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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a(South Harlem)? 모닝사이드 하이츠 맛집 <1> Bar 314

Black Magic...오징어 먹물 리조토와 뿌체(pucce)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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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 인근 바 314(Bar 314)의 오징어 먹물 리조토(Squid Ink Risotto-Shrimp-Clamari-Mussles).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20년이 넘었다. 1996년 1월 뉴욕에 와서 컬럼비아대 인근 기숙사에 자리 잡고, 어학원(ESL)에 다닐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109스트릿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기숙사 빌딩 1층은  한겨울 허드슨강 찬바람이 마치 앰뷸런스 사이렌처럼 쌩쌩 소리를 내며 불고 있었다. 기숙사 침대 스프링은 움푹 꺼졌지만, 뉴욕 초년 학생 신분에 당시 영어 실력으로 누구에게 불평하느니 참는 편이 나았다.


우리 동네, 모닝사이드 하이츠(Morningside Hights)는 할렘과 멀지 않았다. 어학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디렉터는 모닝사이드 파크는 마약쟁이들이 많으니 대낮에도 절대로 근처에 가지 말라고 협박성 충고를 했다. 컬럼비아대 캠퍼스가 자리한 암스테르담 애브뉴 116스트릿 인근도 마찬가지였다. 그 위로 육교가 설치된 것도 우범지대였기 때문이었는가 보다.

 


IMG_8207.jpg 리버사이드 교회


2019년, 모닝사이드 하이츠와 할렘은 더 이상 위험지대가 아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할렘에 사무실을 차린지 오래고, 스타 셰프 마커스 사무엘슨(Marcus Samulsson)은 '레드 루스터(Red Rooster)'라는 힙스터 소울푸드 레스토랑을 열었고, 이스트빌리지에서 데이빗 장(David Chang)이 모모푸쿠 누들바(Momofuku Noodle Bar)로 시작한 라멘 열풍이 할렘까지 당도해, 진 라멘(Jin Ramen)이 성업 중이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와 학생들이 할렘에 둥지를 텄다. 할렘 남쪽은 최근 부동산업자들의 노른자위가 되어 '소하(SoHa, South Harlem)'으로 불리우다가 정치인들과 주민들의 반대로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컬럼비아대학교를 중심으로 리버사이드 처치, 세인트 존더 디바인 성당이 있는 모닝사이드 하이츠도 변화의 물결이 여러차례 지나갔다. 브로드웨이와 110스트릿의 명물 베이글 숍 컬럼비아 베이글(Columbia Bagel)은 문을 닫았고, 길 건너 수퍼마켓 다고스티노(Dagostino)는 새 건물이 올라간 후 한국 식료품 마켓 H-마트가 들어섰다. 가끔씩 책 구경 가던 서점 라비린스(Labyrinth)는 사라졌고, 두 블럭 건너에 스타벅스(Starbucks)가 생겨났다. 110스트릿 코너로 이사한 후 토요일엔 종종 아마추어 오페라 가수들의 아리아가 들렸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타치(Taci)는 폐업했고, 멕시칸 타코 체인 치포틀(Chipotle)로 대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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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 게이 프라이드의 달을 맞아 무지개색 깃발을 꽂았다.


모닝사이드 하이츠에서 6년간 살다가 브루클린으로 넘어갔다. 아파트보다 타운하우스가 많은 브루클린 하이츠(Brooklyn Heights)로 이사했다. 그후로 가끔 옛날 동네로 가게 되었다. 리버사이드 교회의 콘서트나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배경으로 한 무성영화 상영회, 세인트 존더 디바인 성당에서 열리는 뉴욕필하모닉의 무료 메모리얼 데이 콘서트, 컬럼비아대 밀러시어터에서 열리는 클래식 콘서트에 갈 때다.


이전까지는 모닝사이드 하이츠에서 먹거리를 해결하지 않았다. 20여년 전 학생 신분이긴 했지만, 맛집도 별로 없었다. 뉴요커들이 식탐에 빠지거나, 스타 셰프들이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어쩌다 감기 걸리면 한식당 밀(Mill)에 가서 갈비탕을 먹곤 했다. 하지만, 맛이라기 보다 싸고, 가까워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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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와 세인트 루크 오케스트라, 그리고 바흐의 골든 랑데부.


최근 리버사이드 교회 인근 맨해튼 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열린 공연을 보러갔다가 모닝사이드 하이츠를 친구와 탐험하기로 했다. Yelp로 리서치를 해보니, 추천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암스테르담 애브뉴 120스트릿 인근에 식당이 많았다. 그 근처는 6년간 살면서 딱 한번 큰 맘 먹고 이디오피아 식당에 가본 것이 전부였다. 모두들 기피하는 거리였다. 이젠 힙스터들, 컬럼비아 수재들이 즐겨 찾는 식당가가 되었다. 


눈이 부시게 청명했던 토요일 폴 테일러 댄스 컴패니(Paul Taylor Dance Company)가 세인트 루크 오케스트라(Orchestra of St. Luke's)의 반주로 바흐의 'Musical Offering'(1986)과 'Esplanade'(1975)를 공연했다. 마크 모리스(Mark Morris)의 전 세대 격인 안무가 폴 테일러와 바흐의 바로크 음악이 싱크로나이즈된 작품들이었다. 마크 모리스 다음으로 폴 테일러의 팬이 되었다. 맨해튼 음대 극장은 처음인데, 아르데코 풍에 황금색 커튼 인테리어가 아늑하고, 품위 있었다.


공연 후 오후 4시 경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암스테르담 애브뉴로 향했다. 부동산업자들이 SoHa로 부르고 싶었다는 동네다.  먼저 식당 관상부터 보려고 했다. 하지만, 허기가 져서인지 코너에 있는 바314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리서치하면서 후보로 점찍어 둔 식당이다.  



A Lunch at Bar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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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피자와 파스타 전문 체인 레스토랑 세라피나 할렘(Serafina Harlem) 자리에 오픈한 바 314(Bar 314).

  

화창한 토요일 오후 문을 활짝 연 바 314의 바깥에 세워진 메뉴판에는 오징어 먹물 리조토(Squid Ink Risotto-Shrimp-Clamari-Mussles $19)가 문에 들어왔다. 나는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든 오징어 먹물 파스타나 리조토가 메뉴에 있으면, 무조건 시킨다. 샌드위치나 버거를 찾던 친구는 푸체(Pucce, 피자 반죽으로 만든 샌드위치 빵) 샌드위치 메뉴를 보고 마음에 들어 문지방을 넘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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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밖의 칠판 메뉴에 적힌 리조토와 프리토 미스토(모듬튀김, 해물), 하우스 와인(왼쪽). 피자빵 샌드위치 뿌체 메뉴. 


바 314는 할렘에 피자 전문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발루치(Barbbaluci)를 성공시킨 셰프 앤드류 로프레스토(Andrew LoPresto)와 칵테일 전문가 브루노 몰페타(Bruno Molfetta)가 열었다. 브루노 몰페타는 이탈리아 남부 푸글리아 지방 아드리아해 연안의 바리(Bari, 이태리 장화 지도에서 발뒤꿈치) 출신으로 행운을 가져온다는 꽃씨/도토리 모양 조각 'Pumo de fiore'을 로고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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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314는 경쾌한 빨간 벽과 오렌지색 의자, 그리고 굴뚝이 나 있는 빨간 피자 오븐이 아늑하게 만든다.


레스토랑 이름 바 314는 주소도 지역번호도 아니다. 수학에서 원주율(원둘레와 지름의 비)인 파이(π)의 값,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에서 따왔다. 피자를 파이(Pie)라고 부르니 먹는 파이와 수학의 파이에 커넥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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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로제(로사토)와 화이트(아르네이스)가 1잔에 $8.


먼저 와인은 요즘에 록스타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로제(이탈리안 '로사토')와 이탈리안 화이트 아르네이스(Arneis)를 주문했다. 대학가라 서인지 1글래스($8), 1병($25)로 가격도 착하다. 음료 메뉴에는 이탈리아 지도와 지역별 포도를 명시해서 바 314는 아카데믹하고, 친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웨이터가 시뇨라(Signora, 기혼여성 존칭)로 불러서 마치 이탈리아에 가있는 착각도 들었다. 로사토는 프로방스 로제보다 빨간색이 짙고 과일향이 감돌았다. 튀김과 먹기에 상큼했다. 피드몬테 지방에서 생산되는 아르네이스는 드라이해서  튀김과 더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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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 모듬 튀김. 오징어와 새우는 바삭했지만, 호박이 너무 물컹했다.


애피타이저는 나누어 바깥 칠판 메뉴에서 본 해물모듬 튀김(Fritto Misto, calamari, shrimp, zucchine)를 시켰다. 오징어 튀김은 아삭했지만, 호박 튀김은 물기가 많았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스카르페티(Scarpeti)에서 맛본 구두끈처럼 가느다랗고 바삭고소한 튀김이 생각났다. 디핑소스는 마요네즈+레몬 소스(화이트)가 마리나라(레드)보다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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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볼과 브로콜리랍 뿌케 샌드위치는 아루귤라 샐러드와 함께 나왔다. 


안쪽 바 옆의 피자 오븐을 보니 피자를 잘 구울 것 같았지만, '피자의 메카' 브루클린에 살고 있으니 이 동네에서 피자 입맛이 돌지는 않았다. 피자 이름도 식당 주소를 딴 1260(미트볼, 리코타), 피카(Picca, 카치오카발로 치즈, 핫 소시지), 314(페퍼로니, 고르곤졸라, 모짜렐라 치즈), 모닝사이드(가지, 올리브), 리버사이드(시칠리안투나, 적양파), 피자 프리타(모짜렐라, 그라나 치즈를 올려 튀긴 피자) 등등 흥미롭다. 추가할 수 있는 토핑($1-$4)도 마늘, 안초비에서 리코타, 미트볼, 참치까지 31종에 달한다. 


바 314는 샌드위치빵을 피자 반죽으로 만드는 '뿌체(Pucce)'로 중동식 빵인 피타 브레드처럼 담백하고, 쫄깃하다. 아메리카나(치킨까스 샌드위치), 논나(Nonna, 미트볼+브로콜리 랍), 브루노(프로슈토, 선드라이드토마토...), 로버타(야채구이), 메디테라니아(시칠리안 투나, 양파) 등 이색적이다. 친구는 논나 뿌체를 시켰다. 하지만, 바다 내음, 오징어의 지린내가 가득한 리조토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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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먹물과 홍합 파스타는 홍합이 무척 싱싱했는데, 약간 싱거워서 파미자노 치즈를 뿌리니 한층 맛이 좋았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오징어 먹물 리조토는 오징어에 홍합으로 둘러싸였고, 새우 두마리까지 올려 나왔다. 홍합은 마치 몬탁에서 바로 잡은듯 식탁에 올린듯 싱싱했다. 리조토는 쫍쪼롬한 맛은 부족해서 웨이터에게 파미자노 치즈를 부탁해 뿌렸더니 감칠맛이 났다. 짜장면과 함께 환상적인 블랙 푸드. 오징어 먹물 리조토는 토요일 오후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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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의 풍경과 행운을 상징하는 'Pumo de fiore'가 담긴 Bar 314 엽서.


BAR 314

1260 Amsterdam Avenue@122nd St. 

https://www.bar314ny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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