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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Food Obsession <10> Napoleon Bonaparte & Coffee 

나폴레옹: 유배지에서 즐긴 세인트헬레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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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Josef Sandmann, Napoleon on Saint Helena, watercolor by  c. 1820/ Starbuck's St. Helena Coffee Reserve/ St. Helena on Google map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유일하게 좋은 것은 커피 하나뿐이다."

 

"진하고 넉넉한 커피가 나를 깨운다. 커피는 따뜻함, 특이한 힘, 그리고 즐거움과 함께 고통을 준다. 나는 무감각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고통을 받고 싶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제국의 위대한 황제 나폴레옹 1세(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은 섬과 인연이 깊다. 그는 이탈리아 제노바 령이었던 코르시카섬(Corsica)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의 이름은 이탈리아 나불리오네 디 부오나파르테(Nabulione di Buonaparte). 그의 아버지 카를로 보나파르트는 이탈리아계 변호사 겸 귀족회의 의원으로 코르시카가 프랑스령이 된 후 성을 '보나파르트'로 바꾸고 귀족 자격을 얻었다.  

 

나폴레옹이 처음 유배된 곳은 코르시카 인근 이탈리아령의 엘바섬(Elba)이었으며, 백일천하 후 다시 유배되어 살다가 세상을 뜬 곳은 아프리카 서쪽의 세인트헬레나섬(St. Helena)이었다. 나폴레옹의 모국어는 코르시카어였고, 학교에서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웠다. 세인트 헬레나에서는 영어 개인 교습을 받았다. 나폴레옹은 코르시아어 억양이 센 불어를 구사하는 바람에 종종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컴플렉스'라고, 키가 작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168cm(5ft 6")로 당시 프랑스 남자의 평균 키(164cm)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1814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후 몰락하게 된다. 퐁텐블로 조약으로 프랑스 제국 황제에서 퇴위되어 고향 코르시카섬 인근 이탈리아령 엘바섬의 소영주로 강등되면서 사실상의 유배 생활을 했다. 이듬해 2월 나폴레옹은 엘바섬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칸에 상륙 후 군대를 이끌고 루이 18세가 집권한 파리로 진군했다. 1개월 후엔 토벌군을 무찌르고, 황제로 복귀했다. 

 

하지만, 6월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한 후 퇴위를 선언하면서 황제 복귀는 백일천하로 남았다. 승전국 영국은 빈 회의에서 나폴레옹을 서아프리카 앙골라 인근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St. Helena)섬에 가두었다. 나폴레옹이 다시 탈출을 꿈꾸지못할 머나 먼 섬이었다. 1815년 46세의 나폴레옹은 이 화산섬의 롱우드하우스(섬에서 유일한 프랑스령)에서 1821년 51세로 사망할 때까지 여생을 보냈다.  

 

 

황제의 소박한 식성, 후다닥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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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의 협상 풍자 커리커처. James Gillray, The Plumb-pudding in danger; - or - State Epicures taking un Petit Souper, 1805

 

그러면, 나폴레옹은 어떤 음식을 즐겼을까?  

그는 미식가는 아니었다. 취향은 소박했지만, 식사량은 많았고, 후다닥 빨리 먹는 습성이 있었다고 한다. 식사에 약 12분 이상 소요하지 않았다. 아침식사는 궁전에서 늘 혼자 먹었다. 둥그런 마호가니 식탁에서 냅킨도 두르지 않은 채 5-7분 내에 끝냈다. 때론 꾸벅꾸벅 졸면서 종종 스푼과 포크 없이 손가락으로 집어 먹기도 했다. 꼭꼭 씹어 먹지 않아서 급체, 소화불량에 시달리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위장이 약했으며, 그의 사망 원인(독살설도 있지만)은 위암으로 판명됐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위암으로 사망했다. 

 

나폴레옹은 커피(St. Helena Coffee) 애호가였으며, 꼬냑(Courvoisier Napoleon Cognac)과 샴페인(Moët & Chandon Brut Impérial), 그리고 와인(특히 샹베르탱Chambertin)도 즐겼다. 그의 이름을 딴 닭요리(치킨 메랑고, Chicken Marengo), 페이스트리(밀푀유, Mille Feuille), 마사 스튜어트의 커피 나폴레옹 케이크(Coffee Napoleon Cake)도 있다. 러시아에서는 명절에 '나폴레옹 케이크'를 먹는다고 한다. 각설탕에 브랜디를 뿌린 후 커피에 넣어 마시는 카페 로얄(café royal)도 전해진다. 

 

나폴레옹과 음식 열정을 연재한다.  

 

 

#1 나폴레옹과 세인트 헬레나 커피 St. Helena 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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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섬의 커피산지 샌디 베이 전경/ 세인트 헬레나 커피 원두/ 솔로몬&컴패니의 세인트 헬레나 커피 로고

 

커피의 원산지는 9세기경 이디오피아의 고원 지대이다. 양을 치던 젊은 목동 '칼디'가 어느날 양 몇 마리가 낯선 열매를 먹은 후 밤새 뛰어 노는 걸 발견하고, 마을로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처음엔 피곤함을 덜어주는 효능으로 수도자들을 돕기 위해 쓰였다. 이후 커피는 이집트와 예멘으로 전파됐다. 예멘은 이디오피아 커피를 경작하면서 아라비카(Arabica) 커피의 원산지가 됐으며, 15세기 경부터 예멘의 모카(Mocha) 항구에서 세계로 수출됐다. 바로 이 예멘에서 모카 커피가 유래된 것이다. 이후 빈센트 반 고흐도 즐겨 마셨다는 예멘 모카 커피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커피와 함께 세계 3대 커피로 손꼽힌다. 

 

커피가 유럽에 처음 들어간 것은 17세기 초반이다. 프랑스에선 1659년 아랍과 교역이 활발했던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 첫 커피 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1686년에 파리에도 첫 카페가 오픈했다. 18세기 들어 서는 볼테르, 루쏘, 발자크와 빅토르 위고 등 철학자와 작가들이 커피를 즐겼다.   

 

나폴레옹도 처음엔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하루 두잔씩 마셨다. 본격적으로 커피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때는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되어 가는 배 안에서부터다. 그는 저녁식사 후 체스 게임을 한판 하고나서 커피를 마셨고, 갑판으로 나가 산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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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 가는 배에서 나폴레옹. Sir William Quiller Orchardson, Napoleon on Board the Bellerophon

 

1815년 10월 다시 나폴레옹은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향했다. 이제 나폴레옹에게 '탈출'은 불가능한 단어였다. 프랑스 신문과 책도 금지됐다. 섬에는 쥐들이 들끓었고, 그가 살 집 롱우드하우스는 파손되었고, 바닷 바람으로 늘 축축해 살기에 열악했다. 이 섬에서 유일하게 나폴레옹을 흡족시킨 것은 다름 아닌 커피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유일하게 좋은 것은 커피 하나뿐이다"라고 말했으며, 덕분에 이후 파리에서 세인트헬레나 커피가 유명해진다. 세인트헬레나의 아라비카 원두(Green Tipped Bourbon Arabica)는 풍부한 블랙체리향, 시트러스, 초콜릿과 카라멜의 여운에 감미로운 산도가 균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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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조세핀을 위해 의뢰한 이집트 아멘호테프 3세 그림이 있는 접시. 조세핀은 접시를 거부했다고./ 나폴레옹이 자신의 커피잔으로 비방 드농에게 의뢰한 커피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는 매일 오전 6시 아침식사 때, 10시 이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리고 오후 8시 저녁식사는 항상 커피로 마감했다. 저녁식사 커피는 1806년 나폴레옹이 직접 파리 근교의 도자기 타운 세브르(Sèvres)의 도예공장에 위임해 제작된 커피잔과 은제 주전자에 나왔다. 이 커피잔은 자그마한 청백 도자로 금색으로 이집트 상형문자에 나폴레옹에 의해 루브르뮤지엄의 첫 관장으로 임명됐던 화가 비방 드농(Vivant Denon)이 그린 이집트 풍경이 담겨 있었다. 

 

꼬냑의 팬이었던 나폴레옹은 종종 각설탕에 코냑(브랜디)을 뿌린 후 넣어 마시는 카페 로얄(café royal)도 즐겼다고 한다. 커피에 대한 집착은 죽는 황제가 순간까지 계속됐다. 나폴레옹의 주치의였던 프랑소아즈 카를로 안토마르치는 몇 모금의 커피만을 허용해다가 완전 금지시켰다. 앙리 베르트랑 장군은 나폴레옹이 자신에게 커피 한 스푼을 달라고 20번이나 구걸했지만, 의사가 위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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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의 유일한 프랑스령이었던 롱우드 하우스에서 6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프랑스에서 머나먼 섬이라 엘바섬처럼 탈출을 꿈도 꿀 꿀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섬에 갇혀서 한때 정원을 가꾸고, 중국식 찻집을 마련했으며, 마르샹 가든(Merchand's Garden)에는 커피 덤불도 심었다고 한다. 하지만, 커피 덤불은 나폴레옹의 운명과 함께 시들어갔다. 귀양생활 중 프랑스어 신문과 책도 구할 수 없었다. 때문에 독서광인 나폴레옹은 에마누엘 드 라 카세스 백작으로부터 영어를 배워 영국 신문과 책을 읽었다.  나폴레옹은 유배지에서 회고록과 소설 '클리쏭과 유지니(Clisoon et Eugenie)'를 비롯, '전쟁의 기술' ' 줄리어스 시저' 등 책을 집필했다. 

 

1821년 5월 5일 저녁 나폴레옹은 숨을 거두면서 "프랑스, 군대, 군 통수자, 조세핀(France, l'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이라는 말을 남겼다. 부검 결과 나폴레옹이 위암으로 사망했으며, 위장에서 커피 찌꺼기가 나왔다.(나폴레옹이 비소 독으로 암살됐다는 설도 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에 묻혔다가 1840년 루이 필립 1세에 의해 유해가 옮겨져 파리의 레 앵발리드(Les Invalide)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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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그에게 헌정하는 교향곡을 작곡했던 베토벤은 커피광이었다.

 

나폴레옹보다 1년 뒤에 태어난 커피광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교향곡 제 3번 '영웅'(Eroica, 1802-04)의 원래 제목은 '보나파르트(Bonaparte)'였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1789)의 이상인 자유, 평등, 박애를 구현할 것으로 믿고 그에게 헌정한 곡이었다. 그러나, 1804년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후 분노해 나폴레옹 역시 폭군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베토벤은 분노해 악보 제목 페이지를 찢어버렸고, 제목을 이탈리아어 '영웅 교향곡(Sinfonia Eroica)'으로 바꾸어 출판했다.   

 

하지만, 영국 시인 바이런(Lord Byron)에게 세인트 헬레나 섬 유배 시절의 나폴레옹은 박해받고, 고독하고, 결점 투정이 천재로 낭만적인 영웅상이었다. 시인 바이런(George Byron, 1788-1824)은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송가'(Ode to Napoleon Buonaparte, 1814)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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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Quiller, St. Helena 1816, Napoleon dictating to Count Las Cases the Account of his campaigns/ St. Helena Coffee

http://www.sthelenatourism.com

 

세인트 헬레나에서 커피 재배는 1733년 이스트인디아 컴패니 소유주가 모카에서 씨앗을 가져오면서 시작됐다. 오리지널 커피나무 대부분은 해발 2천 피트 높이의 화산 분화구로 둘러싸인 샌디 베이(Sandy Bay) 지역에서 자라며 나무의 키가 30-40피트에 달한다. 세인트 헬레나산 원두는 1839년엔 런던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1845년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원두가 됐다. 지금도 연간 커피원두 생산량이 60kg 불과하다. 브라질의 경우는 연간 수천만 백을 생산하고 있다. 세인트 헬레나 커피는 이처럼 희귀해서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1파운드에 $80-$160에 수준이다. 자메이칸 블루 마운틴 커피(Jamaican Blue Mountain Coffee)는 $35-$180선이다. 2016년 스타벅스에서 세인트 헬레나 리저브 커피 원두 1파운드를 $160에 내놓았다. 나폴레옹이 아니었더라면, 세인트 헬레나 커피는 아직도 무명 신세일지도 모른다. <계속>

 

*예전 서울의 우리 동네 인근 삼선교에는 꽤 근사한 흰색 건물에 나폴레옹 과자점이 있었다. 그 제과점에선 나폴레옹 부인 이름을 딴 조세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지금은 10개의 분점을 갖고 있는 나폴레옹 제과점의 별명이 '제과제빵 사관학교'이다. 리치몬드 과자점, 김영모 과자점, 코른베르그 과자점, 마인츠돔 과자점 등 유명 베이커리의 제과 명장들이 나폴레옹 과자점 출신이라고 한다. 또한, 파리 바게뜨와 뚜레주르같은 미국까지 진출한 베이커리에서 나폴레옹 과자점 출신을 종종 스카웃해가기 때문이라고. 한국인들의 제빵 기술이 일류급인 것이다. https://napoleonbak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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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3.02 00:12
    나폴레옹의 빈틈없는 강의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한 두가지를 알게된 게 어닙니다. 너무 많은 나폴레옹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배웠습나다. 나폴레옹이 독서광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커피광이란 사실은 컬빗이 가르쳐주었습나다. 세인트헬레나 커피를 꼭 한잔 마실려고 합니다. 파리를 헬레나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도 여행지 목록에 넣어야겠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