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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할 무대 있어 행복한 코러스

메트오페라 합창단원 이승혜·정연목씨


*이 인터뷰는 2008년 9월 23일 뉴욕중앙일보(The Korea Daily of New York)에 게재된 기사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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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혜, 정연목씨. 2008년 9월. Photo: Sukie Park


“코러스의 한인으로 무척 자부심을 느꼈어요.”


지난해 1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올려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의 주역은 소프라노 홍혜경씨와 테너 김우경씨였다. 한인 성악가들이 마침내 ‘백인들의 요새’인 오페라계의 남녀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계 성악가로서는 메트 오페라 역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이즈음 메트 오페라의 한 합창단원이 코러스의 소프라노 이승혜(Seunghye Lee)씨에게 농담조로 말했다.


“너네 한국인들이 오페라의 모든 분야를 점령할꺼니?”


아닌게 아니라 메트 코러스에도 한인 성악가 12명이 활동 중이다. 이젠 오페라 보러갈 때 한인 합창단원들을 자세히 보기위해 망원경을 지참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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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2일 메트오페라의 버추얼 갈라 콘서트에서 베르디의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을 연주하는 메트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MetOpera At-Home Gala: “Va, pensiero”, MAY 12, 2020

https://www.metorchestramusicians.org/metopera-at-home-gala-va-pensiero



한인 코러스 1호 자부심


오페라를 스펙터클하게 만드는 것은 시각적으로는 세트요, 청각적으로는 합창단이다.


지난 18일 메트오페라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1주년을 맞아 연 베르디의 ‘레퀴엠(Requiem)’ 콘서트에는 11명의 한인이 무대에 올랐다. 메트의 풀타임 코러스는 80명. 소프라노 이승혜씨가 2001년 입단했고, 2004년 테너 정연목(Christian Jeong)·이주환(Juhwan Lee)씨가 들어갔다.


엑스트라, 즉 파트타임 코러스 60여명 중엔 한인이 무려 9명이다. 서진숙·신윤수·여선아·이광규·이상은·이은주·조성용·조원·황진호씨가 엑스트라 코러스에서 노래하고 있다.


“오페라의 본산지인 이탈리아어와 한국어의 발음 구조가 유사하다고 해요. 그래서 한인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보다 노래를 잘 하나봐요.”


메트오페라 한인 코러스 제 1호인 이승혜씨는 자부심을 갖고 말한다. 이씨는 지난 22일 개막되어 내년 5월까지 계속되는 2008-09 시즌에서 20여편의 오페라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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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vier Camarena as Arturo and Diana Damrau as Elvira in Bellini's I Puritani. Photo: Marty Sohl/Metropolitan Opera



노래의 꿈 찾아


동갑내기 소프라노 이승혜(41)씨와 테너 정연목(41)씨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95년 아스펜 서머뮤직 페스티벌에서 열린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미나와 타미노 역으로 공연하며 처음 만났다.


부산에서 태어난 정씨는 공부에 무관심한 고교생이었다. 부친이 음악교사였지만, 음악조차도 무심했던 고교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따라 합창반에 들어갔다. 그때 비로소 삶의 목표가 생겼다.


“노래로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 없이 살다가 제게도 꿈이란게 생기더군요.”


서울대 음대 졸업 후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미국으로 이주해 줄리아드음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맨해튼음대 출신의 피아니스트와 결혼해 딸 둘을 두었다.


보석상의 캐셔로 시작 골프연습장, 전화카드 도매상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정씨는 마침내 파트타임 코러스에서 풀타임 코러스가 됐다.


“남자로 태어나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것에 조금 자존심도 상했지요. 하지만 가장이 되고 보니 안정적이고 베너핏이 좋은 직장을 찾게 되더군요.”


정씨는 메트 코러스에서 찰리 채플린처럼 웃기는 성악가다. 언어장벽으로 몸으로 말하다보니 웃기게 됐다는 것.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이름을 ‘크리스천 정’으로 바꾸었다.



이승혜6.jpg이승혜씨


"노래는 천직이죠"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결혼해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둔 이승혜씨는 자신의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이씨는 ‘성혜’‘승애’‘숭예’ 등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못부르는 스태프들에게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면서 일일이 그들의 발음을 교정시켜왔다.


“제가 왜 이름을 고쳐요? 저와 함께 일하려면 제 이름을 노력해서 기억해야지요.”


어려서 춤과 노래를 좋아한 이씨는 이화여대 성악과 졸업 후 맨해튼음대 대학원으로 유학왔다. 그 후 시애틀 오페라와 아스펜 뮤직페스티벌 등에서 솔로이스트로 활동하다 엑스트라 코러스를 거쳐 풀타임 코러스가 됐다.


둘째 아이 출산 후 2개월째인 지난해 밸런타인스 데이였다. 오페라 ‘이집트의 헬레나’의 리허설에서 요정으로 출연하던 이씨는 그만 무대에서 떨어졌다. 꽁무니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끊어져 9개월간 휴식을 취했다. 마침 2개월된 아기의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었지만 빨리 무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노래를 못하니 정말 힘들더군요. 물론 집에서 할 수도 있겠지만요, 정말 노래할 수 있는 무대와 가족 같은 단원들이 그리웠어요.”


뉴욕에서도 줄리아드 음대를 나와서 연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래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 이씨와 정씨는 행복한 성악가일 수밖에 없다. 



박숙희 기자 sukie@koreadaily.com

뉴욕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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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홍혜경, 제이미 바튼, 박혜상씨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공연 후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메트오페라 코러스 & 오케스트라

*2020년 3월 현재 메트오페라 코러스에는 소프라노 이승혜(Seunghye Lee), 알토 최미은(Catherine MiEun Choi Steckmeyer), 테너 정연목(Christian Jeong), 이주환(Juhwan Lee), 이요한(Yohan Yi)씨, 메트 오케스트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권윤경(Yoon Kwon Costello), 김미란(Miran Kim), 캐서린 심(Catherine Sim), 최아영(Julia Choi), 캐서린 로(Catherine Ro), 이지혜(Jeehae Lee), 앤 리만( Ann Lehmann), 임한샘(Hansaem Lim), 손지현(Ji-Hyun Son, 비올라)씨 등이 소속되어 있다. 



*소프라노 홍혜경(Hey-Kyung Hong)씨 인터뷰

*현대 무용계의 모차르트 마크 모리스(Mark Morris)

*아이작 미즈라히(Issac Mizrahi) 특별전@쥬이시뮤지엄

*메트오페라하우스 그랜드 티어 레스토랑(Grand Tier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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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1.16 12:28

    이승혜, 정연목씨를 인터뷰한 기사를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이 인터뷰가 자랑스럽습니다. 숨은 한국의 보석을 찾았다는 그런 감정이 들어서 뿌듯했습니다. 컬빗이 아니면 모르고 지나칠뻔 했던 이들을 알게돼서 앞으로 메트 오페라를 볼때 이들을 찾아서 볼꺼라는 의욕이 생기니 오페라 감상이 더욱 알찰겁니다. 노래에 살고, 예술에 사는 이들에게 신의 가호가 늘 있기를 빕니다. 메트 오페라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에 의외로 많은 한국 음악인이 있다는 것을 컬빗을 통해 알게되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주말 잘 지내세요. 나의 사랑 컬빗!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