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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43) 복(福)을 싸드립니다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14 보자기(Bojagi), 보따리(Bottari), 보쌈(Bo Ssä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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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gakbo by Chunghie Lee(from left)/ Bottari Truck by Kimsooja/ Bo Ssäm by David Chang

 

오늘날 우리는 토트백, 숄더백, 크로스백, 백팩, 서류가방, 이민가방 등 다양한 종류의 백(bag)을 들고 다닌다. 서양식 가방을 들기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네모난 천 보자기(bojagi)로 물건을 싸고, 덮어 보관하거나, 꾸려서 운반했다.

보자기는 물건을 담아 매듭으로 묶으면 보따리(Bottari)가 된다. 한국전쟁 때는 짐 보따리를 이고진 채 피난 다녔던 우리 민족이다. 그 보자기와 보따리를 메타포로 한 예술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네모진 평면의 보자기는 물건을 싸면서 매듭으로 묶으면, 입체의 뭉치(3차원)로 변형된다. 그 보자기가 예술성을 획득하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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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dentified Artist Korean, Patchwork wrapping cloth (jogakbo), ca. 1950–80, Silk,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from left)/ Wrapping cloth (bojagi), 1950-1960, Silk, Jogakbo. Collection of Asian Art Museum, San Francisco/ Unknown (Korean), Bojagi, 1900-2000, silk, cloth. Detroit Institute of Arts

 

한때 규방 공예품이었던 한국의 보자기(Bojagi)가 직물회화로서의 예술성이 공인되며  뮤지엄의 소장품으로 속속 들어갔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아트앤디자인뮤지엄을 비롯, 디트로이트아트인스티튜트,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런던의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 등지에 우리의 조각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독특한 문화유산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끌레도 있다. 현대적 조형감각을 유럽을 훨씬 앞질러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 표정은 그지없이 담담하다. 마치 잘 갠 우리의 가을 하늘처럼 신선하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폐쇄된 자의식에서 풀려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로 익명성의 느긋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배달겨레의 예술감각이요 생활감정이다. 거기에는 기하학적인 구도와 선이 있고, 꼴라쥬의 기법이 있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것들끼리의 결합, 쉬르리얼리즘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가장 기능적이고, 실용적이다. 그렇다. 그것은 또한 가장 격조 높은 미니멀 아트가 되고 있다."

 

-김춘수(1922-2004)의 '보자기 찬(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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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피난민들이 짐 보따리를 이고 진 모습. Photo: 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우리 민족이 보자기를 쓰게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전주시립박물관이 소장한 고려말의 수보(繡褓, 자수 보자기)가 가장 오래된 보자기로 알려졌으니, 고려시대부터 보자기가 널리 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보자기는 한자어로 '복(袱)'으로 '복(福)'의 뜻으로 쓰였다. 이로써 보자기는 복을 싸듯이 마음까지 전하는 도구로, 포장에서 보관, 그리고 운반까지 활용된 셈이다. 보자기는 용도별로 상용(옷보, 상보, 이불보, 책보...), 혼례용(기러기보, 함보, 예단보, 폐백보...), 불교의식용(경전보, 공양보...) 등  일상생활부터 혼례나 제례의식까지 두루 쓰였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보자기의 인문학'(2015)에서 '가방에 넣을 것인가, 보자기로 쌀 것인가'로 '넣는 문화'(가방)와 '싸는 문화'(보자기)를 비교했다. "우리는 보자기 모양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정보시대의 풍경도 보자기 속에 있다. 보자기는 하나지만, 그 용도는 신축적이고 전방위적이다. 둥근 것도 싸고 모난 것도 싸고, 긴 것과 짧은 것 가리지 않고 싼다. 싸는 것만이 아니라 매고 덮고 깔고 두르고 가리고 쓰기까지 한다. 그리고 사용한 후에는 다시 아무 것도 없는 평면으로 돌아간다. 도둑이 들어올 때는 쓰고 들어오고, 나갈 때는 싸가지고 나가는 것이 바로 보자기의 마법이다. 보자기의 신축성이야말로 근대 과학기술이 말소한 융통성의 결함을 넘어서는 응원군이 아니겠는가"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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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의 인문학(이어령, 2015)/ 세상을 감싸는 우리 보자기(허동화, 2013)/ 책보(이춘희 저, 김동성 그림, 2013)/ Bojagi(Sara Cook, 2019)

 

자수가 놓여진 수보나  자투리 천을 기워서 만든 조각보(Jogakbo, 쪽보)는 예술적인 가치가 있다. 수보에는 나무, 꽃, 새, 나비, 원앙, 학, 봉황, 공작 등 상징적인 문양을 수놓아 제작했다. 한편, 조각보는 궁중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서민층에서 즐겨 제작했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창작열과 미적 감각이 표현된 조각보는 규방문화의 에센스다. 현대의 리사이클링 아트와도 상통하는 조각보는 기하학적 구도와 조형미,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비한 예술품이다. 

 

우리의 생활용품이었던 조각보는 김춘수 시인이 지목한대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파울 클레(Paul Klee), 그리고 조셉 알버스(Josef Albers)의 회화와  비견될 만한 예술품으로 세계 메이저 뮤지엄의 컬렉션이 됐다. 또한, 패션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비롯, 가구, 공예, 건축,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 '보자기 작가' 이정희 Chunghie Lee, Bojagi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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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in Motion" designed by Chunghie Lee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in 2001

 

2001년 4월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A,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Fashion in Motion' 프로그램에서 섬유예술가 이정희(Chunghie Lee)씨의 작품이 소개됐다. 이정희씨는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은 실크스크린, 서예, 자수 등이 어우러진 패션 컬렉션을 소개했다. 빅토리아앤알버트 뮤지엄은 1852년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자의 이름을 따서 창립된 세계 최대의 응용장식미술디자인 미술관으로 2022년 9월 한류 특별전 'Hally! The Korean Wave"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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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hie Lee, NOVELTY LONGEVITY DURUMAGI of silk, bojagi gekki triple-stitch sewing, hand-embroidered goldfish provided by Cynthia Good, 2012 – 2014. Photograph by Karen Phillippi

 

이정희씨는 홍익대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서 직조와 염색을 공부했다. 1994년 풀브라이트 학자로 프로비던스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 Rhodes Island School of Design)에 왔으며, 1999년부터 이 대학에 설치된 보자기 강좌를 맡아 왔다. 

 

2010년 프랑스 알사스에서 열린 유럽 패치워크 회의(European Patchwork Meeting)에서 'Pojagi & Beyond 2010', 'Korean/American Joomchi', 'Beyond the Quilt', 그리고 'Korean Traditional Clothing' 등 4개의 전시를 기획했다. 이어 2011년 샌프란시스코 공예박물관(Museum of Craft and Design, San Francisco)의 특별전 '싸는 전통: 한국의 직물은 지금(Wrapping Traditions: Korean Textiles Now)'을 큐레이터로 보자기를 재해석한 한인과 타민족 아티스트들의 작품 65점을 소개했다. 2013년엔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보자기: 직물, 컬러와 그 이상(BOJAGI: Cloth, Color and Beyond'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열고, 조각보를 모티프로 제작한 실용적며 혁신적인 디자인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정희씨는 '이름없이 살다간 여인들(No-Name Woman)'이 화두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되어 살았던 과거의 한인 여성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식물을 길러, 실을 만들어 직물을 짰던 이름없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 여성들은 옷을 만들다가 남은 자투리 천으로 멋진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 보자기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에게 "조각보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다. 우리 자신은 천의 무작위 조각이며, 홀로이며, 무의미하다고 생각될지언정, 하나님의 손길로 우리를 함께 위대한 조화와 의미있는 아름다운 구도로 만들어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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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agi & Beyond by Chunghie Lee(left)/ Chunghie Lee's work on Ornament Magazine cover 

 

그는 조각보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12년 코리아 보자기 포럼(Korea Bojagi Forum)을 설립했다. 그리고, 격년으로 'From Rich Tradition to Contemporary Art'(2012, 파주), 'From Traditional Bojagi to Contemporary Sustainable Textile'(2014, 제주), 'Bojagi: The Living Tradition'(2016, 수원), 'The World’s Bojagi Comes to Seoul'(2018, 서울)에서 조각보 테마 전시, 특강, 워크숍, 문화투어를 열어왔다. 

 

영국의 섬유 예술가 사라 쿡(Sara Cook)은 2009년 영국의 버밍햄에서 열린 퀼트 페스티벌(Festival of Quilts)에서 이정희씨의 'No Name Woman'을 본 후 보자기에 매료됐다. 쿡은 2016년 수원의 국제보자기 포럼에 참가했으며, 2018년 포럼에서는 전시도 했다. 그리고, 2019년 한국 보자기의 디자인과 테크닉에 관한 책 '보자기(Bojagi: Design And Techniques In Korean Textile Art)'를 출간했다. 

 

 

# '보따리 작가' 김수자 Bottari Artist Kimsoo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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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edle Woman, 1999 - 2001, 8 channel video projection, 6:33 loop, silent

 

김수자(Kimsooja)씨는 바늘과 실, 보따리를 주요한 모티프로 작업해온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뉴욕으로 이주했다. 1993년 뉴욕 PS1 컨템포러리아트센터(현 PS1 MoMA) 거주작가를 지냈다. 

 

1995년 제 1회 광주 비엔날레에서 솔밭 언덕에 헌옷을 펼치고 벌인 비디오 퍼포먼스 작품 'Sewing into Walking- Dedicated to the victims of Kwangju'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헌정했다. 헌옷가지가 5.18 희생자들을 상징한다면, 작가는 바늘처럼 영혼을 꿰매며 넋을 기린 진혼제/퍼포먼스일 터이다. 2차원의 천을 묶으면, 3차원의 보따리가 된다. 

 

김수자씨는 1998년엔 MoMA PS1의 그룹전 'Cities on the Move 3'에서 보따리를 트럭에 쌓아 올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도시와 마을 따라 11일간 2727km를 이동한 기록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km'(Cities on the Move– 2727 km Bottari Truck)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오기까지 이민, 정체성, 그리고 작가로서의 여정을 담은 비디오 작품이다. 이후 그에게는 '보따리 작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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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ooja, Bottari Truck- Migrateurs, 2007-2009,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silent, 10:00, loop, performed in Paris, Commissioned by Musée D’Art Contemporain du Val-De-Marne. Photo: Thierry Depagne

 

1999년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선 코소보 내전으로 희생된 이들에게 헌정한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을 전시했다. 이어 2001년 MoMA PS1에 전시된 '바늘 여인(Kimsooja: A Needle Woman, 1999-2001)'에서는 도쿄, 뉴욕, 런던, 멕시코시티, 카이로, 델리, 상하이, 라고스의 대도시의 거리에서 부동의 자세로 바늘처럼 정지한 자신의 8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바느질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규방(閨房) 문화는 글로벌 작가 김수자씨에 의해 예술로 승화되었다. 바늘은 천을 꿰매며 연결시켜주는 도구로 현대인들의 소외, 소통과 치유에 대한 갈망을 은유하는듯 하다. 한편, 피난민과 이민자를 떠올리는 보따리는 삶의 흔적, 스토리가 담겨진 오브제이자 소유자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유목민처럼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보따리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상징처럼 보인다. 유목민은 보따리를 싸면서 한 장소를 떠나고, 보따리를 풀면서 새 장소에 적응하게 된다. 그리고, 보자기는 평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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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맨해튼 리쫄리 서점에서 열린  '근현대 미술사 100년, 100점'의 저자 아그네스 베렉츠와의 토론회.

 

김수자씨는 2013년 제 55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어 'Kimsooja, To Breathe: Bottari'를 전시했다. 지난해 뉴욕의 미술 사학자 아그네스 베렉츠(Agnes Berecz)가 출간한 '근현대 미술사 100년, 100점(100 Years, 100 Artworks: A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ary Art)'에선 2000년 대표작으로 '보따리 트럭'이 선정됐다. http://www.kimsooja.com

 

*김수자씨 '보따리 트럭' '100 Years, 100 Artworks' 2000년 대표작 선정

 

 

# 뉴욕의 '보쌈' 셰프 데이빗 장 David Chang, Momofuku Ssäm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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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최불암씨가 진행하는 KBS-TV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 시리즈 중 "쌈밥"편/ 고종이 즐기던 쌈밥.

 

*한국인의 밥상: 뭐든지 싼다 "쌈밥", KBS Documentary <YouTube>

 

 

한식에는 복을 싸는 음식 보쌈(Bo Ssäm)이 있다. 상추, 배추, 깻잎, 호박잎 등 잎채소에 삶은 돼지고기, 김치속, 생굴, 마늘, 고추, 야채와 쌈장 등을 싸서 한 입에 먹는 음식이다. 옛날부터 잔치에는 돼지를 잡는다는 풍속이 있듯이 돼지는 복을 의미했다. 보쌈(褓-)은 보자기처럼 '복(福)'쌈에서 온 말이다. 

 

근래들어 한국에선 쌈밥이 웰빙음식으로 인기를 끌며 전문 식당들이 증가했다. 우리 조상은 쌈밥을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쌈밥은 고구려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문헌 '천록식여(天祿識餘)'에는 고구려 사신이 가져온 상추의 품질이 좋아 천금을 주어야만 그 씨앗을 얻을 수 있다며 '천금채(千金菜)'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나라에 시녀로 끌려갔던 고려 여성들은 궁중의 뜰에 상추를 심어 밥을 싸먹으며 실향을 슬픔을 달랬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쌈은 궁중요리 구절판(九折坂)으로 발전됐다. 쇠고기, 닭고기, 버섯, 오이, 당근, 숙주, 무우, 달걀지단 등 8가지 재료를 밀전병에 싸먹는 고급 요리로 음양오행과 음식 궁합을 배려한 고급 쌈 요리다.  

 

보쌈은 '복을 싸서 먹는다'는 의미다. 조선말에서 쌈은 기복의 상징이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대보름날 나물잎에 밥을 싸서 먹는 '복쌈/보쌈'이 기술되어 있다. 입을 크게 벌이고 쌈을 먹으면서 복이 넝쿨째 들어오기를 소망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전시재상으로 '정비록'을 쓴 류성룡은 한손으론 바둑을 두며, 한손으로는 쌈 싸먹었다고 한다. 또한, 고종은 남양주로 피난갔을 때 약고추장과 맥적(貊炙, 된장에 재워 양념한 돼지고기 구이)을 곁들인 쌈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쌈밥 식당에서 '고종쌈밥'도 메뉴에 오르고 있다.  

 

싱싱한 채소, 부드러운 돼지고기, 바다의 진미 굴, 발효음식인 김치(젓갈)과 쌈장이 어우러진 보쌈은 완전 음식이다. 밭에서 뽑은 신선한 야채와 장시간 발효된 슬로우 푸드, 날것과 익힌 음식, 바다와 육지의 재료가 만나는 '산해진미(山海珍味)'가 손바닥 안에 있다. 보쌈은 부엌이 아니라 식탁에서 먹는 이에 의해 완성되는 음식이다. 또한, 여럿이 함께 나누어 먹는 우리 고유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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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푸쿠 쌈바의 간판 메뉴인 '보쌈' 상차림(왼쪽) Photo: William Hereford/ 데이빗 장 Photo: Gabriele Stabile

 

뉴욕에서 보쌈을 유행시킨 셰프는 모모푸쿠(Momofuku)의 셰프 데이빗 장(David Chang, 장석호)이다. 데이빗 장은 2004년 이스트빌리지에 오픈한 모모푸쿠 누들 바(Momofuku Noodle Bar)에서 일본 라멘과 중국식 돼지고기 샌드위치(포크 번, Pork Bun)으로 스타가 됐다. 2006년 여름 오픈한 두번째 식당 '모모푸쿠 쌈 바(Momofuku Ssam Bar)'는 멕시코의 랩 샌드위치 부리토(burrito)와 떡복이 등을 제공하며 뉴욕타임스로부터 별 2개를 받았다. 이후 데이빗 장은 메뉴에서 부리토를 내리고 돼지고기 목살(whole roasted pork butt / Bo Ssäm)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말 쌈바에 별 3개를 헌사했다. 데이빗 장은 그해 제임스비어드재단상 최우수 뉴욕 요리사상을 수상했다.

 

뉴욕 인구 800여만명, 유대인 인구가 100여만명(뉴욕주 전체는 200여만명)에 달하는 뉴욕에서 그들의 금기 음식인 돼지고기를 전면에 내세운 데이빗 장은 'King of Pork Pun'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더 나아가 그는 개인주의적인 뉴요커들에게 여럿이 보쌈 먹는 법을 가르쳤다. 손에 상추를 펴고, 쌀밥, 돼지고기, 굴, 김치, 쌈장을 올려 싸서 한입에 먹게 만들었다. 한국의 '보쌈'은 데이빗 장에 의해 뉴요커들이 즐기는 인기 요리로 등극했다. 

 

모모푸쿠 쌈바에서 6-10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보쌈($250)은 돼지고기 목살 덩어리를 밤새 절여(curing) 6-8시간 구워 흑설탕과 로스팅즙으로 발라서 생굴 12개, 쌀밥, 상추, 한국식 바비큐 소스(쌈장), 중국식 생강파 소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생선구이 쌈(Whole Roasted Fish Ssäm)도 메뉴에 올랐다. 

 

보쌈의 인기가 급등하면서 뉴욕타임스월스트릿 저널에서 마사 스튜어트까지 너도나도 최소 7시간 걸리는 데이빗 장의 보쌈(Bo Ssäm) 레시피를 소개했다. 

 

모모푸쿠 쌈바는 코로나19 확산을 기해 이스트빌리지를 떠난다. 그리고, 월스트릿 인근 사우스스트릿 시포트로 이전해 업스케일의 레스토랑으로 진화할 예정이다. https://ssambar.momofuku.com 

 

<계속>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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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olfkang 2020.06.16 15:18
    한류 시리즈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