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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이야기하는 붓
2014.05.06 22:23

(19) 김원숙: 아이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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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붓 (5)



아이 찾기



살다가 불현듯 어미가 되는 신기한 일도 있다.

입양아 둘을 결혼과 함께 얻게된 일. 일곱 살, 아홉 살의 두 한국 혼혈아 고아들이 나의 삶에 우선순위 일번이 되는, 내가 꿈꾸지 못했던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운명이 찾아왔었다.



5“My Children” ink and charcoal on paper 28x40 inches 1982.jpg

Wonsook Kim, “My Children” ink and charcoal on paper 28x40 inches 1982



여덟형제 대가족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온 나의 경험이었을까. 그저 이렇게 이쁜 얘들, 같이 밥 먹고 살면되는 거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내디딘 걸음이었다.


한국에서 수속 마치고 뉴욕으로 데려와서 학교 등록하러 가기 전 버스, 고양이, 나무 등의 읽기 정도는 한다는 걸 선생님께 보여 주려고 열심히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막상 교장 선생님이 내미는 그림책을 한 단어도 못 읽고 얼어붙은 아이는 다시 일학년으로 배정이 되었다. 왜 그랬냐니까 학교가 너무 크고 교장 선생님이 무서웠다고. 그래, 새 나라에 적응도 힘든데, 쉽게 따라가는 게 낫지 하며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 후 아이는 아침에 허둥대다가 점심 가방을 잊고 갔다. 내가 런치박스를 들고 학교 운동장 한쪽에서 같은 스토리의 엄마들 몇이랑 아이들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후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아이 얼굴이 전혀 생각 나지 않는 것이었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 어떻게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몰라보면 아이는 얼마나 슬프게될까. 그래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어붙어 한참 서있는데, 운동장 가득 뛰어다니는 얼굴들 사이에 그 아이가 환히 조명을 받은 듯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것이었다.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도 나를 보고 막 뛰어 왔다. “엄마, 미안. 헤헤… 미안, 고마워요” 하며 런치 박스를 뺏다시피 쥐어 들고 다시 아이들이랑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맨하탄 제일 북쪽 포트 워싱톤 동네, 학교 옆엔 허드슨강이 내다 보이는 큰 타이론 공원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날따라 더욱 찬란하게 느껴지는 공원을 걸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내가 엄마구나, 그 아이는 내 아들이구나 하는 별 이상한 다짐을 하였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나의 좋은 친구인 아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KWS-16-125.jpg 김원숙/화가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재학 중이던 1972년 도미해 일리노이주립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여인과 자연을 모티프로 여성으로서의 삶과 그리움, 신화적인 세계를 담아 세계에서 전시회를 열어온 인기 화가. 뉴욕과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을 오가며 살고 있으며, 2011년 '그림 선물-화가 김원숙의 이야기하는 붓'을 출간했다. 


*인터뷰: 왜 김원숙의 그림은 우리에게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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