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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디에고 플로레즈(Juan Diego Flórez)의 이색 앙코르 무대

기타 치며 '베사메 무초' '꾸꾸르꾸꾸 팔로마' 불러 청중 환호


11월 18일 카네기홀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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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페루의 국민 영웅이다. 그의 결혼식엔 대통령까지 참석했다. 카네기홀 콘서트에서. 


오늘날 오페라계에서 테너의 쌍두마차는 단연 독일 출신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 1969, 뮌헨)과 페루 출신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Juan Diego Flórez, 1973, 리마)일 것이다.


카우프만과 플로레즈는 카네기홀 2800석을 매진시킬 수 있는 테너들이다. 요나스 카프만은 10월 5일 카네기홀에서,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11월 18일 카네기홀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카프만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푸치니 작곡 '서부의 아가씨(La Fanciulla del West)' 공연차 뉴욕에 왔고, 플로레즈는 베르디 작곡 새 프로덕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 맞추어 뉴욕에 온 것. 


바리톤풍의 어두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의 카프만은 리사이틀에서 1930-30년대 독일 황금기의 오페레타와 영화음악 삽입곡을 불렀으며, 벨칸토(*Bel Canto, 이탈리아 오페라의 기교적 창법) 테너 플로레즈는 로시니, 도니제티, 베르니 등의 오페라 아리아로 콘서트를 꾸몄다.



DsTo6TEW0AAG2i7.jpg 2800석을 매진시킨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리사이틀 포스터.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누구인가?

1996년 스물세살에 이탈리아 페사로에서 열린 로시니 페스티벌(Rossini Festival)에서 '샤브란의 마틸드(Matilde di Shabran)'에서 대타로 무대에 올라 찬사를 받으면서 세기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i)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같은 해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를 비롯 코벤트 가든의 로열오페라(1997), 비엔나국립오페라(1999),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2002) 등 세계 최고의 오페라단에 데뷔하게 된다. 


2007년 라 스칼라의 개막 공연에서 도니제티 작곡 '연대의 아가씨(La Fille du Régiment)에서 테너에겐 최고음인 high C가 9회 나오는 토니오의 아리아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아 나의 친구들이여, 이 축제의 날에)!'를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아 이 오페라 극장 74년의 '앙코르는 없다' 전통을 깨고 앙코르를 불렀다. 이듬해 플로레즈는 메트오페라하우스에서 이곡을 다시 앙코르로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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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카네기홀 리사이틀에서 페루 출신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만능 엔터네이너임을 입증했다.


카네기홀 리사이틀 프로그램에는 로시니의 곡을 비롯, 도니제티(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베르디(시칠리아인의 저녁 기도, 롬바르디아인) 마세네,(마농) 구노(파우스트), 푸치니(라보엠)의 오페라 아리아가 올라있었다. 플로레즈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연대의 아가씨'는 빠져서 아쉬웠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처럼 떨리면서도 선명한 음색의 플로레즈는 빈센조 스칼레라(Vincenzo Scalera)의 반주로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노래한 후  청중의 열띤 갈채에 놀라운 비장의 무기들을 앙코르로 펼쳤다. 바로 기타를 갖고 나온 것. 플로레즈 는 의자에 앉아 기타를 뜯으며 멕시코 국민가요 '베사메 무쵸(Bésame mucho)'로 연주해 청중을 흥분시킨 후 페루 작곡가 차부카 그란다의 '겨자꽃(La flor de la canela)'과 멕시코 노래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ú paloma)'를 선사해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갔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페라 아리아가 메인 이벤트였다면,  멕시코와 페루 노래 세곡은 보너스 앙코르 1부였다. 


앙코르 2부에서 플로레즈는 다시 오페라로 돌아갔다. 1996년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를 불러 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이어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뉴올리언스의 건배(The Toast of New Orleans)' 중 'Be My Love'를 장미꽃을 들고 부른 후 객석의 여성에게 던져 환호받았다. 그후 '그라나다(Granada)'를 부른 후 그리고, 전설적인 파바로티의 후계자로서 '투란도트(Turandot)' 중 아리아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을 다시 High C로 노래해 청중은 열띤 박수로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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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Diego Flórez sings "Ah! mes amis, quel jour de fête" from La fille du régiment  Photo: Ken Howard / Met Opera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는 솔로 리사이틀을 마치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의 쓰리 테너 콘서트처럼 흥미진진한 레퍼토리로 꾸며, 객석은 록스타 콘서트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라보엠' 중 루돌포가  미미를 향해 부르는 아리아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손)'을 부르기 전엔 자신의 손가락을 다친 에피소드를 청중에게 들려주었으며, 앙코르에서는 꽃다발 중 장미를 뽑아 들고 노래하며, 객석에 던지는 쇼맨쉽도 발휘했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의 리얼 캐릭터는 그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다. 페루의 리마에서 태어난 후안의 아버지는 루벤 플로레즈는 기타리스트이자 포크 가수였고, 엄마는 클럽의 매니저였다. 11살 때부터 기타를 배웠고, 14살 때는 음악이론을 전공한 후 곡을 쓰기 시작했다. 페루국립합장단에 들어가 바흐와 모차르트 합창곡을 불렀으며, 엄마의 클럽에 연주자가 아파서 펑크가 날 때 대신 무대에 올라 엘비스 프레슬리 곡을 노래하곤 했다. 


어느날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알프레도 크라우스의 레코드를 들은 후 성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다. 17세에 리마의 국립음악콘서바토리에 진학했으며, 20세에 필라델피아의 커티스인스티튜트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여기서 벨칸토 창법을 배우며 오페라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산타바바라의 웨스트뮤직아카데미에서 소프라노 마릴린 혼을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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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Diego Flórez sings Alfredo and Diana Damrau sings Violetta in the new production of Verdi's "La Traviata."  Photo: Vincent Peters / Met Opera


2008년 리마의 바실리카성당에서 진행된 호주 출신 성악가 줄리아 트래프와의 결혼식에는 대통령 알란 가르시아까지 참석할 정도의 로열 웨딩을 방불케하는 행사였고, 플로레즈가 페루의 국민 영웅임을 입증했다. 플로레즈에겐 1남 1녀가 있다. 


플로레즈는 12월 4일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새 프로덕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알베르토 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상대 비올레타 역은 독일 출신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가 맡으며, 지휘봉은 메트의 새 예술감독이자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야닉 네제 세갱(Yannick Nézet-Séguin)이 잡는다. 프로덕션 연출은 마이클 메이어( Michael Mayer). 12월 4일, 7일, 11일, 15일, 18일, 22일, 26일, 29일.  https://www.metopera.org/season/2018-19-season/la-traviata



000.jpg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카네기홀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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