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1 댓글 0

Jerry Lee Lewis (1935-2022)

'더 킬러' 제리 리 루이스의 삶 

 

Lewis-KillerKeys.jpg

*Jerry Lee Lewis Greatest Hits <YouTube>

 

서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다가 발을 건반에 올리고 울부짖으며 노래하는가 하면, 피아노에 휘발류를 붓고 불을 지르는 등 선동적인 스타일로 '킬러(The Killer)'라는 별명을 얻은 반란의 로큰롤 가수 제리 리 루이스가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데니스 퀘이드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열정의 록큰롤!(Great Balls of Fire)'와 에단 코헨 감독의 다큐멘터리 'Jerry Lee Lewis: Trouble in mind'(2022)로 제작됐다.

 

1935년 루이지애나주 페리데이의 농가에서 태어난 제리는 어릴 적 아버지가 농장을 팔아서 구입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1956년 21살에 멤피스의 선레코드 스튜디오에 찾아가 오디션을 요구했다. 선레코드는 1년 전 엘비스 프레슬리와 계약을 RCA 레코드에 매각한 후 조니 캐쉬(Johnny Cash), 로이 오비슨(Roy Orbison)가 소속되어 있었다. 이듬해 'Great Balls of Fire'를 비롯, 프레슬리의 히트곡 'All Shook Up'과 'Don't Be Cruel'을 포함한 음반을 발표해 스타덤에 오른다. 

 

 

jerryleelewisjerryleesgreatest6bonus.jpg

 

엘비스 프레슬리의 라이벌이 된 제리 리 루이스는 1958년 영국 투어 중 따라 다니던 13세의 사촌 소녀 마이라 게일 브라운이 부인이라는 사실에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는 두번째 부인과 여전히 결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스캔달 이후 라디오는 그의 노래를 틀지 않고, 인기도 추락했다. 이에 작은 클럽을 전전하며 컨트리풍의 노래를 하며 다녔다. 1968년 컨트리곡 'Another Place, Another Time'으로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면서 인기를 회복, 1970년대까지 활동했다. 

 

 

film23.jpg

Great Balls of Fire!(1989) by Jim McBride 

 

하지만, 1970년대까지 아들의 교통사고 사망, 1976년 베이스 기타 연주자 노만 오웬스에 총격으로 피소되고, 음주운전, 엘비스 프레슬리 맨션 무단침입, 알콜과 약물 중독으로 병원과 재활센터를 오가는 지경에 이른다. 1982년 네번째 부인이 친구 수영장에서 익사했으며, 다섯번째 부인은 이듬해 메타돈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제리 리 루이스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제임스 브라운, 리틀 리처즈, 샘 쿡, 레이 찰스, 버디 홀리, 에버리 브라더스, 팻츠 도미노와 함께 등재됐다.  

 

그는 2019년 뇌졸중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었지만, 이듬해 내쉬빌에서 가스펠 앨범을 녹음했다. 그러나, 출반되지는 않았다. 

 

Jerry Lee Lewis, a Rock ’n’ Roll Original, Dies at 87

With his pounding piano, his impassioned vocals and his incendiary performing style, Mr. Lewis lived up to his nickname, the Killer.

https://www.nytimes.com/2022/10/28/arts/music/jerry-lee-lewis-dead.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