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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56) Korean Satire & Humor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7 풍자와 해학의 정신: '강남 스타일' '기생충'과 마가렛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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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으로써 죽인다. 인간만이 이 세상에서 너무나 극심하게 고통을 겪기 때문에 웃음을 발명해야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권력에의 의지(The Will to Power, 1988)-


한국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TV 프로그램이 안방을 장악했던 시절이 있었다. 1969년 MBC-TV에서 방영되기 시작, 1985년에 종영됐다가 1992년 부활, 2년 후 다시 종영, 그리고 2005년 7개월간 방영됐던 전설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1970년대 독재 정권 하에서 구봉서, 배삼룡, 백남봉, 서영춘,곽규석, 이기동, 송해, 남보원, 남철, 남성남, 양훈, 양석천, 배연정, 배일집 등 당대의 코미디언들은 한국인들에게 웃음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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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소재가 금지됐던 시대 이야깃 감은 일상 생활에서 찾았다. 거지왕초가 부하들에게 부잣집의 생일, 제사, 혼인 날짜를 알려주는 '위대한 유산', 상놈끼리 양반으로 속이며 혼인하는 계략을 꾸미는 '양반 인사법' 등 빈부격차와 서민의 심리를 대변한 에피소드가 인기를 누렸다. 한국인들은 그 어두운 시절을 웃음이라는 만병통치약으로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6년 작고한 구봉서씨는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웃음이 깔려 있는데, 그걸 딱 제치면 거기서 슬픔이 나와야 해요. 코미디가 그런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은 때때로 그 사람의 깊은 슬픔을 가리는 가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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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諷刺, satire)와 해학(諧謔, humor)은 우리 민족의 DNA다. 한민족은 오래 전부터 예술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도덕적 모순을 가차없이 풍자해왔다. 억눌림을 인내하면서 쌓인 슬픔인 한(恨)을 복수로 대응하지 않고, 그로부터 흥(興)으로 풀어내서 춤과 노래로 신명나게 대중과 소통해왔다. 탈춤(가면극), 판소리, 그리고 풍속화와 민화는 각각 무용, 음악 및 미술이라는 장르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유머를 담은 예술이다. 속담과 수수께끼 역시 한민족의 지혜와 유머, 한국어의 기교가 어우러진 구비문학의 일종이다.  


한국인은 한의 민족이자, 흥의 민족이다. 그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바로 오늘의 한류(Korean Wave)를 일으킨 원동력이 아닐까? 



#싸이와 '강남 스타일'의 풍자와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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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흑인음악 소울(soul)이나 블루스(blues)엔 슬픔이 깔려 있다. 현대의 흑인음악 힙합(hip-hop)에선 분노가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한국인들은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풍자와 해학으로 트위스트하는 재능이 탁월한 것 같다.


2012년 싸이(Psy)의 노래 '강남 스타일(Gangnam Style)'이 지구촌을 뒤흔들며 K-Pop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강남 스타일'은 11월 20일 현재 총 유튜브 조회수(7,439,317,666 views)로 역사상 최다 조회 뮤직비디오 7위를 기록하고 있다. https://influencermarketinghub.com/most-viewed-youtube-videos/


뮤직 비디오에서 선글래스에 나비 넥타이 정장 차림의 싸이는 "오빤 강남 스타일!" 외치면서 노래를 한다. '강남'은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로망의 거주지일 것이다. 뉴욕으로 치면 어퍼이스트사이드, LA의 비버리힐즈다. 강남 문화에 속하고 싶은 남자 싸이는 멋진 신사의 차림새이지만, 그의 행동은 유치하다. 그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선탠하고, 지하철에서 여자를 꼬시고, 관광버스 안에서 광란의 춤을 추고, 조폭같은 이들과 사우나를 즐기며, 변기에 처량하게 앉아있다. 싸이는 '강남 스타일'을 열망하는 '워너비'지만, 강남에 소속될 수 없는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다. '강남 스타일'은 21세기의 서울 남자를 커리커쳐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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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2012년 NBC-TV의 '엘렌 쇼(Ellen Show)'에 출연했을 때 홍보 포스터에는 "Dress Classy, Dance Cheesy"(옷은 부티나게 입고, 춤은 싼티나게 추다)"라는 문구로 소개했다. 싸이는 신사복을 입고 품위를 지키려 하지만, 가난한 방랑자에 불과했던 무성영화 속의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강남 스타일'의 싸이는 신사복과 허세라는 가면/탈을 쓴 한국남자로 말춤을 추면서 한국의 현실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탈춤의 전통을 잇는 셈이다.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양반의 하인 말뚝이도 마부였다. 말뚝이는 타락한 양반의 부패, 무능력, 허세를 고발하며, 풍자하고, 조롱한다. 이로써 민중들에게 정신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탈춤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대립은 메인 테마다. 


'강남 스타일'은 그저 웃기는 뮤직 비디오가 아니라 강남의 과시적인 소비문화를 풍자했다. 강남 부자처럼 살고 싶은 허풍선이 한국 남자의 백일몽인 셈이다. 싸이는 돈, 직위, 과소비에 중독된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대신 풍자와 해학정신으로 무장, 현대의 채플린처럼 자조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출했다. 그리고, 기마민족의 후예답게 기발한 말춤과 최면적이며 중독적인 리듬을 입혔다. 그는 심각한 사회문제인 빈부격차와 소비문화라는 소재를 슬랩스틱 코미디, 커리커쳐, 블랙 유머와 말춤이라는 흥의 놀이로 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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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뮤직 비디오 '강남 스타일'은 전 세계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K-Pop의 포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싸이와 '강남 스타일'은 한류의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K-Pop에서 K-Phone, K-Food까지 뭐든지 '한국적인 것(Things Korean)'은 쿨한 문화상품으로 인기를 누리게 됐다. 그리고, 서울의 강남을 한국의 새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2012년 12월 당시 런던시장이었던 현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데일리 텔리그래프(Daily Telegraph)에 기고한 칼럼 'How Gangnam Style and Fifty Shades gave culture a spanking'에서 '강남 스타일'은 2012년 "위대한 문화적 걸작(the greatest cultural masterpiece of 2012)"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https://www.telegraph.co.uk/comment/columnists/borisjohnson/9764197/How-Gangnam-Style-and-Fifty-Shades-gave-culture-a-spanking.html



#봉준호와 '기생충'의 블랙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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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출신 봉준호(Bong Joon-ho) 감독의 영화엔 계급갈등, 탐욕 등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에 예리한 시각이 담겨 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상 4관왕(작품, 감독, 각본, 국제극영화상)에 빛나는 '기생충(Parasite)'은 비극이지만, 전반적으로 유머가 넘치는 블랙 코미디다. '기생충'은 그의 전작 '설국열차(Snowpiercer)처럼 상류층과 하류층의 계급갈등을 그렸다.


'기생충'이 반지하, 언덕 위의 저택, 그 지하의 방공호라는 수직적 공간에서 계층을 보여준 '계단의 영화'라면, '설국열차'는 머리(엔진) 칸에서 꼬리 칸까지 계급에 따라 거주지가 수평적으로 매겨지는 '기차칸의 영화'다. 객차와 객차 사이는 단절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르조아 계급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선이 분명하다. '기생충'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그 선을 넘었을 때의 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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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의 사회계급은 등장인물들의 주거환경과 직업 뿐만 아니라 냄새로 결정지워 진다. 김씨 아들 기우가 대학생으로 위장해 박사장 딸의 가정교사로 들어간 후 백수였던 온가족이 줄줄이 박사장네로 취업하게 된다. 딸 기정은 유학파 미술 치료사로, 아버지 기택은 운전기사로, 엄마 충숙은 가정부로 채용된다. 이 사기꾼 가족은 신분위장으로 보이지 않는 가면(탈)을 쓰고, 박사장네 저택을 마당 삼아 역할극을 펼치게 된다. 


김씨 가족은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저택에서 한바탕 파티를 벌인다. 갑자기 번개와 폭우 속에서 가정부 문광이 찾아오면서 하층 계급간의 몸싸움과 협박전이 벌어지고, 지하 방공호의 비밀이 드러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박사장 아들 다송의 생일파티다. 이날 기택은 상황극에서 악당 인디언으로 분장한다. 추장 모자를 쓴 기택에겐 또 하나의 가면인 셈이다. 정원에선 파티가 열리고, 지하 방공호에서는 다시 혈투가 펼쳐진다. 방공호의 근세가 정원에 출현, 파티는 아비규환이 된다. 박사장이 근세의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자 기택은 식칼을 들고 박사장에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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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장은  "나는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라고 말한다. 부르조아 계급은 기득권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프롤레타리아는 계층상승을 위해 선을 넘겨 본다. 김씨 가족은 속임수 취업으로 박사장네 저택이라는 물리적인 선을 넘는데 성공했다. 박사장 가족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계급을 상징하는 냄새는 선을 넘나드는 것을 박사장 아들 다송이 처음 눈치했다. 하층계급 정체성의 일부인 냄새에는 가면을 씌울 수 없다. 기택은 악취(반지하 냄새, 방공호 냄새)가 조롱되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인디언 추장 모자를 쓰고. 이 장면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선(line)'을 넘나드는 김씨 가족으로 인해 관객은 긴장과 스릴감의 묘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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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화 중 한편은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시나리오, 조셉 로지(Joseph Losey) 감독의 스릴러 '하인(The Servant, 1963)'이다. 계급사회인 역국의 한 저택에서 하인(더크 보가드 분)은 주인(제임스 폭스)와의 관계를 역전시키며, 주인은 유아적으로 퇴행한다. 한편, '기생충'에서 계급갈등은 가족 대항전이며, 다크 유머가 가미된 블랙 코미디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Sergey Eisenstein 감독의 '전함 포템킨(Battleship Potempkin, 1925)'은 1905년 실화를 담았다. 러시아 흑해에 떠 있는 전함 포템킨에서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키게된 계기는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썩은 고기로 만든 수프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김씨가 박사장 아들의 생일 파티에서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배경은 박사장이 근세의 냄새를 역겨워하는 표정에 모멸감과 분노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살인의 동기가 하층계급의 냄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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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코믹한 상황들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다. 영화 첫 장면은 반지하에 사는 기우와 기정이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 절박하게 집안을 헤매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마침내 이들은 변기 위에서 와이파이를 잡는다. 기우는 기정을 취직시키려고 이력을 꾸며댄다. 기정은 박사장 저택 문 앞에서 정광태의 가요 '독도는 우리 땅'에 가사를 바꾼 노래로 암기한다. "제시카는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니 사촌~" 이 패러디곡은 '제시카 징글(Jessica's Jingle/ Jessica Song)'로 회자됐다.  아버지 기택은 가정부 문광을 몰아내고, 부인 충숙을 취업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박사장 부인 연교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문광을 결핵 환자라고 거짓 보고를 한다. 이를 위해 딸 기정은 복숭아에 노출시키며, 내프킨에 핫소스을 묻혀 문광이 피를 토한 것처럼 조작한다. 이들의 선을 넘은 위대한 속임수는 결국 정원의 즐거운 생일 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비극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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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뉴욕영화제에서 '기생충' 상영회 후 감독 스탭과의 토론회에서는 기정 역의 배우 박소담이 복숭아 바구니를 들고 나와 관객에 나누어주는 유머러스한 풍경이 펼쳐져 웃음을 자아냈다. 올 2월 9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소감 역시 유머가 넘쳤다.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등분해서 (다른 후보 감독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실 준비가 됐습니다"같은 소감은 이전 줄줄이 감사해야할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던 영화 아카데미 회원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코리안 블랙 유머였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인성과 재치까지 최고봉임을 입증한 시상식이었다. 




#마가렛 조: 미 스탠드업 코미디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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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음악 전문지 '빌보드(Billboard)'는 2015년 9월 한국계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가렛 조(Margaret Cho, 한국이름 조모란)와의 인터뷰 기사 '마가렛 조 과거의 성적 학대에 깊이 들어가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 자신의 고통에 대한 소유권이다(Margaret Cho Gets Deep About Past Sexual Abuse: 'All I Have Is Ownership of My Own Suffering)'를 실었다.


다니엘 바처(Danielle Bacher) 기자는 이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난 유명한 코미디언과 몇 시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웃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대신 나는 눈물과 싸우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태생의 코미디언이자 뮤지션 마가렛 조가 이 칼럼을 위해 우리의 '광란의 밤' 대부분을 왜 왕따 경험, 성적 학대 및 소녀시절 강간 이야기로 소진하기로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마가렛 조가 그토록 웃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작업에서 유머는 깊게 들어앉은 고통을 다루면서 오는 것이다."


마가렛 조는 기자에게 자신이 5살때부터 12살 때까지 삼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그 사람과 오랜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너무 어려서 학대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대부분 혼자 있었기 때문에 늘 참았다고 말했다. 14살 때는 또 다른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지속적으로 발생했지만 어떻게 중단해야하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마가렛 조는 자신이 성적으로 너무나 많이 학대받으며 자라서 그 분노심을 버리거나, 용서하는 것, 당시 일에 대해 이해하는 것 모두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가족도 가해자를 알고 있었지만, 한국사회에서 성학대를 입에 올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며, 금기시됐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안 이민자와 동성애가 많은 도시다. 고등학교 시절 마가렛 조는 급우에게 성폭행 경험을 말하게 됐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네가 그렇게 못생겼고, 뚱뚱한데 너를 강간한 사람이 미친거야"라며 놀려댔다. 어느 영어교사는 일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보라고 격려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의존했던 교사는 나중에 사망했다. 아이들은 선생이 "동성연애자라서 살해됐다"고 말하고 다녔다. 마가렛 조는 이 두 사건으로 잔인한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서 학교를 기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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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조의 아버지 조승훈씨는 한국 신문에 칼럼을 기고한 유머작가였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서점(Paperback Traffic)을 운영했다. 그녀는 아빠 서점 옆의 코미디 클럽을 드나들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다. 코미디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한 후엔 밥 호프쇼에 초대되고, 제리 사인펠드의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 전국 대학가를 돌며 공연하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여성은 물론, 아시안이 드문 코미디계에서 마가렛 조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4년 미코미디상(American Comedy Awards) 최우수 여성 코미디언상(Funniest Female Stand-Up Comic)까지 거머쥐었다. 그해 영화계 남우주연상은 '미씨즈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 여우주연상은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멕 라이언이 수상했다. 


 “명석하며, 도를 넘어서는, 미국에서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 중의 한명. 눈물이 얼굴로 흘러내릴 때까지 웃었다.” -뉴욕타임스-

 “…누구든 한번쯤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던 이들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 -워싱턴 포스트-

“코미디계의 가장 두려움이 없는 수퍼 히어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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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ABC-TV에선 시트콤 '올-아메리칸 걸(All-American Girl)'을 기획했고, 마가렛 조가 주연 마가렛 김역으로 캐스팅됐다. 미 네트워크사 최초로 아시안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으로 방송사의 역사를 새로 쓰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작 중 프로듀서들은 마가렛 조의 과체중과 크고 동그란 얼굴에 대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에 마가렛 조는 2주간 급격한 다이어트에 들어가 30파운드를 줄였다. 부작용으로 신부전증이 찾아왔다. 


시트콤이 방영된 후엔 한인사회로부터 돌을 맞았다. 한인들은 "더럽고, 뚱뚱하며, 못생긴 여자가 한인들을 왜곡한다"며 비난했다. 제작진은 "너무 아시아적이다", 아시아계 시청자들은 "아시아적이지 않다"며 양쪽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결국 '올 아메리칸 걸'은 낮은 시청률에 허덕이다가 1시즌(19회) 방영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의 충격으로 마가렛 조는 약물과 알콜 중독, 무절제한 섹스에 빠지고, 정신치료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1999년 그녀는 기나긴 어둠의 수렁에서 벗어났다. 자전적 코미디쇼와 자서전 '나는 내가 원하는 나(I'm the One That I Want)'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타인이 원하는 마가렛 조가 아니라 자신 그대로의 삶을 추구하는 마가렛 조로 무대에 복귀했다. 미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부모와 정치인에서 인종차별, 동성애 등까지 무한한 스펙트럼을 소재로 웃음을 선사하면서. 마가렛 조는 미 스탠드업 코미디계의 수퍼스타덤에 올랐다.  


마가렛 조는 TV 브라운관 최초의 아시아계 주연 배우였다. '올 아메리칸 걸'이 방영된 지 10년 후인 2004년 김윤진, 다니엘 대 김의 '로스트(Lost)', 2005년엔 산드라 오가 출연한 의학 드라마 '그레이즈 아나토미(Grey's Anatomy)'가 나왔다. 선구자였던 마가렛 조의 첫 출연은 험난했지만,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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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왕따 체험과 성적 학대, 그리고 방송사의 인종차별과 이중잣대 등 트라우마를  코미디와 노래로 치유해왔다. 2015년 여름 마가렛 조가 녹음한 곡은 "I Want to Kill My Rapist"였다.  “I thought I forgave you, but I’d mistake you. I’ll shake you and I’ll bake you. You better run now while I’m having fun now. Here comes the sun now, and you’ll be done now. I see clearly and sincerely, you’ll pay dearly…”


코미디언 마가렛 조에게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자신의 아버지상이었던 코미디 배우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 1951-2014)의 죽음이었다. 윌리엄스는 목매 자살했다. 마가렛 조는 오랫동안 우울증에 빠졌다가 윌리엄스를 애도하는 노래 'Funny Man'을 레코드에 포함했다.  


마가렛 조는 백인, 남성들이 장악했던 코미디계의 유리천장을 깬 아시안 여성이었다. 코리안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도 부수었다. 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恨)과 트라우마를 웃음과 유머,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한민족의 유전자를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닐까? 유머작가였던 아버지 조승훈씨의 대를 이어 '부전여전(父傳女傳)'으로 웃음을 선사해온 셈이다. <계속>



*'스탠드업 코미디의 여왕' 마가렛 조 인터뷰 

http://www.nyculturebeat.com/?mid=People&document_srl=3056794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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