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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20.08.31 13:48

(527) 홍영혜: Shall We Dance?

조회 수 867 댓글 1

빨간 등대 <31> 코로나 방구석 춤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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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Shake your Booty, 2020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주차장에 차를 찾으러 가는데 메렝게 (Merengue)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도 모르게 원투쓰리풔 파이브식스세븐에이트. 힙을 씰룩거리며 쿠반 모션을 연습하면서 걸어가는 게 아닌가?  티켓 창구에 있는 사람이 두 손으로 엄지 척을 하면서 활짝 웃는다. 

아니 이 주책? 낯선 나의 모습이 당황스럽다.

5개월 코로나 집콕 생활에  몸과 맘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나만의 막춤을 매일 추다 보니 경쾌한 리듬에 몸이 절로 흔들흔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삼선교 김진걸 무용소 문 앞까지 갔다가 안 들어가겠다고 버팅겨 그냥 집으로 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학교 대항 무용제가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거의 전교생이 참여하는 행사인데 막판까지 버티다가 배경 코러스같은 보라색 요정으로 출연했다. 나풀나풀한, 아랫 단이 갈기갈기한 보라색 의상이 맘에 들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얼룩무늬 꽃사슴 예쁜 꽃~사슴"하고 노래를 부르며 무릎을 왼쪽 오른쪽  번갈아 접으면서 한 무리의 요정들이 무대로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땐 매년 학년별 무용대회가 열렸었다. 구석진데 잘 안 보이는 뒷줄에 섰는데,  반장은 제일 앞줄에 서야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신조로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같은 의상을 입고 "오드마이 기브미샷 만냐만냐"로 시작되는 스위스 춤, 풍부한 감정과 유연한 몸짓으로 눈길을 끄는 친구 옆에서 막대기같이 뻣뻣한 내가 제일 앞 줄에서 무용을 해야 했으니…  어린 시절 춤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처럼 생생하게 각인이 되어 들쳐보고 싶지 않은 그림자인지 모르겠다.



너의 춤을 추고 삶의 주인이 되라


한국서 춤의 학교를 운영하는 최보결 선생이 뉴욕에서 힐링 춤 워크숍을 한 적이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는 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춤을 추라", "자신의 결점을 드러내면 오히려 자원이 된다", "제멋대로 춤을 추다 보면 누구나 삶의 주인이 된다"라는 말이 격려되었다.


처음으로 남에게 아름답게 보이려고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의 나의 춤을 한참 추고 나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간 몸에 고스란히 참고 견디었던 묵은 찌꺼기들을 털어낸 기분이랄까. 춤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없어지고, 사람들과 함께 유니온 스퀘어에서 평화의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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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결의 춤의 학교 뉴욕에 가다 <YouTube>

 

이 경험을 한 다음부터인가?  

워싱턴스퀘어 파크를 지나가는데 우연히 Dance For A Variable Population 그룹의 ‘Rival 3: It’s About Time’ 공연을 보게 되었다. 전문 무용가들과 섞여, 일반인들의 커뮤니티 댄스, 연장자들의 춤 공연이었다. 프로페셔날이 틀을 잡아주고, 일반인들의 서툴지만 진지한 몸짓이 사람들에게  “당신도 춤을 출 수 있어요” 라고 초대하는 것 같았다. 공연 전에 무료 워크샵이 있었는데  스스로 내 발로 무대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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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al 3: It’s About Time, Washington Square Park


Shake my Sillies out


코로나 집콕하는 동안 '1일 1털기 100일 프로젝트' 카톡방에  조인해  어제밤 드디어 100일을 털었다. 막대기 같던 내가 오징어처럼 부드러워졌다고 자랑을 했는데, 남편이 몰래 비디오를 찍었는데 여전히 막대기 같아 깔깔 웃었다.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만의 춤의 묘미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몸을 놀리다 보면 나의 상상 속에선 예쁜 시냇물을 건너는 요정도 되고,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비도 되고, 힘차게 날갯짓하는 새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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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 일춤 100일 Project 와 털기춤 <YouTube>



'Shake my Sillies out'라는 동요가 생각난다. 맘씨 좋은 털보 아저씨 같은 Raffi 의 콘서트 테이프에 담긴 노래인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신나게 율동을 따라했다. 털기 춤의 진수가 바로 이 동요에 고스란히  있었는데....


I've gotta shake, shake, shake my sillies out

Shake, shake, shake my sillies out

Shake, shake, shake my sillies out

And wiggle my waggles away

I've gotta clap, clap, clap my crazies out

Clap, clap, clap my crazies out

Clap, clap, clap my crazies out

And wiggle my waggles away

I've gotta jump, jump, jump my jiggles out

Jump, jump, jump my jiggles out

Jump, jump, jump my jiggles out

And wiggle my waggles aw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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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 My Sillies Out <YouTube>


내 몸에 귀를 기울이며

불안과 외로움과 슬픔이 사라질 때까지

아이들처럼 놀이하듯 

오늘도 털어본다.

 

*수 조(Sue Cho)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홍영혜100.jpg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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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9.02 22:31
    오늘은 춤 얘기네요. 컬빗이 새로운 소재를 올렸네요. 보라색, 빨강색, 파랑색의 원피스를 입고 손을 흔들면서 춤을 추는 그림이 멋집니다. 코로나만 아니면 저희 동네도 춤을 출 곳이 많은데 지금은 그곳들이 잠금 상태라 안타깝습니다. 로렌스 시니어센터에서 신나는 음악을 따라 추는 라인댄스며, 볼름댄스는 얼마나 재미있고 신이 나는지 몰라요. 파트너와 같이 추는 월츠, 블루스 등등은 더욱 더 재미있습니다. 시니어들에게는 타운쉽에서 전부 free로 해줘서 자기가 부지런만하면 얼마든지 건강관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젊어지고 싶다-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시니어 센터를 떠올리면 "아냐"하곤 합니다. 젊어서 이런 좋은 혜택을 못 누리면 어떡한담 하면서 고개를 젓습니다. 하루 빨리 시니어센터가 문을 활짝 열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홍영혜씨의 춤 얘기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