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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3.07.23 13:14

(680) 이수임: 운수 좋은 날

조회 수 68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38) 만약에... 

 

운수 좋은 날

 

lee.JPG

Soo Im Lee, a beach dog, 2000, acrylic on woodblock, 11 x 11 in.

 

 

걸어갈 수 있는 길만을 고집하는 나로서는 강 건너 뉴저지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집을 꾹 누르고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뉴저지’라며 전날 밤부터 나를 다독였다.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입은 남자가 써브웨이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코비드 불라 불라. 차이나로 돌아가.”

 

외친다. 재수가 나쁘면 이 남자에게 얻어터져 난 오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두려웠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기면 그의 시선을 더 끌어 악화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림자처럼 그냥 그대로 숨죽여 앉아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도 꽤 있다. 조금은 안심이지만, 내가 얻어터질 때 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들 전화기나 들이댈 것이다. 

 

한동안 나를 향해 욕하던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려는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엄마, 위험한 느낌이 들면 도망가요. 엄마는 작고 약해 보여 타깃이 되기 쉬워요. 무조건 뛰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평소에 아이들의 잔소리가 나를 벌떡 일으켰다. 그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급히 갔다. 그는 자리에 도로 앉더니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멈추지 않고 쉰 목소리 떠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른 척 조용하다.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그와 나를 보는 듯 즐기는 분위기다. 지하철이 멈췄다. 후다닥 빠져나왔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늙은 내가 사라진다면 남편은 젊은 여자 만나 흥미진진한 삶을 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낡은 차 폐차시키고 새 차로 갈아탄 느낌이겠지? 아이들도 잠시 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를 잊을 것이다.   

 

인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오늘 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집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지킬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내 자리를 누군가 차지할 수 있다. 내 사후의 일을 누가 어떻게 결정해도 죽은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 그런 여자가 존재했었냐며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나 없이도.

 

누군가는 이 여자 우울증 걸렸나 하겠지만, 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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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3.08.01 09:44
    이수임 화가의 '운수 좋은 날'을 동감하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쉽게 부담없이 매사를 어쩜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수필은 이런 글이 아닐까요? 코로나 때문에 우리 동양인이 알게 모르게 당한 수모를 이수임 작가는 부담스럽지않게 부드럽게 슬쩍 넘어간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내가 없어봐라고 큰소리 쳤던 내가 생각납니다. 내가 없어봤자 그들은 잘 지내고있고 잘먹고 있음을 콕 집어서 써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나는 내가 지켜야한다는 사실을 또 알았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