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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 홍영혜: 마음이 짠한 날, 스웨덴 사탕가게 봉봉(BonBon)에 가다
빨간 등대 (62) 씁쓸한 세상, 달콤한 캔디
마음이 짠한 날, 스웨덴 사탕가게 봉봉(BonBon)에 가다
Sue Cho, “Swedish Candy Co.”, 2023, Sept. Digital Painting
오늘은 문득 딸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시카고에 사는 딸이 뭇국이 먹고 싶다고 어떻게 끓이는지 물어보는데…마음이 짠하다. 전화를 해보니 무만 사다 놓고 바빠서 주말에 끓인다고 한다. 내가 왜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고 하고 후회되는 날들이 있다. 가족들이 다 흩어져 살아서 곁에서 뭇국 하나 끓여 줄 수 없는 오늘 같은 날이다. 산책하러 공원에 가는 대신 오늘은 나도 모르게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있는 스웨디시 캔디샵 봉봉(BonBon-A Swedish Candy Co, 130 Allen St.)으로 발길이 향한다. https://bonbonnyc.com
지난 여름 시카고에 가기 전 딸에게 “뉴욕에서 뭘 사다 줄까?” 하니, 봉봉 캔디샵에서 “sweet and sour gummy”를 사다 달라고 해서 의외였다. 에싸아베이글(Ess-a-Bagel) 1박스를 주문할 줄 알았는데… 내가 결코 가볼 일이 없을 것 같았던 봉봉에 버스를 타고 갔었다. 밖에서 보아도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하여 눈에 띄었다. 1백여년 전 이민노동자들의 아파트를 보존한 테너먼트뮤지엄 (Tenement Museum, 97 Orchard St.)에서도 멀지 않았다.
딸이 주문한 달콤새콤한 캔디를 쉽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초콜렛, 리코리스, 아이스크림 섹션 다음으로 “달콤 새콤한 캔디” 섹션에 수십가지가 진열되었다. 단것을 즐기지 않는 나는 무얼 고를지 압도되었다. 분홍색 종이 봉투에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섞어 담을 수가 있었다. 물고기 모양, 콜라 모양, 신발 모양, 심지어 이빨과 잇몸 모양까지… 조금씩 담아도 한이 없었다. 마침 가게에는 손님이 나 혼자여서 어여쁜 스웨디시 점원이 도와주었다.
제일 인기 있는 달콤새콤한 거미(gummy)가 무어냐 물어보니 Pinky skull (분홍색 해골)이라고 한다. 하필 해골이라니… 유리병에 특별히 담겨 있었다. 새콤하고 질감도 부드럽고 맛있었다. 그 옆에 병에는 여기서 제일 신맛이 나는 캔디라고 하나 꺼내 주었다. 얼굴에 신맛이 가득 진저리를 치는 점원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나한테는 견딜만했는데 너무 질겨 씹기가 쉽지 않았다. 분홍색 해골을 종이 봉투에 수북이 담아 딸의 생일선물로 가져다주었다. 토요일에만 먹으라고 당부하면서.
캔디들은 다 스웨덴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스웨덴 사람들이 캔디 소비국 1위라는 것이 놀랍다. 매년 일 인당 평균 16 kg을 소비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주중에는 캔디를 먹을 수 없고 토요일에 Pick and Mix 코너에서 캔디를 사서 마음대로 먹는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1950년대부터 아이들의 치아 건강을 위해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 사탕을 먹는것을 의료당국이 권장했는데 그때부터 '러닥스고디스 (Lördagsgodis/ Saturday candy)' 전통이 계속된다고 한다.
My favorites: Pinky skull 과 Sorbisar
오늘은 딸 생각도 나고, 할로인도 가까워지니 Pinky skull도 살 겸, 천천히 걸어서 봉봉으로 갔다.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고 하는데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집으로 가려던 참에 가게 앞에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으니, 여기 점원 소피 (Sophie)인데 매니저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마치 나에게 캔디 가게를 설명해 주려 기다렸던 것처럼.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소피는 캔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단 것에는 단호하게 “No”를 하는 나에게 침을 꼴깍 삼키게 했다.
친절하고 열정적인 Sophie, 제일 좋아한다는 Sour shrimp candy 옆에서
소피는 매니저가 나오지 못하는지, 록 박스에서 열쇠를 찾아 바닥에 있는 열쇠 구멍에 넣어 힘겹게 실랑이하면서 문을 열었다. 셔터를 열고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마침내 문밖에 스웨덴 국기를 꽂고, 음악을 틀고 가게 열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기특하다.
그녀가 추천해준 캔디 중에 몇 가지를 먹어보았다. 대개는 맛이 이상해서 뱉어버린다는 물고기 리코리스를 도전의식이 발동해 먹어보았다. 뱉을 정도는 아니지만, 누가 이런 맛을 찾을까 의아했다. 나도 시험 삼아 다른 사람에게 먹여보려고 봉투에 두어 마리 담았다.
지난번에 먹어보곤 가끔 생각이 났던 분홍색 해골은 할로윈 즈음이라서 그런지 동이 나고 없었다. 대신 소피가 색다르다고 추천한 소비사(Sorbisar)를 먹어 보았다. 25센트 동전 크기만 한데, 반은, 리코리스(감초)고 반은 새콤한 래즈베리 향의 gummy에 설탕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다. 엄지와 검지에 쥐고 조금씩 뜯어 먹으면, 하얗게 뿌려진 설탕이 녹으면서 초콜렛색과 래즈베리 색이 반반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예술이다. 나한테는 좀 딱딱해서 씹기 어려운 게 흠이지만 재밌어서 소비사를 봉투에 담았다.
이렇게 봉봉에서 캔디의 쓴맛, 단맛, 신맛, 괴상한 맛을 경험하다 보니 나의 짠한 마음들이 어느덧 녹아내리는 것 같다.
캔디의 소비자가 아이들일 것 같았는데 의외로 어른들이 많다고 한다. 어렸을 때 먹어왔던 캔디들을 잊지 못하고 매일 그 캔디를 사러 온다고한다. Twizzlers(트위즐러), 고무줄처럼 질긴 게 무슨 맛이 있다고.
Sue Cho, “Gumball in the Jar”, 2023, Sept. Digital Painting/ “Gumball Machine – center of attraction”, 2023, Sept. Digital Painting
나에게는 이런 추억의 캔디가 무얼까?
깡통에 든 미제 참스사탕이다. 빨강, 자주, 초록, 오렌지의 순으로 먹고 하양, 노랑만이 남아 깡통에 딸그락거리던 참스 사탕. 미국 와서 친구 기숙사에서 참스 깡통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몇번 사먹은 기억이 난다. 아직도 아마존에서 이 캔디를 살 수 있다. Charms Sour Balls 12 oz 깡통에 Cherry, Raspberry, Lime, Orange, Lemon, Grape 맛이 65개 들어있다고.
소비사를 먹으면서 이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네 삶을 닮은 캔디이다. 반은 씁쓸하고 반은 달콤한(bittersweet).
홍영혜/가족 상담가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