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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버닝(Burning)' 원작 '헛간을 태우다'는 어떤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1992년 주간 '뉴요커'에 발표, 단편집 '코끼리의 소멸'에 수록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과 오정미씨 공동 각색 '버닝(Burning)' 칸영화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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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주연,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 2018)'.

 

이창동(Lee Chang-dong) 감독이 시(Poetry, 2010) 이후 8년만에 연출한 버닝(Burning)'이 올 칸 영화제(5/8-19)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을 각색한 영화다. 

 

하루키가 1992년 11월 2일자 주간 뉴요커(New Yorker)에 기고한 이 단편소설은 필립 가브리엘(Philip Gabriel)의 번역으로 실렸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에서 출간된 단편소설집 '코끼리의 소멸(The Elephant Vanishes/象の消滅, Zō no shōmetsu)'에 알프레드 번바움(Alfred Birnbaum)의 번역으로 수록됐다. '코끼리의 소멸'엔 동명 단편을 비롯, '헛간을 태우다'와 '빵가게의 재습격' 등  17편이 실려 있다. 한국에선 2004년 6편의 단편이 수록된 '빵가게 재습격'(권남희 번역)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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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첫 베스트셀러 '노르웨이의 숲(한국 번역명 상실의 시대)'(1987)을 원작으로 한 영화 '상실의 시대', 2010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 1987)'가 '그린 파파야의 향기' '시클로'의 베트남 출신 트란 안 홍(Tran Anh Hung) 감독이 각색, 연출했다. 하지만, 하루키의 초현실풍 분위기에 상실감, 고독을 묘사된 장편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종종 단편 소설을 각색했다. 

 

'버닝'은 택배기사 종수(유아인 분)가 어릴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 분)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고.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이 하루키 단편을 어떻게 각색했을지 궁금해진다.  

 

02.jpg 버닝, 2018

 

*'버닝' 예고편(티저)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헛간을 태우다' 줄거리

Barn Burning, 1992, 11/2, New York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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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나(31)는 3년 전 도쿄의 지인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녀(20)를 만났다. 그녀는 판토마임을 공부하며 광고모델로 돈을 벌고 있었다. 나는 유부남이었으나, 우리는 서로 나이차에 개의치 않았다. 거의 무일푼인 그녀는 남자들을 이용해 음식, 옷, 돈을 얻어내며 살았다. 그녀는 판토마임으로 귤을 까는 흉내를 잘 냈다. 나는 그녀의 퍼포먼스를 보며, 현실과 실체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그녀와 가끔 데이트를 하면서 1년이 흘렀다. 어느날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유산을 받은 그녀는 아프리카 알제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녀를 공항까지 배웅하는데, 그녀는 여행자가 아니라 북아프리카로 귀국하는 것처럼 보였다. 3개월 후 그녀는 살이 빠지고, 검은 피부가 되어 새 남자친구와 함께 돌아왔다. 알제리아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는 20대 후반의 그 남자는 수출입업을 한다는데 옷 잘입고, 말도 잘했다. 개츠비같은 그 남자는 독일제 스포츠카를 몬다. 

 

그해 가을 일요일 아내는 외출하고, 사과를 일곱개 먹은 날 그녀와 그남자가 예고 없이 방문한다. 음악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Airegin', 스트라우스의 왈츠로 이어지며 마리화나를 피우는데, 그녀는 잠들어버린다. 내가 학교시절 아기 여우와 털장갑 이야기를 하다가 그 남자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헛간을 태운다고 말한다. 가솔린을 붓고, 성냥불을 그으면 15분만에 탄다는 것. 그는 내게 라비 샹카 음반 있냐고 묻더니, 2개월에 하나꼴로 헛간을 태운다고 고백했다. 불지른 후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는데, 경찰에 잡힐 염려도 없다고 했다.

 

그 남자는 "이 세상엔 내가 불태우기를 기다리는 헛간들이 참 많다"고 말했다. 헛간을 완전히 태우는데는 15분 걸린다. 이것은 비와 마찬가지라고. 그는 나름대로의 도덕성의 원칙을 갖고 있다. 도덕성은 평행의 존재다. 이 세상은 헛간으로 가득하다. 당신도, 나도 갖고 있다. 다음에 불지를 헛간도 정했다. '당신 동네'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와 떠난다.

 

Untitled-1.jpg 버닝, 2018

 

다음날 나는 호기심에 지도를 사서 동네의 헛간들을 조사했다. 세어보니 16개에 달했다. 이중 태울만한 후보 헛간을 5개로 축소했다. 그가 다음에 어느 헛간을 태울까 궁금해졌다. 조깅하면서도 후보 헛간들을 지나가며 보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즈음까지 불탄 헛간은 없었다. 

 

나는 우연히 커피숍에서 그남자를 만났다. "헛간을 태웠냐?"고 물었더니, 그는 "태웠노라"고 말했다. 매우 나에게 가까운 곳이라면서. 또한, 그녀와는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나는 가장 의존할만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이면서. 나는 어쩐지 그를 만나면,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적합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후로 나는 그녀에게 전화도 해보고, 아파트에도 가봤지만, 그녀는 영영 사라졌다. 1년 전의 일이다. 나는 아직도 아침마다 조깅하면서 동네의 헛간 5군데를 지나간다. 하지만, 불탄 헛간은 없다. 12월이 다시 오고, 겨울새는 날가가고, 나는 점점 더 늙어가고 있다. 나는 종종 깊은 한밤중에 헛간이 불타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헛간은 무엇인가? 헛간은 그녀일까? 적폐일까? 잊어야할 기억일까? 공연한 망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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