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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0.12.02 13:09

(541) 이수임: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조회 수 213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05) 만병통치약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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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전이다. 어제 저녁에 간단히 집어 먹은 김밥이 체했나 보다. 날이 훤하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갈텐데 어둡다. 나에게 산책은 만병통치약일뿐더러 혼돈 속에서 기쁨과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너무 일찍 공원에 갔다가 복면 마스크 강도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커피잔을 들고 이방저방을 서성이다 창가에 섰다. 건너편 건물 한 아파트 여섯 개 유리창 모두가 훤하다. 밤낮으로 사람 사는 흔적을 전혀 볼 수 없는데도 불은 항상 켜있다. 집주인이 깜박 잊고 코비드19를 피해 시골집으로 피신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니! 무척 궁금하다. 

 

내가 사는 콘도 같은 층에도 3월 중순에 떠났던 사람들이 9월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나, 바로 오른편 유닛에 사는 부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두툼한 옷을 가지러 왔는지 "밭에서 땄다"며 우리 집 문 앞에 사과 한 봉지를 놓고는 “또 올게. 몸조심해.” 쪽지를 남기고 다시 떠났다. 

 

날이 밝자마자 공원으로 부리나케 갔다. 서울 남산 산책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동양 여자가 내 앞에 걸어간다. 마스크, 장갑, 모자로 중무장했다. 한국 여자 특유의 걸음걸이로 부지런히 걷다가 길가에 핀 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언니가 왜 저기에?’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다가오는 기척에 얼른 피하듯 발걸음을 재촉해 멀리 가버렸다. 맙소사! 

 

한국을 떠난 지 40여 년이 흘렀건만 이따금 서울의 한 풍경 속에 있는 듯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갑자기 잔잔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동안 바이러스 핑계로 인간 접촉 없이 외딴섬에 갇힌 듯 고립된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헛것이 보였나 보다. 

 

노랑 잎들이 나를 반기듯 우수수 떨어진다. 고개 들어 우거진 숲을 올려다봤다. 온통 사방이 불 밝힌 듯 벌겋다. 바닥에 뒹구는 잎새 하나 집어 든다. 친구에게 빌린 책갈피에 넣어주어야겠다. 나무, 강, 다람쥐 그리고 비둘기들은 변함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자연이 건강하다면 곧 좋은 날이 오겠지? 

 

올해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마치 세상이 종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은 계속 돌고, 좋은 날은 온다. 희망을 품고 인내하면, 어느 날 우리는 세상이 끝나지 않았음을 자축할 것이다. 저기 고지가 보인다. 

 

살아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끈기있게 버틸 수 있는 능력은 선물이다.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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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12.06 21:27
    내가 좋아하는 이수임 작가님의 글이 올라왔네요. 기다리던 반가운 손님이 온 것같습니다. 읽을수록 공감이 가고 빠져듭니다. 저도 한국을 떠난지가 반세기가 가까워 옵니다. 어린시절 줄넘기하면서 뛰놀던 동무들이 그리울때도 있고 부모님 산소에 가서 꽃을 한아름 놓고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작가님 말씀대로 잔잔한 슬픔이 옵니다. "내 마음"이란 가곡이 떠올라서 울컥해집니다. 아침에 해가 떠서 밖이 밝아지면 저도 산책길에 오릅니다. '걸어서 행복찾기'를 시작합니다. 그 시간대에는 개를 끌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있어서 "Good Morning"하면서 서로 미소를 나눕니다. 어떤 복실 강아지는 나를 알아보고 팔딱팔딱 뛰면서 꼬리를 흔듭니다. 매일 보니까 동물도 친근감을 느끼나봅니다. 행복을 찾아야지 다짐을 하면서 걸으니까 엔돌핀이 생성됩니다. 도리도리를 하면 뇌가 좋아진다고 해서 도리도리도 하고 허리를 흔들면서 허리운동도 합니다. 가끔 발바닥을 탁탁 땅에 대고 치면서 발바닥 맛사지도 합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토해냅니다. 팔을 흔들면서 박수도 칩니다. 어느덧 공원 한바퀴를 다 돌아서 집어귀에 도달합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운 느낌이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집에 들어와서 내 애창곡인 윤용하 선생님이 작곡하신 "보리밭"을 부릅니다. 드디어 '걸어서 행복찾기'가 또 쌓입니다. 이수임 작가님의 글이 나의 걸어서 행복찾기에 박차를 가해줘서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