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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씨 '밤의 여왕'으로 콜로라투라 창법 진가 발휘

2월 6일 뉴욕필하모닉 설날 콘서트에서 '마술 피리' 아리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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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메트오페라하우스의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으로 데뷔한 박소영씨가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에서 모차르트는 말년에 작곡일(티토왕의 자비, 마술피리, 레퀴엠)은 밀렸는데, 방탕한 생활을 했고, 아내 콘스탄체는 집을 나갔다. 이에 장모는 모차르트를 심하게 질책한다. 천재 작곡가는 무시무시한 장모의 잔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마술 피리'의 아리아를 작곡한다. 그곡이 바로 '밤의 여왕(Queen of the Night)'의 유명한 아리아 "나의 가슴 분노로 불타올라("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Hell's vengeance boils in my heart)"다. 1791년 9월 30일 비엔나의 비덴시어터에서 모차르트 지휘로 초연된 '마술 피리'는 성공적이었으며, 모차르트는 거의 매일 밤 친구, 지인들을 데리고 보러갔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2개월 후인 12월 5일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마술 피리'는 모차르트의 유작이다. 

 

'밤의 여왕'은 모차르트가 처제(아내 콘스탄체 언니)인 소프라노 요세파 호퍼(Josepha Hofer)를 위해 썼다. 조수미씨를 세계 오페라의 스타로 올려놓은 역할이기도 하다. '라 트라비아타' '나비부인' 등 대개 오페라의 여성 주인공(소프라노)들은 남자 주인공(테너)과 금지된 사랑을 하다가 결말에서 죽는 비련의 여인들이다. 가부장적인 사고관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상이다. '마술 피리'에서 주인공 타미나의 어머니 '밤의 여왕'은 라이벌인 태양의 제국을 다스리는 고승(High Priest of the Sun) 사라스트로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암살을 사주하는 악녀다. 딸에게 사라스트로를 죽이지 않으면 모녀관계를 끝낸다고 협박하는 비정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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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 출연진과 지휘자 해리 비켓이 1월 3일 공연 후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악역이 높은 음역에서 기교적인 창법을 구사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는 최고의 배역인 것. 1월 3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마술 피리' 공연에 소프라노 박소영(So Youn Park)씨가 '밤의 여왕'으로 데뷔했다. 홍혜경, 신영옥, 조수미, 캐슬린 김씨에 이어 메트 무대에 주역으로 오른 한인 소프라노로 기록되는 공연이었다.

 

제 2막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가 내 마음 속에서 끓어 오르네, 죽음과 절망이 사방에서 타오르네!..."는 '스타 탄생' 여부를 알리는 결정적인 곡이다. 조수미씨의 '밤의 여왕' 아리아는 복수의 화신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왕의 목소리를 연상시켜서 오페라광들에게는 아쉬움이 많았다. 오페라 가수는 노래하는 배우이므로 가창력과 기교는 물론, 연기의 3박자가 맞아야 할 것이다. 박소영씨가 현재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평가되는 독일 출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에 필적할 사악한 여왕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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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ryn Lewek as the Queen of the Night and Erin Morley as Pamina in Mozart's "The Magic Flute." Photo: Richard Termine/Met Opera

 

'밤의 여왕'으로만 50여회 공연한 베테랑 박소영씨는 1막에서 3800석의 메트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 입에 침을 반복해 바르면서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다. 박씨는 왕자 타미노에게 사라스트로에게 납치된 딸을 구해오라고 설득하는 첫 아리아 "오 무서워 말아, 사랑하는 아들아(O zittre nicht, mein lieber Sohn/ Oh, tremble not, my dear son)"를 독일어 오리지널이 아닌 영어로 불렀다. 2막에서는 보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악의 화신이 됐다. 박씨는 "나의 가슴 분노로 불타올라"를 현란한 기교와 정확한 음정으로 압도하며 콜로라투라 창법의 진가를 보여주어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역시 데뷔 무대였던 베이스 페이신 첸(Peixin Chen)은 오페라하우스를 울릴 만한 웅장한 보컬로 사라스트로 능숙하게 소화했다. 앞으로 주목할만한 베이스다. 2004년 초연 때 사라스트로스 역은 연광철씨가 맡은 바 있다. 지휘봉은 영국 출신 해리 비켓(Harry Bicket)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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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ryn Lewek as the Queen of the Night in "The Magic Flute." Photo: Jonathan Tichler / Soprano So Young Park

 

부산에서 태어난 박소영씨는 서울대 성악과 수석졸업 후 뉴잉글랜드 컨서바토리에서 석사학위와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다. 2014년 서울올림픽 공원에서 열린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콘서트에서 도밍고와 듀엣을 불렀다. 2016년 파사데나 오페라 길드 영아티스트에 선정됐으며, 2017년 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최종 결선에 올랐다. 

 

박씨는 LA 오페라를 비롯,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글리머글래스 페스티벌, 미시간 오페라, 오페라 콜로라도, 보스턴 릴릭 오페라, 보스턴 바로크, 하와이 오페라 시어터, 아스펜음악제,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등지에서 '밤의 여왕' 역을 맡아왔다. 오페라 뉴스는 박씨가 분한 '밤의 여왕'에 대해 "대부분의 이역을 맡는 우아한 성악가들에 비해 보다 어둡고, 더욱 컬러풀하다... 박씨의 콜로라투라는 runs와 arpreggio에서 눈부셨다"고 평했다.

 

박소영씨는 오는 2월 6일 링컨센터 데이빗 게펜홀로 돌아온다. 이날 오후 7시 30분 뉴욕필하모닉의 음력 설날 콘서트(Lunar New Year Concert)에서 '밤의 여왕'의 아리아 "Der hölle rache"를 노래할 예정이다. 뉴욕필 지휘는 Kahchun Wong이 맡으며, 바이올리니스트 봄소리 김(Bomsori Kim)은 '신아리랑'을 연주한다. https://nyphil.org/concerts-tickets/1819/lunar-new-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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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Bliss as Tamino in Mozart's "The Magic Flute." Photo: Richard Termine / Met Opera

 

2004년부터 할러데이 시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 올려지는 '마술 피리'는 뮤지컬 '라이온 킹(Lion King)'으로 토니상을 휩쓴 연출가 겸 의상 디자이너, 가면 디자이너인 줄리 테이머(Julie Taymor)의 프로덕션이다. 테이머는 할러데이 시즌 가족용으로 2시간 40분짜리 오리지널 오페라를 (1시간 42분)으로 1시간을 대폭 축소했다. 그러면서 서곡을 비롯 아리아와 대사를 과감히 잘랐다. 노래도 독일어 대신 뉴욕과 어린이 청중에 친절하게 각색된 영어 번역본을 사용했다. 

 

줄리 테이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엘튼 존 대신 오페라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두고 자신의 장기를 살리게 된다. 젊은 시절 인도네시아와 일본에서 연극을 수학학 테이머는 아프리카 가면, 인도네시아 인형극과 일본 인형극 분라쿠(文楽) 등 다민족 문화에서 모티프를 차용, 정적인 오페라 무대를 다이나믹한 시각장치로 현란하게 연출했다. 이집트 상형문자 모양의 백그라운드에, 크리스탈 무대는 돌아가며, 어린이 요정들 곰들이 춤을 추며, 새들이 빙글빙글 돈다. 또한, 주인공 타미노 왕자는 중국 무협지 속 인물처럼 긴 머리에 비단 자수 옷 차림, 파미나는 마이애미 비치풍의 현대 의상이다. 무대가 화려하고, 부산하다 보니 오페라 청중으로서는 노래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점이 테이머 버전 '마술 피리'의 한계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머의  '마술 피리'는 데이빗 코크 시어터(뉴욕스테이트시어터)의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 차이코프스키 작곡, 조지 발랜신 안무)'와 함께 할러데이 시즌 링컨센터의 가족용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을 이미 몇 차례 본 어린이들에게 모차르트 오페라로 입문시킬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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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s "The Magic Flute." Photo: Richard Termine / Met Opera

 

메트오페라는 1967년 화가 마크 샤갈(Marc Chagall), 1990년엔 화가 데이빗 호크니(David Hockney) 프로덕션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2016년 링컨센터 내 뉴욕공립도서관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특별전을 열며 각 프로덕션의 세트, 의상 등을 비교 전시했다. 여기에 조수미씨와 박소영씨의 이름도 소개됐다. 

 

*오페라 '마술 피리' 세트와 코스튬 디자인@링컨센터 뉴욕공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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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 Robinson as Sarastro in Mozart’s “The Magic Flute.” Photo: Jonathan Tichler / Met Opera

 

'마술 피리'는 이상사회 건설을 추구한 비밀결사 프리메이슨(Freemasonry)과 가부장적인 의식이 깔려있다. 모차르트도, 작사가이자 파파게노 역을 맡았던 에마누엘 쉬카네더(Emanuel Schikaneder)도 이 조직에 가담했으며, 줄리 테이머는 프리메이슨이 중시하는 숫자 3, 컴파스의 자의 삼각형을 모티프로 한 세트와 의상을 선보인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 피리'는 줄리 테이머에 의해 권선징악, 음악과 사랑의 힘과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주제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가족용 판타지 오페라가 됐다. 태양의 사라스트로스와 밤의 여왕의 대결은 현대인들에게 이혼 드라마로 읽혀질 수도 있다. 등장인물 파파게노, 파파게나라는 이름조차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2016년 노르웨이의 덴 노르스케 오페라(Den Norske Opera)에서는 '마술 피리'를 이혼 이야기로 각색 공연했다. 

  

1월 5일 오후 8시 '마술 피리'의 마지막 공연에서 '밤의 여왕' 역은 캐스린 르웩(Kathryn Lewek)이 맡는다. 러닝타임 102분. https://www.metopera.org/season/2018-19-season/the-magic-flute

 

 

*줄리 테이머와 글로리아 스테이넘의 대화

*메트오페라 2018-19 시즌 가이드

*브로드웨이 터치 메트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황홀

*피터 겔브 메트오페라 단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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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h77 2019.01.06 09:22
    이년전 브랑스 파크에서, 메트 서머스테이지 프로그램으로 윤형씨와 함께 박소영씨 노래를 들었습니다. 4명이 공연하는 무대에 두 한인이 있는 것도 자랑스러웠지만, 박소영씨는 처음 듣는 가수였지만 음악과 연기가 뛰어나서 인상적이었는데 밤의 여왕으로 데뷔하셨다니 기쁘네요.
  • sukie 2019.01.06 12:57
    메트 오페라 섬머 리사이틀에서 박소영씨와 윤형씨 공연 보셨군요! 브루클린브리지파크에선 다른 성악가들이 노래해서 아쉬웠어요.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Music&document_srl=3592295

    한인 성악가들의 재능이 세계적으로 공인되고 있지요. 메트오페라만 해도 이번 시즌 테너 이용훈씨, 소프라노 박소영씨, 베이스 심기환씨, 메트의 감초가 된 베이스-바리톤 차정철씨, 바리톤 최기돈씨가 무대에 오르구요. 토니상을 수상한 린다 조는 개막작 '삼손과 데릴라'의 의상을 맡았지요.
    뿐만 아니라 메트 코러스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이승혜, 캐더린 미은 최, 이주환, 이요한씨)까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