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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23.02.10 10:23

(661) 홍영혜: 할머니의 장롱 속에는...

조회 수 145 댓글 1

빨간 등대 <55> Grandma's Closet 

 

할머니의 장롱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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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Toy Store”, 2023, Mixed Media, 18 x 24

 

“이걸 좀 더 놔두고 볼까?  아니면 해체해 버려?” 

망설이다가 한달가량 밤잠도 설쳐가며 완성한  “299마리의 강아지와 한 마리의 고양이” 퍼즐을 과감하게 해체했다. 마침내 퍼즐 밑에 깔려 있던 먼지 쌓인 크리스마스 식탁보를 치우니 개운하다. 한동안 퍼즐 금단 현상처럼 TV를 볼 때  손이 꼼지락거리면서 허전하다. 하지만 “ 두 번은 없다”라며 주먹을 불끈 쥔다.

 

잠이 안들라치면 살금살금 걸어 나와 퍼즐을 맞추다 새벽에 일어난 남편과 마주친 날이 몇 날인가. 딸이 크리스마스 휴가 때 와서 20퍼센트 정도 맞추고 남겨진 퍼즐이다. 그동안 애쓴 정성이 아까워 접지도 못하고 내가 떠맡게 되었다. 생전 퍼즐에 관심이 없던 내가 미련한 줄 알면서도 끝내야 한다는 집착을 버릴 수가 없다. 딸은 1,000 피스나 되는  달 사진 퍼즐을 6개월에 걸려 오면가면 조금씩 끝냈다고 하던데.  끈질김과 집요함은 있고, 자제력(delayed gratification)이 부족한 나에게 퍼즐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체한 퍼즐은 거실 장 구석 아주 깊숙한 곳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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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Matisse style oil painting of a 60-year-old attractive Asian woman with glasses playing a puzzle of 299 dogs and one cat" by DALL•E 2  https://labs.openai.com  

 

거실 캐비넷에는 오밀조밀한 장난감들이 들어있다. 나중에 손주가 태어나면 준다고 사놓은 것인데, 아마도 내가 좋아서 산 추억의 소품들이다. 손잡이로 태엽을 감으면 미레미레 미시레도라….“엘리제를 위하여”의 선율이 나오는 틴캔 카루셀, 들여다보면 요리조리 형형색색 무늬를 내는 만화경... 태엽을 감으면 뚜벅뚜벅 걸어가는 초록색 로봇은 백남준 “Becoming Robot” 전시회(아시아소사이어티, 2014)에 갔다가 엉뚱하게 선물가게에서 샀다. 로어이스트사이드 New Museum에서 산 뉴욕 명소의 그림이 있는 New York Memory Game, 안에 열면 작은 분홍빛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공, 오래전 인도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철사와 구슬로 엮어져 모양을 바꾸면 바구니도 되고 공도 되는 Flexi- Sphere는 어렸을 때 놀던 장난감이라  반가워서 샀다.

 

손녀가 오면 “Grandma’s Closet”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잠시 놀다가도 부엌에 가서 색색깔의 플라스틱 집게나 목욕탕 캐비넷에 있는 머리 마는 찍찍이 롤러를 장난감보다 더 좋아한다. 아이들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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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 센터 근처에 가다가 장난감 스토어 FAO Schwartz를 지나치게 되었다. “할머니의 장롱”도 이제 슬슬 바닥이 나는데 업데이트도 할 겸 한번 들어가 볼까?  2015년 Fifth Ave에 있던 Flagship Store가 문을 닫았다고 들었는데  30 Rockefeller Plaza에 다시 열었다.  빨간 장난감 병정 옷을 입은 직원이 입구에서 “이제 문을  닫으니 빨리 원하시는 장난감을 고르시기 바랍니다. 6시간 있으면 곧 문을 닫습니다” 라고 농담을 하면서 환영한다.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봉제 인형(Stuffed Animal)들이 입구에 가득하다. 실물크기의 기린과 사자도 이층에 있는데 사자는 가끔가다 입을 열고 “으르렁” 포효하는데, 나에겐 왠지 무섭다기보다는 재밌다.  

 

문득 딸이 좋아했던 곰 인형이 생각난다. “GOTTA GETTA GUND”의 베이지색 곰인형(Snuffle)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롤리(Rolly)라고 불렀다. 배가 퉁퉁하니 안고 자기 딱 좋았다. 털은 또 어찌나 부드러운지…   딸은 롤리만 안고 자면 닳는다고, 아끼느라 요일마다 다른 인형을 안고 잤었다. 롤리를 껴안고 푸근하게 잠자던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매장 안에  많은 곰 인형들을 두리번거려도 롤리는 보이지 않는다.

 

매직 코너에는 사라진 동전이 다시 나타나게 하는 마술을  선보이면서 마술 키트를 팔고 있다. 처음엔 아무 글씨도 안 나타나다가 또 다른  매직 펜을 칠하니 글씨가 선명히 보이는 매직 페인트도  소개한다.  또 한쪽에서는 360도 회전하는 부메랑을 던지고 있다. 거의 살 뻔 했는데 손주들이 조금 더 크길 기다릴까 보다. 무선 조정하는 레이스 카 스테이션을 지나가다 아들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 아들이 미니카를 좋아해 보는 차마다 사달라고 했다. 한번은 장난감 가게가 닫았다고 하는데도 하도 울어서 아빠가 마운트 키스코(Mount Kisco, Westchester)에 있는 장난감 가게까지 데리고 가서 문을 닫은 것을 보여주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화이트 플레인스에 있는 블루밍데일 백화점에 갔을 땐 장난감 판매대에서 아들이 플레이 모빌 자동차를 사달라고 했다. 차가 많거니와  20여불이 되는 자동차가 그때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달라고 땡깡부리는 아들 손에서 장난감을 억지로 떼어 놓고 카토나까지 운전해서 오는 30분 동안 내내 울었다. 마음이 안되어 저녁때 남편 퇴근길에 그 차를 사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플레이 모빌는 잘 모셔놓았다가 아들 장가갈 때 챙겨주었다. 그리 차를  좋아하더니 결국 보이스카우트에서 나무로 만든 레이스 카 경기에 나가 일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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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1988) Playing the piano scene 

https://www.youtube.com/watch?v=CF7-rz9nIn4

 

FAO Schwartz 2층으로 올라가면  창가쪽에, Tom Hank 주연의 영화 “Big”로도 유명해진 발로 치는 피아노 (Walking  Piano)가 있다. “Heart and Soul”과 “Chopstick”(젓가락 연탄곡)을 발로 신나게 친 장면을 떠올리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뜸해진 때를 기다려 “미레미레 미시레도라” 를 살금살금 치다 멋적어서 얼른 내려왔다. 영화랑 달리 신발을 벗어야 한다. 

 

“할머니의 장롱”에 챙길 것이 있나 왔다가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떠오르고, 또 내 안에 아직도 살아있는 어린아이를 충족시키고 동심을 즐겼다. FAO Schwartz는 1862년 창업해 160년이 지난 지금도 장난감 가게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단순히 장난감을 파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아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꿈과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어른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이다. 인터넷 상점들로  오랜 역사와 향수가 젖어있는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들이 쓸쓸하다. 백화점, 서점, 장난감 가게… 가족과 함께한 추억과 꿈의 공간이 오래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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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Love keeps us together”, 2023, Mixed Media, 30 x 30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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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3.02.14 18:51
    홍영혜씨의 글을 잘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장난감 가게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추억이납니다. 그때는 월남전이 한창일 때라 GI Joe인형들이 많았습니다. 아들애는 군인인형을 좋아해서 그런 종류를 많이 샀어요.여러개를 양손에 들고 싸움을 붙이면서 혼자서 총소리도 내고 쓸어지는 흉내도 내곤하면서 놀았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니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림이 봄을 느끼게 합니다. 분홍색과 파랑색이 인상에 남아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