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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22.10.01 21:20

(640) 이영주: 몬태나 예술의 성지 ‘티펫라이즈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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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62) Tippet Rise Art Center 

 

몬태나 예술의 성지 ‘티펫라이즈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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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erb’. 마크 디 수베로 작품/ 아트센터의 수문장 ‘Two Discs’

 

몬태나서 떠나기 이틀 전, 티펫라이즈 아트센터(Tippet Rise Art Center)에 가서 현악6중주(Sextet) 연주를 본 것은 완전 행운이었습니다. 현악 6중주가 제게는 처음이었습니다. 바이얼린 주자인 제니퍼가 딸들 틴에이저 시절, 매년 아스팬 여름음악제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라 반가웠고, 역시 바이얼리니스트인 한국인 케이시 역시 작년 빅스카이 음악제에 왔던 친구라며 막내가 소개해 주었습니다. 거대한 자연에서 수준 높은 정통클래식을 듣는 일은 흔한 경험은 아닙니다. 연주자들이 집중해서 열정적인 연주를 하는 모습은 뛰어난 하모니와 더불어 가슴 깊이 스며드는 감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티펫라이즈 아트센터는 2016년, 예술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캐시와 피터 할스테드 (Cathy & Peter Halstead) 부부가  몬태나 피시테일(Fishtail)의 1만2천 에이커 부지에 설립한 조각공원이자 예술공연장입니다. 그들은 16살 때 처음 만나 컬럼비아 대학과 NYU에서 함께 공부했다고 합니다. 캐시는 추상화가이며 피터는 시인이자 사진작가, 피아니스트 입니다. 그들은 넓은 자연 속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미술의 세계적 대가들을 초대해서 전시도 하고, 공연도 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을 마련한 것입니다.

 

1만2천 에이커는 우리 소시민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공간입니다. 수많은 구릉과 협곡과 광대한 초원 위에 펼쳐져 있는 티펫라이즈 아트센터는 뉴욕의 스톰킹 조각공원과는 규모의 차원이 다릅니다. 대형 조각작품들과 설치물이 대개는 1마일이나 1.5마일 간격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클래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연주회가 열리고, 지금도 2천 마리의 양과 5백 마리의 소가 생활하고 있는 목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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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6중주가 연주하던 오두막. 150명 정도 앉는다.

 

아트센터의 연주회는 7, 8, 9월, 석달 동안만 열립니다. 몬태나가 기후 관계로 눈이 많고, 겨울이 긴 까닭입니다. 공연은 주로 150석 규모의 ‘Olivier Music Barn’에서 열리지만, 조각작품 ‘Domo’나 ‘Tiara Acoustic Shell’에서 야외 연주회를 갖기도 합니다. 현악6중주 연주회날, 브람스곡은 이 티아라 어쿠스틱 쉘에서 했는데, 돌풍이 불자 첼로 케이스가 날라가고, 활로 현을 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드센 바람에 잠시 연주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야외 연주장이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드넓은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연주를 본다는 건 가슴이 떨리도록 낭만적이었는데, 이렇게 생각지 못한 돌발상황의 발생으로 동화적 환상이 깨어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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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samble Studio, The Domo/ 베토벤 퀄텟. 가운데 부분을 방맹이로 치면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칠 때마마다 다른 소리가 생성된다. 신기하다.

 

저는 조각작품 중에 앙상블 스튜디오 작품인 ‘Beartooth Portal’, ‘Domo’ 그리고 수베로(Mark di Suvero)의 ‘Beethoven’s Quartet’이 좋았습니다. 두오모 작품 밑에선 자주 연주회가 열립니다. 무대와 함께 130~140명의 청중이 앉을 수 있으니 작품의 크기를 유추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연주를 위해 음향 관계도 완벽히 갖춰 설계된 작품이어서 그저 경이롭기만 합니다. 베토벤 퀄텟은 방망이로 가운데 매달린 부분을 치면 그 소리가 자연의 반향과 어우러져 뭔가 특별했습니다. 손자 블루가 신나서 깍지발로 키를 늘려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두들겨댔습니다.

 

그러나 이 철골 구조물은 겨울의 강도 높은 바람에 붕괴될 위험이 있으므로 겨울엔 분해해서 실내에 보관한다고 한다고 합니다. 변화무쌍한 몬태나의 계절이 가늠됩니다. 몬태나는 여름에도 날씨가 추웠다 더웠다, 천둥번개에 대포같은 거센 비가 쏟아지다가 금방 해가 났다가, 다시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며 하늘이 성나다가 난리굿이니 그럴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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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 Dreams’ 안에 들어가면 작가가 다닌 초등학교 교실이 재현되어 있다./ Stephen Talasnik, Satellite #5: Pioneer, 2016 

 

Patric Dougherty의 ‘Day Dream’은 버드나무로 휘감긴 동화 속에 나올법한 미니 오막집입니다. 최근에 새로 더 외관의 설치 규모를 늘렸습니다. 여기는 그야말로 마치 동화나라 같아서 연주를 많이 합니다. 안에 들어가면 패트릭 어린 시절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해 놓은 작은 칠판과 책상, 의자가 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어 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에 다시 갔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한없이 넓었던 학교 운동장이 하도 작아서, 공부하던 책상과 걸상 또한 너무 작아서 낯설었습니다. 패트릭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이렇게 아련한가봅니다.

 

Alexander Calder의 작품도 2개나 있습니다. 그의 작품 ‘Two Discs’는 마치 수문장처럼 아트센터 입구에 우뚝 서있습니다. 칼도며 수베로 작품은 뉴욕 스톰킹 조각공원에도 있으므로 저로서는 티펫 아트센터가 낯설지 않고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와서 더 좋았습니다. 이곳에 스타인웨이 피아노만도 18대나 보유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동적인 사실은 자신들이 번 돈으로 몬태나에 또하나의 ‘스톰킹 조각공원’인 ‘티벳라이즈 아트센터’를 만든 캐시와 피터 할스테드 부부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사랑입니다. 아트센터는 완전히 자연친화와 환경주의에 의해서 지어졌으며 1만2천 에이커의 거대한 땅을 대형 조각과 설치물로 자연과 예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경이를 사람들에게 선물해줍니다. 자기가 이룬 재산을 살고 있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예술가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이 부부의 사회기여 철학과 가치관이 제게는 오히려 경이입니다. 참으로 우러러 보이고,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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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이자 오너인 피터 할스테드와 함께.

 

아트센터 음악회는 입장료가 단지 10불 입니다. 그런데 그 티켓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시즌 전에 신청해야만 살 수 있는데, 신청했다고 다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신청자들을 무작위로 추첨해서 당첨돼야 티켓을 살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 시즌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티켓은 4매가 한정입니다. 아트센터 입장은 무료이며 자전거를 타거나 아트센터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웹사이트에 들어가 신청하면 됩니다. 입구에서 티켓이나 신청한 거를 확인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세계적 연주자들의 연주를 단 10불에 보고, 예술작품 구경은 무료로 할 수 있는 곳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요? 자기 돈을 써가며 사람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미술과 음악을 즐기게 해주고, 자연의 무궁무진한 신비와 아름다움을 체험하며 사는 법을 보여주는 캐시와 피터부부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상상과 꿈의 세계와 미래를 위한 창조적  영감을 선물합니다. 

 

티펫 라이즈 아트센터가 처음 오픈했을 때, 아트센터는 안트리오를 주인공으로 ‘Three Sisters’라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안트리오가 아트센터에서 Pat Metheny 작곡의 ‘유령’을 연주하고, 아름다운 아트센터의 풍광을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입니다. 가끔씩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지는데, 오늘도 들어가 보아야겠습니다.  https://tippetri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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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전시된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 ‘Iron Tree’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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