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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봉/Memory
2020.01.22 18:52

(456) 김호봉: 파랑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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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8> 영주권 드라마

파랑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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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파랑새는 없다. 굳이 찾는다면 우리맘에 있을 것이다.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희곡 '파랑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다. 틸틸과 미틸같은 아이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어른들에게도 한번 생각해보게하는 교훈이 담겨있다.


얼마 전 꽤 알려져있는 아티스트인 나의 대학 선배를 뉴저지 한식당에서 만나 지인들과 함께 저녁식사했다. 그 선배는 그 자리에 있는 나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인가?"를. 각자가 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믿음' '사랑' 그리고 난 '행복'이라 대답했다. 행복은 모든것을 다 치유할수 았다고 생각한다. 대학때 철학 시간에서 배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하는데 나에게 파랑새는 행복이라 이름짓고 싶다. 그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야할 대상이기도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듯하다. 


크리스찬이 자기 자신의 몸을 하나의 교회라고 하는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내맘 속에 있는 파랑새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난 행복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론적인 깨달음은 말로서 끝나기가 쉽다. 몸과 맘으로 깨닫는 시간이 오기까지는 말이다. 그 질문을 던진 그 선배는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삶에서의 무엇이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리마인드해준 셈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상처와 유혹에 시험받는 이런 자신을 감싸안으며 치유해줄 파랑새를 갈구하며, 그것을 찾아 현재의 부족하거나 목마른 부분을 채우려한다. 삶은 더군다나 자신이 바라지않은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런 말이 쉽사리 나오는건 아마도 이곳으로 유학온 후 20여년동안 내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고 부딪쳐서 상처받는 여러 경험을 한 그러한 상황이 있었으리라. 전혀 예상치못한 불가항력의 이러한 일들을 겪는 사람이 비단 나하나뿐이겠는가!


하나의 뼈아픈 에피소드를 소개해본다.

오래전 일이다. 우리 부부가 영주권을 신청한 후 나올 즈음에 나와야될 영주권은 안나오고 이민국에서 편지 한통이 왔는데 "네 추가서류를 보내야하는데 그 기간이 지났으니 영주권을 deny 시키겠다"는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다. 우린 분명 변호사를 사서 정상적으로 절차를 밟았는데 말도 안되는 편지가 온 것이니 황당하기도 하고 뭐라 표현이 안되는 답답한 상황이 급작스럽게 생긴 것이다. 변호사도 추가 서류를 내라는 이민국의 편지를 받은 적이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분명해야할 이민국의 허술한 행정이 이민자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해버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바로 우리에게 현실로 닥친 것이다.


그동안 6년을 기다리다 이렇게 되버리니 모든 것이 꼬여버렸다. 당장 운전면허증도 다시 새로 받아야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그 문제가 가장 컸다. 변호사는 일단은 어필(appeal)을 해보자였다. 우린 어필을 해봤자 이게 통할까 생각하며 기대도 안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리곤, 9개월 동안 운전면허증없이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자나간다. 우리에겐 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어필이 인정되어 마침내 그린카드를 받았다. 우리 맘대로 세상은 돌아가주질 않는다. 그러나 역으로 불행이 행복으로 바뀌기도하니 예측불허의 세상이다. 그저 맘먹은대로가 안되더라도 스트레스는 받지말자. 오랜 미국 생활로부터 습득한 지혜로 우리부부의 철학이기도하다. "영주권 못받으면 한국가면 되지 우리가 처음부터 살려고왔나? 유학하러 왔지"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파랑새는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


"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 

-Gandhi-



100.jpg 김호봉/화가, Artcomcenter 대표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주요 미술 공모전 등에서 여러차례 수상했다.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Studio Art를 전공하면서 비디오 아트에 매료되어 졸업후 수년간 비디오 작업을 하며 전시를 했다. 이후 뉴저지로 건너와 평면작업으로 이어져 수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와 개인스튜디오 아트컴센터(Artcomcenter)에서 성인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하고 있다. https://www.artcomcen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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