈아서 끓입니다. 돼지갈비를 넣고 끓였더니 세상에나. 그야말로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지경으로 너무 맛있었습니다.

 

콩은 하루 불렸다 갈았고, 돼지갈비는 한번 삶아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다시마와 양파, 표고버섯 우린 채수에 레드와인과 셀러리 두, 세줄기 넣고 우선 30분 정도 돼지갈비를 푹 끓여줍니다. 돼지갈비가 충분히 익었으면 콩비지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합니다. 간마늘 한 숟가락 넣고 15분 정도 더 끓여주면 됩니다. 먹기 전에 셀러리 빼주고, 파를 넣어 색감을 살립니다. 구수한 콩비지 국물이 따뜻하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몸이 훈훈해지고, 작지만 갈비를 손으로 뜯어 먹는 재미도 쏠쏠해서 제가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사실 제가 이렇게 콩나물을 기르고, 콩비지 탕이며 여름엔 콩국수까지 콩을 이용한 많은 음식을 하게 된 것은 대학후배 권오문이 콩을 보내주는 까닭입니다. 후배 권오문은 콩을 수출하는 사업을 합니다. 늘 콩을 보내줘서 이렇게 콩으로 온갖 음식을 다 만듭니다. 더운 여름, 콩국수를 했을 때, 큰사위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이탈리아 태생이라 그런지 국수라면 잔치국수고 냉면이고 다 좋아하는데, 콩이 몸에 좋다는 걸 알아서 콩국수도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습니다. 지금은 이탈리아에 가 있어서 이 맛있는 콩비지 맛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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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의 겨울은 뉴욕의 겨울 보다는 훨씬 지내기가 편합니다. 건조하므로 습기찬 뉴욕의 뼈 속으로 스며드는 추위는 없습니다. 대륙성 기후라서 영하의 기온이라 해도 낮에 해가 있으면 따뜻해서 젊은이들은 반바지와 반소매를 입고 활보합니다. 겨울이 긴 몬태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와서 살아보니 살만 합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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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3.09 20:55
    엊그제 오전 10시40분에 백신 2차 접종을 끝냈습니다. 60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증상도 없고 평소와 같습니다. 화이자 2차 접종을 하고나니까 괜히 우쭐해집니다. 마음도 홀가분해졌습니다.
    이영주님의 콩 요리를 읽고나니까 콩국수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맷돌에 콩을 갈아서 비지 찌개며 콩국수를 해주셔서 별미로 여기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믹서기가 없을 때니까 맷돌이 믹사기 대용을 했습니다. 요즈음은 콩국수를 쉽게해 먹습니다. 먼저 콩을 깨끗이 씻어서 서너시간 찬물에 담가서 불립니다. 콩껍질이 물에 뜨면 여러번 씻어서 콩껍질을 건져서 버립니다. 그리고 우묵한 냄비에 콩을 넣고, 물을 콩이 잠기게 붓고 중불로 끓입니다. 물이 끓으면 콩을 한술 떠서 익었나 맛을 봅니다. 익었으면 믹서기에 콩과 통깨와 물을 넣고 갈아요. 큰 냉면 대접에 삶은 국수를 넣고, 콩국물을 주걱으로 떠서 넉넉하게 붓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그위에 삶은 달걀 반쪽을 얹고, 오이채를 얹고, 딸기를 반쪽으로 썰어서 꽃 모양을 만들어서 얹어서 먹으면 모양도 화려하고 고소해서 입맛이 당겨요. 내일 해먹기로 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