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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20.07.03 14:58

(514) 스테파니 S. 리: 다시 밥상을 차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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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46) 방 안의 시위꾼

다시 밥상을 차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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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Tiger Awaiting Good News | Stephanie S. Lee | 2020 |Color pigment & ink on Hanji | 11” W x 14” H


온이 오르면서 마스크 쓰고 다니기가 영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그래도 뉴욕이 다시 조금씩 오픈하며 정상 생활로 조심스레 돌아가려나 했더니 이런… 정말로 숨 쉬지 못할 상황들의 연속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도 지치는데 좌파와 우파, 인종간의 갈등, 경찰 권력과의 충돌… 떠도는 가짜뉴스들까지 가세해 뭐든 잘 믿는 귀 얇은 나는 무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혼란스럽고 답답하다.


소셜 미디어에서 보이는 자극적 영상들과 그에 대한 조리돌림이 이제 보기 불편하다. 아무리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도 떼를 지어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은 그들이 그렇게 미워하는 권력층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습이나 집단 따돌림과 많이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정의와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오히려 의사표현의 자유가 말살되어 가고 있다고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있다. 실질적인 해결법이나 책임 없는 공허한 주장만 외치는 감성팔이 정치. 눈치보며 듣기좋은 소리만 보도하는 언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 평화와 화합을 주장하는 구호들도 오해를 낳고 모든 사람에게 와닿지 못하고 있다. 혹여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는 것이 아닐까 무서워 모두가 침묵하거나 동조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이렇게 시국도 불안하고 코로나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 불안했던지 남편이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주식 관련 유투브를 섭렵하더니 눈뜨면 주식 이야기, 하루종일 주식 이야기... 내가 안들어주니까 이제는 딸 아이를 붙잡고 이야기한다. 10세 아동이 주식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도 요놈은 착하다. 참을성 없는 난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라!"고 짜증을 내는데 요놈은 몰라도 잘 들어준다. 이런 건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다. 문득, 어쩌면 나도 흑인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르지만 조금 더 들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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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Street (5th Ave.) 6월 13일 토요일 오후 1시경


편은 밖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면 주로 나에게 화풀이를 한다. 요즘엔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다고 음식조절 중이라 더 예민하다. 급기야 나의 상차림에 문제가 많다며 불만이다. 가만히 당하고 있을 내가 아니지. 그동안의 설움이 폭발해 나도 밥이고 설거지고 다 때려치우겠다! 하며 방에 틀어박혔다. 


나는 이 집에서 사회적 약자다. 돈도 덜 벌고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나가 직장을 잡으라 하지만 경력단절에 집안 일과 아이도 신경 써야 하니 똑같이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매우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거나 내가 더 많이 벌지 않는 이상 같이 살거면 분하고 서러워도 참아야지. 열 받지만 하루 시위한 것을 끝으로 오늘 아침부터는 다시 밥상을 차린다. 나는 이제 안다. 싸움을 길게 끌어봐야 좋을 것도 없거니와 저 사람은 본인이 잘못한 걸 알아도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임을. 


우스개 소리지만 나는 남편을 자본주의의 망나니 트럼프 같다 하고, 신랑은 나를 독재자 김정은과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아이를 잘 키우며 남은 여생을 잘 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남편에게는 돈을 열심히 벌어 오는 것이 가정을 위하는 방법이고, 나는 먹고 치우고 집안을 쓸고닦는 일상생활을 통해 가정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양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도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분의 사람은 본인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자신은 선하다는 가정 하에 상대를 향한 비난이 시작된다.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다양성을 묵살시키고, 사람을 배타적으로 만든다. 확신은 그래서 위험하다. 나와 다른 모든 것은 틀렸고 옳지 않은 것이라 여기게 되며 폭력적으로까지 변하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우리는 꽤 복잡하게 얽혀서 유지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관점은 보는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쓰레기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라도 한 가정 안에서는 좋은 사람일런지 모르고, 좋든 싫든 한 나라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다. 두번 다시 보고 살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상대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 문제해결의 방법과 표현의 차이일 것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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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Tiger Awaiting Good News | Stephanie S. Lee | 2020 |Color pigment & ink on Hanji | 11” W x 14” H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까지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게 박힌 데에는 우리 모두가 일조했을 것이다. 여태 흑인들이, 빈곤층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관심을 기울인 사람, 도움의 손길을 건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정말 내 탓은 하나도 없다고, 다 나쁜 당신들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변화는 남을 바꾸는데서 오지 않는다. 자기반성으로 나 자신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맞다. 한 집에 사는 남편도 못바꾸면서 누굴 바꾸겠나.


자기반성이 시작되면 사람이 겸손해진다. 겸손해지면 더 이상 확신에 차거나 남을 쉽게 비방할 수 없어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고쳐야 하는 악습은 바로 잡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평등과 부조리함에는 끝까지 맞서기를, 그래서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안에서 평화와 행복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비난과 비방과 비판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모르는 것은 알려주면 되고, 틀린 것은 고쳐주면 된다. 열린 마음과 성숙한 태도로 미래를 바라보며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나가길 바란다. 


한 사람에 대해 파악하려면 무엇을 좋아하는가 보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확실하다고 했다. 석달여 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나의 삶이 어느 곳에 집중되어 있는 지를 조금 더 선명히 알게 해주었다면, 이번 사태로 나는 내 안의 보수적인 마음과 배타적인 성향을 마주 보았다. 어쩌면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심한 꼰대이자 뿌리깊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싶어 반성도 했다. 평소 확실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는 용기가 없어서일 뿐이라 간주하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삶의 최대 지혜야 말로 중용이란 생각이 든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일이 이리도 힘든 것이던가 싶다.


올 상반기는 모두에게 참 힘든 시기였다. 한해의 반 이상이 지나 하반기를 맞이하는 지금, 이제부터는 뉴욕에, 미국에, 그리고 전 세계에 모쪼록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기를 기다려본다.  



위기 앞에서


박노해


수문심인 修文深仁

인문을 널리 닦고

인의를 깊게 하기

함장축언 含藏蓄言

말은 안으로 품어

꽃망울로 쌓아가기

거망관리 遽忘觀理

분노를 다스려 잊고

이치를 헤아리기

지지지지 知止止止

그칠 데를 알아서

멈춰야 할 때 멈추기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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