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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맛, 최불암씨와 KBS 다큐멘터리

'한국인의 밥상' 하이라이트 <4> 참을 수 없는 세겹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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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좋아하십니까?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음식이지만, 일상을 나누는 동네 친구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소한 추억이 꽤 있지요. 
오늘은 그 평범한 덕분에 오히려 여러 겹의 기쁨을 주는 삼겹살, 밥상을 받아볼까요."
-최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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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씨는 '한국인의 밥상'(260화, 2016년)에서 '삼겹살, 참을 수 없는 세겹의 즐거움'을 찾아 나선다. 한국에선 '국민고기', 미국에선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들에게 금기음식이다. 하지만, 모모푸쿠(Momofuku) 스타 요리사 데이빗 장(David Chang)이 포크 번(Pork Bun)으로 유행시키며 재평가된 삼겹살(pork belly)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최불암씨는 거제도, 예산, 마장동 축산물시장, 문래동 철강거리를 찾아간다. '삼겹살'편에서는 이 고기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서민들의 결혼 이야기, 실향민의 향수를 자아내는 개성 음식,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철강골목 장인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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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삼겹살 여행지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의 부춘리. 된장, 간장이 맛있는 마을이다. 부춘리는 간장*도 담는 달에 따라 정월장, 5월장, 9월장으로 와인처럼 빈티지가 있다. 짚에 불을 피워 독(항아리)를 소독한 후 간장을 붓고, 방부 효과가 있는 대나무를 비롯 숯, 대추, 감초 등을 넣는다. 이후엔 시간이 맛을 낸다. 이 마을에선 산돼지를 잡은 후 고기를 간장이나 된장에 저장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소금기가 많은 장독은 자연 냉장고였다. 저장도 하고, 맛도 살리고. 된장박이 삼겹살은 잡냄새가 없고, 특유의 감칠맛이 더해진다. 

된장 독 속에 묻어두어 맛있게 삭은 삼겹살은 가마솥 뚜껑에 두부와 함께 구워 먹는다. 두부는 삼겹살의 짠맛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이 된장박이 삼겹살에 대해 최불암씨는 "삼겹살처럼 고소하고, 두부처럼 소박한 삶"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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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서는 두부를 만들다 남은 비지(비계)에 시래기, 삼겹살, 쌀을 섞어 만든 콩탕밥도 유명하다. 콩탕밥은 원래 평양의 전통음식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거제도로 피난왔던 평양 사람들이 만들어 먹으면서 거제도의 토속음식이 됐다. 가마솥에 지어 고슬고슬한 콩탕밥은 간장박이 삼겹살에 김치를 넣고 만든 두루치기가 제격이다. 거제도의 햇살과 인심이 차려낸 삼겹살 밥상이다. "맛 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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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씨는 잠시 멈추어 한국인들이 삼겹살을 먹게된 유래를 설명해준다. 삼겹살은 1970년대 값싼 고기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돼지고기는 황해도에 있는 고구려 안악 3호분(安岳 3號墳) 고분 벽화에도 등장한다. 언제부터 먹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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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상으로 기록된 것은 교육자 방신영이 쓴 한국 최초의 근대식 요리책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1911, 고려대도서관 소장, 국가등록문화재 제686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전으로 이어지던 한식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이 책에선 '세겹살'에 대해 "돈육 중 가장 맛있는 고기"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 '조선요리제법'에는 요리용어 해석, 중량 비고, 주의사항으로 시작, 기초요리법으로 양념과 가루 만드는 법, 소금, 기름, 드레싱, 버터, 마가린 등 서양음식에 필요한 소스 만드는 법이 소개된다. 이어 당류, 초 만드는 법, 메주 쑤기, 장 담그기, 젓갈류, 김치류, 찬국, 장아찌, 조림, 찌개, 지짐이, 찜, 볶음, 무침, 나물, 생채, 전유어, 구이, 적, 자반, 편육, 포, 마른반찬, 회, 어채, 묵, 족편, 잡록, 쌈, 떡국, 만두, 국수, 편, 정과, 강정, 엿, 엿강정, 숙실과, 다식, 유밀과, 화채, 차, 즙, 이의, 암죽, 미음, 죽, 국, 수프, 밥, 떡 등 예순한 개 항목 아래 5백여종의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계절별, 잔치 종류에 따른 상 차림법 15가지, 어린아이 젖(혹은 우유) 먹이는 법도 설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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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씨는 이어 서울시 마장동의 축산물 시장의 발골 전문가를 찾아간다. 연간 200여만명이 방문하는 이 시장에서 27년째 하루 40마리의 돼지를 발골하는 전문가를 만나 함께 삼겹살을 먹고, 그의 부인이 준비한 삼겹살 요리를 소개한다. 

도대체 삼겹살은 어느 부위일까? 비계가 많은 뱃살만은 아니다. 오리지널 삼겹살은 돼지의 갈비뼈 15개 중 5번부터 15번까지 갈비뼈에서 떼어낸 살이라고 한다. 물론 마장동 발골 전문가의 점심식사는 최고급의 삼겹살. 여기에 버섯과 마늘도 곁들인 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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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에서는 부인이 제일 맛있는 부위라 찬사를 마지않는 삼겹살로 묵은지제육볶음이나 등뼈와 묵은지를 넣고 푹 고는 묵은지 뼈다구탕*을 소개한다. 그녀는 등뼈의 핏물을 빼면 육즙이 빠지므로 물에 담구어둘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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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가장 맛있는 살코기 부위로 둔갑시킨 것은 개성 상인들이라는 설이 있다. 음식 찌꺼기, 쌀겨, 보릿겨, 비지 등을 먹던 돼지에게 섬유질이 적은 사료를 먹여 비계가 겹겹이 쌀여 만들어진 삼겹살을 비싼 값으로 내다 팔며 유래됐다는 것이다.

다음 행선지는 충청남도 예산의 3대가 사는 느티나무집이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던 피난민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고향 개성의 향토 음식을 전수했다. '개성의 밥도둑'으로 불리우는 장땡이(장떡)은 된장과 돼지고기 다진것에 갖은 양념으로 반죽해 시루에 찐 후 동그랗게 빚어 햇볕과 바람에 말렸다가 구워 먹는 슬로우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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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된장에 찹쌀가루·다진 쇠고기·통깨·파·마늘·고춧가루·참기름 등을 넣고 반죽하여 시루에 찌고, 이것을 지름 5㎝, 길이 15㎝ 정도로 빚어서 채반에 담아 볕에 말린다. 말린 장땡이는 항아리에 덜어 보관하다가 두께 0.5㎝ 정도로 썰어서 구워먹는다. 

부친의 고향이 황해도라는 최불암씨는 이 귀농 가정의 부엌에서 며느리가 만드는 개성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다. 맑은 물과 솔잎에 쪄내 담백하고, 정갈한 삼겹살 수육, 돼지고기를 살짝 데쳐 소금, 후추로 밑간한 후 달걀옷에 입힌 제육저냐, 배와 홍시, 굴과 새우를 넣은 개성 보쌈김치, 그리고 장땡이가 차려진 개성 밥상을 마주한다. 최불암씨는 "가끔은 음식 대신 기억을 먹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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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서문시장에선 매년 3월 3일 '삼겹살 데이' 축제를 연다. 시장에선 1천여분의 삼겹살을 준비해 당일 오후 2-4시에 무료로 삼겹살을 제공한다. 원래 삼겹살 데이는 2000년 초반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 파동으로 축산양돈농가의 피해가 커지자 2003년 파주 연천축산협회가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해 삼겹살 먹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퍼져나갔다. 

이젠 전국 대형 마트나 동네 정육점에서 삼겹살 세일도 한다. 이에 삽겹살 판매량은 평소의 10배 이상 증가한다. 
맛있는 삽겹살을 고르는 법은? 고기색이 선홍색을 띠면서 탄탄하고, 윤기가 나는 고기가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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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이 국민고기가 되면서 센스있는 셰프들은 퓨전 레시피를 개발했다. 서울 삼겹살 전문 식당 장뚜가리의 대표 유성호씨ㄷ 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삼겹살을 3단계 숙성 과정을 거쳐 잡내를 없앤 후 달고, 짜고, 시고, 맵고, 쓴 5가지 맛의 소스를 쓰고, 오징어 먹물에 조린 후 크림소스에 버무린 버섯 위에 얹은 퓨전 레시피 오징어먹물 삼겹살을 소개했다. 이 퓨전 삼겹살 요리엔 칠레산 카버네 소비뇽(Viu Manent Cabernet Sauvignon Colchagua Valley Single Vineyard la Capilla 2007)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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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날 최불암씨가 찾은 곳은 서울 문래동의 철강거리다. 1960년대 산업단지로 철강소와 자재점포가 이어졌던 이 동네는 이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서며 풍경도 달라졌다. 그가 찾은 가게는 쇠로 못만드는 게 없는 쇠쟁이와 그의 대를 잇고 있는 아들이 일하는 재연기계. 51년간 쇠를 만져온 장인의 손은 마치 가죽같다. 

쇠장인은 삼겹살 전용 화덕/불판을 만들었고, 종종 삼겹살을 구워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다. 불판 위의 삼겹살이나 군고구마는 함께 나누어 먹어야 제맛이 나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한곳에 모으는 소통의 음식이다. 최불암씨는 여기서 교훈을 또 하나 던져 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간다."

최불암씨는 우리 민족이 왜 특히 삼겹살을 좋아하는가 자문한다. 그는 그날 문래동의 삼겹살에서 세가지의 즐거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첫째 이 세상을 일구어온 모든 사람들의 땀이 한겹, 둘째 함께 먹은 사람들과의 기억이 한겹, 그리고 오늘은 힘들었더라도 내일은 잘해보자는 각오의 한겹까지 세겹의 즐거움을 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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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8.27 10:17
    삼겹살하면 인간미가 떠오릅니다. 여럿이 모여서 구워먹는 분위기가 정을 오게하는 것 같아요. 깻잎과 풋고추, 마늘, 상추, 푸성귀를 씻어서 물기가 가시지않은 이 재료들을 소쿠리에 담아서 쌈장과 함께 한입 크게 벌리고 먹는 그 맛이란 일품요리가 따로 없지요. 여기다 보리밥은 제격이지요. 보리밥 숭늉은 얼마나 구수한지, 불룩해진 배를 툭툭치면서 상을 물리고 일어서려고 하면 모두들 또 만나서 한잔하자고 허허댑니다. 삼겹살이 인간미와 정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한국인의 밥상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한국 어느 농촌에 와있나 하는 실감을 느꼈습니다. 자세하고 재밌게 한국인의 밥상을 올려준 컬빗 친구에게 감시를 드립니다. 코로나가 사람과의 만남을 많이 뺏어갔지만, 오히려 컬빗과 더 많은 시간을 갖게해주고 친하게 해줍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