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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Beat Express
2017.06.30 13:25

뉴욕 변호사 장준환씨 '변호사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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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 김병로, 이인, 허헌, 이병린, 이돈명, 이태영, 황인철, 조영래, 노무현, 한승헌 

뉴욕 변호사 장준환씨 '변호사들' 출간
변호사들:그들의 치열한 법정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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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지음 | 한스컨텐츠 | 2017년 06월 23일 출간

『변호사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유신 시대, 군사 독재 시대의 암흑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상식과 가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어온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병찬, 김병로, 이인, 허헌, 이병린, 이돈명, 이태영, 황인철, 조영래, 노무현, 한승헌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꽃을 피운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의 치열한 삶과 법정 투쟁에 빚진 점이 크다. 그 역사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며 법의 정신, 사회적 정의와 직업적 헌신,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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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장준환은 뉴욕 맨해튼의 장준환변호사법률그룹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1999년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했다. 보스턴대학교(Boston University)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범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리대학교(Barry University)와 아메리칸대학교(American University) 로스쿨에서 법학박사(Juris Doctor)와 법학전문석사(L.L.M. in Law & Government, Specialized in U.S. Trade Law & Policy) 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의 여러 대학과 컨퍼런스에서 법률과 국제 정세에 관해 강의했으며, 미국 동부의 한인 라디오 방송 [K-Radio AM1660]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트럼프 신드롬?가치와 올바름이 조롱받는 시대』가 있다.

목차

서문 

Ⅰ 국권 강탈기의 인권변호사들 
항소는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도마 안중근을 변호한 변호사들_성암 안병찬 외 
만인 가운데 하나를 만나기도 어려운 선비의 지조: 가인 김병로 
법복을 입은 독립투사: 애산 이인 
대한민국에서 부를 수 없었던 불온한 이름: 긍인 허헌 

Ⅱ 해방 이후와 유신 독재시기까지의 인권변호사들 
법은 올바른 입법자와 운용자를 만날 때 비로소 진가가 발휘되는 운이다: 심당 이병린 
지혜의 소금, 양심의 소금, 용기의 소금: 범하 이돈명 
대한민국 절반의 희망이 된 여성 1호 변호사: 이태영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 싸운다: 황인철 

Ⅲ 신군부 독재시대의 인권변호사들 
억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 조영래 
원칙과 상식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노무현 
이긴 적 없지만 늘 이겼던 변호사: 산민 한승헌 

참고문헌

책 속으로

안중근과 그의 동지들을 면회한 후 그는 뤼순 고등법원에 변호사 선임계를 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조선 변호사는 만주 법원에서 변론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안병찬의 선임계 접수를 거절했다. 안병찬은 “피고인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미리 사형을 선고한 것과 다름없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분함을 이기지 못해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17쪽) 

“피고인들이 형언 못할 고문을 당한 것이 분명하니 검진해주기를 바란다. 피고인들의 옷을 벗겨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애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피고 중 한 사람이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그러자 너도나도 앞다투어 옷을 벗었고 재판장은 순식간에 나체로 가득 차버렸다. 피고들의 몸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예심을 끌며 상처를 아물린 다음에 진행된 공판이었음에도 상처에서는 여전히 진물이 흘렀다. 이때 애산은 그들의 나체를 보며 장하다고 해야 할지 비장한 용기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동에 가슴이 메었다고 한다. (71쪽)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는 사법부가 변호사들의 변론을 인정할 리는 없었다. 재판은 형식이었다. 그들은 그냥 법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김지하가 재판정에 들어설 때는 무려 30명의 교도관이 따라붙어 공포감을 조성했고, 방청석은 정보부 요원들밖에 없었다. 변론의 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희망이라고는 재판 기일을 늦추면서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는 길뿐이었다. 변호인단들로서는 지금의 재판부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면서 재판을 끌 수밖에 없었다. (173쪽) 

재판을 지켜보던 가족들이 나중에는 “변호사가 저래도 되나?”, “피고인들보다 더 과격하게 말하는데 저러다 우리 아들 형량 세게 나오는 거 아닌가?” 하며 가슴을 졸였고, 판사는 사적인 자리에 노무현을 따로 불러 “빨갱이 편들지 말라. 그러다 다친다”고 타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노무현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마주한 국가 권력의 폭력 앞에 솔직하게 반응했다. (249쪽) 

한승헌 변호사는 5공화국에 의해 다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엮인다. 3공화국 때부터 정권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그를 신군부라고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사흘이 모자라는 두 달 동안 햇볕 한 번 못 본 채 지하실에서 고문과 수모를 겪은 후, 1심과 재심을 거쳐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형 집행정지로 1여 년의 징역살이를 마치고 나오지만 1998년 복권될 때까지 8년간 변호사 자격정지를 당한다. 이 시기를 그는 “검사로 시작해 피고인과 방청인으로도 살아본, 두루두루 뜻깊은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301쪽) 


책 < 변호사들 > 서문
이 책을 쓴 기간은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서 헌법과 법률에 대한 관심이 가장 고조된 시기와 겹친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모든 국민의 눈은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그 뜨거운 관심은 미국 한인사회에서도 결코 덜하지 않았다. 아울러 대통령 탄핵의 이유가 된 국정농단과 뇌물 사건 등에 대한 특별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었다.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구속적부심이 진행되는 장면이 연일 매체를 가득 채웠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사는 한국인들이 열띤 법률 토론을 펼쳤다. 
헌법의 정신과 가치에서부터 형사소송법의 구체적인 절차, 특정인의 구속 여부에 이르기까지 화제도 다양했다. 그리고 상식적인 대다수에게는 낯설고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모습도 보였다. 탄핵 심판을 받는 대통령과 죄상이 훤히 드러난 피의자들이 자신의 법률적 권리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행사한 것이다. 법률을 근거로 압수수색이나 소환을 거부하기도 했고 법리 다툼 끝에 구속을 피한 사람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이런 장면은 한국의 인권 의식과 관행, 사법 체계가 선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찜찜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권위주의 정권이 지배하던 과거부터 수많은 선량한 피의자와 그들의 변호인들이 때로는 피를 흘리며 때로는 목숨을 걸고 획득해온 소중한 권리를 그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 대가 없이 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방향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헌법의 가치가 인정받고, 공분의 대상이 된 범죄자의 사법적 권리를 폭넓게 보호하는 수준으로 우리 사회가 이르기까지 정의로운 변호사들의 역할이 컸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빚진 바가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이런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유신시대, 군사독재시대의 암흑기를 거치며 대한민국의 상식과 가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어온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변호사셨다. 내 유년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변호사를 꿈꿔왔고 변함이 없었다. 미국 이민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도 미국 변호사가 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을 정도였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게 된 이후 할아버지 같은 변호사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늘 있었다.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서슬 퍼렇던 유신 독재 시대에 유능한 검사셨고 지검장 지위까지 오르셨다. 어쩌면 이 책에 실린 변호사 중 어떤 분과 법정에서 다투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일이라 그런 기억은 없다. 나의 뇌리에 각인된 할아버지는 청렴하고 약한 사람과 공감하고 법의 가치를 존중하는 훌륭한 변호사 그 자체이다. 할아버지가 계기가 된 책이 그분과는 인생행로와 사상적 결이 달라 보이는 변호사들을 다룬 것은 몹시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만큼은 논리적으로 자연스럽다.
숨 쉴 틈도 없이 바쁜 와중이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책을 쓸 수 있었다. 방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글을 가다듬는 등 집필의 전 과정에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많은 수고를 해주신 장원철 선생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숭고한 정신과 가치를 남긴 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고 뻔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널리 공유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썼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출판사 서평

‘인권 변호사’라는 말은 형용 모순이다.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주 업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적 폭압에 맞서 ‘자기 앞길’을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것이 법조인으로서 ‘자기 앞길’을 챙기지 못한다는 걱정을 듣던 역설의 시대를 거쳐야 했다. 이렇듯 자기 앞길보다 변호사의 본분을 추구했던 이들은 한국 민주주의 밀알이 되었다. 변호사로서 이들의 치열한 삶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지금의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줄 것이다. 

법정이 사실상 무력화되었던 일제강점기, 민족 변호사들의 변론 활동은 그 자체로 독립운동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병로·이인·허헌 변호사는 목숨을 건 민족변론을 펼쳤다. 해방 이후 혼란기, 5·16 군사 정변과 함께 찾아온 독재 시대에도 법정의 정의가 제대로 서지 못했다. 민주화의 열망은 반공 열풍에 질식했다. 이 시기 이병린·이돈명·이태영·황인철 등 인권변호사들은 당당히 독재에 맞섰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민중을 총칼로 짓밟고 집권한 신군부 세력은 강압 통치에 나섰다. 유신 시대를 거쳐온 선배 변호사들과 함께 조영래·노무현·한승헌 등의 변호사들이 한층 더 조직적인 인권 변론을 했다. 이들은 법정을 넘어 사회운동과 정치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