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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 그리울 때 최불암씨와 KBS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 하이라이트 <1> 묵은지와 할머니 


해남(묵은지붕어찜, 묵은지숭어회), 나주(묵은지쌈만두, 묵은지생선찌개)

순창(저수지 아래서 3년 묵은지, 묵은지삼겹살구이), 남원(묵은지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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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코로나 팬데믹으로 문화 생활은 물론 식생활도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2020년의 여름. 유튜브에서 발견한 KBS-TV의 '한국인의 밥상'은 참으로 한국의 맛과 우리 민족의 지혜를 되새길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2011년부터 방영된 '한국인의 밥상'은 테마별로 음식에 얽힌 이야기, 가난 속에서 우리 여인네들의 참신한 레시피로 온 식구가 나누어먹었던 지혜, 그리고 김치, 고추장, 간장, 된장과 세월이라는 조미료의 마술적인 힘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만들어준다. 


MBC-TV '수사반장'과 '전원일기'의 국민 탤런트 최불암씨가 친숙한 얼굴과 구수한 목소리로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은 고 안소니 부르댕(Anthony Bourdin, 1956-2018)이 진행했던 세계 여행 & 음식 'Parts Unknown'(Travel, CNN)을 연상시킨다. 부르댕은 지구촌 곳곳 미지의 세상, 이국적인 음식과 문화를 탐험했다. 반면, 최불암씨는 한국의 시골 마을, 어촌, 산촌, 오지, 바다를 찾아가 토속 음식과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준다.  


최불암씨는 때로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MBC-TV)의 큰 어른 김회장처럼 자상하게, 때로는 '수사반장'(MBC-TV)의 박반장처럼 예리하게 질문을 던진다. 마을 사람들의 마당에 둘러 앉아 노트북을 들고 메모하면서 토속음식을 즐기는 모습은 정겹다. 그의 구수한 해설이야말로 발효음식같은 인생의 맛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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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에 등장하는 촌 사람들의 땡볕에 탄 얼굴과 주름에서 우리 민족의 고단한 세월을 감지할 수 있다. 가난과 궁핍을 헤치고, 바다로, 밭으로 나가 먹거리를 찾아 지혜를 발휘해 온 가족이 나누어 먹던 생명력에 존귀함이 느껴진다. 지역마다 특산물을 활용한 그들만의 조리법으로 차려내는 '한국인의 밥상'. 이들이야말로 한국의 맛을 지켜온 증인들처럼 느껴진다. 


한민족의 눈썰미가 담긴 '한줌' '넉넉히' '적당히'로 대표되는 한국식 계량법, '갖은 양념'의 조리법과 손맛으로 마무리하는 한국 토속 음식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맛 지킴이들의 "고거 참 마앗 있다!"라는 탄성은 군침을 돌게 만든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볼만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 한국인의 밥상: 묵은지와 할머니

 

"오래된 묵은지는 할머니를 닮았습니다. 할머니의 이불 속같은 온기와 군내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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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YouTube>

https://youtu.be/6Q2-IdxlDXI


맨해튼 32스트릿 K-타운에도 '묵은지(MukEunJi)' 식당이 있다. 한국에서 묵은지 전문 식당이 등장한 때는 2000년대 초였다고 한다. 세기말의 종말론, 희망 대신 공포의 시간을 지낸 후 옛날에 대한 향수였을까? 도시인들에게 헛헛함을 채워주는 묵은지.


우리 민족의 대표 음식 김치 중에서도 세월이 담긴 '묵은지'와 할머니를 주제로 한 '한국인의 밥상'(111회, 2013)는 감미롭고, 따사로우며, 뭉클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최불암씨는 "오래된 묵은지는 할머니를 닮았습니다. 할머니의 이불 속같은 온기와 군내가 있지요."라는 해설로 에피소드를 시작한다.


그는 전국 배추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해남의 겨울 배추밭을 찾았다. 거무스러운 얼굴에 주름진 얼굴로 배추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전라도 사투리를 구성지게 쓰는 할머니를 만난다. 그의 집에서 만드는 *묵은지 붕어찜을 비롯, *세발나물, *묵은지숭어회의 삼합 조리법을 소개해준다. "세상 모든 것에는 짝이 있으며, 붕어찜에는 묵은지"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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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전라도는 묵은지의 고향이다. 김치는 전라도에서 '지'라고 한다. '묵은 김치'가 '묵은지'로 굳어졌다. 한 전문가는 "묵은지는 잘 익은 김치에 비해 영양분은 적지만, 독특한 풍미를 나타내는 화학물질을 생성해서 비린내 나는 어류나 돼지고기같은 육류의 냄새 제거하는 조리용으로 인기 있다"고 말한다. 


인스턴트 'Fast Food' 시대에 김치 자체가 'Slow Food', 묵은지엔 3-5년 더 숙성시킨 시간의 맛이 담겨있다. 그래서 한국의 할머니들은 귀한 묵은지를 딸들에게, 아들들에게 준다. 한국의 묵은지도 서양의 와인처럼 2017년 빈티지를 붙여서 브랜드화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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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최불암씨와 제작진은 이어 묵은지를 찾아 나주로 갔다. 나주에서는 김치에 참조기, 고등어, 홍어 등을 함께 숙성시키는 *생선 묵은지를 소개한다. 묵은지는 생선찌개에 깊은 맛을 준다. 또한, 만두피 대신 묵은지피로 빚은 *묵은지쌈만두는 만두 속의 텁텁함을 개운하게 해주며 소화도 잘된다.  


이어 최불암씨는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으로 가 금월리 꽁꽁 언 저수지 아래서 길러 올린 묵은지의 맛을 본다. 묵은지를 땅 속의 항아리에 담는 것이 아니라 저수지 수심 7미터 아래 보관한다는 것. 4계절 기온이 일정한 저수지 안에 김치 700여 포기가 벽돌과 함께 잠수해 있다. 묵은지는 할머니의 마음처럼 깊은 바다 속에서 나왔다. 저수지 위에서 3년 묵은 시큼하고 깊은 풍미의 묵은지를 맛보는 이들의 모습은 동양화의 한폭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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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묵은지는 삼겹살 구이와 찰떡 궁합이다. 특히 솥뚜껑에 구워야 제맛이다. 담백한 *묵은지전의 맛을 보려는 동네 어린 소녀들의 모습이 제비새끼들처럼 귀엽다.  


이어 최불암씨는 전라도를 떠나 경기도 광주도 찾았다. "100일 된 동치미는 녹용, 산삼보다 좋다"는 여인은 5년 묵은지를 독에서 꺼내며, '아삭아삭한' 질감을 강조한다. 광주에서는 고소한 쌀뜨물에 지은 *코다리묵은지조림, *고추씨묵은지화채. *묵은갓김치비빔밥 등 참신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마지막 챕터는 전라북도 남원의 지리산 자락 산동네다. 오두막집에 사는 꼬부랑 할머니(71)는 한쪽 팔을 못 쓰는데도 불구하고, 손맛이 좋아 김장 500포기를 담궈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가난 속에서 7자녀를 키운 이 할머니는 부엌에서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그때가 좋았다"고 이야기 한다. 


할머니의 가장 오랜 동반자는 마늘 빻을 때 쓰는 돌이다. 그의 어머니가 쓰시던 돌을 자신이 60년 가까이 쓰고 있다. 하찮은 돌이지만, 자신의 손때가 묻은 이 돌은 할머니의 가난과 노동과 고독을 지켜본 무언의 친구였다. 장작불 속에서 구워 나와 김이 모락모락하는 노란 고구마에 한점 찢어 걸친 새빨간 묵은지가 피어난다. 산골 오두막집의 할머니는 자신이 키우던 닭을 잡아 동네 사람들에게 백숙 묵은지를 대접한다. 할머니는 집닭을 조리할지언정 직접 드시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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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최불암씨는 "배추는 땅에서 뽑혀, 갈라져, 절여져, 양념에 숙성되어 묵은지가 되기까지 다섯번 자신을 죽인다"고 해설한다. 그 인내의 시간, '할머니와 묵은지' 이야기는 보름달 아래 흐르는 'Moon River'(헨리 만시니 작곡,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제가)로 막을 내린다. 


'묵은지와 할머니' 에피소드는 최민식 작가의 인물 사진과 함께 챕터 사이에 어린 소녀가 할머니를 주제로 한 시(나태주, 임길택, 정연복)를 낭독하고, '서울의 달' 주제가를 삽입해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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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묵은지와 할머니, KBS 다큐멘터리 <YouTube>

https://youtu.be/6Q2-IdxlD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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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8.06 10:53

    최불암씨가 들고있는 배추가 알이 통통하네요. 김치를 담가도 좋고, 배추국을 끓여도 단맛이 나고, 맛이 있어 보입니다. 최불암씨와 배추가 썩 어을리는 사진입니다. 사람과 재료가 어울릴 때가 흔치않은데 컬빗은 이런 사진을 올려서 이게 바로 걸작이지를 실감했습니다.
    한국인의 밥상은 김치가 으뜸이지요. 김치를 중심으로 반찬이 차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껍니다. 배추김치, 깍두기, 얼가리, 묵은지, 겉절이, 섞박지, 막김치 등등 입맛을 돋구는 김치들이지요. 특히 김치는 발효식품이라 건강에도 좋아요. 김치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고 하니까 많이 더 많이 먹으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