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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s of New York <23>  Floating Churches 

허드슨강, 이스트리버의 수상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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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Church of Our Savior(1870-1910)

 

옛날옛적 강 위에 교회가 있었네.

 

2021 메이시백화점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이스트리버에서 펼쳐졌다. 강 위의 바지선에서 총 6만5천여개의 포탄이 하늘로 치솟아 스펙터클한 불꽃이 그려졌다. 지난 5월엔 허드슨강 피어55에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라는 이름의 수상 공원이 오픈했다. 이스트리버와 허드슨강에는 조만간 수영장도 설치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옛날 옛적 맨해튼의 동과 서에 흐르는 두 강 위엔 교회가 있었다. 강 위에 떠있는 수상 교회(floating church)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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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Church of Our Savior(1844-1866)

 

1834년 앤드류 잭슨이 대통령이었을 때 뉴욕은 번화한 항구도시였다. 무역에서 선원들은 무척 중요했지만, 유럽에서 온 제 1세대 이민자들이나 외국 국적자 선원들은 토착 거주민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사기당하기 일수였다. 성공회 선원들이 모여 설립한 선원교회협회(SCI, Seamen's Church Institute)는 힘없는 외국인 선원들에게 쉼터와 같았다. 선원교회협회는 선원들에게 영적, 정서적, 육체적 안식처를 제공하게 된다. 

 

1843년 SCI는 벤자민 C.C. 파커를 담임목사로 임명하고, 로어이스트사이드 파이크 스트릿(Pike St.) 인근 이스트리버 위에 수상 교회 'Floating Church of Our Savior'를 세웠다. 1909년 개통된 맨해튼 브리지 인근이다. 조지 자딘(George Jardine) 파이프 오르간까지 설치됐던 이 교회는 선원들이 환영받는 예배장소가 됐지만, 1866년 불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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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Church of Holy Comforter(1846-1868) 

 

1846년엔 맨해튼 웨스트 허드슨강 데이 스트릿(Dey St.)에 두번째 수상 교회 'Floating Church of the Holy Comforter'가 설립됐다. 이 교회는 선원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수용했다. 1868년까지 22년간 운영됐으며, 이후 스태튼아일랜드의 마리너 하버로 이동해 'All Saints’ Episcopal Mission Chapel'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 이스트 로어맨해튼(월스트릿 일대)은 선원들로 북적거리는 지역이었다. 이스트리버 교회의 화재로 1870년엔 다시 이스트리버의 34 파이크 스트릿에 세번째 수상교회이자 첫번째 미션하우스를 설립했다. 이 교회는 1910년까지 41년간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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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Church of Our Savior(1870-1910)

 

1888년 Church of the Holy Comforter는 하우스턴스트릿(341 West Houston St.)으로 이전했고, 1923년까지 운영된다. 이후 로어맨해튼 사우스 스트릿, 스테이트 스트릿을 거쳐 1991년부터 현 워터스트릿(241 Water St.)에 정착하게 된다. 사우스스트릿 시포트뮤지엄 인근이다. 

 

1894년 SCI는 52 마켓스트릿에 기숙사도 세웠다. 1908년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SCI에 가입해서 1945년 사망할 때까지 이사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1912년 4월 15일 영국 사우스햄턴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던 여객선 RMS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해 침몰하며 1천500여명이 사망했다. 승객의 대다수는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미국으로 오는 이민자들이었다. SCI는 타이타닉호 침몰을 계기로 '선원들을 위한 백만달러짜리 주택'을 론칭하게 된다. RMS 카파티아호에 의해 구조된 승무원들은 SCI에서 의류와 식량을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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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SCI는 25 사우스 스트릿에 12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예배당을 비롯, 기숙사형 객실, 고용 사무실, 은행, 도서관, 식당을 마련했다. 그러나, 1924년 대공황을 앞두고 해운산업도 쇠퇴해지자 선원 실업자들이 급증한다. 이에 SCI는 긴급 홈리스 셸터를 열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엔 유럽에서 망명자와 난민들이 뉴욕으로 건너왔다.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 출신 선원들을 위한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1991년 워터 스트릿(241 Water St.)으로 이전한 SCI는 이민자들보다 선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2001년 9/11 참사 때는 긴급구호소로 변모했으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는 구호금을 조성했다. https://seamens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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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7.13 15:54

    뉴욕에 수상교회가 있었군요. 수상가옥, 수상파티는 아는데 floating churches는 처음 듣네요. 컬빗의 다방면의 탐구가 감탄을 자아냅니다. 우선 옛날 옛적에란 말이 시를 연상시킵니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으로 시작하는 "메기의 추억"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갔습니다. 1834년에 허드슨강과 이스트리버에 선원교회가 세워젔고 유립의 선원들의 영적 안식처가 됐다니 미국이 얼마나 신앙의 자유를 인종과 나라를 초월해서 누리게 했는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림들에게 베풀고 있네요. 2001 9/11, 2005년 허리캐인과같은 천재지변에도 SCT가 난민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고 도움의 역할을 했네요.선원교회 역사를 읽으면서 신앙과 자유를 배우고 느꼈습니다. 선원교회를 알게해 준 컬빗에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