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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19.05.12 21:03

(414) 스테파니 S. 리: 아이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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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41) 남김의 미학


아이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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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Thoughts – Part I. Tigers | 2019 | Stephanie S. Lee | Color pigment and ink on Hanji | 5”x5” each


전시 준비들이 겹쳐 정신없이 보내느라 무리를 했는지 코앞에 휴가일을 앞두고 목이 따갑기 시작하더니 몸살이 나 앓아누워버렸다. 아이 봄방학에 맞춰 전부터 가보고 싶던 Cape May에 가려고 모처럼 3박 4일의 여행계획을 짜두었는데 …몸이 아프니 꼼짝없이 쉴 수 밖에. 아프면 이렇게 어쩔수 없이 정지 상태가 된다. 마음만 서둘러 바삐 앞설때 가끔 몸이 억지로라도 쉬라고 신호를 보내나보다. 


다행히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네 가족이랑 같이 가기로 한 여행이라 내가 없어도 놀아줄 친구들이 있을테니 아이와 남의 편을 안심하고 보내고 나는 집에 남기로 했다. 엄마가 같이 못간다 하니 처음엔 잠시 훌쩍거리며 흔들리더니, 아이는 이내 잊고 여행갈 생각에 들떠 수영복을 챙기며 마냥 신나한다. 


떠나는 날 아침, 침대맡으로 몇번 와서 안아주긴 했지만 차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쪼르르 뛰어 쫒아 나가는 모습에 살짝 서운했다. 하지만 이때 까지만 해도 ‘뭐 여행은 못갔지만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거니 밀린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영화도 실컷보며 푹 쉬면 되지’ 하며 내심 오랜만에 자유시간이 생겨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떠나니 몸상태도 악화되고 마음까지세상 끝난것 처럼 허전하고 우울해 지기 시작해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자고깨기만 반복하는 사흘밤낮을 보내고말았다.


아홉살이나 되어서도 아직 내 옆에서 잔다며 아이 때문에 만성 수면부족이라고 투덜댔는데 침대가 넓어졌어도 영 잠자리가 불편해 잠이 오질 않는다. 아무리 오래 누워있어도 썰렁한 침대가 데워지지 않아 전기담요를 꺼내 틀었다. 아이가 나한테 너무 기대서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아이한테 더 많이 의지하고 지냈나 보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늘 나만 찾는 것 같아 벗어나고 싶고, 폭발할 것 같을때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언제나 자는 아이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일어나서 제일 먼저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것도 나였다. 아이만 다 키우고 나면 내 인생은 더 없이 자유로워질것이라 믿었는데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다.  


여행 중간중간에 실시간으로 잘 놀고있는 사진들을 보내주어 잘 보긴 했지만 모처럼 떠난 여행, 집에 있는 엄마는 잊고 씩씩하게 잘 놀기를 빌었다가, 또 너무 잘 노는 모습을 보면 서운하기도 하다가, 간간히 엄마가 보고싶다고 걱정하며 보낸 문자를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가… 몸이 아파 그런지 좋았다 서러웠다 양가감정들이 요동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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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Thoughts – Part I. Tigers (Details) | 2019 | Stephanie S. Lee | Color pigment and ink on Hanji | 5”x5” each


나 예전에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았는데 왜이런걸까. 며칠 잠깐 떨어져 있는게 뭐라고 그새 말로만 듣던 ‘빈 둥지 증후군’ 을 겪은것 같다. 곧 아이는 사춘기를 맞아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잦을 테고, 성인이 되면 완전히 독립할텐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서른넘도록 혼자이던 몸에서 아이를 낳아 둘이 되었을때도 적응하기가 그리 힘들더니, 다시 둘에서 하나가 되는것도 만만치 않겠구나... 지금보다 더 나이 들었을때 아이가 떠나고 나면 그 헛헛함을 어찌 하려나 싶은 생각에 덜컥 무서운 마음마저 든다.  


‘남김의 미학’ 이란 책에서  “자식사랑도 모든걸 다 바치지 말고 좀 남기라” 하더니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모든걸 다 바쳐 사랑해 주지도 못한것 같지만, 제 자식을 두고 조금 덜 사랑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는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하지만 사람은 무릇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이지 않을까. 아무리 자식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은 이렇듯 흔들리게 마련인것을. 끙끙 앓는 와중에 문득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때도 내가 굳건하려면 아이가 ‘나의 전부’나 ‘나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이가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듯이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위해 살아야 한다. 


아프면 몸은 괴롭지만 어쩔수 없는 휴식을 통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삶을 다시 돌아볼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몸이 아파봐야 비로소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고, 그로인해 유한한 삶을 돌아보기도하고 심신이 다소 정화되기도, 더불어 삶에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다시 생기는 것 같다. 


사흘이 아니라 삼년같던 둘에서 하나되는 예행연습이 무사히 지나니 여행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 하며 뛰어온다. 햇님같은 아이가 들어오자 비로소 집안에 온기가 돈다. 아이가 없을때 그려야지… 했던 그림도 결국 아이가 돌아오고나서야 완성되었다. 아이때문에 작업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아이 덕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나보다. 앞으로는 태양이 없어도 돌아갈 수 있도록 미리미리 자가 발전소를 만들어 놓아야지겠다. 오래오래 그렇게 무너지지 않고 햇님 옆에 맴돌고 있으려면.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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