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3.04.10 20:05

(668) 이수임: 세금 보고 가족 데이트

조회 수 73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35) 연례 행사 

 

세금 보고 가족 데이트 

 

Thanks, 2003, acrylic on woodblock, 14 x 11.25 in.JPG

Sooim Lee, Thanks, 2003, acrylic on woodblock, 14 x 11.25 in

 

매년 이맘 때 세금보고하는 날은 우리 이산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지난 주 우리 가족은 회계 사무실로 갔다. 약속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왔다. 

“엄마는 왜 항상 일찍 와요? 할아버지가 엄마 어릴 적부터 약속 시간 보다 일찍 가라고 해서에요.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큰아들이 구시렁거렸다.

“습관이기도 하지만, 실은 더 큰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너희는 아니?”

두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내가 묻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너희 둘 얼굴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고.”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아이들은 조용했다. 나는 길 건너 던킨도너츠에 들어가 약속 시간까지 이야기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돈 벌랴. 여행하랴. 데이트하랴. 운동하랴. 파티에 갈랴. 나는 젊고 바쁜 아이들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내가 전화하지 않으니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 지난번 통화에서 아들이 한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은 부모가 전화해서 아프다. 돈 보내라. 뭐 사달라고 해서 전화 받지 않아요. 그런데 엄마는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에구머니나! 조심하라는 충고인가? 앞으로는 더욱 신경 써서 잔소리하면 안 되겠구나!

 

일 년에 한 번 연례행사로 택스 보고하러 회계사 사무실에 함께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만나자고도 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우리 세금 보고를 꼼꼼히 해주시고 연락하면 빠른 답변 친절하게 해주시는 회계사와 사무실 직원들을 아이들도 좋아한다. 성실하신 회계사님 덕분에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아이들과 오래 있고 싶어서 회계사 만나러 가는 날은 더욱 서두른다.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흥분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뒷좌석에서 자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짓곤 했다. 지금은 반대로 작은 아이가 운전하면 큰아이는 옆에서 가는 곳을 입력해주고 뒤돌아보며 불편한 것 없냐고 묻는다. 차에서 내릴 때면 손을 잡아주고 길에서 걸을 때도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말 잘 들으며 따라다닌다.  

 

회계사 사무실에서 나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한국 장에 간다. 물론 회계 비용도 점심값도 애들 장 본 것도 남편이 지불한다. 바쁜 아이들과 잘 지내려면 무조건 물심양면 다 해주면서도 바라지 않고 그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식에게 요구하지 않고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 줄 아냐.”

말씀하셨던 친정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대로 나는 따르고 있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그 깊은 속 마음을.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
  • sukie 2023.04.15 16:22
    이수임 작가를 컬빗에서 또 만나게돼서 반갑습니다. 세금 보고 가족 데이트를 읽었습니다. 솔직하고 꾸밈없는 표현에 마음에 울림을 받았습니다. 아주 평범한 글 같지만 저는 이 글속에서 깊은 모성애를 느꼈습니다. 자식들과 조금이라도 오래있고싶어서 약속시간보다 일찍나가서 기다리는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드시 미우나 고우나 자식을 향한 에미의 마음은 끝이 없습니다. 아들들과 좀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모정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모성애는 전투에 임하려고 준비되어 있는 전투병과 같이 자식에게 무엇이고 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다음달 초순에 아이들과 데이트가 있는데 지금부터 무얼줄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