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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21.01.10 12:08

(548) 이영주: 사위 크리스찬의 학 만두와 미트볼 삼국지

조회 수 229 댓글 1

뉴욕 촌뜨기의 일기 (53) Happy New Year 

사위 크리스찬의 학 만두미트볼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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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올해도 쉼표가 없습니다. 지구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코로나라는 괴기한 병증으로 공포와 죽음과 고통을 평등하게 나눈 지난 해의 악몽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도 새해는 ‘새해’라는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희망적입니다. 


새해 아침, 우리 가족의 첫 행사는 만두 빚기입니다. 작년 11월, 첫째네가 사위의 나라인 이태리로 가고, 뉴욕으로 돌아갔던 둘째네가 11월말에 몬태나로 다시 왔습니다. 작년처럼 상원이네며 카렌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째네와 막내네가 있으니 올 새해가 덜 외롭습니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만두소를 둘째와 막내가 준비했습니다. 늘 먹던 엄마 만두보다 자기들 취향에 맞는 만두를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만두소에 당면을 넣고는 좋다고 난립니다. 그건 싸구려 분식집 만두라고 내가 초를 쳐도 끄떡도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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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열심히 빚는 리차드와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입에다 힘을 꽉 주고 있다.


손자 블루는 만두 만들기를 놀이처럼 합니다. 벤치도 만들고, 축구공도 만들고, 네모상자도 만들며 다른 모양이 만들어질 때마다 자랑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질적 만두 빚기의 우리집 장인은 둘째사위 크리스찬 입니다. 생선뼈를 포크와 나이프로 크리스찬처럼 품위 있고 깨끗하게 발려 먹는 사람은 첨 봤습니다. 그만큼 손재주가 뛰어납다. 큰사위 안드레아는 그림은 잘 그려도 만두는 못난이로 만드는데, 크리스찬의 만두는 언제나 발군의 실력으로 다른 사위들의 코를 납작하게 합니다.


올해의 크리스찬 힛트작은 ‘학 만두’ 입니다. 만두를 학 모양으로 만들어내어 그것을 본 우리는 “아니, 어떻게 그런 모양을 만들 수 있어?”, 하며 모두 뒤집어졌습니다. 언제 끝날까, 지체될 것 같던 만두빚기는 이렇게 하하! 호호! 환호와 웃음 속에서 언제 끝난 줄도 모르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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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 크리스찬 


사실 크리스찬은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때도 우리를 놀래켰습니다. 크리스찬은 크리스마스 만찬은 4가지 미트볼로 자기가 준비하겠다며 며칠 전부터 그 준비로 난리굿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타이식, 한국식, 스웨덴식 3가지로 줄었습니다. 성탄 저녁은 7시부터 시작됐습니다.

타이식은 주재료가 코코넛이었습니다. 코코넛 오일과 코코넛 밀크가 들어갑니다. 미트볼과 함께 Riceball도 함께 내놓은 게 귀여웠습니다. 장식이었던 라임을 미트볼과 소스에 짜 넣었더니 맛이 상큼하고 훌륭했습니다. 고기에 내가 좋아하는 실란트로가 들어갔으니 무조건 합격입니다.

두 번째 한국식 미트볼은 불고기식 양념입니다. 소프트하면서 속이 촉촉해서 먹기 편했습니다. 두 개의 미트볼을 소면 위에 올리고, 고추장 소스로 마무리했는데, 고추장 소스가 신의 한 수 였습니다. 고추장 소스에 소면을 비벼 미트볼과 함께 먹으면 맛있는 비빔국수가 되니 말입니다. 나와 두 딸은 김치 대신 단무지를 슬쩍 곁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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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식 미트볼(왼쪽부터)/ 한국식 미트볼/ 스웨덴식 미트볼


마지막 스웨덴식 미트볼은 크리스마스 만찬의 백미였습니다. 7~8개의 미트볼과 매쉬드 포테이토에 노란색 소스를 담아 내온 모습이 예뻤을 뿐 아니라 맛이 뛰어났습니다. 인기투표에서 난 3번이 1등, 1번이 2등인데, 막내는 나와 반대였습니다. 애석하게도 모두들 2번 한국식이 꼴찌였습니다. 의외입니다.

3가지의 미트볼을 먹기 위해 우리는 다음 접시가 나올 때까지 매번 거의 1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보통 음식 나오는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크리스찬이 그렇게 애를 쓰며 허둥지둥 애를 쓰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지루할 새가 없었습니다. 둘째는 물론이고 막내까지 일어나 거드느라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쑥 빠졌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자기 성의를 보이느라 노력하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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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이네와 카렌네가 함께 했던 작년 설


그처럼 기특한 크리스찬이 새해를 학 만두로 또한번 우리를 기쁘게 해준 것입니다. 학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모든 날짐승의 우두머리로,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년 장수를 상징해 십장생의 하나로도 꼽히고, 행복과 풍요의 운을 뜻하기도 합니다. 특히 학의 그 고고한 기상은 옛날부터 선비의 덕목으로도 일컬어져 왔습니다. 크리스찬이 학을 알리도 없고 그냥 우리들이 학 만두로 부른 것입니다만, 우리가 학 만두라고 부른 것은 학의 고고함과 장수와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우리들의 새해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올해는 작년의 흉물스런 천지개벽이 다 물러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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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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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1.14 11:36
    이영주님의 만두 얘기가 재미있네요. 만두를 여러가지 모양으로 빚는 것도 재미있지만 기존의 형식을 깨고 자유자재로 모양을 만드는 것이 흥미롭습니다.학만두는 놀라운 아이디어 입니다. 상품화하면 hit칠거라 생각됩니다. 이영주씨를 중심으로 안 트리오의 가족모임이 훈훈함을 줍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