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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작 '라보엠(La Bohème)': 파리 보헤미안들의 사랑과 우정

베이스 박종민(Jongmin Park), 철학자 콜리네 역 메트오페라 데뷔


11월 21일까지 8회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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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베르디 작곡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비제 작곡 '카르멘(Carmen)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푸치니 작곡 오페라 '라보엠(La Bohéme)'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주요 레퍼토리로 매년 공연된다. 하지만, 이번 2019-20 시즌 '라보엠'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바로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1923-2019)가 올 6월 15일 96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메트의 '라보엠'은 프랑코 제피렐리가 1981년 초연한 프로덕션으로 40년 가까이 관객의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극사실주의 무대로 혹평한 비평가들도 있기는 했다. 특히 제 2막의 파리 라틴쿼터의 언덕과 카페 장면은 240여명의 코러스와 엑스트라에 당나귀와 말까지 등장하는 스펙터클한 무대다. '라보엠'을 본 관객조차 2막이 오르면, 탄성을 지르지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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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메트의 롱런 프로덕션이 된 '라보엠' 347회 공연에서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메트오페라 피터 겔브 단장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Photo: Marty Sohl/Met Opera


이탈리아 출신 프랑코 제피렐리는 올리비아 핫세와 레오나드 화이팅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1968)'과 브룩 쉴즈 주연의 '엔드리스 러브(Endless Love, 1981)'로도 잘 알려진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제피렐리는 1964년 '팔스타프(Falstaff)'를 시작으로 메트오페라에서 '투란도트(Turandot)',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토스카(Tosca)'  '돈 지오반니(Don Giovanni)' 등 무려 15편의 연출을 맡았다. 


그중 제피렐리의 1985년 작 '토스카'는 2009년 뤽 본디(Luc Bondy)의 모던한 연출로 대치되었다가 관객들의 야유와 비평가들의 거센 혹평을 받아 피터 겔브 단장의 후회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피렐리의 '라보엠'은 메트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어온 오페라이자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아온 오페라이기도 하다. 다행히 '라보엠'은 대체될 계획이 조만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대체된다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아무튼 메트오페라는 이번 시즌 '라보엠'을 별이 된 오페라의 귀재 프랑코 제피렐리에게 헌사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을 끈 것은 비엔나국립오페라와 로열 오페라 등 유럽에서 활동해온 베이스 박종민(Jongmin Park)씨가 메트 오페라에 정식 데뷔하는 공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후 같은 해 비엔나국립극장, 2014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도 '라보엠'의 철학자 콜리네 역으로 데뷔한 박씨는 메트 무대에도 같은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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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박종민씨와 소프라노 올가 쿨친스가가 이번 시즌 '라보엠'으로 메트오페라에 데뷔했다. 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라보엠'은 1830년대 파리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삶과 그들의 가난하지만 낙천적인 태도,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슬픔, 그리고 우정을 그린 오페라다.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Henri Murger)의 소설 '보헤미안의 생활 정경(Scènes de la vie bohème)'을 원작으로 한 '라보엠'은 뉴욕의 이스트빌리지를 무대로 한 뮤지컬 '렌트(Rent)'와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물랑 루즈(Moulin Rouge)'로 각색되기도 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토스카'의 콤비이기도 한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와 주세페 지아코사(Giuseppe Giacosa)는 원작 소설을 대폭 각색했다. 여기에 지아코모 푸치니 자신이 밀라노에서 체험했던 가난한 음악원 학생시절 이야기도 음악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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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ro Domenico Olivero, The Teatro Regio. Wikipedia/ Original poster of La bohème by Adolfo Hohenstein


'라보엠'은 1896년 2월 토리노의 로열극장(Teatro Regio)에서 28세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Teatro Regio) 지휘봉 아래 세계 초연됐다. 비평가들은 얄팍한 음악성에 대해 거세게 혹평을 쏟아부었지만, 흥행에선 대성공을 거두며 곧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2007년 토리노 여행 중 로열극장을 투어했을 때 의상디자인을 맡았던 아돌포 호헨스타인의 '라보엠' 세계 초연 포스터가 자랑스럽게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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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푸치니의 4막 오페라 '라보엠'은 파리의 지붕 밑, 루돌포와 마르첼로의 다락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830년대 파리의 라틴쿼터, 시인 루돌포,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네르, 철학자 콜리네는 고군분투하는 보헤미안들이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땔감조차 없어서 쓰고 있던 원고지로 불을 때면서 추위를 견디고 있다. 쇼네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빵과 와인을 사와 보헤미안 4인방은 끼니를 때운 후 카페로 외식할 여유까지 생겼다. 그날 저녁 이웃집 여인 미미가 루돌포의 방문을 두드린다. 바람에 꺼진 초에 불을 켜기위해 찾아온 재봉사 미미와 루돌포는 어둠 속에서 사랑에 빠져든다. 


미미의 손을 잡은 루돌포가 '그대의 찬손(Che gelida manina)'을 부르고, 미미는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로 응답하는데, 이 장면이 '라보엠'의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가난한 시인과 재봉사는 듀엣곡 "오 상냥한 아가씨(O soave fanciulla)"로 1막에서 관객을 매혹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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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제 2막은 라틴쿼터의 카페 장면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계단 위의 빌딩과 아래의 카페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 노점상들, 어린이들, 병사들, 웨이터들, 군악대에 당나귀와 말까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축제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주머니는 비었어도, 풍류를 아는 보헤미안들의 낙천성과 쾌락주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기에 마르첼로의 옛여인 무세타가 부자 애인 알친도로와 나타나 "거리에 나 홀로 나갈 때/ 무제타의 왈츠(Quando m’en vo)"를 뇌쇄적인 제스추어로 열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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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소프라노 올가 쿨친스카(Olga Kulchynska)는 물질적이며, 화끈한 무세타로 분한 데뷔 공연에서 2막의 히로인으로 빛을 발했다. 1막이 순수한 미미와 루돌포의 설레이는 러브 스토리라면, 2막은 요염한 무세타와 마르첼로의 질투에 휩싸인 재회 이야기다. 1막에서 보헤미안 4인방은 랜드로드 베누아를 협박해 집세를 모면하고, 2막에서 무세타는 부자 애인 알친도르에게 음식값을 떠넘긴다. 가난한 보헤미안들은 부자들에게 작은 복수를 하며 인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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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몇개월 후 흰눈이 소복히 쌓인 파리의 관문이 3막의 무대다. 병세가 가득한 미미는 전날 결별한 루돌포 찾다가 마르첼로와 만난다. 한때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미미와 루돌포는 재회한 후 작별 인사 아리아 "Donde lieta uscì al tuo grido d'amore"를 흐느끼며 부른다. 


4막은 첫장면과 같은 루돌포의 다락방이다. 루돌포와 총각 4인조가 흥겹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옛사랑을 회고하고, 콜리네와 쇼나르는 창밖으로 나가 파리의 지붕을 깡총깡총 뛰어다닌다. 하지만, 철없는 이들의 장난은 미미의 등장으로 숙연해진다. 죽어가는 미미 앞에서 '물질적인 여인'이었던 무세타는 귀고리를 팔아서라도 의사를 부르려 한다. 


이때 철학자 콜리네로 분한 박종민씨가 테라스로 나가 유명한 아리아 '외투의 노래/ 낡은 외투(Vecchia zimmara, senti)'를 부른다. 박종민씨는 콜리네가 애착을 가졌던 외투를 들고 힘차면서도, 암울한 톤으로 호소력있게 노래했다. 비엔나국립오페라 하우스(1,709석)의 2배가 넘는 메트오페라 하우스(3,800석)이 울리는 풍부한 성량으로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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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낡은 외투여, 들어보게/ 난 여기 아래서 쉬겠어/ 너는 하지만 경건한 산으로 올라가야 해!/ 너는 내 감사를 받아야해/ 너의 가난에 굴복하지 않았지/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돌아가/ 너는 평화로운 동굴처럼/ 철학자와 시인들 처럼/ 주머니 속으로 피했지/ 이제 우리의 행복한 날들은 날아갔어/ 난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해/ 나의 충직한 친구여/ 안녕, 안녕"


미미는 루돌포의 침상에서 " 다들 떠났나요? 나는 잠자는 척을 했어요(Sono andati? Fingevo di dormire)"를 구슬프게 부르고, 무세타와 보헤미언들이 고민하는 동안 미미는 최후의 숨결을 맞는다. 이에 경악한 루돌포는 애통하게 "미미!"라 애처롭게 외치며 '라보엠'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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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10월 25일 '라보엠' 시즌 첫 공연에선 1998년 메트오페라에 데뷔한 이후 '라보엠'만 70여회, 총 430여회 지휘해온 베테랑 마르코 아르밀리아토(Marco Armiliato)가 경쾌하고 매끈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미미 역은 온화한 보컬의 소프라노 에일린 페레즈(Ailyn Pérez), 루돌포 역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음색을 연상시키는 베테랑 테너 매튜 폴렌짜니(Matthew Polenzani)가 호흡을 맞추었다. 이들은 같은 일리노이주 출신이다. 화가 마르첼로 역은 세르비아에서 온 건장한 음색의 바리톤 데이빗 비지치(David Bizic), 경코핸 음악가 쇼나르 역은 몰도바에서 온 바리톤 안드레이 질리코프스키(Andrey Zhilikhovsky)가 맡았다.   


흑인 베이스 아서 우들리(Arthur Woodley)는 이번 시즌 개막작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로 데뷔한 후 '라보엠'에선 집주인 베누아와 무세타의 애인인 부자 관리 알친도로 역으로 연이어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다. 또한, 코러스에서 활동해온 한인 베이스 바리톤 이요한(Yohan Yi)씨가 3막에서 세관 관리로 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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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라보엠' 시즌 첫 공연 후 박종민씨(왼쪽부터), 매튜 폴렌짜니, 에일린 페레즈, 데이빗 비지치, 올가 쿨친스카, 안드레이 질리코프스키, 지휘자 마르코 아르밀리아토가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10월 25일은 메트오페라의 '라보엠' 시즌 첫 공연이자, 메트에서 '라보엠'이 총 1천332번째 공연된 날이었다. 프랑코 제피렐리는 잠들었지만, '라보엠'의 보헤미안 영혼은 오페라팬들의 가슴을 길게 울린다. 메트의 클래식 '라보엠'이 매년 돌아오는 이유다. '라보엠'의 콜리네로 세계 무대에 도약한 박종민씨를 종종 메트 오페라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박종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Milan Accademia Teatro alla Scala)에서 수학했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 후 같은 해 비엔나국립오페라, 2014 런던 로열오페라(코벤트가든)에 '라보엠'의 콜리네 역으로 데뷔했다. 2015년엔  BBC 카디프 싱어오브더월드(Cardiff Singer of the World) 콩쿠르의 가곡 부문에서 우승,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바그너상을 수상했다. 


그는 비엔나국립오페라(Wiener Staatsoper)를 주무대로 출연해왔으며, 이번 시즌에는 '일 트로바토레' '세빌리아의 이발사' '마술피리' '루살카' '마농' '피가로의 결혼' 등 무려 6편에 캐스팅됐으며, 살스부르크 축제의 '돈 카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박씨는 미미 역의 에일린 페레즈와 내년 2월 비엔나국립오페라 '마농(Manon)'에서 마농과 기사의 아버지 드그리외 백작 역으로 재회한다. 이번 시즌 메트오페라에서는 연광철씨가 백작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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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ccini's "La Bohème." Photo: Evan Zimmerman / Met Opera


'라보엠' 러닝타임 2시간 57분. 10월 25일부터 내년 5월 7일까지 16회 공연된다. 박종민씨는 10월 25일, 30일, 11월 2, 3, 9, 14, 17, 21일까지 8회 공연한다. 이중 11월 14일 공연에는 홍혜경씨가 미미 역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https://www.metopera.org/season/2019-20-season/la-boheme



*'라보엠' 줄거리 <클래식코리아>



delfini2-small.jpg *메트오페라 2019-20 시즌 홍혜경, 연광철, 박소영, 박종민, 박혜상 출연

*소프라노 홍혜경, 박혜상씨 출연 메트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베이스 연광철씨 출연 메트 오페라 '마농(Manon)'

*소프라노 홍혜경(Hey-Kyung Hong)씨 인터뷰

*How to get Met Opera Tickets 메트오페라도 할인되나요 

*메트오페라하우스 그랜드 티어 레스토랑(Grand Tier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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